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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부터 받은 AZ 백신 접종이 타이완에서 시작되었고, 6월 20일까지 4일 간 67명이 사망했다. 이날까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누계 549명인데 비하면 엄청난 사건이다. 타이완은 자체적으로 AZ 백신 73만여 회분을 이미 소비했고, 최근 일본으로부터 124만 회분을 기증받았다. 이번 사망 사고는 일본 기증 분 투여로 발생한 것이며, 이전까지는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관련된 뉴스가 현지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백신을 공여한 일본과 관련된 뉴스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와중에 미담 격의 기사가 나와 타이완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타이베이.jpg

원문 <더 스톰 미디어>

 

위 내용을 요약해보면,

 

타이베이대 산부의과 의사인 施景中은 6월 18일 집도 후 돌아가다가 수술실 밖에서 반 년 전 진료를 했던 일본 국적 산모와 남편을 보았다. 당시 태아의 심장에 문제가 있음을 진단했었다. 이 아이의 출생시간이 마침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시간이라 기억에 남았다고.

 

이날 施景中은 집도 후 백신을 맞으려는 어머니를 만나려 했는데,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나 수술실로 돌아갔다가 일본인 남편을 맞닥뜨렸다. 인사를 하다 施景中은 일본이 이번에 백신을 대만에 원조해준 데에 감사를 표시하고, 덕분에 자기 어머님이 백신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곤 타이완 정부가 일본 교민에게 이 백신을 우선 맞으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일본 남성은 손을 저으며 한 차례 인사를 하곤, '이는 일본이 타이완에 준 선물이니 우리가 먼저 맞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쪽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 교민에게 우선권을 준 거 같은데, 자기는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말에 施景中은 감동을 받았고 많은 신세를 졌다고 느꼈다.

 

이후 施景中은 타이베이대 국제회의센터에서 백신을 맞은 어머니와 만나 귀가했고, 이후 이 내용을 SNS에 남겼다.

 


 

미담 격의 이 기사에 달린 댓글은 온도차가 아주 심하다. 몇 개 소개해보면,

 

- 헛소리. 너희들이 모더나 기다리는 걸 누가 모르냐.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는데 그러면 아무도 안 맞는 AZ나 빨리 맞지 그러냐

 

- 자기들도 무서워서 안 맞는 AZ를 보내다니, 이것이 뱀의 보은이지

 

- 당연히 화이자 모더나 맞는게 좋으니까

 

- 타이난(타이완의 수도) 시장이 현지 일본인에게 먼저 맞힌다고 했었는데, 아주 좋은 방안이다

 

- 만약에 화이자였으면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 거짓부렁이 일본인은 AZ를 맞기 두려웠을 뿐. 화이자를 주고 선택하라 했으면 대번에 달려들었을 것이다. 더 이상 타이완 사람들을 속이지 마라. 분명히 지들이 안 맞으니 그제서야 타이완에 보낸 것이다.

 

- 잠시 일본에 대한 감사는 보류해야겠다. 차이잉원(타이완 총통) 정부는 일본인이 크나큰 은덕을 베풀었다는 선전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러고 나선 방사능 생선을 먹어야만 될 거야.

 

- 일본인들이 외면하는 쓰레기를 애써 타이완에 쏟아붓는구나! 다음은 방사능 식품이겠지.

 

- 당연히 안 맞지. 타향에서 죽기 싫을 테니

 

- 벌써 노인이 5, 60명 죽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 일본인들이 AZ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맞기 싫으니 남에게 밀어냈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베트남에는 타이완보다 100만 회분를 더 보냈다고 한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쓰레기를 주는 게 보은이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이다.

 

현재 800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려 있는데, 이 기사는 ‘타이완에 준 선물: 일본인은 사양했다’는 식의 내용으로 다른 매체에서도 다루고 있다.

 


 

타이완의 AZ 백신 사고와 관련해서는 여러 매체와 국뽕 채널에서 다루고 있지만, 이 기사와 댓글을 보며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다.

 

1.

 

일본에서 준 AZ 접종 후 3일 내에 50명 가량이 죽었는데, 타이완 정부와 언론은 이 원인을 명확하게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자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어느 나라나 백신 접종 후 사망한 경우를 놓고 직접적인 인과성을 인정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코로나, 방역, 백신과 관련한 신뢰감은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이은 방책들의 의도와 결과, 그 과정에서 얼마나 투명성과 진정성이 있었는가가 누적되어 일어난다. 우리나라의 방역을 성공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결과가 좋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잃지 않아서였다.

 

현재 타이완에선 백신 불안감 때문에 화이자를 목적으로 한 미국행 항공권이 동이 난 지경이며, 아직 3상 임상실험을 통과하지 못한 자체 개발 백신을 맞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사회적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동일하게 평가될 수 없다.

 

결국 타이완의 코로나 방역이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시절은 있었지만, 일반적인 정부 정책 시행 과정에서는 신뢰감을 쌓지 못했고 이것이 올해 들어 급격히 백신 방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AZ 접종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고, 타이완 역시 한국산-유럽 경유 AZ 백신을 구매, 접종했다. 이때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일본이 준 제품에 생산이든 유통이든 문제가 있는 걸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타이완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악화 때문에 이를 표면화하는 게 어려운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화시키려는 언론 기사는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생각보다 일본에 대한 불신이 높음을 댓글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이에 대응하는 일종의 ‘감성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불만을 줄일만한 묘책이 타이완 정부에겐 딱히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모더나 긴급 지원 같은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재 차이잉원 정권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언론사의 뻘짓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아직 한국보다 더한 거지 같은 기사는 보지 못해서 함부로 얘기는 못하겠다.

 

3.

 

일본은 AZ 백신에 대한 승인을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5월 21일에 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24일 혈전 문제로 접종을 보류했다. 일본이 모더나나 화이자 만으로도 접종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날로그적 시스템으로 인해 접종 속도가 느리며 예약 후 불출석자 대처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문제도 작용했다. 상대적으로 다케다제약이 주도하는 모더나만 해도 5000만 회분을 확보해 들여오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총 1억2000만 회분이나 확보 합의한 AZ의 기확보 분을 빨리 쓰지 않으면 자칫 폐기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었다.

 

즉, 여러 백신들 중에서 선택 가능한 상황, 접종 속도에 필요한 물량 확보, 유통기한 문제가 일본이 백신을 기부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의 인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단순히 ‘일본은 AZ를 맞지 않는다’는 면만 강조되면서 AZ의 불신만 가중시켰다. 이에 타이완의 백신 접종은 더욱 어려운 국면이 되고 있다.

 


 

타이완이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인 것은 봉쇄가 뚫렸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이완의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는 최고일 때 535명이었고 6월 29일 54명으로 안정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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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 비하면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청정국이라고 생각하던 나라에 확진자가 늘어날 때의 공포감은 숫자로 다 설명되진 않는다. 만약 백신을 미리 확보했더라면, 재빨리 수급 가능했다면, 정부에 신뢰감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타이완 정부는 스스로 이를 해결하지 못했고, 백신은 일본과 미국의 기증에 의존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연일 언론이 터뜨려대는 AZ 부작용 기사 때문에 불안감이 높아져가는 상황이었다. 연령별로 또 백신 종류에 따른 사망률 데이터를 내놓아봤자, 대대적인 선동에서 오는 불안감을 멈추지는 못한다. 그러나 잔여백신 예약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은 급격히 뒤바뀌었다. 백신 맞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자신의 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완도 이런 극적인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힘들다고 본다. 백신 수급 자체가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선호하는 화이자는 중국 푸싱제약이 중국 본토 및 홍콩, 마카오, 타이완까지 배급 및 판매권을 계약해버렸다.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 중국 정부가 벌인 일이라고 봐도 된다. 그래서 타이완은 TSMC와 폭스콘 회장까지 동원해 민간기업 차원에서라도 화이자를 얻어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대구시장의 경우에서 봤듯이 민간 차원에서 백신을 확보하는 것은 현재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선진국 중심의 백신 확보 경쟁과 공급 상황을 고려하면 타이완이 충분한 물량을 얻어내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것을 찾아보려 해도, 모더나는 아직 생산기지가 더 필요하고 기타 백신은 그보다도 더 생산기지가 부족하다. 이런 국면에서 ‘AZ는 있어도 안 맞는다’라는 불안까지 가중돼버린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야 ‘일본 것과 달리 한국이 생산한 AZ는 신뢰성이 입증됐으니 이걸로 수입하겠다’는 식으로 일본과 각을 세우면 참 흐뭇하며 고소하겠지만, 쿼드의 보호막이 절대 필요한 타이완이 이런 선택을 할리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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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 대만 총통

 

G7에 한국이 초청된 것은 단순히 방역 모범국이라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실히 한국으로부터 얻어내야 할 것이 있고 이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보건 분야에 국한했을 때 그것은 백신의 원활한 생산과 공급이다. 대량생산이라면 바이오공학 기술만 있으면 빠르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인도처럼 방역이 취약해 계약을 무시하고 수출물량을 자국이 소비해버리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미 미국과 EU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같은 변수가 보고되면서, 즉각적인 기술적 변용이 있어도 이를 빠르게 적용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백신 생산을 이루는 기술적 완성도가 더 중요해졌다.

 

때문에 백신의 생산기술, 생산설비, 물류 시스템 모두 고도화를 이루었으면서 국제 무역 질서를 지키는, 그러면서도 방역에서 모범국인 희귀한 사례가 지극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타이완의 사례에서 일본 AZ의 문제는 사실 사소한 것이다. 장기전이 된 코로나 형국에서 방역은 국지전이 아닌 세계전쟁이자, 약육강식의 국제전이 되었다.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쟁의 포화를 피해간 나라는 있다. 그러나 그 영향권에서 벗어난 나라는 없으며, 승전과 패전이 아니라 힘 있는 나라가 성과를 차지했다. 코로나 형국이 시작됐을 때 타이완이나 뉴질랜드는 봉쇄로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이 장기전을 이겨내려면 결국 국력이 필요하다. 보건 전문가들의 방역 방침이 다가 아니라, 한 나라의 전체 시스템을 통괄하는 정치가 확실히 국력을 모아낼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백신 다음에는 치료제 쟁탈전이 비슷한 형국으로 진행될 것이다. 우리도 현재의 성과에 취해 있다가 타이완처럼 혼란을 겪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건 그 시점에 우리가 국력을 모아 대응할 여건이 되어 있을 것인가다. 같은 보건 전문가라도 정권에 따라 활용도가 전혀 달라진다는 걸 우리는 경험해보았다. 타이완의 사례는 한국의 방역이 현 정권 최대의 시련이자 성과로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함을 가르쳐준다. 방역 성공은 전문가들의 공로일 뿐이라는 헛소리가 더 이상 유통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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