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놈이 자꾸 쉬면 그거 평생 간다
노가다꾼은 일용직이다. 해서, 회사원처럼 규율이 엄격하진 않다. 무단결근만 아니면 얼마든지 쉴 수 있다. 심지어는 당일 아침에 연락해 쉰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그러라고 한다. 그만큼 출결이 용이하다. 물론, 너무 잦은 결근으로 팀 공정에 차질을 주면 곤란하지만 말이다.
근데도 노가다꾼 대부분이 의외로 매우 성실하다. 마찬가지로 일용직이어서다. 회사원은 상상도 못 할 거다. 일용직의 서러움을. 이게 아주 무섭다. 1월과 2월만 비교해도 답이 딱 나온다.
일당 20만 원 받는 목수가 있다. 1월에 일이 좀 바빠 25일 일했다 치자. 500만 원이다.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는 데다가 설 연휴도 있고, 눈도 몇 번 내렸다. 그래서 15일밖에 못했다. 300만 원이다. 1월과 2월 차이가 무려 200만 원이다. 매달 지출은 고정적인데, 이렇듯 수입은 극단적으로 오락가락하는 게 노가다꾼이다.
노가다판에서 20~30년 버텨낸 형님들은 그 무서움을 잘 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일하려고 한다. 반대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별거 아닌 일로 결근하면 다음 날 폭풍 잔소리를 쏟아낸다. 그때마다 난 동생들 변호하기 바쁘다.
“야!! 니네는 노가다 얼마 안 해서 잘 모르나 본데, 지금 당장은 돈 많이 버는 거 같지? 절대 아니다. 일할 수 있을 때 무조건 해야 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 말을 뼈저리게 깨닫는 날이 반드시 올 거다.”
“아휴~ 형님~ OO이가 어깨가 너무 아파서 하루 쉬었대요.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얀마!!! 젊은 놈이 아프긴 뭐가 아퍼!! 나 젊을 때는 하루도 안 쉬고 한 달 내내 일하고 그랬어~ 돌도 씹어먹을 나이에 쬐금 피곤하다고 빠지냐?”
형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노가다 밥 좀 먹어보니 이제는 알겠다. 하루하루 출근 도장 찍어서 일주일이 쌓이고 보름이 쌓여야 월급이 될 수 있다는걸. 볼일 있다고 빠지고, 피곤하다고 쉬고, 그러면 평생 가봐야 푼돈만 만지는 게 일용직 노가다꾼이라는 걸 말이다.
“아무튼 니네들!! 결혼하고 집 사려면 부지런히 돈 모아야지. 젊은 놈이 자꾸 쉬면 그거 평생 간다. 사람 몸이라는 게 간사해서 쉬기 시작하면 자꾸 늘어지는 거여. 젊을 때부터 습관을 제대로 잡아야지!”
“네네! 제가 동생들한테 알아듣게 잘 얘기할게요. 하하.”
물론, 안다. 애정 어린 조언이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형님들이 잔소리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왜 이렇게들 쉬는 것에 인색할까, 젊은 사람에겐 왜 그 잣대를 더 엄격하게 들이댈까, 청춘은 으레 열정과 패기와 파이팅이 넘쳐야 한다고 여기는 걸까, 하는 생각들.
쉬는 데도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얼마 전, 무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올 1월, ‘그냥 쉬었다’는 20~30대가 전년 동월 대비 31.2% 증가했다는 거다. 기사는 코로나19와 이로 인한 ‘고용 한파’가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정책 몇 가지를 소개하며 끝낸다.
내가 무섭다고 느낀 포인트는 이런 거다. 기사에서는 ‘쉬었음’이라고 답한 사람을 “취업 준비·가사·육아 등 특별한 이유 없이 말 그대로 그냥 쉰 비경제활동인구”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통상 은퇴 후 휴식을 취하는 고령층이 주로 포함되는 ‘쉬었음’ 인구에 젊은층이 급증한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게 무섭다는 거다. 이 기사엔 ‘열심히 일하거나, 최소한 구직활동이라도 해야 할 2030이 그냥 쉰다고? 그렇게 그냥 쉬는 2030이 1년 만에 이렇게나 많이 증가했다고? 큰일 났네!!’ 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같은 통계 자료를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를 포함해 모든 언론사 기사가 그렇다. 내가 느끼기엔, 전방위에서 2030은 그냥 쉬면 안 된다고 윽박지르는 거 같다. 그 대단하신 기자님들에게 좀 묻고 싶다.
아니, 그냥 좀 쉬면 안 되나요? 쉬는 데도 꼭 이유가 있어야 해요? 아니면 은퇴한 고령층만 쉴 수 있는 거예요? 20년 혹은 30년 동안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을 거 아니에요. 한 두 달쯤, 아니 한 일 년쯤 우리도 그냥 좀 쉴 수 있잖아요.
글쓰기에서도 쉼표는 중요하다
기사를 읽다가, 울컥한 마음이 좀 들었다. 난 그렇게 살았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냥 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조바심내며 아등바등 살아왔다.
집이 좀 가난했던 탓도 있다. 수능 끝나자마자 호프집에서 일했다. 그걸 시작으로 대학 내내 PC방, 편의점, 피자 배달, 택배 상하차, 고백하자면 성인오락실까지, 안 해본 알바가 없다.
군대 훈련소 입소하기 전까지 피자 배달하고, 공익 하는 내내 퇴근하고 PC방에서 알바했다.(그때는 암묵적으로 알바하는 걸 용인해줬다.) 소집 해제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알바해서 자취방 구하고, 복학하고 졸업할 때까지는 대학 신문사에서 일했다. 대학 신문사에서 일하면 등록금의 절반과 약간의 용돈을 줬다.
졸업하고는 일주일 만에 취업해서 출근했다. 서울로 이직할 땐 심지어 3일 쉬었다. 이삿짐도 채 못 풀고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하던 모든 일을 정리하고 노가다판 오기 전에도 겨우 보름 남짓 쉬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뭐 한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기회 될 때마다, 혹은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한 번씩 멀리 여행 좀 다녀올걸. 하다못해 한 달쯤 집에 짱박혀 잠이라도 실컷 자고, 책이라도 실컷 읽을걸.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쩌자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렸나 싶은 거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뭐 크게 대단해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생 전체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을지언정, 내 동생들은 제발 좀 그러지 않았으면 싶다.
글쓰기에서도 쉼표는 중요하다. 간결하게 쓰는 게 글쓰기 제1원칙이라지만, 그렇다고 단문만으로 글을 완성할 순 없다. 중문을 적절히 섞어 강약을 줘야 한다. 그럴 때 쉼표는 여러 역할을 한다. 가령, 내가 쓴 글의 일부를 보자.
「요리하면 쉐프라고 대우해주고, 옷 만들면 디자이너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집 짓는다고 하면 노가다꾼으로 뭉개는 대한민국에서 나는, 노가다꾼으로 살아간다.」
이 문장에 쉼표가 없다고 생각해보라. 숨이 꼴딱꼴딱 넘어간다. 그렇듯 쉼표는 독자가 앞선 문장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해준다. 잠깐의 여유를 주는 거다. 독자는 그 여유를 에너지 삼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그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나는, 노가다꾼으로 살아간다.” 부분의 쉼표처럼 독자에게 ‘여기서부터 중요한 서술어가 나올 거니까 잠시 심호흡하세요!’ 하면서 틈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우리는 인생을 곧잘 마라톤에 비유한다. 100m 단거리가 아니란 얘기다. 글쓰기로 치면 중문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거다. 쉼표를 적절히 찍어줘야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앞뒀을 때는 잠시 심호흡하며 숨을 고를 필요도 있다.
그,러,니, 제,발, 쉼,표, 좀, 찍,게, 해,주,세,요.
편집부 주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매일 밤 한땀한땀 낮의 감상을 써 내려간 노가다꾼 '꼬마목수'의 신간이 나왔다.
지난 2년 딴지에 연재해온 <노가다칸타빌레>와 같은 제목, 같은 내용이다.
노동의 '담백한 성취감'을 말하는 그의 슴슴한 문체를 넉넉히 느낄 수 있다.
사는 게 노가다같아 삶의 현타에 시달린다면, 일독을 권한다. '사는 게 뭐 다 그런거지'라는 대책없이 속 편한 결론을 도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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