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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1.목요일


필독


 


 


 




 




1. 거짓말


 



육군 병장 출신의 본 기자, 군사에 대한 지식이라면 군복 다림질 매뉴얼이나 장기간 행군을 위해선 생리대가, 혹한기 훈련에는 스타킹이 필수적이라는 사실 따위밖엔 모른다. 따라서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서는 이 말도 저 말도 들어보면 죄다 맞는 것 같다. 그리하여 여기서 본 기자는, 정부와 군과 언론(특히 정부와 군으로부터 허위사실 유포 따위의 사법 협박을 받지 않은 언론)의 말에 최대한 의존하기로 한다.


 



특히 만우절이니까 하는 말인데, 정부와 군의 말을 일단 믿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렴 국민이 세금과 병역의무로 부양하고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무집단이, 해군장병으로 복무중인 46명의 장병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싸늘히 식어있을지도 모르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으리란 생각은 정녕 하기 힘들다. 특히 모종의 목적에 의해 국민들의 귀중한 목숨과 알 권리, 병역이라는 신성한 의무를 놓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은데, 상상이 된다. 그런데 IT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 이제부터는 내 소박한 상식에 최대한 의거해 써보려고 한다. 그러니 그 내용이 정상인의 지적 능력과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본 기자는 바랄 뿐이다.


 



천안함이 두 동강 나면서 침몰했다. 가카 이하 정부와 군의 수뇌는, 처절하게 헤맸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다. 일단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바뀌었다(링크). 군은 위급 상황 시 반드시 상부보고를 거치게 되어 있다. 사태의 경중에 따라서는 지휘체계의 최상층부인 대통령까지 순식간에 올라간다. 사고시간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세계의 인공위성 중 사고지점을 조망할 수 있는 녀석이 몇이더라?


 



물론, 역량의 부족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삼국지 시절에는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에 적장의 목이 떨어지고 대략 술시(戌時)에 매복에 걸리며 자시(子時) 즈음에 불길이 치솟는다. 지금도 소떼 방목지를 놓고 낙타랑 말 위에서 엽총 들고 싸우는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전사들끼리는 이런 보고가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 해군도 시설과 송수신 장비가 너무나 열악하고 지휘라인에 있는 자들의 지능이 그 시설 만큼에도 훨씬 못 미친다면, 시간파악에 연속된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0에 무한히 소급된다. 동어반복이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은 100%에 무한 소급된다. 99.999999.....%의 가능성으로, 군은 거짓말을 했다. 나는 철학과 수학이 아닌 일상의 범주에서 0.000000.....1%의 확률을 언급할 필요성을 못 느끼므로, 이렇게 말하겠다.


 



- 군은 거짓말을 했다.


 


 




2. 희망'고문'


 



인간은 가능성을 믿기에 더 고통스러운지도 모르겠다. 실종자의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에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올라 죄송스러워졌다. 나는 이 말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처음 접했다. 김삼순이 현빈이 분한 재벌 2세에게 버림받고 그냥 그렇고 그런 남자와 선을 보고 그렇고 그런 결혼을 하고 그렇고 그런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것과 군에 간 자식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것. 그 슬픔의 무게를 비교조차 할 수 있을까.


 



 


실종자들이 갇혀있을 지도 모를 함미는 대체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어디에 있었길래 발견되지 않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그토록 타들어가게 했을까. 결국 함미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생뚱맞게도 어선에 딸린 어탐(어군탐지기)에 발견된다.


 


한국인들은 정치적, 지리적으로 세계 4대 강국에 둘러싸여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있어 자국의 크기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세계 10위권 이내에 든다.


 


일전에 어느 술자리에서 펜더님이 한 말씀이 떠오른다. 한국이 아프리카에 박혀 있다면 단 2주면 검은 대륙을 통일해버린다고. 국방부가 아니라 육방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육군에 헤게모니가 집중되어 있지만, 그래도 일국의 해군이다. 해군이 "수색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이틀 넘게 찾지 못한 함미를 어선이 어군탐지기로 발견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가정이 필요하다.



 


1 우리 해군의 역량은 사실 소말리아 해적 수준이거나, 2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교와 베테랑 부사관이 즐비한 해군은 사실 그 수뇌부터 하부까지 철저히 멍게나 해삼 수준으로 멍청한 집단이거나, 3 이건 정말 끔찍한 가정이지만 - 일부러 함미를 찾지 않았거나.



 


나는 해삼은 아니지만 아인슈타인도 아니어서 이 이상의 경우는 상상해내지 못했다. 내 소박한 지능은 1번과 2번의 가능성이 0에 소급될만큼 희박하다고 추론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군이, 국민이 기꺼이 세금을 통해 부양하고 기꺼지 자신들을 통제할 공권력을 위임한 이 집단이 설마, 온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아까운 산소가 분초를 재며 줄어가는 공기 속에서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를 장병들을, 수십시간 동간 내버려둔 채로?


 


어쨌든 여론은 난리가 난다. 어떻게 해군의 장비와 역량이 어탐 한 대만지도 못한지에... 그러자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드디어 입을 연다.


 



 


"함미 위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거기에 어탐을 만지던 당사자가 결정타를 가한다. 거기 수면에 검은 기름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데 어떻게 발견이 안 될 수가 있지요...


 







함미 위치를 원래 알고 있었다는 저 말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군의 수장이 공식석상에서 한 말이다. 본 기자는 그가 감히 국민 앞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을리 없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군은 함미의 위치를 알았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물론 이것은 요며칠 난무하고 있는 추측이나 가설이 아니라, 사건 진행과 김태영 국방장관의 발언을 조합한 상식적인 결론이다.


 



- 정부와 군 수뇌는 이미 위치가 파악된 함미를 일부러 방치했다.



 


그렇다. '고의적으로' 방치했다. 참고로 정부와 해군은 '허위사실유포'로 본 기자를 고소하려면 먼저 김태영 국방부 장관부터 손봐주기 바란다. 해군도 이 명제를 인정하기 싫었는지 말을 바꿨다. 생각해보니 함미를 찾은 건 어탐이 아니라 해군이에여. 위치를 알고 있었다는 게 그 위치를 뜻한 게 아니었어여... 


 


 


3. 돌쇠의 마음


 



돌쇠가 말한다. 어젯밤 자정에 언년이 만나러 방앗간에 갔어요.


다음날 다시 말한다. 엊그제 자정에 마님이 불러서 안방에 들어갔어요.



 


돌쇠는 언년이와 사이좋게 떡을 쳤을 수도 있고 마님의 굳은 몸을 좀 풀어드렸을 수도 있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다. 다음날 마님한테 쌀밥을 얻어먹은 걸 보면.


 


진실은 하나다. 돌쇠는 언년이를 만났거나 마님을 만났다. 한 쪽은 거짓말이다. 아니면 둘 다 거짓말이거나. 그런데 언년이 엉덩이설과 마님 허벅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한 편이 된다. “역시 돌쇠 이 새끼는...” 돌쇠가 항변한다. 내가 언년이랑 뭘 하는지 마님이랑 뭘 하는지 당신들이 봤어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저질이에요?



 



 


돌쇠와 마님과 언년이가 입을 다무는 한 우리는 그날 밤 자정의 일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고하게 잡을 수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돌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돌쇠는 왜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 모른다. 돌쇠가 입을 닫는 한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확실한 사실. 돌쇠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4. 다시, 거짓말


 


미군 오폭설, 북측 공격설, 내부 폭발설, 침수설, 무슨 무슨 설. 나는 군사전문가도 아니고 선박에 지식이 있지도 않다. 대부분의 독자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결론내릴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정황상 미군의 어뢰 오폭일 것도 같고 정부가 미국과 반미 촛불이 두려워 사건을 은폐하려는 것도 같지만, 조선일보가 별반 근거도 없는 북측 잠수정 보도를 하면서 넋나간 정부에 공안정국 사인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함선의 노후에 따른 침수로 피로크랙이 일어난 것도 같지만... 추측을 결론으로 확정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물론, 억울한 일이다. 정부와 군 수뇌가 웬갖 추측을 양산해내는 와중에 국민은 소설을 쓰면 안 된다는 게. 그래서 <지금은 생존자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가증스럽다. 이 맥락에서 소설을 쓰면 안된다는 말은 법적/윤리적 명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현 단계에서 우리가 분노할 수 있고 또 분노해야 하는 것은 거짓말 자체다. 어떤 음모론을 사실이라 가정했을 때, 그 리얼리티 소설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사기행각이 아니다.


 


돌쇠가 날마다 말을 바꾼다. 거짓말이다. 하고 싶지 않은 얘기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는다. 진실을 숨긴다. 돌쇠 개인의 불기둥스럽고 충용무쌍적인 음심이 그 동기라면, 그래서 마님도 언년이도 그의 품안에서 행복했다면 우리는 돌쇠의 인격을 씹어대며 부러워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부와 군은 돌쇠보다 스케일이 크다. 이들의 거짓말은 46명의 목숨과 유가족들의 영혼을 담보로 했다. 그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데 실종자와 유가족들에게는 분초가 천금 같은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거짓말의 대상이 전 국민이다. 나는 이게 용서가 안 된다.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난 역시 정상인인것 같다.


 


천안함 침몰에 관련한 정부와 군의 대응은 심각한 집단범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을 정리해보아도 이들의 행위는 용납될 수 있는 임계치를 이미 넘은 듯싶다.


 


물(H2O)은 1 얼던가 2 녹던가 3 기화한다. 이러한 상식에 의거해, 정부와 군 수뇌가 저지른 거짓말과 시간끌기의 이유와 목적이 밝혀지면 이들의 죄는 1 늘거나 2 줄 것이다. 2의 경우 정부 구성원과 여당의 사익이 아닌 오로지 국익을 위한,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고야 마는 엄청난 용단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편이 가능성이 더 높을까? 독자여러분들은 마음속으로 대답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