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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집단인격장애의 사회


2008.02.19



은밀하게 숨겨진 채 자행되는 폭력을 드러내 그 가해자를 제지, 고발하고 피해자를 구완하여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을 꽤 오랫 동안 해 오고 있는 방송 노동자로서, 진저리치도록 싫지만 가끔 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강제 입원이다. 정신질환이나 알콜중독, 그 외 갖가지 이유 때문에 가족과 이웃에 심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지만 스스로의 문제 인식을 거부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정신보건전문가들의 설득까지 무위로 돌아갔을 때 가족의 동의를 얻고 경찰의 입회 하에 그 사람을 병원으로 강제로 보내 의사의 진단을 받게 하고 필요하면 입원시키는 과정이다.  


지난 주에도 팔팔하게 젊은 청년 한 명을 입원시켜야 했다. 그는 5년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구타해 왔다. 입원하기 며칠 전에는 장장 네 시간 동안 우산이 살이 부러져 몇 토막이 날 정도로 아버지를 때렸다.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쌍시옷으로 출발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엄마라고 불리웠던 마지막 기억조차 희미할 지경이었으니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 부모는 가게에 딸린 곁방에서 생활하기 일쑤였고 집 밖 출입을 안하는 아들에게 음식을 갖다 바치러 들어갔다가 수시로 두들겨 맞았다.


아버지가 열쇠로 문을 열어 준 순간 카메라를 쳐들고 집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병원 진단을 권유함과 더불어 대체 무슨 연유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그리도 분노케 하였는지 왜 분노의 폭발이 부모를 향한 것인지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다른 패륜아처럼 자신도 억울하다고 호소하지도 않았고, 또 어떤 이처럼 과거 부모의 학대를 자신의 폭력의 원인으로 들이대지도 않았다. 그저 병원에 가라면 가겠다는 것. 그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불길이 퍼지고 있었다.


의사는 무조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충동조절장애가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사이코틱한 문제는 없다고 했다. 즉 우울증이나 정신분열 등 정신질환의 문제가 아니라 미성숙한 인격장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미쳐서 그런다면 희망의 빛은 오히려 커질 것이다. 치료하면 되니까. 그러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들로 인해 충동과 분노의 조절을 가능케하는 인격과 자아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음이 아들의 문제였다.   


병원에 입원시킨 후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온 부모가 아들의 방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그것은 편지라고 하기도 뭐하고 유서라고 하기도 더더욱 무엇한 열 페이지가 넘는 글이었다. 물론 글씨가 좀 크긴 했지만. 


그 첫머리는 이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뭔가 진지하게 시작하는 듯 했으나 몇 줄 못가서 그의 편지는 별 근거가 없는 부모에 대한 증오로 흘렀고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분노도 적당히 퍼부어 주면서 자신이 그럴 수 없이 불쌍한 피해자임을 강변하는 낙서로 변해 갔다.


초등학교 때의 어느 생일날, 아버지가 아들이 소망하던 기백만원짜리 책 몇 질을 들여놓고 기다리는데 녀석은 PC방에서 스타에 열중하고 있었고 찾아나선 아버지가 녀석에게 군밤 몇 대 주고 집으로 끌고 온 사건(혹시나 싶어 주위를 확인해 봤는데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PC방에서 개 패듯 아들을 팬 아동학대 사건으로, 그런 미친 (?) 아버지를 둔 탓에 친구들이 자기를 왕따시키기 시작한 계기로 둔갑되어 있었다. 심지어 과거 부모가 견디다 못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던 것을 살의를 품었다고 할 만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왜 그를 기화로 군대 면제를 시켜 주지 않았는지에 대해 또 원망을 늘어놓는다. 학교 선생님은 자기만 두들겨 팼고, 그것 때문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남 탓, 부모 탓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책임을 들먹이면 그는 예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더 황당한 순간은 아들의 몇 안되는 친구를 만났을 때 있었다. 친구는 정신병원에 들어간 아들의 행동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는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며 가족의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아버지가 진정한 대한민국의 아버지라고 여긴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고 심지어 유서(?)에 적힌 바 부모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품은 계기가 되었다는 1차 입원 후에도 친구들 보는 앞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내가 아빠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따위의 고백(?)을 하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의사에 따르면 죽어도 자신의 상황을 남 탓으로 돌리는 이유는 그 책임을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그것을 남이 자기에게 부당하게 올려놓은 돌더미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자기를 합리화시킨다는 것이다. 의사의 설명을 곰곰 곱씹어 보자니 숭례문에 신나를 끼얹고 불을 그었던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분노가 번쩍 하고 떠올랐다. 말도 안되는 토지 수용 보상금을 요구하다가 안되자 창경궁에 불을 질렀던 노인, 이제는 그 혐의조차 누명이라고 억울해 하면서 그 억하심정으로 숭례문에 불을 지른 뒤 멀쩡하게 경로당에 출근하여 쓰리고에 피박을 부르짖었다는 노인, 현장 검증을 할 때에는 엉뚱하게 노무현 탓을 하며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뇌까리던 노인을 보면서 얼마나 황당해했던가.

노인과 청년, 수십 년 세월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행태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을까. 숭례문은 몇 시간만에 불타 버렸지만 아들의 집은 5년 동안 불타 오르고 있었고, 숭례문은 사람들이 애타게 지켜보는 가운데 무너져 내렸지만 부모의 마음은 아들로부터 발길질당하는 끔찍한 고통 속에 오랜 세월 허물어져 왔다는 것은 다르지만 말이다. 


의사 선생님의 계속된 설명에 따르면 인격장애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소통의 부재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 사이 등등에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여기면서도 그 관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고, 그것이 제 3자의 적절한 개입이나 올바른 교정이 없을 경우 하나의 틀로 굳어진다고 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심각한 수준의 인격장애자의 수만 해도 열 손가락을 넘긴다. 그리고 간접경험까지 합치면 기십 명은 될 것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가정에서는 폭군으로 군림하며 만만한 부모와 형제를 무릎꿇린지 오래고 학교에서도 내놓은지 옛날이기 십상이며, 바깥 공기를 쐬고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기 싫어서 오로지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자신의 이 기구한 처지를 부모와 남 탓, 심지어는 사회 탓으로 돌리며 증오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 한심한 (솔직히 한심하다는 표현을 아니 쓸 수는 없다) 인생들에게 나 자신 원초적인 감정으로 뒤통수 몇 방 치면서 새꺄 정신 차리라고 외치고 싶은 맘도 굴뚝같았다. 그리고 이 얘기를 해 주면 그런 놈들은 맞아야 한다며 금방이라도 몽둥이를 휘두를 듯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그런 행동과 감정들이 결국은 그들을 가둔 담장의 높이를 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은 점점 더 예측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 갈지도 모른다. 폭력이나 억압으로 그들을 끌어내고 훈육하는 것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주는 일이기 십상이다. 사람을 이 정도로 때리면 굴복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 말이다.


국민 여러분 성공하세요 라는 밑과 끝이 동시에 없는 구호를 앞세운 대통령이 취임을 앞둔 날, 어린쥐 달라고 해야 오렌지 쥬스라도 얻어먹는다는 영어 몰입의 시대에, 성공은커녕 평범의 대열에 끼지도 못한 낙오자(?)들, 소통을 거부하고 또 거부당했던 그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인간 쓰레기들을 모아 삼청교육이라도 시켜야 할까? (이 말을 너무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음에 나는 가끔 아연실색을 한다) 국가경쟁력을 선도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만을 교육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부처 이름에까지도 인재를 끼워 넣으려던 분들에게 저 아들은 어떻게 비칠까.   


의사 선생님의 말은 끝까지 의미심장했다. "그 분노가 지금은 만만한 부모에 머물러 있지만 그게 자기한테로 갈 수가 있어요. 난 왜 이 모양이냐 하는....... 그럼 자살로 가게 되지요. 그 다음으로는 외부로 향할 수가 있지요. 반사회성 인격장애지요.  그렇게 되면 숭례문이 불타는 거지요. 유영철이 또 나오거나" 


숭례문은 무너졌다. 임진왜란의 불화살도, 병자호란의 대포알도, 6.25의 폭격도 절묘하게 피해 간 숭례문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70 노인의 신나 한 통에 잿더미가 되었다. 더 무너질 것은 없을까. 더 불탈 것은 없을까. 언제까지 우리는 미친 놈들에게 욕설만 퍼부어야 할까.


산하(nasanha@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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