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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추천] 이명박 시대, <추격자> 보고 마음의 준비를...


2008.02.22


- 본 기사는 본격적인 영화리뷰가 아니기에 딱히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요약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스포일러가 없을 수도 있으나 사람에 따라서는 기사 중에 언급한 특정내용이 스포일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알아서 가려 읽으시되, 어차피 이 영화는 스포일러 어쩌구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니 걍 읽어도 무방할 듯 하다. 




그래도 한때 영화학도였다는 자의식 때문인지 구제불능의 스노비즘 발현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소위 위대한 대중지성에 의해 너무나 자주, 과격하게 심판 받곤 하는 영화평론가들의 강추/비추 목록을 개인적으로는 꽤 참고하는 편이다. 특히 정보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개봉영화의 경우에 그렇다. 그들의 견해를 100프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고, 레토릭의 설레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필터링을 한다. 압도적 걸작이니 불후의 필견목록이니, 딱히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세상에 내가 미처 다 찾아볼 수 없는 훌륭한 영화가 너무 많거나 아님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저 머나먼 피안의 취향 탓이거나 대충 그 정도로 넘어간다. 취향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는 최소한의 완성도에 대한 마루타 보고서, 이게 내가 영화평론가들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추격자>의 경우 평소보다 좀더 엄격한 필터링을 한 후 극장 안에 들어섰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한국영화,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여간해서는 와꾸가 제대로 들어맞는, 그야말로 웰메이드한 작품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스릴러 장르라는 점이고, 또하나는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란 점이다. 신인감독이 스릴러를 꽤잘 만들었다!? 오케이! 접수.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평론가들이 관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런데...


간만에 이 단어 한번 써보고 싶었다.


씨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드디어 <지구를 지켜라>를 넘어선 데뷔작을 목격했다. 극중 살인마 지영민(하정우 분)이 무심하게 휘두른 망치에 아작이 난 건 희생자들의 머리통만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시나리오상의 사건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선에 따라 내러티브가 구축될 수 있음을 웅변해주는 사례다. 영화를 찍다보면 아무리 탄탄한 시나리오라 하더라도 시나리오(종이에 쓰여진 글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설명하자니 진부하고, 생략하자니 영원히 메꿔지지 않는 구멍. 전자에 해당하는 수많은 범작들과 후자에 해당하는 수많은 졸작들 (유독 호러, 스릴러 장르에 이런 빵꾸가 많다 ) 사이를 유영해 본 경험이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가치가 보다 실감나게 다가올 것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도덕률을 가지고 있는 포주 엄중호(김윤석 분)가 절대악 지영민에 대한 사실상의 유일한 추격자로 변신하며 본의 아니게 정의의 사도가 되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방식은 구구한 설명, 혹은 논리적 인과율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상찬한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날것의 에너지는 사실상 엄중호의 변화가 관객들에게 얼마만큼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그 설득의 방식이 기가 막히게 영화적(시네마틱한)인 방식이란 점이 본 기자의 후두부를 작살낸 것이다.


처음 엄중호가 은지의 집을 나설 때 떨어지던 유리창(과 빈 집에 우두커니 홀로 서 있는 은지의 모습), 지영민 조카의 머리에 난 끔찍한 상처를 보여주는 클로즈 업, 엄마의 불행을 예감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은지의 모습을 보여줄 때의 비동조적 연출(카메라는 차 밖에서 차 안의 은지를 비추고 사운드는 은지의 울음이 아니라 빗소리와 음악을 들려준다) 등등.


사적 이익의 추구에서 시작한 엄중호의 추격의 동기가 보다 순수한 형태의 분노로 전이되는 순간, 관객들 역시 식상한 양아치로서의 엄중호를 지워버리고 순수한 구원과 복수의 대리인으로서의 엄중호에 몰입하게 된다.


극장 안 많은 이들의 소리없는 비명을 자아내게 했던 개미슈퍼 장면을 생각해 보면 더 어이가 없어진다. 햇볕 쨍쨍한 백주대낮 서울 강북의 주택가 골목길을 비춰주며 관객들의 심장을 오그라뜨릴 수 있는 감독을 본 기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개미슈퍼 장면을 포함해서 이 영화 전체가 히치콕이 얘기한 서스펜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예다. 탁자 밑의 폭탄을 관객들만 아는 게 서스펜스고 모두 모르고 갑자기 터지면 그게 서프라이즈다. 어느 것이 개념상의 우위인지를 논하는 게 부질없다 하더라도, 그간 무수한 서프라이즈들만의 세례에 식상한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 당장 봐야한다.



압도적인 완성도 외에 이 영화를 봐야 할 또다른 이유가 있다. 감독이 신끼가 있는 건지, 영화의 개봉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다음주면 공식적으로 이명박 시대가 열린다. 영화 속에서 이명박이 똥 맞는다는 건 영화를 아직 못본 사람도 대충 귀동냥을 했을 거다. 이에 기대 이제는 흘러갈 운명에 처한 유행어의 패러디로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를 애써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이명박이란 인격체를 지시한다기 보다 이명박이 표상하는 가치체계, 이명박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의 집권이후 가속화될 사회의 공기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리고 남대문... .


개념적으로 남대문 방화범과 지영민은 동일한 개체다. 그것을 절대악이라 부르던, 미친놈이라 부르던. 이들은 반사회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존재들이다. 사회의 구성요소인 합리성과 상호부조, 공공성의 개념이 전무하다. 이들의 처리는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기득권자들에게나 보다 합리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를 구성하려는 자들에게나 모두 골칫거리다. 보수주의자들의 경우 범죄에 대한 보다 강한 처벌, 보다 강한 규율로 이에 대처한다. 문화적으로는 전통적인 헐리우드식 히어로의 싹쓸이식 해법이 대표적이다. 진보주의자들의 경우 그 존재들의 태동 배경과 근본 원인에 관심을 갖는다. 어찌됐든 두 세력 모두 반합리를 넘어 초합리에 이른 이들의 당장의 통제 불가능한 위해에서 사회를 보호하는 건,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남대문과 영화 속 피해자들의 운명은 현재의 우리 사회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불에 탄 남대문과 속절 없이 죽어간 피해자들. 이들의 공통점이 중요하다. 남대문 방화범과 지영민의 공통점은 사회의 구성요소로서의 공공성과 상호부조의 파괴인데, 당장의 눈에 보이는 경제가치가 없는 흘러간 문화재로서의 남대문이나 승자독식 적자생존의 가치가 추앙받는 정글에서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피해자들이나, 이들에겐 최소한의 사회적 관심이나 보호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상호부조가 아니라 상호배타, 정신적/윤리적 가치가 아니라 물질적 가치가 압도적인 사회에서 이들에게 돌아갈 사회의 자원은 없다.


극중 피해자를 돕는 엄중호의 사회적 존재가 의심심장한 건 이때문이다. 경찰로 대변되는 시스템은 무능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피해자를 돕는 엄중호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시스템이 직무유기를 하는 사이 역설적으로 엄중호는 오직 그가 시스템 밖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와 지영민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재밌는 사실은 엄중호가 전직형사였다는 사실, 다시 말해 시스템의 내부에 있었던 경험이 엄중호가 지영민을 쫒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의 권력과 정보와 노하우는 엉뚱한데 소진되고, 시스템 외부의 엄중호가 그것을 이용하여 한풀이나마 완결하는 것이다.)


불에 탄 남대문이나 영화 속 흉흉한 피해자들의 몰골이나, 공공성과 상호부조가 파탄난 사회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상상하고 부닥쳐야 할 공포다. 당신이 이 사회에서 존중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판명나는 순간(아마도 orange를 오렌지로 발음하거나, 사돈의 팔촌 어디 누구하나 삼성이나 김앤장과 관련된 사람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거나, 그 흔한 고소영에도 끼지 못하고, 강남 어디 땅 한 뛔기 없는)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모른다.







그 자신 말마따나 재수 옴 붙은 그 하루, 마침내 엄중호는 은지가 누워있는 병원에서 은지의 손을 붙잡고 나서야 그 기나긴 하루를 마감하는 달콤한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와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중년사내가 손을 잡은 모습은 유사가족의 모습 그대로다. 관객들의 진을 온통 다 빼놓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감독이 그나마 마지막 희망으로 내놓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약자들 혹은 시스템 외부인들의 연대다.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그들 스스로 도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마지막 장면이 진부하지 않다고 느꼈다면 그건 둘중 하나다. 당신도 시스템 외부에 있거나 아니면 정말로 이명박이 나쁜 새끼라고 생각하거나.


   신짱(redp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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