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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0.화요일

 

노정태

 

 

 

 

 

 

 

 

열린음악회 문제로 여론이 또 시끄럽다. 4월 4일 부산 센텀시티에서 열리는 ‘KBS 열린음악회’가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탄신’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다는 소문 때문이다. 그 어떤 기준으로 놓고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긴 하다. 제아무리 재벌 총수라고 해도 (심지어 딴지 총수 김어준마저도), 공영방송에서 공식적으로 기념해줄만한 누군가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게다가 경영 일선에 복귀한 ‘회장님’께서 지켜보고 있다. 범인(凡人)들은 ‘세상에,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뻔뻔하게 공영방송에서 자기 집안 행사를 처리할 생각을 할 수 있나’ 싶겠지만, 민족의 필독서 『삼성을 생각한다』에 따르면 이건희 일가는 원래 그런 식으로 살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다들 ‘손님 불러놓고 냉동 푸아그라 먹이면서, 정작 이건희와 홍라희는 냉장 푸아그라 먹고 있었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문제는 그 행사가 순수하게 이건희 생일잔치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매년 삼성에서는 한 두 명의 사원을 선정하여 ‘올해의 삼성인’으로 뽑고, 그 수상식을 이건희 생일에 맞춰서 한다. 서류상으로는 당연히 공식 행사고, 그 비용은 삼성의 계열사들이 내도록 되어 있다. 늘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그분’과 그 일가족의 입장에서는 이 행사가 전혀 황당하거나 한 일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건 수많은 국민들이 당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시작된지 4분의 1도 채 안 된 올해, 얼마나 일이 많았냐 말이다. 이미 2008년 말부터 우리가 ‘사고 상황’에서 살고 있기도 하거니와,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이기도 하고, 6?25 사변 발발 60주년이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님의 탄신이 고깝거나 덜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국민 감정’을 고려했을 때, 이건희 회장님 생신날 어색하게나마 ‘올해의 삼성인 시상식’이 거행되는 것처럼 그렇게 국민들을 챙기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더구나 4월 4일은 부활절이다. 안그래도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4대강 사업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는데, 성스러운 부활절에 ‘이병철 탄신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고집스러운 신부님들이 보기에 썩 좋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영 좋지 않은 날에 100주년 탄신일이 걸린 셈이니, 두 팔을 넓게 벌리고 두루 끌어안는 수밖에 없겠다.
 

 

 

 

 

 

 

 

지금까지 등장한 2010년 관련, 혹은 4월 4일 관련 행사들의 목록을 나열해보자.

 

 

 

 

 

- 서해안 군함 침몰사건. 국민들은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
- 천재 경영자 호암 이병철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일.
-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해.
- 6.25 사변 발발 60주년.
- 덧붙여, 이건희 회장님 사면 복권 축하연.

 

 

 

 

 

후... 이걸 과연 한 행사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KBS도 이병철만 기념하고 싶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못 한 것이라고 좋게 생각해주자. 하지만 해법은 있다. 하면 된다.

 

 

 

 

 

KBS에 권하는 바. 기왕 할 거면 거국적으로, 대승적인 차원에서 열린음악회가 이렇게 진행되면 좋겠다. 모든 요소를 빠짐 없이 다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라고 감히 자부하는 바다.

 

 

 

 

 

- 우선 진지하게, 서해안에서 실종된 장병들의 무사 귀환을 빈다.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영상과 맨트. (무사 귀환 및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 이 분노와 슬픔을 이토 히로부미에게 쏘아붙이듯 안중근 의사의 의거 영상 등장. 
-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이토 히로부미. 의연한 태도로 재판에 임해 ‘나를 전범으로 대우하라’고 외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안중근 의사. 저 멀리서 숨을 거두는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 이병철 회장의 탄생 시퀀스. 이토 히로부미의 죽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친 기괴한 불빛이, 구천을 떠돌다가 호암 선생의 생가에 비춘다. (눈치챈 고수들도 있겠지만, 이건 윤회를 슬쩍 언급함으로써 불교계에 화해의 윙크를 날리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전생에 누군가의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 
- 1부터 100까지 숫자가 택시 미터기처럼 올라가다가, 100까지 꽉 차는 순간 대망의 ‘부활’ 시퀀스. 
- 가롯 용철에게 배신당하시어 이용훈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셨다가 석 달만에 부활하신 한국 경제의 지쟈스 이건희 회장의 영상 편지 등장. 아버지의 100번째 생일이 아들의 잔치가 되는 절묘한 ‘부자 승계’를 형상화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 이쯤에서 삼성스탄의 인민들은 격렬한 매스게임을 벌이고 있음. 회장님의 용안이 화면에 등장하자 너무 기뻐서 자지러지고 싶지만, 꾹 참으며 북한 뺨치는 매스게임을 벌인다. 
- 회장님의 용안이 스쳐 지나간 가운데, 행사의 하이라이트. 매스게임은 하나의 거대한 태극기를 만드는데... 
- 6?25 60주년. 주석궁에 탱크를 몰아넣지 못한 한을 풀고자, 태극기의 아래쪽 파란색이 위로 점점 차오르고... 
- 파란색 동그라미가 갑자기 타원형으로 찌그러지면서 두둥!  삼성 로고로 변신! 

 

 

 

 

- 클로징: 열린음악회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노래하고 춤추는 부분은 녹화가 끝났을 테니까 어쩔 수 없는 거 다 안다. 방송 현실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겠냐. 하지만 지금 국민들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하니, 적어도 영상과 화면 등 효과 부분에서만이라도 온 국민의 대동단결을 도모해주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건희 이재용 부자가 한 달에 전기세를 수백 만원씩 낸다고 해서 시청료를 따따따블로 내는 건 아니니까, 국민들도 이 정도는 요구할 권리가 있다. 씨바,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지 삼성스탄 국민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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