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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상식이다


2008.02.28



이명박이 드디어 취임식을 하고 대통령으로의 직무를 시작했다. 그렇다. 좋든 싫든 이제 우리나라는 이명박 시대로 접어들고야 말았다.


물론 필자는 명박네의 정책과 노선에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왕에 대통령이 됐으니 그 동안의 우려와 의심을 떨쳐 내고 잘 좀 해 줬으면 싶기도 하다. 민주적 선거를 통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앞으로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투기꾼에 표절꾼으로 이루어진 청와대 비서진이나 내각의 꼬락서니, 여전히 개운치 않은 BBK 문제, 상식을 벗어난 인수위와 그 주변의 행태는 우리가 우려했던 이명박 일당의 실체를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만 같아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진짜 걱정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극심한 착각과 환상에 빠져 있고, 이명박 정부의 탄생 자체가 바로 이런 오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설사 명박네가 아무리 열심히, 심지어는 잘한다 해도 5년 후 결과는 무조건적인 실망뿐일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실망은 결국 우리의 동기와 에너지를 깎아먹고 진정한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다른 것은 다 접어두고, 가장 명백해 보이고 그래서 다들 의심하려 들지 않는 부분만 갖고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 경제는 과연 절딴났던가? 그리고 이명박과 그 일당은 우리를 그 죽음의 늪에서 끌어내 줄 구세주로 강림하셨는가?


노무현 취임 이전부터 2006년 말까지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필자는, 와중에 한국 경제가 파탄 났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정말 큰일난 줄 알았었다. 아, 모래성 위에서 용케 버티던 우리가 드디어 무너졌구나. 이제 서울 중심가에는 거지가 넘쳐나고, 집 잃은 가족들은 산기슭에 판자촌을 형성하며, 청년 실업으로 젊은이들이 거리를 헤매며 범죄와 마약의 유혹에 무너져 가겠구나. 자영업의 몰락으로 텅 빈 상가 건물들은 폐허로 변하고, 밥값을 위해 아이들은 앵벌이를 하고, 찾는 이도 없는 남산 타워는 갈라진 채 기울어져 가며, 63빌딩 벽면에는 깨진 유리창 조각과 그래피티가 가득하겠구나. 아 물론 과장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여기에 가까운 이미지가 떠올랐다는 말이다.


허나, 2006년 가을 막상 귀국한 후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이렇기는커녕, 필자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보다 훨씬 풍요롭기만 했다. 거리마다 상점과 식당들이 넘쳐나고 대형 할인 마트들 또한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님들로 그득했다. 웬만한 집마다 가득 들어찬 최신 전자제품, 매일같이 계속되는 엄청난 소비의 물결... 언론과 국책 기관들이 내놓은 중산층의 기준이 되는 가구당 월 수입 또한 필자로서는 깜짝 놀랄 정도로 높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 나라에서 5년쯤 살다가 온 필자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그새 너무도 잘 살게 변해 있었고, 솔직히 영국보다 못할 것이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 풍요를 여전히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경제가 무너졌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외쳐대며, 핏발선 눈으로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노무현에게 돌리고들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말로 들리는 것의 이 차이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보면 2003년 3.1%, 2004년 4.7%, 2005년 4.2%, 2006년 5.0% 2007년 4.9% 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대략 1~ 3 % 대에 머물고 있는 미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오스트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구미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또 이들 선진국들의 과거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국민소득 2만~ 3만 달러 사이에서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4% 로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았다.


반면 4%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인 나라들은 유럽에서는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같은 동유럽 나라들,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로 이 나라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많으면 1만 달러를 조금 상회하거나(체코), 적게는 1천 달러 (베트남) 수준이다. 그러나 2007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946달러로 2002년의 11,499달러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상승했으며, 소위 ‘좌파 정부’가 집권한 98년 이후부터 따지면 근 3배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 이전의 외환 위기와 이후 환율 정상화를 고려한다 해도 매우 착실히 발전해 온 거다. 아니냐.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기 소르망(Guy Sorman)은 한국 경제를 굉장히 어려운 상태로 보는 내부의 시각에 의아함을 표시하며, 거의 5%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많은 국가들이 부러워할 수준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왜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 난리인가.







물론 구석구석 어려운 곳이야 왜 없겠냐. 다양한 여건의 변화에 의해 기업하기 어려워진 것도(필자, 이것을 직접 느낄 수 있는 방면의 일을 하고 있다), 국민들의 장바구니 물가가 쑥쑥 오른 것도, 그 외 회자되는 이런저런 문제들도 분명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다. 옛날에 비하면 잘 살아지는 속도가 조금 늦춰진 것도 맞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정도의 상황을 툭하면 경제가 절딴나고 나라가 망해간다는 식으로 과장하고, 또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거기에 현혹되어 정말 그런 줄 알고 스스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이런 오바질의 배경에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처럼 10%에 가까운 성장을 매년 계속해야만 한다는, 아니면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기성 세대의 뿌리 깊은 두려움과 피해 망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누구라고 말은 않겠지만, 당근 존재한다.


이런 과장과 부추김이 계속되다 보니 한나라당의 잃어버린 권력 10년은 어느덧 전국민의 잃어버린 세월 10년으로 은근슬쩍 둔갑해 버렸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그 모든 문제가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기묘한 이지매의 열정에 사로잡혀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 동네북을 만들어 버렸다. 머 만만한 넘 붙잡고 화풀이하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게다가 화풀이에서 그친 것도 아니고 이제 기업가 출신 대통령으로 바뀌기만 하면 이런 문제의 반쯤은 저절로 극복되어 다시 과거의 고도 성장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니, 알만한 사람들이 우째 이리 단순하고 줏대가 없는지 필자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지매의 열정을 잠시만 접어두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겪는 경제적 압박은 노무현의 무능과 별반 관련이 없을뿐더러 명박네의 집권으로 시원스레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서브프라임 사태와 석유/원자재 값 폭등 및 중국과 동남아 제조업의 약진 등의 국제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지금 우리는 역동성과 고도 성장으로 상징되는 개발도상국형 경제에서 저금씩 선진국형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의 필연적인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와 같은 기적적인 급성장은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한 걸음씩 내실을 기울이며 나아가는 차분함이 필요한 때다. 노무현 정부가 경기 침체의 책임에 대한 융단폭격을 당하면서도 강제적 경제 부양책을 쓰지 않고 버텼던 이유도 그런 관점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들이 조금만 불안하면 펼쳐 놓았던 오만 가지 경제 부양책이 실은 모래성을 점점 더 크게 쌓는 것일 뿐이라는 점, 우리 경제가 지금껏 그 위태로운 거대한 모래성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었다는 점, 그 상태로는 절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라는 모래성 구석탱이 붕괴의 기억조차 잊은 채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의 귀환을 소리쳐 염원하고 있다.


대체 어떡하잔 소리냐.







우리 경제를 진정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멀쩡하다 못해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이 경제성장률이나 국민소득에 대한 병적인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 야심 차게 내놓았던, 이름도 그럴싸한 747 (7% 성장, 4만불 소득, 7대 경제 강국)이 며칠 전에 647로 바뀌어서 좀 모양새를 구기긴 했지만, 더 늦기 전에 539 쯤으로 재 수정하는 것이 모두의 미래를 위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계속 이러다가는 명박네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조만간 배신감으로 급 반전할 것이고, 자칫 노무현보다 더 심한 이지매를 당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뜬구름 잡는 경제지표 경쟁보다는, 기형적인 사회 및 경제 구조가 만들어 낸 내적 모순의 해결을 통해 경제의 내실과 안정을 기하는 다양한 실천에 나서는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선회해야 마땅하다. 선진국 국민들이 산지 15년 된 20인치 TV를 보며 저녁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동안 우리는 42인치 LCD TV를 들여다 놓고 룸사롱 문화에 진탕 빠져 있다 이런 류의 졸부 마인드야 말로 사실 부동산 투기 같은 문제들의 근원이다. 우리 자식들을 그저 돈만 많은 천민 패거리의 일당으로 만들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선진 사회냐?


그리고 이제 한강의 기적 운운하는 발상은 제발 좀 접자. 그건 옛날 이야기고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런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 끝난 기적을 억지로 지속시키려면 결국 속임수를 쓰는 수 밖에 없는 거다. 이제 우리는 예언자나 마술사가 아니라 현자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선진국은 국민 다수가 그러한 현명함을 얻었을 때 달성되는 것이다.


어느덧 명박네 입버릇이 된 ‘선진국’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 의미에 대해 과연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지, 필자는 그저 우려될 뿐이다.


파토 (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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