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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백성에게는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고, 수령에게는 암행어사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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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방의 경우, 중앙에서 내려보낸 ‘수령’과 향촌 사회에서 영향력을 갖춘 ‘양반’의 기 싸움이 상당했는데요. 이 두 세력이 대결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백성들만 피해 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외 직접적인 탐관오리의 횡포에도 백성들은 찍소리도 못하고 ‘인생의 경험이다 하고 그러려니’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이런 간절하고 절망적인 백성들의 고통은 중앙에서 통과가 되냐 안 되냐는 둘째치고, 중앙까지 전달되기조차 쉽지 않았죠. 그러한 ‘백성들의 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고안된 조선의 와일드카드가 바로 ‘암행어사’였습니다.

 

공무원들에게 암행어사로 임명받는 것은 큰 영예였습니다. 임금님의 비밀명령을 직접 받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백성의 목소리를 구중궁궐의 깊은 곳에만 계시는 임금님께 전달하는 중요한 임무였기에 더욱 엄격한 마음으로 임했죠. 

 

그렇다면, 어사 박래겸(朴來鎌, 1780~1842)의 출발은 어땠을까요? 임금님의 밀명을 받은 그는 혹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진 않았을까요?

 

박래겸(朴來謙, 1780~1842)은 순조 때의 문신으로 『서수일기(西繡日記)』의 저자입니다. 『서수일기』란 박래겸이 평안남도 암행어사를 재임하며 기록한 일기입니다. 

 

참고로 순조는 정조대왕의 아들이며, 순조 때부터 조선이 수직 낙하하며 기울기 시작합니다. 탕평이 실패하고 붕당정치가 약화되면서, 권력이 특정 가문에 집중되어 국정이 운영되는 ‘세도정치’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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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역사저널 그날>

 

이렇게 시작된 세도정치는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박살 날 때까지 백성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며 지속되죠.

 

 

서수일기로 보는 ‘관종 암행어사’

 

어느 날, 룰루랄라 스리슬쩍 칼퇴하려던 박래겸에게 전해진 임금님의 비밀 편지. 

 

“그대를 암행어사로 임명하노라.” 

 

이 영광스러운 순간, 그의 반응은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 하지만 기왕 암행어사가 된 거, ‘본전 제대로 뽑자’라는 마인드로 공무 반 관광 반 평안남도를 질주한다. 정체를 숨긴 듯 안 숨긴 듯, 퀴즈쇼 진행자처럼, ‘누가 누가 암행어사인 걸 맞히나’라며 슬쩍슬쩍 마패를 내보이는 ‘관종 어사’ 박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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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3월 16일

 

오늘 업무를 마치고 퇴근을 하려던 차, 비서실에서 내게 퇴근하지 말고 대기하여 임금님의 명을 기다리라고 했다. ‘혹시 안 좋은 일은 아닐까’ 고민하다가 임금님을 뵈었는데, 직접 서류를 주시며 “지방으로 내려가 잘하다가 올라오라.”라고만 하셨다. 무슨 말씀이실까. 갑자기 지방이라니.

 

대문 밖을 나서서 문서를 펴보니, 그만 눈앞이 깜깜해졌다. 곧바로 평안남도로 암행어사를 하라는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 탄식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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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웹툰<마음의소리>

 

깜냥이 안 되는 걸 알았기에 근심과 걱정이 무럭무럭 들었다. 게다가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못 하고 급하게 떠나야 해서 말할 수 없이 우울했다.

 

지금도 지방 발령을 싫어하는 분들이 많다지요? 조선도 그랬습니다.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조선 사람들은 한양을 떠나면 죽는 줄로만 안다.”라고 적었는데요. 그만큼 수도 한양에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통과 치안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으로의 여행길은 그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박래겸의 마음은 착잡함과 황당함으로 가득합니다. 룰루랄라 신나게 ‘칼퇴’하다가 갑자기 암행어사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겠죠?

 

그러나 지엄한 임금님의 명을 어길 수는 없죠. 박래겸은 가족들과 인사도 못 한 채, 수하들을 꾸려 평안남도로 떠납니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19세기 당시 암행어사제도의 취지가 얼마나 무색해졌는지 알 수 있는 체험을 기록합니다.

 

 

1822년 3월 24일

 

노년의 가게 주인이 우리를 맞이해 마을에 흉년이 든 일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또, 전임 수령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간사한 아전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도 일러바치며 이렇게 말했다.

 

“초봄에 암행어사가 반드시 온다 하여 다들 수군수군했는데, 지금까지도 어사가 오지 않아 다들 이상하게 여기고 있죠. 저 같은 시골뜨기 노인이야 뭘 알겠냐만, 아마 저 못된 관가와 아전 놈들은 서울과 연락을 주고받아 암행어사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오는지 이미 다 알아 못된 짓을 계속할 겁니다.”

 

암행어사제도의 목적은, ‘지역의 관리들 모르게 파견되어, 백성의 고충을 직접 듣고 그들을 평가하라’에 있습니다. 

 

이 일기에서 우리는, 19세기까지도 암행어사가 백성의 고충을 직접 듣는 것 자체는 잘 유지되었으나, 적지 않은 지역에서 이미 암행어사와 관리가 서로 손발이 척척 맞는 오스카급 명연기를 했음을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꼭 짜고 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부 정보 유출’로 암행어사가 떴다는 소식이 지방에 바로 돌았고, 수령들은 누가 암행어사인지 밝히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암행어사는 신분을 숨기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거지 중에 상거지 꼴로도 변장하고, 사투리도 제대로 못 쓰면서 충청도 출신의 ‘지나가는 선비’ 흉내를 내는 등, 각종 꾀를 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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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봬도 나, 암행어사야~

 

즉, 암행어사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수령과 절대로 들키지 않으려는 암행어사 간의 속고 속이는 심리전이 끊이지 않은 거죠. 그런데 이 박래겸이라는 양반은 좀 다릅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암행어사임을 알아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관종형’ 어사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1822년 3월 29일

 

길가에 눈이 먼 사람이 한 명 앉아 있길래 점을 쳐달라고 했다. 

 

“보인다. 보여. 보아하니, 손님은 자석을 차고 있으니 지관(地官)이시겠구먼? 흠흠, 내가 점괘를 보니, 반드시 이 지방에서 이름을 크게 알리게 될 게야”

 

지관이라니, 그 얘기를 듣자마자 속으로 ‘풉’하고 웃었다. 그는 내가 마패를 차고 있음을 알고 지관으로 오해한 것이다.

 

밤에는 이 고을 수령의 숙소로 찾아가, 나의 가명인 ‘공주 박 서방’ 명함을 넣으며 수령과 만나기를 원했다. 수령과는 어릴 때부터 친했고, 또 고을을 잘 다스린다는 평판이 자자해서 굳이 내가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거리낌 없이 놀았는데, 관아 사람들은 아무도 내 정체를 짐작하지 못했다. 다만 나이 든 기생 한 명 만이 “손님, 인기 많죠? 아무래도 보통 분 아닌 거 같은데?”라고 할 뿐이었다. 정말 웃긴 밤이다.

 

박래겸은 여기저기를 다니며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자기가 암행어사인 줄 알아볼지 은근히 시험해봤던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의 적잖은 시각 장애인들은 점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갔는데요. 길가에서 만난 눈먼 사람에게 점을 치면서, 허리춤에 찬 마패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도록 몸을 움직였나 봅니다. 소경은 짐짓, “점괘를 봤는데 당신은 허리춤에 자석을 찼으니, 지관일 것이다.”라고 했지만, 사실은 마패였던 것이죠.

 

그러더니 그 날밤, 어릴 때부터 친했던 수령을 ‘공주 박 서방’으로 위장하고 찾아가 신나게 놉니다. 그런데 관아 사람들은 웬 추레한 사내가 자신들의 엄격한 수령과 신나게 노는 걸 목격하게 된 것이죠. 제법 황당해했겠죠? 

 

그렇지만, 아무도 감히 암행어사일 줄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다만, 박래겸의 스웩을 눈치챈 기생 한 명이 박래겸의 ‘인싸력’을 의심했을 뿐이었죠. 어리둥절한 그들의 리액션을 바라보며 속으로 낄낄 웃는 어사, 그것이 바로 박래겸의 캐릭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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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암행어사야~ ㅎㅎ

 

박래겸의 ‘관종’ 어사일기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1822년 4월 22일

 

내가 암행어사로 평안남도로 온 뒤, “내가 말이야, 암행어사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야”라고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나 아전과 백성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고을에 공문서를 보내 사기꾼들을 붙잡을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내가 이 땅에 들어서자, 관아의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며 은밀하게 미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를 사기꾼으로 의심한 게 틀림없었다.

 

어느 고개에 당도한 나는 일행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예상대로 녀석들은 내게 다가와 불심검문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 선생님, 잠시 검문 좀 하겠습니다. 요즘 암행어사가 우리 지역에 왔다는 거 아십니까?”

 

“알고 있죠.”

 

“그러면, 암행어사를 사칭하는 가짜어사가 있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그것도 알다 마다요.”

 

내가 이처럼 대답을 척척 하는데도 그들은 내가 수상쩍다는 말을 계속하더니, 결국 허리춤을 살짝 걷은 채 포승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이 물건이 무엇인지도 당연히 아시겠네요?”

 

일이 이 지경까지 됐으니, 내 대답 여하에 따라 그들은 당장이라도 나를 체포할 기세였다. 나는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지은 채 도포 자락을 살짝 들어 보이며, 나긋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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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선생님들은 이 물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조금 전까지 의기양양하던 그들은 내 허리춤에 달린 마패를 보자, 눈알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며, 말문이 막혀 버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언덕을 뛰어 내려가면서 도망쳤다. 그 와중에 한 사람이 넘어지더니, 뒤따라 도망치던 이들도 발이 엉켜 모두 데굴데굴 한참을 구르다가 저 아래 이르러서야 멈췄다.

 

나는 마패를 정돈하고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자네들이나 나나 모두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허허. 쫄지 마시게. 그냥 맡은 바 위치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라고 위로한 뒤, 유유히 고개를 떠났다. 정말이지, 포복절도할 일이었다.

 

암행어사가 돌아다닌다는 소식이 이미 파다한 평안남도. 그에 따라 어사와 친하다고 사칭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심지어 가짜 암행어사도 나타납니다. 자연히 행동거지가 수상한 자들에 대한 불심검문이 강화되죠.

 

그런데 다름 아닌 진짜 어사가 이 불심검문에 당하고 맙니다. 점입가경, 그들의 심증은 굳어져 체포를 운운하는 수준까지 나아갑니다. 이에 박래겸이 조용히 마패를 보여주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그들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죠.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스텝이 꼬여 언덕길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은, 잘 짜인 한편의 콩트 같습니다.

 

물론, 박래겸이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사의 일을 수행할 때는 본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 백성의 안타까운 상황을 몰래 지켜볼 땐 ‘정의로운 어사’가 지켜야 할 태도를 보여주었죠. 환곡제도를 악용하는 꼼수의 현장을 ‘직관’한 박래겸의 일기입니다.

 

<계속>

 

추신

 

빵꾼, 인사드립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에 이어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을 내놓았습니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은 조선 사람들의 단맛 짠맛 나는 일기를, 우리 시대의 ‘김 씨 아조씨’의 삶과 야무지게 비벼놓은 책입니다. 저 혼자 읽기엔 아까울만큼 재밌는 책이라,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암행어사라니!」에 수록된 에피소드를 살짝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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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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