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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6.화요일


산하


 


눈꼽 산적한 눈으로 조간신문을 읽다가 코끝이 찡해진다. 고 한주호 준위의 장례식 운구를 막아서서 'UDT 사나이가'를 부르는 UDT 대원들의 얼굴 하나 하나가 입체 영상이 되어 눈가를 찌른다. 나이 들어 뵈는 소령은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내뻗는 주먹에 슬픔이 묻어난다. 어느 젊은 하사관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있다. 그는 이미 엉엉 울고 있다. 고인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상사는 노래로 눈물을 참고 있다. 대한민국 국군 가운데 가장 강고한 훈련을 받고 세계 어디 내놔도 우러러 보이면 보였지 우러러 볼 대상은 없다는 UDT 대원들이 통곡을 대신한, 또는 통곡과 범벅이 된 노래로 고인을 보내고 있다.    




미 해군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유속과 수온을 상대로 밧줄 하나 의지한 채 시계 30센티미터의 바다 속으로 뛰어든 그들에게 경의를, 그리고 그 와중에 끝내 목숨을 거두어야 했던 고인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낯간지러운 헌사로서가 아니라, 천편일률의 수식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은 대한민국의 영웅들이다. 한주호 준위에게 추서된 충무무공 훈장조차 그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하물며 사고 열흘이 지나도록 속시원한 원인을 밝히기는 커녕 사고 발생 시간조차 왔다 갔다 하고 생존자와 해경에는 입막음을 당부하면서 이것저것 재느라 머리에서 탱크 캐터필러 소리가 날 법한 대한민국 국군 수뇌부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미군들은 터무니없다고 코웃음치는 수온과 깊이의 바다에 밧줄 하나 의지하여 뛰어들게 해 놓고 감압챔버도 제대로 구비해 놓지 않고서는 "잠수부들을 죄다 처박아" 버리고 싶다는 언설을 구사하는 데에서야 어찌 할 말이 남아날 수 있으랴.  

하나 어릴 적 전설의 고향을 시청한 날의 악몽처럼 뇌리를 덮어 오는 과거가 있다. 눈물겹게 분투하는 일선 장병들과 허둥대면서 눈가리고 아웅하다가 애꿎은 장병들과 무고한 시민들을 내버려 버린 수뇌부의 기시감의 기원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60년 전 6월 25일. 전쟁이 시작된 뒤 건국 3년차 대한민국 국군 수뇌부가 보여 준 행동은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삽질과 사기와 아둔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5일 새벽 "(포탄이) 떨어집니다. 막 떨어집니다."라는 비명같은 절규가 7사단 일직 장교에 의해 보고되기 이전에도 인민군의 이상 징후는 허다하게 나타났고 국군 수뇌부는 고스란히 그 모두를 앉아서 뭉갰다. 인민군의 전면 공격이 개시되고 몇 시간만에 개성이 떨어졌어도 국군의 높으신 분들은 여전히 평양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과 신의주에서 먹을 저녁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심한 경우는 아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6월 25일 오후 2시에 참모총장이라는 자가 국무회의에 보고하기를 "전면남침이 아니라 김달삼 이주하를 탈취하려는 책동"이라고 더듬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군 내부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았다.  

옹진반도를 지키던 17연대가 심대한 타격을 입고 철수하려는 판에 서울에서는 "17연대 해주 진입"이 방송되고 있었다. 국군 전략상 북한군의 공격이 있을시 17연대가 해주를 공격한다는 구상이 서 있었던 모양이지만 "통신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현지에서 온 기자가 전한 "17연대장은 해주로 진격한답니다."는 말에만 의지한 채 울려 퍼진 17연대 해주 점령 소식은 세계 만방에 퍼져 나갔다. 17연대장이 자살할까 말까를 고민하던 판국에 말이다. 급기야 전남에서 급거 상경한 5사단 병력은 북진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급히 올라온 병력들은 '축차적으로' 바닷물을 막는 모래성의 재료로 투입되어 부대가 일시 해체되는 수준의 타격을 입는다. 국군의 마지막 서울 방어선이었던 미아리 고개에 탱크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나무로 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도 국방부 장관은 6월 27일 새벽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 ‘3~5일 이내에 평양을 점령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보고를 하고 있었고,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은 채 서울을 몰래 떠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만반의 준비에는 "수도 서울을 사수한다"는 이승만 대통령 자신의 녹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녹음은 대전에서 이뤄지고 서울로 옮겨져서 전파를 탄다. 도대체 전쟁을 한다는 나라의 지휘부가 아니었다. 사기꾼들의 세계에서도 이런 저열한 사기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고, 협잡꾼들도 가래침을 뱉으며 팔뚝을 걷어부칠 짓을 대한민국 국군 수뇌부가 저지르고 있었다. 더러운 수건을 눈에 두르고 아웅하고 앉았던 이 희한한 장님들을 봉양한 것은 악으로 깡으로 몸을 던졌던 심청이같은 일선의 병사들이었다. 




 


6.25를 '민족 세력'과 '반민족 세력'의 전쟁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괴뢰군' 즉 인민군을 맞아 싸웠던 '국방군' 즉 국군의 저항은 그에 대한 유력한 반증으로 제기될 수도 있을 만큼 치열한 것이었다. 감압챔버 하나 없이 물에 "처박으"라는 요구에 얼음장 같은 물에 기꺼이 빠져들었던 UDT 대원들처럼, 인민군 탱크를 육탄으로 쳐부수라는 명령에 숱한 병사들이 TNT 들고 수류탄들고 캐터필러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의식을 잃을만큼 기진맥진하고서도 숨을 차리자마자 물로 자맥질쳤던 수색대원들과 같이 60년 전에는 한강을 기껏 건너왔다가 다시 건너간 병사들도 있었다. "죽어도 서울을 지키다가 죽겠다."는  것이었다.    

나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사람들이 눈물겹게 분투하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반면, 정녕 견마지로를 다해도 모자랄만큼 부귀와 권세를 누리던 이들은 미련하기는 곰같고  도망하는 데는 귀신같으며 결국 과실을 차지하는 데는 여우와 같았던 비참한 역사는 무슨 유전병처럼 세대를 가로지르고 세월을 뛰어넘는다. 나는 오늘의 국군 수뇌부가 60년 전의 망동을 재연하기를 희망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유리한 국면을 위해 사실을 조작하거나 입막음을 강요하거나 앞뒤 안맞는 사실을 둘러대며 진실을 은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꼭 제대로 된 원인을 밝혀서 졸지에 수중고혼이 되어 버린 해군 영령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기를 절실히 소망한다. 선체의 문제로 두동강이 났다면 포항급 초계함에 승선한 모든 해군들의 문제일 것이고, 그 가능성은 큰집의 도덕성만큼도 없는 것 같지만 만약에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리고 북한이 그에 대한 합당한 대응을 거부한다면 나는 이 정부가 옹진반도를 폭격해도 그를 지지할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동료를 보내는 UDT 대원들의 모습 앞에서 부끄러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소한 육탄 돌격을 명해 놓고 한강 다리 건너 내뺐던 대한민국 국군의 세 살 버릇이 환갑에 재연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고 한주호 준위와 지금도 자신들의 배를 지키고 있는  해군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여러분 같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천국은 있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