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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2.금요일


영준비


 


 


 


1. 공격 축구
 




두 팀은 모두 공격축구로 대변된다. 세세하게 바르셀로나는 조금 더 기술적이고 볼의 간수(볼킵핑)에 중점을 두는 반면, 아스날은 빠른 움직임과 그에 수반된 체력에 중점을 두지만, 그들의 풀백은 언제나 전선의 더 높은 곳으로 오버래핑하며, 그들의 미드필더와 수비수 또한 다른 팀의 동포지션보다 조금씩 높은 곳에서 공격적인 마인드로 위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경기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공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후방을 든든히 하고 롱 볼 위주의 단순한 경기를 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득점은 언제나 해당 시간에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쪽에서 나왔으며, 이 두 팀은 모두 경기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기려고 노력했다.


 


 


2. 앙리
 


후대에 앙리라는 선수는 수없이 많은 위대함으로 기억되겠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위대했던 곳은 하이버리(아스날의 예전 홈구장)이다. 그는 공격적인 아스날 팀에서도 대부분의 공격포인트를 도맡을 정도로 공격의 시작이자 끝이었고 나아가 아스날이라는 팀이 추구하는 축구의 최종 목표이자 상징이었다. 그는 언제나 공격적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29살의 큰 부상 이후 그의 기량 하락을 염려한 뱅거는 그를 언제나 염원하던 바르셀로나에 팔았고,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예전만큼 속도감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세밀함으로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월드컵 우승, 유로 우승, 무패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등 선수로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얻은 그는 이제 조금씩 선수생활의 황혼을 맞이하는 가운데 자신의 축구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런던을 다시 방문하고 새로운 구장에서 그를 맞이한 아스날의 팬들은 (비록 그가 다른 팀 소속 선수임에도) 그를 기립 박수로 맞이한다. 축구 사상 앙리보다 위대했으며 동시에 사랑 받은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3. 전화 위복 그리고 위기
 


경기 초반 바르셀로나가 약 70%의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아스날을 압도했을 때만해도, 골만 안들어갔다뿐 이 경기는 작년 뮌헨을 4:0으로 이겨버린 그 경기를 기억하게 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거기에 아스날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갈라스와 아르샤빈이 연달아 부상으로 교체아웃 된다. 더 이상 나빠 질 수가 없는 상황에서 바르셀로나의 즐라탄이 두 골을 연달아 넣고, 경기장의 모든 이들이 이 경기는 바르셀로나의 승리라고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초반에 너무나 급작스러운 템포로 몰아붙여서 그런지 후반에 들어설수록 바르셀로나라는 팀의 퍼포먼스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터프 하게 몰아붙이던 압박은 줄어들고, 메시는 마치 부상이라도 걱정하는 듯 돌파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사비의 패스는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못 미치거나 조금씩 넘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테오 월콧이라는 잉글랜드의 신성이 들어왔고, 공격적으로는 안정적이나 수비적으로는 그만큼은 아닌 왼쪽 풀백 맥스웰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놀라운 골. 하지만 이때조차 많은 사람들은 바르셀로나의 승리를 의심하진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의 공간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에는 좌우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푸욜은 반칙을 범해 자신의 편에겐 레드카드를 상대방 팀에게는 PK를 안겨주게 된다.
 




그리고 키커로 나선 파브레가스의 골. 경기는 바로 2:2가 돼버린다.


 



 


아직 시간은 몇 분 남아있었고, 현재의 기세대로라면 아스날의 승리도 가능한 상황 그러나 여기서 전반전에도 약간의 고통을 호소했던 파브레가스는 바로 그 PK 때문에 부상을 입게 된다.
 


그래서 파브레가스는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지만, 아스날에겐 교체카드가 없었고, 경기는 묘하게 다시 10:10이 되어 밸런스를 맞춘 체 끝나게 된다.


 


 


4.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누가 뭐라고 한들 그는 최고의 선수였으며, 최고의 선수이다. 장신이지만 볼을 다루는 기술과 스피드가 상당하고, 프리킥 중거리 패스 등 선수로서 갖춰야 할 기술적인 부분도 거의 모두 최상급이다. 무엇보다 긴 다리를 활용하여 남들은 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플레이를 해내는 그는 말 그대로 Crack이라고 불릴만한 선수다. 거기에 인터밀란에서의 시절과 결혼(……)을 거치면서 성격도 안정돼 이제는 중요한 순간에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와 클럽 통틀어 그가 중요 토너먼트에서 골이 없다는 사실은 항상 그의 발목을 붙잡았고, 소위 ‘즐라탄 거품론’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실제로 그가 속했던 팀이 지금까지 약했던 팀이 아니었고(스웨덴, 아약스-유베-인테르-바르셀로나) 그는 거의 언제나 그 팀들의 주전 공격수였음에도 그는 바르셀로나로 오기 전까지 토너먼트에서 골을 단 한번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래서 리그에서는 그가 중요한 순간에도 골을 곧잘 넣곤 했음에도, 그에게는 항상 큰 경기에 약한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고 그건 슈투르가르트전에서 드디어(!) 생애 첫 토너먼트 골을 넣은 후에도 계속 달려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아스날 전에서 두골을 몰아붙이면서 슈트르가르트전에 이어 골을 기록했고, 사실상 올 시즌 바르셀로나의 토너먼트 골은 대부분 즐라탄이 넣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그런 꼬리표는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즐라탄의 안정에 도움을 전 현 부인 Helena seger


 



 



이번 경기에서 나온 즐라탄의 멋진 두 골


 


 


5. 세스크, 피케 그리고 메시
 



위에서 두 번째가 피케 아래서 첫 번째가 파브레가스


 


바르셀로나의 유스는 언제나 뛰어난 재능을 내기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 받았던 세대는 87년생 유스들이었다. 당시 무적의 카테테라고 불리면서 거의 모든 유스 대회를 휩쓸었고, 바르셀로나를 넘어 세계가 주시하는 존재들이 됐을 정도로 그들의 능력은 뛰어났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선수들이 현재 바르셀로나 수비와 공격의 핵인 헤라르드 피케와 리오넬 메시 그리고 아스날의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다.
 



오랜만에 만난 파브레가스와 피케. 둘은 실제로 굉장히 친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세 명 중 둘은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프로팀에 데뷔하지 않게 된다. 이 세 명이 17살이 되었을 무렵 잉글랜드에서는 현행법상 17세 소년과 계약이 체결가능하고 스페인은 18살부터 계약이 체결 가능한 빈틈을 노려 파브레가스는 아스날, 피케는 맨유가 각각 이들에게 프로 계약을 제시해 이적료를 주지 않고 무료로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이는 나중에 소송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등, 결과적으로 얼마간의 금액이 바르셀로나 측에 지급되긴 했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돈이었던 점은 틀림이 없다.)


 


다행히 리오넬 메시는 팀에 남아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존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었지만, 팀이 자랑하는 뛰어난 유망주를 두 명이나 잉글랜드의 팀에게 빼앗긴 바르셀로나의 일화는 두고 두고 회자된다. 거기에 피케는 바로 주전으로 발돋움하진 못했지만, 파브레가스는 잉글랜드 내의 모든 최연소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주전으로 자리매김했고, 현재는 젊은 아스날을 이끌며 주장완장까지 차고 있다. 그 파브레가스의 존재는 아스날과 벵거 감독에게는 언제나 자신들의 효율적인 운영과 날카로운 안목의 가장 좋은 예가 되어왔고, 바르셀로나에게는 유망주 단속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교훈의 가장 가슴 아픈 예가 되어버렸다.


 


반면 피케의 경우 맨유로 팀을 옮긴 후 스페인 리그 등으로 역임대되며 사라고사등을 떠돌다가 결국 비디치-퍼디난드 콤비에 밀려 저번 시즌 바르셀로나로 돌아오게 되고, 놀라운 기량을 뽐내며 현재는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주축 수비수로 성장했다.


 


재미있게도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바르셀로나가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면서 파브레가스를 재 영입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피케나 샤비등 파브레가스와 친한 선수들이 연일 언론에 파브레가스가 바르셀로나에 올 것이라 믿는다는 말을 흘리며 주장을 잃을 것을 염려하는 아스날의 팬들에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등 파브레가스를 둘러싼 상황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친한 세 명의 선수들은 이번 경기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고, 비록 한 명은 상대팀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서로의 부상을 염려해주는 등 여전한 친분을 과시하게 된다


 


 


6. 마치며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삶의 구성요소들이 그러하듯이, 축구 또한 때론 삶을 함축하기도 한다. 다 똑같은 공놀이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철학이 있으며 그 철학에 기반해 경기를 운영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철학을 가진 팀과 만나 놀랍도록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집을 떠나간 탕자는 결국 따뜻한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서 박수를 받으며, 끊임없는 노력은 결국 자신의 한계라고 불려진 무언가를 극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육과 성장은 언제나 삶의 연속성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그 와중에 헤어진 친구들은 다시 만나서 회포를 풀고 또 경쟁을 한다. 무엇보다 삶의 좋은 국면과 나쁜 국면이 서로 분절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듯이 축구 또한 90분의 경기에서 서로의 장점과 단점, 서로의 상승과 하강이 맞물려져 밋밋한 단선적인 진행이 아니라 복잡하고 함축적인 진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그저 축구라고 바라볼 수도 있지만, 다른 모든 우리의 삶에 자극과 영감을 주는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데 무언가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축구는 바로 그런 것이고, 바로 이 경기는 축구의 그런 면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기였다.


 



나는 인생을 사는 모든 도리를 축구에서 배웠다 - 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