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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만이 능사가 아니다

 

매년 선수단에 강의를 할 때 첫 번째 슬라이드에 쓰는 사진이 있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는 사진이다.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계란 후라이가 되겠지만, 만약 알을 깨고 나온다면 병아리가 될지, 닭으로 성장할지, 독수리가 될지, 타조가 될지 알 수 없다. 야구선수도 똑같다. 알을 깨고 나오면 그나마 이름을 알리는 정도의 선수는 되지만, 알을 깨지 못한 선수는 KBO 선수 등록 잉크가 마르기 전에 은퇴를 하게 된다. 여기서 알은 고정관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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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처음 야구단에 입사했을 때는 지금 야구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별 다른 것이 없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때 당시만 해도 스포츠 신문과, 야구 중계하는 해설가들의 입이 전부였다.

 

‘야구 선수는 무조건 연습을 많이 해야 해’ ‘

 

‘운동선수가 쉬는 게 어딨어?’

 

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운동을 소홀히 하는 선수들을 보면 속으로 욕도 많이 했다. 그 선수의 어두운 미래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이 바뀌게 된 계기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트레이너로 근무하던 2005년 시즌 종료 후 떠난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캠프였다. 브래든턴에 있는 피츠버그 훈련지로 전지훈련을 갔었는데, 피츠버그 소속 마이너리그 트레이너를 1달간 고용해서 같이 일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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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훈련 날 감독님이 선수들 앞에서 미국인 트레이너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 트레이너가 잠깐의 동안 말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휴식(REST)’ 이었다.

 

운동선수에게 휴식을 하라니!!! 훈련을 하러 미국까지 온 선수들에게 한다는 조언이 휴식이라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트레이너가 휴식을 강조했다고 해서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할 시대는 아니었고, 그런 팀도 아니었지만, 자못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브래든턴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는 동안, 보통 밤 10-11시까지 기본으로 야간 운동을 했다. 그날 선수들은 손가락, 손바닥, 손목에 테이핑을 하고 밤 10시까지 훈련에 매진 중이었다. 그 광경을 본 다른 미국 트레이너가 나에게 한 한마디.

 

“crazy”

 

저렇게 손가락,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테이핑을 해서 어떤 좋은 메커니즘이 나오냐는 것이었다. 손에 발생하는 통증으로 스윙이나 제대로 할 수 있냐는 얘기였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테이핑 하는 선수들을 보며, 늦게까지 훈련하고 치료해주며 서로 뿌듯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한국 프로야구팀에서 하는 훈련이나 방식들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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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량과 실력 향상의 상관관계

 

흔히 사람들은 연습을 많이 하면 실력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연습량과 실력 향상의 상관관계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얘기하는 건 연습이 아무 효과가 없다가 아니다.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연습을 적게 하는 것보다 무조건 좋은지에 대한 얘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습량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 신적인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감독님이 있었다. 2000년대에 그 감독님이 맡았던 팀이 아주 좋은 성적을 거뒀다. 사람들은 대부분 연습량이 많아야 야구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10년대에는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2000년대에는 그 당시 모든 팀이 훈련량을 최대로 가져가는 분위기였다. 대부분의 감독들의 취임 인터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나같이 많은 훈련으로 팀을 바꿔가겠다는 인터뷰가 대부분이다. 난 그런 인터뷰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지금 하는 훈련보다 더 많은 양을 하겠다는 건가?’

 

8888577로 유명했던, 2000년대 최약체중의 하나였던, 암흑기의 롯데 자이언츠가 2008년 페넌트레이스 3위에 오른 걸 봤을 때,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훈련량을 많이 늘리지 않았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궁금증으로 당시 롯데 코치를 따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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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로이스터 감독이 수비코치를 불러 물었다. 펑고를 왜 그렇게 좌우로 많이 움직이게 치냐고. 그 코치는 이런저런 설명을 했는데 로이스터 감독은 바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내야수 실책의 80%는 어디서 나오나?’

 

그때 그 코치는 순간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로이스터 감독은 선수들 힘들게 펑고 치지 말고 정면 타구 연습을 잘 시키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우리나라 야구팀의 분위기는 수비 연습 시 유니폼이 더러워지지 않으면 연습을 안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땀을 흘리지 않거나 숨을 헐떡이지 않으면 훈련이 아니었던 시대였던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의 훈련 철학은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에게 야구 공부를 새로 다시 해야겠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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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량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감독의 성공신화는 왜 끝났는가. 모든 팀들이 훈련을 많이 하는 시대에 그 감독의 방법론은 최고였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등장한 젊고 새로운 감독들이 가지고 나온 새로운 접근법에서 그의 야구는 경쟁력을 급격히 잃었다.

 

2013년 넥센히어로즈가 부상하면서 휴식의 중요성, 러닝과 체력과의 상관관계,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 등이 부각되었다. 훈련량으로 성적 내겠다는 얘기는 이제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유망주의 전성기가 짧은 이유

 

메이저리그에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배리본즈라는 선수가 있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누적 연봉은 3억 9,920만 달러. 대단한 선수였다. 커리어만 보면, 배리본즈는 야구 역사상 유일한 400홈런-400도루를 넘어 500-500, 700-500을 달성한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이었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는 역대 최고의 홈런, OPS 타자. 1900년대까지 봐도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에 한 명이었다.

 

이 두 선수는 공통점 있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여 커리어에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는 것이다. 약물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왜, 스테로이드를 했을까이다.

 

최종적인 목적은 야구를 잘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여 힘을 기르는데 집중하였다. 야구를 잘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 힘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힘보다는 연습량에 방점이 찍혀있다.

 

스테로이드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야구에 있어서 힘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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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 시절 야구의 신으로 불리다가 프로에 와서 존재감 없이 은퇴하거나 대학교 진학 후 프로팀에 지명받지 못하는 선수들, 의외로 많다. 그 사라진 유망주들과 같이 야구를 했던 선수들에게 종종 묻는다.

 

‘그 친구는 중, 고등학교 때 뭐가 좋았어?’

 

대부분은 힘이 남달랐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렇다면 그 선수들이 진학을 하거나 나이가 들수록 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릴 때 경쟁력있던 힘이, 성장할수록 경쟁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큰 편에 속했던 키가, 대학이나 프로에서는 평범해지거나, 어릴 때 남달리 엄청났던 힘이 이후에는 평범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야수의 경우엔 더 크게 적용된다.

 

야구는 힘이다

 

타자가 좋은 타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안타를 많이 치거나 홈런을 많이 쳐야 한다. 투수가 던지는 150Km에 가까운 공을 쳐서 타자가 원하는 위치, 즉 수비수가 없는 곳에 의도하여 보낼 수는 없다. 단순히 공을 맞히거나 때릴 뿐이다. 수비수가 없는 빈 곳에 정확하게 보내기 힘들다. 그럼 아웃되지 않고 안타를 많이 생산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

 

바로 타구스피드이다. (물론 왼손 타자에 빠른 발을 가지고 있으면 내야 안타를 많이 칠 수 있다.) 배트 스피드를 빠르게 하거나 방망이 무게가 무거운 걸 써야 한다. 이 두 가지와 밀접하게 관계된 것이 바로 힘이다. 선수가 힘이 좋아 배트 스피드가 빠르거나 배트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방망이를 무거운 걸 쓰면 타구스피드가 빨라지고, 타구스피드가 빨라지면 안타가 많이 나온다.

 

이 힘이 기술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이 공을 컨택하는 능력이 갑자기 좋아지긴 힘들다. 후천적으로 타격을 잘하게 만드는 방법은 힘을 키우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야구팀 대부분은 타격 훈련량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훈련을 비효율적으로 많이 하면 선수들은 지치고 힘은 떨어진다. 힘이 떨어지면 타구스피드가 떨어지고 안타는 덜 생산된다. 안타가 저조해서 연습량을 늘리고, 다시 힘은 떨어지고.... 악순환이다. 이것을 끊어 내는 게 중요하다. 게임 후 한밤중에 특타를 한다고 그 다음날 결과가 좋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다.

 

만약 훈련량이 성적과 상관관계가 크다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적이 좋아질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면 배트 스피드가 떨어진다고 구단 및 지도자들에게 버림받는 게 현실 아닌가. 만약 훈련량이 야구 기술을 엄청나게 발전시킨다면,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도 역시 그렇지 않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훈련을 적게 하는 이유는, 몸에 힘이 떨어지지 않게 지치지 않게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훈련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면 ‘선수가 절실함이 없다’‘저러니까 야구를 못한다’등과 같은 말들로 선수를 금방 평가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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