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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30.화요일


화성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하여 온갖 추측과 썰들이 난무한다. 그만큼 정부와 군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장병이 희생된 대형 사고가 난지 4일이 지나도록 정부와 군은 국민들에게 무엇하나 속 시원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입으로는 구조가 최우선이라며 온 힘을 다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구조보다는 뭔가를 감추기에 급급한 이상한 냄새만 풍기더니만 결국 온 국민의 생존자구출에 대한 희망은 물거품으로 끝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들은 지금 참담하고 비통하다. 통통배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도 왠지 든든해 보이는 군함이 장난감처럼 두 동강이 나서 침몰됐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지만, 분명히 생존 가능성이 있는 46명의 생명을 침몰된 군함에 그대로 둔 채 우리 군과 정부가 아무런 손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낀다.


 


조류가 어떻고 시계가 어떻고 그들의 핑계야 많지만 그런 것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태풍이 몰아친 것도 아니고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온 것도 아닐진대 그럴 거면 도대체 왜 정부가 필요하고 군이 필요한 것인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다.


 




 


육군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필자는 해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렇다고 군사적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어서 이번 사건이 생겼을 때 그저 남들과 똑같이 한명이라도 더 구조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군과 정부의 신속한 대응만을 촉구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이럴 것이다, 하는 추측성 기사나 상상력에 기초한 음모론들은 하나같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괜한 불안감만 조성할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무리 미덥지 못한 정부라 할지라도 이런 큰 위기가 닥쳤을 때는 그래도 일단은 믿고 따라주는 것이 옳다는 판단도 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생명이 달린 문제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내 바뀌게 되었으니, 그동안 이 정부와 군 당국이 보여준 상식 이하의 행동들 때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 때문이다.


 


대체 왜 그렇게 큰 배가 수심이 낮은 백령도 부근까지 기동했는지, 근거리에 있던 속초함은 왜 포사격을 한 것인지,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춘 해군은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함미를 어부가 찾게 된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것들 투성이다. 국방과 안보를 위한 기밀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헛소리도 이제 그만 집어치우길 바란다. 이런 무방비 상태에서 전쟁이 나면 그야말로 100전 100패에 개죽음당할 것이 뻔 한 바, 그런 기밀사항이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공개하고 폐기처분하는 것이 진정한 안보를 위해서도 현명한 판단이다.


 


가카는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어야만 한다.


 


군대는 보고가 생명인 조직이다. 군대의 모든 것은 보고로 시작해서 보고로 끝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보고가 되지 않으면 제아무리 조치를 잘 했다고 하더라도 문책을 받으며 보고에 따른 명령으로 이루어진 조치에 대한 모든 책임은 조치를 취한 당사자가 아닌 명령한 상급자가 진다. 이는 미처 보고를 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진데 '선조치 후보고'라는 수칙에 의해 조치 후 즉각적인 보고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게 군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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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군통수권자인 이명박 가카는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모를 수가 없는 것이고 만약 정말로 모른다면 이건 더 큰 문제다. 보고도 없이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서 사고를 당하고 보고도 없이 함포 사격을 한 것이 되니까. 


 


'해군의 초등대응이 잘돼 큰 피해를 막았다는' 가카의 말. 보통 사람들은 어이없는 말이라며 도대체 뭐가 초등대응이 잘 된 것인지 어리둥절했겠지만 필자는 이 말에서 뭔가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


 


생각해보자. 대응이 잘되고 못되고를 판단했다는 것은 이미 어떻게 발생한 사건이었는지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중요한 일이 벌어졌는데 한나라의 대통령이 어떤 사건이었는지도 모르면서 잘했다, 못했다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섣부른 추측은 하고 싶지 않으나, 가카의 이 말로 유추해 볼 때 최소한 두 가지는 확실해진다.


 


첫째- 북한과는 관계가 없다. 북한의 기뢰나 어뢰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잘했다'고 할 수가 없다. 첨단 장비와 무기로 무장하고 북한의 해상침투를 감시하는 것이 주 임무인 천안함이 북의 어뢰나 기뢰에 의해 두 동강이 난 것을 두고 결코 잘했다는 표현을 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아무리 사후조치를 잘 취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둘째-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 그러니까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 어떤 가공할 힘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다. '초등대응이 잘돼 큰 피해를 막았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잘못했으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는 말도 된다. 따라서 어떤 원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원인은 지금보다 더 큰 참사를 당할 수도 있을 만큼 가공할 위력의 것임이 분명하고, 무방비상태에서 당한 일 치고는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고 판단을 한 것이라 보인다.(가령 예를 들자면 오폭사고나 아군 잠수함과의 충돌 등)


 


미국도 알고 있다. 그들이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이미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그들의 첨단 정보능력이다. 미국에서 간첩죄로 복역했던 '로버트김'을 기억하는가? 당시 미 해군 정보국에서 근무하던 그는 조국인 대한민국을 위해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 북한 해군의 동향 등을 우리 군에게 넘겨주었고 결정적으로 1996년 강릉으로 침투한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의 이동경로를 알려준 것이 문제가 돼서 긴급 체포까지 되었다. 그냥 군함도 아니고 물밑으로 은밀하게 움직이는 잠수함의 정확한 이동 경로까지 파악하는 것이 미국의 군사 위성이다.




그리고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의 일이니 지금의 기술 수준은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 일터, 군사 위험지역으로 항상 위성의 감시를 받고 있는 NLL 근처에서 잠수함보다 몇 배가 더 큰 88m 대형 군함에서 벌어진 일을 미국의 군사 위성이 몰랐다는 걸 믿을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당시는 서해상에서 한미합동훈련(독수리훈련)을 하고 있던 때라 그 어느 때보다도 위성의 감시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을 시기이기도 하다. 적이 아니고 우리 편이니까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너무 순진한 생각이지만 그래도 이에 답을 한다면 미국의 정보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미국의 국익 앞에선 아군도 적군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못 믿겠다면 강릉 잠수함 침투 때 미국은 왜 우리에게 북한 잠수함의 경로를 알려주지 않았는가를 먼저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둘째- 미군은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북한군의 특이동향이 없다'는 발표를 했다. 우리측에서는 안보장관회의가 열리고 대부분의 언론이 북한군의 어뢰나 기뢰 공격을 예상하고 있을 때였다. 북한군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말은 곧바로 북한이 벌인 일이 아니다, 는 의미로 해석되었고 미국측 역시 이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미국이 '북한이 한 일이 아니다'라고 선언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고(사정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말로 돌려서), 그렇다면 미국은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억측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당시 미국은 이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빨리 입장표명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 그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를 하겠다는 평범한 코멘트 정도만 해도 될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회적으로나마 북한과의 연계설을 재빠르게 차단한 이유는 자칫 이로 인한 전쟁발발 등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본다. 만약 이런 미국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면 미국은 그날로 국제사회에서 바보가 된다. 그들이 뭐 하러 그런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셋째,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의 빠른 귀환이다. 물론 그만큼 중요하고 큰 사건인 건 맞다. 하지만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미국에 있던 샤프 사령관이 청문회출석도 미룬 채 사건 다음날인 27일 급하게 귀환한 것을 보면 뭔가 급박한 일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역시 이 사건과 관련하여 뭔가를 알고 있다는 예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의혹은 의혹을 부르는 법, 솔직함이 필요하다.


 


처음엔 두려움에 밤잠을 설쳤던 국민들이 이제는 분노하고 있다. 발만 동동 구르던 안타까움은 참담함으로 바뀌었고 정부와 군이 하는 말은 그 어느 것 하나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진보도 보수도, 여당도 야당도 다 마찬가지다. 가카가 그리도 강조하던 국격은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꼈던 긍지와 자긍심은 수치와 자괴감으로 변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근거 없는 추측이나 예단을 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발표와 말 바꿈 등으로 추측과 예단을 하게끔 조장하는 건 국민이 아니라 정부와 군 당국이다. 아무 것도 밝히지 않으면서 그냥 입 다물고 있으라고만 하니 늘어나는 건 의혹들과 음모론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보다 의혹과 음모론을 더 신뢰하고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책임과 후폭풍이 두려워 감추고 덮어두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어차피 진실은 밝혀지게 돼있다. 아무리 함구령을 내리고 입을 맞춘다 한들 58명의 생존자가 있다. 아무리 증거를 없애고 조작하려 해도 군사 위성을 비롯한 미국의 최첨단 장비에 남아있을 사진과 통신 내용 등이 남아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를 주시하고 있는 5천만의 국민들을 언제까지고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책임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밝혀야 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라는 것이 아니다. 모르는 사실을 지어내라는 것이 아니다. 사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지금 당장 원하는 건 진실이라기보다 솔직함이다. 의혹을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런 말장난은 집어치워라.


 


최선까지는 아니라도 좋으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 이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정부와 군 당국에 내리는 준엄한 명령이다. 거역할 자  앞으로 나서라. 주인된 자세로 명령불복종의 대가를 피로 물을 것이니.  




지금 우리 국민들은 울부짖는 실종자 가족의 모습을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어 고개를 떨어뜨리고 절망하고 또 절망하고 있다. 조국에 충성한 죄로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둬야하는 그들을 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나약함이여!


 


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내 조국 대한민국의 초라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