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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몰입교육]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몰입 논평


2008.02.11



오~린지 ~


영국에서 4년간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유럽에서 공부하러 온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 중 상당수는, 특히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 네덜란드 등 북유럽 출신들은 대부분 영어에 능통해서 굳이 출신 국가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영국인인 줄 알 정도였다.


이유인즉슨, 이 나라들에서는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의 소득이 5만 불에 가까운 선진국들은 국민 대부분이 영어 회화에 능통하다 는 주장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꼭 이 나라들만도 아니다. 필리핀이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케냐 같은 곳에서도 영어는 공용어나 상용어 등으로 흔히 쓰인다. 런던에서 말레이시아 친구 두 명과 1년간 집을 나눠 썼는데, 교육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불법체류 형편의 친구들임에도 일단 발음에 익숙해지자 (물론 서로 간에...) 영어로 대화하는데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에는 분명히 문제가 없지 않다. 다른 게 아니다. 최소 6년 거의 매일 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고, 국영수 라는 말이 주요 교과목의 고유명사로 수십 년 간 쓰이는 현실 속에서도 고등학교 졸업 후 영어로 대화나 책 읽기가 가능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다. 그리하여 지난 수십여 년 간의 영어 교육이 자원과 돈. 시간의 낭비에 불과했다는 점이 또 문제다. 한마디로 도무지 교육의 양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영어 교육이 변해야만 한다는 대원칙에는 공감한다. 써먹지도 못하는 언어를 주요 교과목으로서 붙잡고 죽도록 공부하는 것은 미련의 극치다. 접근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고 필자 역시 6년간의 영어권 국가 생활 속에서 그 피해를 알게 모르게 입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치는 것도 제대로 고쳐야 쓸 일.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식이거나 ‘빈대 한 마리 잡으러 초가삼간 다 태우는’ 식으로 해서야 안될 일이다. 그런데 요즘 어째 그런 기미가 심심찮게 보인다. 인수위가 가지고 있는 영어 교육에 대한 위험천만한 사고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영어 외 다른 과목도 영어로 가르친다는 소위 ‘영어 몰입교육’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필자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정치 만화나 기업 만화에서나 등장할 듯한, 아니면 본지가 장난 삼아 내세울 만한 그런 이야기. 명박네가 그토록 멸시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찧고 까부는 노무현도 들고 나오지 못할 것 같은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이 정권 인수의 중임을 맡은 이경숙 위원장의 개인적 철학이기까지 하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놀라움을 넘어 이 나라의 총체적 미래가 크게 걱정될 지경이었다.


다행히 요즘은 이 이야기가 좀 들어갔다고 하지만, 이런 발상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필자는 그저 두렵다.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아온 인수위원장의 현실 인식이나 세계 인식, 교육관이 이런 수준이라는 점에서, 명박네 주변이 현재 얼마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흥분된 상태인지 빤히 보이는 것 같아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다.


일단 ‘국민소득 5만불 나라는 모두 초등학교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준비된 나라다’ 라는 인수위원장의 주장은 현상적으로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완전한 착각에 기초하고 있어서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 절대로 아니다.


그럼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명제 하나를 제시해 보자.


‘유럽의 모든 언어는 서로의 방언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말 그대로다. 영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등 유럽에서 통용되는 언어들은 모두 서로 사촌간이란 말씀이다. 그 이유는 이 언어들이 비록 정도 차이는 있지만 라틴어와 켈트(갈리아)어, 게르만어 등 공통된 언어들의 직간접적 공통 영향하에 있기 때문이다. 영어의 주인공인 앵글로-색슨 족 역시 크게 보면 게르만의 일파이다.


그래서, 이들 언어간의 차이는 이를 테면 대한민국 본국과 제주도 방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며 어순, 단어, 문법, 발음, 표현 등 공통점은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사람들은 유럽 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다. 다시 말해 독일인이 영어를 배워 쓰는 것은 우리가 영어를 배워 쓰는 것과는 노력의 질과 양 측면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가 몇 개 국어를 합네, 네덜란드의 13세 천재 소년이 10개 국어를 합네 하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10개 국어를 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네덜란드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 이태리어 같이 유럽 내 언어들이지, 네덜란드어 한국어 중국어 폴리네시아어 스와힐리어 같은 식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인수위원장이 말한 ‘5만 불 선진국’ 이 바로 대부분 이 서/북유럽 지역에 속해 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가 몰입교육까지 실시하면서 그쪽을 따라가려 한다 한들 충분한 성과가 나올 리가 만무하다.


또, 2006년 기준 세계은행 자료에 의하면 국민소득 5만 불을 넘는 국가는 룩셈부르크와 버뮤다,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덴마크, 아일랜드 정도에 불과하다. 룩셈부르크와 버뮤다, 리히텐슈타인은 인구 백만도 되지 않는 소국이며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4~500만 수준으로 서울의 절반 이하, 스위스는 7백만 정도지만 필자가 실제 겪어본 바 영어를 그다지 잘 못한다. 1년 지났으니 소득이 올랐다 치고 4만불 대로 가도, 미국 영국 호주 등 기존 영어권 국가를 제외하면 이런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유럽 문화, 역사 및 언어의 바탕을 공통적으로 가진 작은 규모의 나라에서 실시하는 영어 교육과, 문화와 역사, 언어의 뿌리가 완전히 다른 인구 5천만의 나라에서 하는 영어 교육이 같을 수는 없는 일이고 같아서도 안 된다. 네덜란드나 노르웨이가 몰입교육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논리를 국민소득과 성장의 논리를 적용하여 우리나라에 같이 적용시키려는 것은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들로서의 소양은커녕 기본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헛짓일 뿐이라는 말씀이다.







그럼 이제 다른 의문이 하나 남는다.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은? 아니 이런 나라들(비웃으려는 의도 아님. 반어적 표현)도 영어로 의사 소통이 다 되는데 훨씬 잘 사는 우리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이런 나라들도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사는데 우리가 못할게 뭔가?


유감스럽지만 이런 생각 역시 위의 경우와 똑같은 착각의 발로에 불과하다. 일단 이 나라들은 오랜 세월 영국 미국 등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당연히 영어가 상당히 퍼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인데, 우리 할아버지 또래들이 일본어에 익숙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포함)의 경우 인도/유럽 어족으로 분류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언어가 영어와 같은 뿌리다. 결국 기본 여건이 나름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데는 이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위에 열거한 나라들의 대부분이 다민족, 다언어 국가라는 점이다. 예컨대 인도라는 나라에는 수십 개의 지역 언어와 방언이 존재하고 서로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에는 불교를 믿는 중국계와 힌두교 계통의 인도 남방계, 토착 원주민 등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간다. 많은 섬과 부족으로 이루어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라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통합된 사회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공용어’의 채택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각 지방의 정부나 관청, 기업 등 상호 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고 국정 운영이나 경제 및 사회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에 바탕이 마련되어 있던 영어를 모두가 함께 쓰는 제 2의 언어로 선정, 교육하고 또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매우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들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영어가 없이도 내부적 의사 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다. 심지어 수십 년 간 떨어져 살았던 북한과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만주 연변 지역 사람들과도 별로 힘들지 않게 대화가 가능하다.


굳이 국어 사랑과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 같은 이야기를 꺼내기 이전에, 이처럼 우리 나라에서의 영어는 단지 바깥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서만 그 의미를 갖는 수준이고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특기’ 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특기를 굳이 전국민에게 강요하겠다는 인수위원장의 몰입교육에 대한 ‘철학’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멀어도 너무 멀리 떨어진 뜬구름잡기에 불과하다.


잊을 때쯤 되면 도처에서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는 ‘영어 공용화’ 주장도 마찬가지로, 문제의 앞뒤를 전혀 살피지 않은 무지의 소치일 뿐인 것이다.







필자는 캐나다에서 2년, 영국에서 4년 하여 총 6년간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고 영국에서 정규 대학을 졸업했다. 이렇다 보니 필자에게 있어서 영어는 매일매일의 생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캐나다의 어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게임과 노래를 영어로 배우는 차원으로, 일반 교과로 따지면 잘해야 초등학교 2,3 학년 수준이었다. 나이 30에 중고등학교 6년, 대학교 4년 해서 도합 10년간 거의 매일 영어 교육을 받고 수백 번의 영어 시험과 토플 고득점도 받았던 필자의 ‘실제’ 영어 실력은 고작 원어민 10세 어린아이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 단기 영어연수 붐이 불기 시작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캐나다와 영국으로 왔다. 필자는 이런저런 계기로 그들을 근거리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 중 최하 80%는 영어에 거의 아무런 발전이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이미 머리가 굳어 있으니 갑자기 와서 회화 위주 공부를 몇 달 한다고 해서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한 것이다. 결국 돈 낭비 시간 낭비다.


그런 과정을 보며 필자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특히 영어를 수학이나 과학 같은 학문처럼 공부하는 풍토가 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어 과목에 관한 한 영어로 하는 수업을 병행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추진해 볼 만 하다. 영어 교과서나 시험의 특성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지금과 같은 영어 교육은 거기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을 생각할 때 참으로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그냥 영어의 바다에 풍덩 빠뜨려 버린다? 이것은 실제 효용도 없을뿐더러 대운하보다 10배 더 위험한 발상이다. 마치 전국민을 어학연수 보내야 한다는 것만큼이나 현실성도 없고, 문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책상물림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반대로 영어 교과를 아예 필수 과목에서 빼 버리고 제 2 외국어처럼 정말 배우고 싶은 사람만 제대로 배우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면 효과도 없는 영어 교육을 위해 쓸데 없이 버려지는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한편 영어에 능통한 고급 영어 인력은 인력 대로 공교육을 통해 양성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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