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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와 수학의 차이

2010-04-0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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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5.월요일


김지룡



산수와 수학의 차이


 


수학을 선행학습 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쉽다는 연구 보고가 많이 나왔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은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를 특목고에 보내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초등학생에 고등학교 수학을 선행시키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나 역시 선행학습은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말을 해 봐야 ‘당신이 무슨 입시 전문가라고 되냐?’라는 반발을 사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왜 선행학습이 오히려 아이의 수학적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망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하기로 하겠다.


 



내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를 배웠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 보니까 산수가 수학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내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는데….


 


초등학생에게는 ‘수학’이 아니라 ‘산수’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등 산수 문제야말로 논리적 사고, 창의적 문제 해결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과학자나 엔지니어는 ‘수학적 방법’이 아니라 ‘산수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보는 경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학적 방법과 산수적 방법은 무엇이 다를까?


수학은 그동안 위대한 수학자들이 발견하고 정리해 온 수학적 개념과 공식 등을 이용해서 문제를 푸는 일이다. 즉, 방정식, 피타고라스의 정리, 사인, 코사인 같은 것을 사용해서 문제를 푸는 것을 말한다.


 


산수는 오로지 도형과 표 그리고 사칙연산만을 사용해 문제를 푸는 일이다.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무척 많이 써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인 발상을 익힐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혹시 ‘암산비법’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암산실력을 늘려준다는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암산 테크닉이 나온다. 그 중에 ‘십합일등(十合一等)’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 역시 인도 베다 수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 십합일등(十合一等) : 십의 자릿수의 합이 10이고


1의 자릿수가 같은 수의 곱셈 공식


 


이를테면 이런 숫자들의 곱셈을 말한다.


67×47 : 10의 자릿수의 합이 10(6+4)이고, 1의 자릿수가 7로 같다.


72×32 : 10의 자릿수의 합이 10(7+3)이고, 1의 자릿수가 2로 같다.


 


암산비법을 이용한 계산 순서는 이렇다.


(1) 10의 자릿수의 곱에 1의 자릿수를 더한다.


(2) 1의 자릿수를 곱한다. 단 결과가 한자리인 경우는 앞에 0을 붙인다.


(3) (1)에서 구한 결과와 (2)에서 구한 결과를 붙인다.


(즉, (1)에서 구한 결과에 100을 곱하고, (2)의 결과를 더한다.)


 


무척 헷갈리실 것이다. 연습해 보자.


 


67×47 = ?


(1) 6×4 +7 = 31


(2) 7×7 = 49


(3) 31과 49를 붙이면 3149


(31×100 +49 = 3149)


따라서 67×47 = 3149


 


72×32 = ?


(1) 7×3+2 = 23


(2) 2×2 = 4 (한자리이므로 0을 붙여 04를 만든다.)


(3) 23과 04를 붙이면 2304


(23×100+4 = 2304)


따라서 72×32 = 2304


 


이런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그친다면 수학을 잘할 수 없다. 왜 이런 신기한 일이 벌어지는 지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수학 실력을 높이는 길이다. 수학을 잘하려면 ‘완벽한 이해’가 필요하고, 완벽한 이해는 본인이 납득할 때까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과정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왜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지 ‘왜?’를 살펴보자. 그런데 그 이유를 밝히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수학적 방법’이고, 또 하나는 ‘산수적 방법’이다.


 


먼저 수학적 방법을 보자. 중2 정도의 수학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문자식을 이용해 쉽게 증명할 수 있다.


 



 



 


마지막에 정리된 100(a+b) + c^2(c의 자승)이 암산비법의 비법의 정체다. 10의 자릿수를 곱한 것에 일의 자릿수를 더한 뒤 100을 곱하고, 1의 자릿수를 제곱한 것을 더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수학적 해법을 사용하면 머리를 쓸 부분이 a+b = 10 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가 적절한 부분에서 바꾸어 주는 것 외에는 없다. 수학적 해법이라는 것은 대개 문제를 식으로 표현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식을 변형해 나가는 것이다. 논리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그렇게 많지 않다. (고난도의 수학 문제는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초중등 학생이 선행학습으로 배우는 수학은 대개 기초에 해당하는 문제들이다.)


 



이번에는 산수적 해법으로 암산공식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67×47은 가로 67, 세로 47인 사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문제와 같다.


 





그 다음에 어떻게 풀면 될까?


지난번에 쓴 글을 보신 분들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사각형을 네 부분으로 나누면 된다.


 



 


이것만으로는 왜 앞의 공식이 나오는지 알기 힘들다. 네 개의 사각형을 분해해서 다시 조합해 보자. 핵심은 면적이 420(60×7)인 직사각형을 90도 회전시켜서 면적이 280(40×7)인 직사각형 밑에 붙인다는 것이다.


 




이제 면적을 내 보자.


큰 사각형의 면적 2400에, 가운데 기다란 직사각형의 면적이 700, 작은 정사각형 면적이 49. 모두 더 하면 3149다.


수식으로 정리해 보자.



2400+(280+420)+49


= 2400+700+49


= (2400+700)+49


= (24+7)×100+49


= 3100+49


= 3149


 


여기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사각형 하나를 회전시켜 붙였더니, 폭이 똑같아 정확하게 붙고, 길이가 100이 된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답은 ‘십합일등(十合一等)’의 조건에 있다.


 


* 십합일등(十合一等) : 십의 자릿수의 합이 10이고


1의 자릿수가 같은 수의 곱셈 공식


 


1의 자릿수가 같으므로 폭이 똑같은 직사각형이 만들어진다.


십의 자릿수의 합이 10이므로 두 개를 붙이면 길이가 100이 된다.


 


과연 초등학생이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설명으로 듣거나, 풀이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사각형을 직접 그리고 나누고 자르고 붙여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길이가 정확해야 하니까(그래야 보기 좋게 딱 붙는다) 모눈종이를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세 문제 정도만 직접 그림으로 풀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산수적 방법이다.


문자식이나 방정식 같은 것들은 무척 편리한 도구다. 너무 편리하기 때문에 머리를 쓸 일이 적어진다. 초등학생 때는 오히려 수학적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도형과 도표 그리고 사칙연산만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머리를 쓰기 때문에 진정한 수학적인 사고가 생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수학의 선행학습이 효과가 거의 없거나 역효과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너무 일찍부터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면, 창의력이 아니라 공식에 의존해 문제를 풀기 때문에, 진정한 수학적인 사고가 들어설 여지가 적어진다. 초등학생 때는 공식에 의존하지 않는 ‘산수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수학의 기초가 다져진다.


 


그런데 암산비법은 알아두면 좋을까?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이런 비법을 암기해서는 안 된다. 큰일 나기 십상이다.


 


계산을 잘못하고, 그 때문에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시중에는 암산비법을 알려준다는 책들이 많다. 처음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기막힌 해법처럼 보인다. 암기해 두면 계산 문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허상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실제로 시험 문제에서 이런 계산식을 만날 가능성이 무척 낮다는 점이다. 10의 자릿수를 곱하는 경우의 수는 4050가지. 그 중 10의 자릿수의 합이 10이고, 1의 자릿수가 같은 곱셈은 모두 합쳐서 50개에 불과하다. 확률적으로 1%가 조금 넘는 일이다. 암산비법을 익혀두어도 도움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낮은 확률의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수 백 문제를 연습해 둘 필요가 있을까?


 


둘째, 이런 식으로 외운 것은 며칠만 지나면 모두 잊어버린다.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은 나은 편이다. 공식을 헷갈릴 수 있다. 암산비법이라고 외워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헷갈릴 위험성이 점점 더 커진다. 암산비법 때문에 틀린 계산을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초등 3학년만 되어도 두 자릿수 곱셈을 틀리는 일은 많지 않다. 만약 많이 틀린다면 수학이 너무 싫어서 대충 풀거나 한눈을 팔았기 때문일 것이다. 암산비법을 외우라고 시키고, 공식을 암기하기 위해 똑같은 패턴의 문제를 수십 개, 수백 개 풀라고 시키는 일은 아이가 더욱 더 수학을 싫어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