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나영이와 공부하기(1)

2010-04-01 13:05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먹물 추천0 비추천0

2010.4.1.목요일

 

먹물

 

 

 

 

 

엿 같은 세월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화양년화는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즐거운 때가 있었지’라고 보느냐, ‘그것 말고는 다 엿 같았지’로 보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 그리고 나영이와 있던 때는 아주 밀도 높은 고민을 내게 던져다 준 시간이었다. 그래도 화양년화는 있다. 나영이와 영화 보러 갔을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건 내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일종의 환기구 같은 것이다. 환기창을 닫아놓고만 있으면 만성두통에 시달리는 법.

 

 

 

 

 

나영이를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되튕겨져 나온 후, 나는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근시안’의 자세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영이의 가족도 아니며 후견인 행세를 할 배경도 없었다. 그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주는 것, 그리고 나영이의 인격을 존중한다면 구태여 싫어하는 일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그 정도였다. 하지만 당장 내일 나영이가 어떻게 나올지 나는 모른다.  앞일을 짐작할 수 없다. 또한 나 자신이 한순간에 가이드라인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갖고 있다. 만성두통처럼.

 

 

 

 

 

나영이는 제발로 여기 왔지만 언제든지 제발로 나갈 수 있고, 또 나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내일이란 없을 수 있다.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은 별다른 효과를 못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려는 스타트 자세를 포기하진 못했다. 계몽이나 훈육 같은 말은 평생토록 좋은 이미지였던 적이 없는 단어였건만, 그런 자세를 나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내일이 없는 여자애 정도야 중년남자에겐 탐스런 먹잇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용이 지식이든 예의든 컴퓨터 사용법이든 간에 시간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영이에게 세상 살아가는 뭔가를 얘기해주고 체득하게 한다는 건, 솔직히 시간 낭비일 거라는 느낌도 들었다.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상황은 내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영이가 필요한 것을 주고 있다. 집에까지 돌려 보냈는데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1주일짜리 쉼터에 보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을 선의로 떠안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하다.

 

 

 

 

 

이런 생각은 한순간에 나를 지옥으로 밀어낸다. 떳떳함, 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보낸 시간들... 스스로에게 흐뭇한 자족의 순간엔 어김없이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네 욕망에 충실한다 해도 뭐라 그럴 사람 아무도 없다는. 솔직히 그게 죄냐? 알 거 다 아는 애들 아니냐? 글을 쓴 게 맘에 걸리면, 네 글에 댓글 단 녀석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사는지 너는 아냐? 나영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는 아냐? 실제로 들은 얘기도 있잖아?

 

 

 

 

 

그래, 실제 들은 얘기도 있었다. 그건 나영이가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온 첫날 일이었다. 나영이는 유미와 은비 욕을 해대면서 별의별 과거들을 다 쏟아냈었다. 그 중에는 내 집에 들어온 얘기도 포함돼 있었다. 내가 집에서 재워주겠다고 했을 때, 아이들은 내가 잠자리로 끌어들일 거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만약에 그러면 넌 잘 거냐’ 란 물음을 서로 하면서 유미와 은비는 그러겠다고 했다, 걔들이 그런 년들이라며 나영이는 분풀이를 해댔었다. 듣는 내가 무슨 충동을 받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충동에 저항하는 수단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계몽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것뿐이었다. 꼭 옳아서도 아니고 시간 낭비가 안될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살 수 있기 위해서 그래야 했다.

 

 

 

 

 

물론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 나영이를 내보내는 일은 선택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지금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동정, 가여움, 아쉬움, 인정, 사명감, 도덕심, 그리고 욕망의 가능성... 어느 말도 정확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 모두가 이유일 수도 있다.

 

 

 

 

 

잘 모른다면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영이가 여기 있어도 될 합당한 이유를. 그리고 올바른 나의 역할도.

 

 

 

 

 

 

 

 


 

 

 

 

 

 

 


 

 

 

나영이가 홀로 찾아온 건 2009년 9월 말엽이었고,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온 후 나영이는 하루종일 잠을 잤다. 그리고 며칠 동안 나영이는 시간 되는 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했다. 내가 컴퓨터를 쓰겠다고 하면, 나영이는 TV를 보았다. 그 두 가지가 나영이의 하루 일과였다. 나영이는 더 이상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았고 밤에 나가지도 않았다.

 

 

 

 

 

좋은 변화였다. 훗날에 나영이는 어른 말 들어주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그리고 방 청소나 설거지 정도는 해주는 게 밥값하는 거라고 내게 말했었다. 물론 그건 ‘훗날’의 관점이다. 이때의 나영이는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정도에 불과했고, ‘훗날의 나영이’는 그런 자신을 ‘철이 덜 들어서’라고 표현했다. 어쨌든 그 정도만 해도 아이들 셋이 있던 시절과 비교하면 감지덕지이긴 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방에 틀어박혀 시간 죽이는 모습을, 그냥 놔두고 보는 것도 꽤 답답한 일이다. 나영이가 바라는 대로 독립을 하고 싶다면, 뭔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뭔가 해야 하지 않겠니?"
"뭘요?"
"여기 있으면서 너 아무것도 하는 게 없잖아. 며칠 동안 TV하고 컴퓨터... 그것 말곤 할 게 없니?"
"알바 할 거에요."

 

 

 

 

 

알바 하겠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온 아이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나영이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렇게 말하고, 알바를 구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나로선 니가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여기 둘 이유가 없어. 내가 굳이 왜 너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알바를 하는 것도 좋아. 찾아보라구. 공부도 하고 싶으면 말해. 너 중학교 못나왔잖아. 검정고시를 볼 생각이라면 공부하는 거 도와줄게."
"음... 저 공부하고 싶어요. 인젠 공부할 거에요."

 

 

 

 

 

의외로, 나영이의 입에서 가장 바라마지 않던 소리가 나왔다.

 

 

 

 

 

"정말?"
"예. 이번에 오빠 집 오면서요, 인제는 공부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오빠 말이 다 맞긴 맞으니까... 근데 어디부터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건 문제가 안돼. 너한테 처음부터 시험 공부 시킬 건 아니야. 천천히 조금씩... 중학교 1학년 게 생각이 안 날 테니 거기부터 시작하면 되고."
"알았어요! 빨리 시작해요. 아 진짜 이번엔 열심히 해야지."

 

 

 

 

 

나영이는 혼자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알았어. 내일은 그럼 책을 사러 나가보자."

 

 

 

 

 

 

 


 

 

 

다음날 나는 나영이와 함께 교과서를 파는 대형서점에 갔다. 참고서류는 나영이가 읽기에 너무 복잡했고, 아직은 문제를 풀거나 할 단계도 아니었다. 우선은 꾸준히 책을 읽기만 해도 된다. 요즘 교과서의 구성은 내 학창시절에 비하면 참고서라 봐도 될 정도다. 무얼 공부할지는 나영이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사회나 과학을 먼저 할 건 아니고...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과목이 기본인데 말이야. 난 국어는 해야 된다고 봐. 니가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으니까... 일단 그것만 할까? 영어나 수학은 하고 싶을 때 시작해도 돼. 일단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책상에 앉아있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음... 전 수학을 하고 싶어요. 수학은 그래도 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그래? 영어는 어떻고?"

 

 

 

 

 

나는 서가에 꽂혀 있던 중학교 영어책을 꺼내 주었다. 나영이는 이리저리 뒤적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우, 골치 아파. 갑자기 옛날 생각 나요."
"싫으면 국어, 수학만 해도 충분해. 나중에 시작하라고."
"그래요. 그럼 그거 두 개만 할게요."

 

 

 

 

 

그리고는 서점 내의 학용품 매장에 들렀다. 난 필통 하나에 볼펜이랑 샤프랑 지우개랑 넣어서 한 세트로 채워주었다. 노트도 두 권 샀다. 나영이는 필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전에 토끼 그림 있는 거 있었는데... 그런 거 없어요?"

 

 

 

 

 

아쉽게 토끼 그림 필통은 매장에 없었다. 꼭 필통을 사지 않아도 됐지만, 안 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는지 나영이는 결국 필통 하나를 골랐다.

 

 

 

 

 

새 책과 노트, 문방구를 사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영이는 버스 안에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샤프를 눌러댔다. 노트도 꺼내 휘리릭 펼쳐보았다. 다만 책은 꺼내지 않았다. 나영이는 자신이 중학교 1학년 공부를 한다는 사실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책값을 치를 때에도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문득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문구류가 그리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요즘처럼 수입 문구류가 저렴하지도 않던 때였다. 하지만 문구류 사용에 대해서 나는 꽤나 깐깐한 학생이었다. 나는 노트 필기용으로 이제는 사라진 세라믹펜을 즐겨 썼는데, 노트의 종이가 얇으면 뒷면으로 넘겼을 때 앞면의 글씨가 비쳐 보인다. 나는 그게 싫어서, 비교적 종이가 두꺼운 제품을 애써 찾느라 시내 문방구를 뒤지곤 했었다. 또 당시 교과서는 종이 질이 그닥 좋지 못해서, 볼펜으로 쓴 글씨 모양대로 종이 뒷면이 볼록 튀어나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책받침을 두 번째 뒷장에 깔고 썼다. 바로 뒷장에 깔면 필기감이 너무 미끄럽기 때문이었다.

 

 

 

 

 

수입 문구를 쓰는 아이들이 부럽진 않았다. 하지만 참고서에 대해선 좀 아쉬웠다. 집안이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리 풍족하지도 못했던지라, 입맛대로 참고서를 살 형편이 아니었다. 나는 참고서를 줄 쳐가며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었고, 다시 볼 때 방해가 될까봐 문제에도 동그라미를 쳐놓지 않았다. 한마디로 참고서는 아주 깨끗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부도 안한다며 여벌의 참고서를 사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랬다. 친구가 ‘책은 많을수록 좋다’면서 시내 서점에 없는 참고서를 서울서 사오는 모습이, 난 참 부러웠다. 나는 그저 과목당 한 권 있는 참고서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어야 했다. 문제집도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 이외엔 거의 사질 못했다. 오직 자율학습뿐 학원도 과외도 없었으니, 고3 기간 내내 내가 공부한 참고서와 문제집은 누구나 갖고 있던 뻔한 것들이었다. 교육방송 참고서를 하나 샀던 게 기억나는데, 그건 그 교재가 개중 가장 쌌기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뻔한 참고서를 읽으며 어떤 ‘궁리’를 했던 것 같다. 이미 아는 것들은 다시 볼 필요가 없고, 혹시 지나쳐버린 구절이 있었나,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문구가 있나 찾아 다녔고, 그런 게 있을 때엔 ‘대체 이게 무엇인가’하고 오랫동안 머리를 짜냈다. 가설을 세우고 그에 따라 풀이했을 때 맞는가 아닌가를 탐색해보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일이, 문제풀이로 점철되고 자율학습으로 틀어 막힌 고3 생활 중에는 오히려 일종의 ‘재미난 놀이’와 같았다. 그렇게라도 놀지 않으면 숨막혀 죽을 것 같은 때였다. 아침 6시 기상, 7시 등교, 밤 12시 하교... 그렇게 1년이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교육과정을 아주 충실히 이수한 나로서는, 이제 중학교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나영이의 상황을 내 일처럼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난 중학교 시절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연합고사에서 몇 점을 맞든 결국 뺑뺑이 돌려 고등학교 배정 받는 마당이니, 커트라인 넘기만 하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공부라도 선행학습 할 수 있으면 차라리 낫겠는데, 중학교 선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위해’ 연합고사 만점 작전에 돌입하여, 성문기본영어나 수학 정석을 공부하지 못하게 막았었다. 대체 ‘연합고사 만점’이 학교의 명예와 무슨 관계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건 중3때 일이지만, 중학교 내내 이런 식의 분위기라 그랬는지 나는 시험 성적을 위해 따로 공부를 하기가 정말 싫었다. 그럼에도, 성적은 좋았다.

 

 

 

 

 

내가 ‘머리 좋은 학생’이었던 건 민망하고 건방진 말이지만 사실이긴 하다. 나영이처럼 중학교 공부를 굳이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은 경험한 적이 없다. 게다가 나영이는 보통의 중학생들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는 상태다. 이제 시작하는 마당에 ‘실은 그렇지 않아’라고 포장해봤자 소용 없다. 현실은 일단 인정해야 한다.

 

 

 

 

 

나영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우려와 함께,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공부를 잘한 학생이 아니었다면, 중고등학교 수학을 아직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면 공부를 가르쳐주겠다고 쉽게 마음 먹지 못했을 것이다. 나영이 처지를 공감하는 대신 공부에 자신 없는 경우와 비교하면 내 처지가 나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