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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2.금요일

 

체육불패 케니

 

 

 

 

 

 

 

 

 

 

 

 

편집자 주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케니'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월, 오세훈 서울 시장은 한 케이블 방송의 택시를 타고 펼치는 토크쇼에 출연하여 서울시 행정을 홍보하려고 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축빠인 나로써는 중간에 귀가 솔깃한 이야기가 하나 있더군.

 

 

 

 

 

바로 서울시의 맨유 후원 이야기야. 내가 기억을 똑바로 못할 수도 있으니 일단 기사에 나온 말을 그대로 따다 줄게.

 

 

 

 

 

 

 

그는 "당시 서울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공식 후원하고 국내 연고팀을 지원하지 않자 6만 6천 명의 축구팬들은 2008년 6월 16일 FC서울-FC도쿄 친선경기가 있던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저를 향해 야유를 보냈었다"며 "그 때 다리가 풀릴 만큼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격수였던 호날두의 100골 돌파 때 현지 전광판을 통해 서울시 홍보내용이 전 세계의 전파를 타자 축구 팬들은 날 이해해 주기 시작했다"고 웃으며 추억했다.

 

 

 

 

 

 

나도 다리가 풀릴 만큼 당황스러워. 도대체 오세훈 시장을 이해해 준 축구 팬들은 누구지?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또 다른 올드 트래포드’라던 한국의 맨유 팬들?

 

 

 

 

 

 

한국 축구에는 6호선 '올드 트래포드 역'이 있다는 슬픈 전설이 있지..

 

 

 

 

 

 

 

그리고 홍보 ‘내용’이라고 했는데 내용조차도 없어. 그냥 Seoul, Soul of Asia라는 문구 띄운 게 다 아닌가? 조금 당황스럽네. 이러면 곤란해.

 

 

 

 

 

 

일단 내용은 차치하고 오세훈 시장님께서 그리 자랑스러워 하는 순간을 다시 살펴보자고. 호날두의 100번째 골이 터지는 순간 서울시 문구가 뒤에 A보드에 나왔다고 하자.

 

 

 

 

 

 

마케팅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일꺼야. 나도 마케팅을 잘 알진 못하기 때문에 전문가인척은 하지 않겠지만, 상식적으로 골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일 때 사람들은 어디를 보고 있을까? 광고판일까 호날두일까?

 

 

 

 

 

 

골 장면에서 네가 한국인이 아닌 이상 서울이든 쏘울이든 뒤 광고판에 뭐가 나오는지 안보여 -_-;;

 

 


긴장 정도가 높을 때 당연히 사람들은 광고에 집중하지 않게 돼. 특히 축구와 같이 경기가 멈추지 않고 공을 위주로 계속 흘러가는 스포츠일수록 말이야. 여기서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갈 때 주변에 A보드 내용 기억하는 사람? 뭐 월드컵 후원사는 많이 안 바뀌어서 기억하긴 쉽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많지는 않을꺼야.

 

 

 

 

 

 

 

서울시는 세금 27억원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갖다 바치고 얻는 수익을 아래와 같이 발표했어:

 

서울시는 본 계약을 통해 홈구장 LED보드 노출(300억원), 온라인 브랜드 노출(10억원), 500만명 회원대상 email 발송(5억원), 잡지광고 (1억원) 등 약 316억원의 직접적 광고 효과외에도 전세계 3억 3천만 명의 맨유팬에 대하여 서울의 브랜드 인지도 및 호감도를 높이는 간접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잠깐. 여기서 주목할 게 있어. ‘서울의 브랜드 인지도 및 호감도’래. 그러면 서울이라는 브랜드가 뭐 있나? 요즘 브랜드는 감성에 주목해서 하나의 인간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서잖아. 그런데 해외에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이미지라도 형성된 것이 있어?

 

 

 

 

 

 

싱가포르, 도쿄, 베이징 등이 각각 다른 특징을 자랑하고 헐리우드 영화라던가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에 비해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굉장히 적어. 그런데 무턱대고 Hi Seoul! 이래서 외국인들이 찾겠냐고.

 

 

 

 

 

 

나 이거랑 똑같이 할테니까 27억이 아니라 2만 7천원이라도 줘봐.

 

 


너무 부정적인가? 일단 그래도 서울시가 괜히 뛰어든 건 아니겠지. 그러면 한번 더 서울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축구팀을 활용한 통한 스포츠마케팅은 이미 많은 기업들과 말레이시아가 시도하여 효과가 검증된 마케팅수단으로 말레이시아는 맨유를 활용하여 ‘05년부터 3년간 총126억원(연간 42억원) 광고를 집행하였으며 기간 중 1,500만명이던 관광객수가 2,000만명으로 증대되는 효과를 거둔바 있으며 삼성은 ‘05년부터 5년간 총 950억원(연간 190억원)을 투자하여 첼시 유니폼에 광고를 집행한 결과 브랜드 인지도가 10%상승(27.5%→38.2% : ’04년→‘05년)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일단 삼성은 제외하자. 서울시와 같은 한 지역 단체는 아니잖아. 내가 문제로 삼고 싶은 것은 말레이시아의 경우야. 일단 마케팅 수단으로 ‘노출’ 됐다고 해서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주변에 맨유를 많이 본 친구들에게 물어봐. “너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맨유 광고판에 말레이시아 광고 본 적 있냐?” 라고 말이야.

 

 

 

 

 

 

게다가 말레이시아의 늘어난 관광객이 맨유 광고 때문인지도 불분명해. 단순히 그 기간에 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맨유 광고로만 관광객이 늘어난 것도 아니거니와 당시 경제가 좀 나아졌었나? 잘 모르겠네. 여튼 관광객 증감 요인이라는게 복합적이어서 맨유 광고로만 5백만명 늘었다 라고 이야기하기엔 조금 설득력이 떨어져. 게다가 그렇게 효과가 좋은데 말레이시아가 왜 2008년에는 중단했을까?

 

 

 

 

 

 

무엇보다도 서울시의 잘못된 이해는 서두에 언급했듯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팀은 맨체스터 지방 팀이고, 더 나아가 잉글랜드 팀이야. 최근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어쨌든 맨체스터의 색깔을 갖고 있는 거라고.

 

 

 

 

 

 

비슷한 두 카테고리의 단어가 머릿 속에 인식된다고 가정했을 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잘 하면 맨체스터 시가 이득을 볼까 27억원씩 주고 광고를 내보내는 서울 시가 이득을 볼까?

 

 

 

 

 

 

더 나아가서 그 광고를 본 사람들은 과연 서울시를 찾겠다고 마음을 먹을까? 나라면 서울 갈 돈 있으면 맨유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를 한 번 가겠다. 그치?

 

 

 

 

 

 

지자체가 축구 팀을 큰 돈 내면서 광고를 때리면서까지 후원하는 것은 생각보다 드문 일이야.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초로 시가 지역 팀을 직접적으로 후원한 것은 2008년에 버밍험 시가 사외 마케팅 회사와 연계하여 만든 회사인 ‘visitbirminham.com'이라는 곳이 아스톤 빌라와 버밍험 시티를 후원한 거야. 근데 잘 봐. 아스톤 빌라와 버밍험 시티는 버밍험을 연고로 두고 있어!

 

 

 

 

 

 

주변에 성남이나 수원도 있는데 서울이 유독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지하철 역 '월드컵 경기장' 역 이름 때문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

 

 

 

 

 

 

 

축구라는 스포츠는 ‘지역색’이라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스포츠라서, 심지어는 기업들에게 점령당한 국내 축구조차도 프로축구는 반드시 지역명이 먼저 오고 기업명이 뒤로 가게 되어 있지. ‘성남 일화’, ‘수원 삼성’ 등 봐바. 그마저도 줄여 쓸 때에는 지역명만 오고, 심지어 상대팀을 기업명으로 부르는 것은 모욕하는 것과 다름 없을 때가 있어. 야구나 배구 등 다른 스포츠와는 아주 다른 점이지.

 

 

 

 

 

 

그런데도 서울시는 대놓고 ‘맨체스터 팀’에 지원하겠다는 거야. 그것도 세금을 27억원이나 써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팀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이어질래야 이어질 건덕지조차도 없어. 차라리 독일의 뮌헨은 뮌헨 비행기 참사라도 있었어서 기억이라도 나지.

 

 

 

 

 

 

그래, 또 너무 부정적이야. 뭐 기억 상표군에 있으면 된 거니까 한 발 양보해 보자. 내가 영국 사는 맨유 팬인데 아시아를 가게 될 일이 있을 때 ‘우연찮게’ 맨유 경기에서 서울 광고판을 봤다는 참 극적인 연출로 인해 서울로 가게 됐단 말이야. 그러면 나는 무엇을 보고 놀까?

 

 

 

 

 

 

물론 남산, 국립 중앙 박물관도 있겠지만 좀 따분해. 뭐 재밌는 거 없을까? 하다가 월드컵이 떠올라. 2002 한일 월드컵은 영국인들에게 꽤 이미지를 남긴 편이야. 길거리에 나와서 엄청 ‘대한민국’을 응원한 (축구 대표팀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은 인상적이었지.

 

 

 

 

 

 

여기서 잠깐 새자면, K-리그를 보는 외국인들 포럼이 있는데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 영국인들이 가끔 와서 물어봐. “한국 프로 축구 인기 많지? 팬들은 어떤 사람들이야?”라고 하면 거기 있는 외국 K-리그 팬들이 이렇게 대답해줘. “팬? 아저씨나 젊은 남자애들 뿐이야. 경기마다 1만 명도 안 차” 당황한 영국애가 “어라? 2002년 월드컵 때는 안그랬잖아”라면 곧바로 냉소적인 대답이 날아와. “걔네들 다 한국이 다른 나라 이기는 거 보려고 나온 애들이지 축구 팬이 아니야”.

 

 

 

 

 

 

어쨌든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어라? 그런데 축구를 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네? 대충 지하철을 들여다보니 월드컵 경기장이 있대. 그러면 타고 가서 보려고 해도 잘 몰라. FC서울이 있다는데 다음에 한번 가보자. 이 정도가 되는 거지. 오면 뭐하냐고. 놀 데가 없는데.

 

 

 

 

 

 

노원-창동 더비? 한국에서 이런건 꿈일 뿐

 

 

 

 

 

이 쯤 해서 먼 나라 축구팀에 27억원을 쏟아 붓는 서울시가 서울 지역 축구 팀에게는 얼마나 후원하는지 보자고. 서울시가 맨유 스폰을 결정했을 당시 서울 시내 정규 리그 축구 팀은 먼저 마포구에 위치한 K-리그의 FC서울이 있고, 노원구에 위치한 내셔널 리그의 노원 험멜(현 충주 험멜), 잠실에 위치한 K3리그의 서울 유나이티드, 그리고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파발FC(현재는 해체) 등 총 4팀이 있었어.

 

 

 

 

 

 

 

당시 난 궁금해서 직접 각 팀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지. 그 중에서 서울시가 ‘스폰서’도 아니고 ‘연계’ 해 준 곳은 FC서울 하나야. 그것도 그냥 FC서울이 소매에 서울시 로고 달고 하는 등 알아서 기는 형식이지. FC서울 조차도 서울 월드컵 경기장과 연습 구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시설 관리 공단에게 애먹고 있었어. 보조 구장에서 연습을 주 1회로 제한하면서 돈은 엄청 받더군. (물론 구리시에 클럽 하우스가 있어서 거기서 하면 되겠지만)

 

 

 

 

 

 

일단 GS그룹에서 돈 많이 받는 FC서울은 빼놓고, 나머지 세 팀 중에서 노원 험멜은 연락이 잘 안됐어. 서울 파발 FC는 당시 은평구 체육회에서 연 300만원 받는 게 전부였어. K3리그 팀 1년 운영비가 아무리 적어도 2~3억은 드는데 1% 가량을 지원받은 셈이지.

 

 

 

 

 

 

서울 유나이티드의 경우에는 좀 더 심각한 상황이었지. 당시 서울시는 국군의 날 예행 연습을 한다고 10월 내내 서울 유나이티드보고 다른 데를 알아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고, 덕분에 대치유수지 체육공원에서 셋방살이를 해야만 했어. 그 후에도 잠실 경기장에서 서울 디자인 올림픽인가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쫓겨나서 고등학교 경기장에서 K3리그 경기를 치른 것으로 알고 있어. 게다가 대관료도 비싸서인지 나중에는 효창 운동장에서 하더라고.

 

 

 

 

 

 

이는 다른 지자체들이랑 상당히 대조적이야. 남양주 시민 축구단 같은 경우에는 운영자금 연 3억을 대줄 뿐 아니라 운동장까지 무상 임대를 해주지. 포천 같은 곳에서도 지자체장이 앞장서서 축구팀을 후원해 줘. 서울시가 맨유에다가 퍼부은 27억원이면 1년 동안 K3리그 9개 팀을 운영할 수 있는 규모지.

 

 

 

 

 

 

아시아 챔피언 포항 스틸러스.

 

 

유럽으로 치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지만 한국에서만 찬밥신세.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지원해줘야 한다 이런건 아니야. 그러나 축구는 전 세계에 걸쳐서 클럽 팀들이 분포해 있고 그에 따라 지자체의 위상이 달라질 수도 있어. 작년 ‘아시아 챔피언’을 배출한 포항의 경우를 봐. 올해 초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면서 세계 유수 미디어에 포항의 이름이 ‘포항 스틸러스’라는 팀명과 함께 거론되면서 많이 알려졌어. 물론 단 한번으로 각인되지는 않겠지만 바르셀로나와 함께 언급되기도 했지.

 

 

 

 

 

 

 

문득 지난 2009년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와 부천FC1995와의 친선 경기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유맨 팬 할아버지가 생각나네. 그 아저씨는 수십 년간 응원한 맨유를 버리고 유맨을 응원하기 시작했지. 그리고 서울시에 있는 맨유 기념품관을 둘러보고 나서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 “맨유? 모든 유럽 팀들은 너네 나라 축구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에 불과해!”

 

 

 

 

 

 

오세훈 시장의 ‘전시 행정’이 과연 잘 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개개인마다 의견 차이가 있겠지. 그러나 나의 의견은 ‘헛*질’이라는 거야. 다른 건 몰라도 서울시가 국민 세금으로 맨체스터의 축구팀을 지원했다는 그 사실은 정말 병신같은 짓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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