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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에 리뷰 노예로 납치된 불가사리. 거액의 제작비로 복수하겠다 다짐했지만, 딴지가 던져준 주제는 고작 믹스 커피. 화가 난 불가사리는 딴지를 습격하여 ‘딴지 커피 8대 천왕’과 함께 믹스커피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다. 믹스커피 6잔을 거푸 마셨지만 아직 7잔씩 더 먹여야 하는데... 과연 불가사리는 ‘인스턴트 원두커피 스틱’ 리뷰를 성공하고 산 채로 딴지 사옥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불가사리의 소비 대모험, 기대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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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커피와 아메리카노에 관한 고찰

 

분명 이번 주제는, ‘커피믹스’다. 인스턴트 커피를, 프림도 설탕도 ‘믹스’하지 않고 스틱 포장한 블랙커피를, 이번 주제 안에서 다루는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든다.

 

언어적으로 볼 때 그 말은 타당하다. 실제적 의미로서는 타당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인스턴트 커피’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많은 사람들은 ‘커피 전문점의 커피가 아닌, 스스로 종이컵에 타 마시는 커피’를, 특히 ‘스틱에 1회용 씩 담겨 있는 커피’를, 그 내용물과 상관없이 ‘믹스커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설령 믹스된 사실이 없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에서 ‘카누 믹스커피’라고 검색해도 틀린 단어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틱형 카누를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마케팅의 승리이다. 90년대 후반 ‘원두커피’의 유행 이래로, 특히 2000년대 스타벅스 등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하는 ‘커피 전문점(카페)’의 등장 이후로 인스턴트 커피의 인기는 꾸준히 감소되어 왔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설탕과 프림 없이 ‘블랙 커피’를 마시는 자가 ‘커피를 아는 사람’이라고 취급받았으나, 어느 시점부터 인스턴트 커피란 설탕, 프림 커피에 사용하는 커피일 뿐 블랙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는 취급을 받았다. ‘블랙 커피’라는 말 자체를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아메리카노’라는 표현이 대체한 것만 보아도 이 변화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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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8월 조선일보 기사. "흔히 다방에 가보면 크림이나 설탕을 치지 않은 블랙커피만을 드는 진짜 커피 애호가"라는 말이 나온다. 다만 삽화를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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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등장한 개그 듀오 블랙커피

 

 

이렇듯 인스턴트 커피의 시대가 끝나고, 아메리카노의 시대가 와부렀다. 어르신들이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설탕 프림 없냐고 묻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어르신들도 ‘아메리카노 따땃한 거~’를 시키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즉,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담백한 ‘블랙 커피’에 대한 선호는 과거보다 더욱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심의 4~5천 원이 훌쩍 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인스턴트 커피’대신 '커피믹스’만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블랙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입맛에 맞지 않는 달달한 커피믹스를 마시거나 도심의 카페로 가야 했다.

 

이 시장을 노려 등장한 것이 ‘인스턴트 블랙커피’이다. 스틱에 1회분의 인스턴트 커피가 담긴 블랙커피는 이미 1980년대 등장했었지만, 당시에는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2005년 경 일본 Blendy 사의 ‘건강을 위한’ 인스턴트 커피 제품을 비롯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스타벅스 비아가 진출한 2009년 이후 이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인스턴트 블랙커피의 문제는 하나였다. 이미 시장에서 ‘힙하지 않은 것’, ‘싸구려인 것’, ‘커피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시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 단순히 스틱에 넣는다고 이미지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스타벅스가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파는 것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에서 만든 것이기에 합리화되었다. 그러나 동서식품을 비롯한 인스턴트 커피 회사들은, 어떤 방식을 사용해야 하나?

 

여기서 두 가지 방식이 갈린다. 스타벅스 비아를 참고한 많은 업체들은 자사의 브랜드를 버리고, 유명 커피전문점의 이름을 붙여 판매했다. 외국에서도 스타벅스뿐 아니라 일리 등 많은 업체 이름의 인스턴트 스틱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커피빈, 할리스, 이디야, 카페베네, 투썸플레이스, 폴바셋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카페 이름으로 인스턴트 커피 스틱이 나왔다. 지난 시간 이야기했던 쿠팡PB ‘곰곰 모카골드’를 생산하는 ‘가배온’이라는 회사도 폴바셋, 할리스 인스턴트 커피 스틱을 생산한다.

 

업계 1위인 동서식품은 비슷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자사의 성공과 함께해 온 브랜드인 ‘맥심’을 버리되, 다른 카페 이름을 쓰지는 않고, ‘카누’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한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인스턴트 커피’등의 말을 사용하지 않고, ‘아메리카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철저히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광고했고, 가로수길, 부산 광복로 등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카누로 만든 라떼 등을 만들어 뿌렸다. 광고에서는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는 드립 포트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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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인스턴트 원두커피 스틱’의 시장이 열렸다. 이 시장은 인스턴트 커피만 만드는 기술이 있다면 진출할 수 있으며 믹스커피보다 만들기가 더 쉬운 시장이다.

 

이에, 수많은 기업들이 진출하여 승부를 가리는 중이다.

 

인스턴트 커피 스틱 블라인드 테스트의 결과

 

인스턴트 커피 스틱 블라인드 테스트의 대상은 아래와 같다. 과연 인스턴트 커피와 카페의 커피를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도 함께 블라인드 테스트 대상으로 삼았다. 스타벅스, 커피빈, 이디야 외에도 할리스, 카페베네, 폴바셋 등 많은 브랜드가 카페 브랜드를 내세운 인스턴트 커피 스틱을 판매하고 있으나, 판매량이 그나마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 스타벅스, 커피빈, 이디야를 리뷰 대상으로 했다.

 

 

동서 카누 마일드 로스트 미니

 

남양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아메리카노

 

스타벅스 비아 레디브루 하우스 블렌드

 

네스카페 수프리모 아메리카노

 

커피빈 캡틴 아메리카노

 

이디야 비니스트 리치블렌드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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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총 일곱 가지 종류의 커피를 블라인드 테스트하고, 선호하는 맛을 적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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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한 잔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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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점수를 매겼는지 상세한 점수표는 아래와 같다. 믹스커피의 경우에는 향 점수를 따로 넣지 않았으나, 인스턴트 커피의 경우에는 향 점수를 넣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맛 점수 순서나, 향 점수 순서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누'는 총점과 향에서 2등이지만 맛에서 1등이라는 점만 다르다.

 

<향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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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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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순서대로 리뷰한다.

 

 

1위. 남양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아메리카노 마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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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의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아메리카노 마일드이다. 마일드가 아닌 ‘다크’ 버전도 있는데 이것은 좀 더 카누와 비슷한 맛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무려 강동원이 광고하는 제품임에도, 카제인 나트륨 때와 같은 노이즈 마케팅을 하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회사에서 ‘카누’를 종종 마시는 불가사리도 해당 제품은 지나가면서 한 번쯤 본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이 제품이 홍보에서 강조하는 것은 ‘빠르게 고온, 고압에서 뽑아낸 커피가 아니라, 슬로 9기압으로 천천히 뽑아낸 에스프레소’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9기압인지 다른 기압인지 구분할 정도의 혀를 가진 사람이 과연 인스턴트 스틱을 마실까? 전혀 호소력이 없는 홍보 방식이다.

 

그런데, 딴지 8대 천왕과 불가사리 모두 해당 제품을 1등으로 꼽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밸런스가 가장 좋고, 인스턴트 커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커피 좋아하는 젊은 사람이 하는 동네 카페의 1800원짜리 아메리카노> 같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스턴트 커피에 비하여 산미가 상당한데, 후술할 ‘네스카페 수프리모’와 같이 산미가 불쾌할 정도로 튀는 것이 아니라 산미와 구수한 맛, 쓴맛이 꽤 괜찮은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산미가 있으므로 아이스로 먹을 때도 괜찮은 맛일 것 같다.

 

원산지를 보니 콜롬비아산 42%, 케냐산 29%로 되어 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비율은 확실치 않으나, 나머지 29%가 아닐까 싶다. 동네 카페의 에스프레소 블렌딩으로 종종 사용하는 비율을 그대로 따른 것 같다. 저 블렌딩의 커피는 진하게 마시는 것이 더 맛있고, 아이스에도 사용 가능한 블렌딩이다.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마일드 역시 비슷한 속성이 느껴졌다. 8대 천왕의 커멘트도, 대부분 신 맛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지식편 기사에서 남양의 ‘카제인나트륨 홍보’에 대해 꽤나 깠는데, 막상 리뷰편 두 편에서 모두 남양이 1위를 차지하니 좀 민망하다. 때로는 김구라처럼 어그로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을 해서 떴더라도 막상 실력도 출중했던 연예인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쨌든 맛 부분,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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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아하는 젊은 사람이 하는 동네 카페 아메리카노 맛. 산미와 밸런스가 인상적이고 인스턴트 같지 않음."

 

좋은 코멘트

 

“산미 강하나 원두 느낌 있음. 아이스 추천(바)”

 

“약하지만 기대한 향, 전체로 맛 밸런스 좋음(장)”

 

“시다(근)” - 점수와 함께 보면, 이분은 ‘시다’는 좋다, ‘쓰다’는 나쁘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나쁜 코멘트

 

“엑, 신맛?(문)”

 

2위. 동서 카누 마일드 로스트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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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믹스커피 편 뿐 아니라 이번 인스턴트 커피 편의 주인공이기도 한 동서식품의 ‘카누’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인스턴트 커피 스틱 시장 자체를 개척한 제품이다. ‘카누’의 컨셉, 홍보 방식, 광고 내용 등은 한국 광고계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홍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해당 광고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라는 ‘구닥다리, 저급’의 이미지는 ‘편하게 즐기는 아메리카노’로 바뀌어, 줄어드는 추세인 믹스커피의 자리를 채우고 있다.

 

카누는 ‘마일드 로스트’와 ‘다크 로스트’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번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마일드 로스트’를 사용했음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쓴맛이 많이 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맛과 향에서 모두 쓴 강배전 원두가 느껴진다. ‘마일드 로스트’가 이러할진대 ‘다크 로스트’는 어떨지 조금 무서워질 지경이다. 전체적으로 오리지널 ‘맥심’에 비해서도 산미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쌉쌀한 맛과 구수한 맛이 강조되어 있다. 대놓고 ‘스타벅스’같은 강배전 원두를 사용한 커피와 비슷한 맛인데, 밸런스가 꽤 괜찮은 편이다.

 

원두를 보면, 콜롬비아산 50.7%, 과테말라산 29.6%, 에티오피아산 19.7%로 되어 있다.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비율은 역시 알 수 없고,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블렌딩은 아니지만, ‘다비도프’의 블렌드(브라질 + 과테말라 + 에티오피아)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최대한 고급스러운 맛을 구현하려 한 의도가 느껴지는 블렌딩이다.

 

인스턴트 커피는 주로 식사 후에 입을 씻어 주는, 과거 ‘숭늉’이 했던 역할을 대신 해 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미가 있는 것보다 ‘카누’의 방향성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번 블라인드 테스트는 저녁을 먹기 전 공복에 가까운 시간에, 이미 믹스커피 5잔씩을 먹은 사람들이, 6잔의 인스턴트 커피를 번갈아 마시면서 테스트했기에 일반적인 환경과 다를 수 있다. 어쨌든, 식후에 진하게 마실 경우 개운하게 입을 씻어 주는 역할을, 연하게 마시면 ‘숭늉’과 같은 약간의 탄 맛과 구수한 맛이 돋보이는 역할을 하기에는 문제 없어 보인다. 물론 ‘커피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맛은 아닌데, 애초에 ‘커피 마니아’들이 인스턴트 스틱 커피의 주된 소비자는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나쁜 포인트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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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가 유행시키기 전에도 한국인들이 좋아하던(‘마니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쓴 맛과 구수한 맛이 느껴지는 강배전 커피. 재미는 없지만 식후 개운하게 마시기에는 좋다."

 

 

좋은 코멘트

 

“산미 낮고 향이나 맛이 거슬리는 것이 없음(바)”

 

“쓴데 자꾸 들어감. 한방약 맛 조금 남(문)”

 

“계속 먹게됨(강)”

 

“쓴 향이 좋음, 보편적으로 기대한 맛(장)”

 

 

나쁜 코멘트

 

“쓰다(근)”

 

3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어느 정도 식어서 비슷한 온도에서 마실 경우, 믹스 커피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다. 중간 정도인 점수가 그것을 보여 준다. 다만 원래부터 스타벅스 원두 마니아라고 주장하던 죽돌 편집장 같은 경우, 여기에 ‘압도적으로 좋다’등의 표현을 했는데, 그는 외형상 보이는 것과 달리 지조 있는 맛잘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불가사리의 입에는, 아무래도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은 것이다 보니 인스턴트 커피 입자가 덜 풀린 것 같은 느낌이 없고 물 맛이 나서 입에서 부드럽게 느껴졌다. 다만 스타벅스의 특성상 산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탄 냄새와 쓴 맛이 강조되어 있었는데, ‘카누’보다도 복합적인 맛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다만 역시 밸런스는 좋다고 느꼈다.

 

실제 딴지 8대천왕의 평도 거의 비슷했다. 다른 인스턴트 커피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긴 한데, 그것이 꼭 좋은 포인트인지는 알 수 없다는 느낌으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었다. 쓴 맛이 튄다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했지만, 그 쓴 향과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오래된 원두나 약처럼 느껴져 싫다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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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만 인스턴트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맛. 테이크아웃보다 인스턴트가 나을 수도?"

 

좋은 코멘트

 

“압도적으로 좋다(죽)”

 

“부드러움(문)”

 

“쓴 향이 좋음, 보편적으로 기대한 맛(장)”

 

나쁜 코멘트

 

“오래된 원두 느낌. 향이 나쁨(바)”

 

“쓴 맛이 끝에 남음(강)”

 

“쓰다(근)”

 

4위. 네스카페 수프리모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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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강자, 다국적 기업의 위용, 세계를 누비는 인스턴트 커피인 네스카페 수프리모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믹스커피, 인스턴트 커피 모두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과거 20% 정도에서 유지되었고, 2018년만 해도 7% 정도 점유율이던 네스카페는, 2020년 기준 시장점유율이 1.7%밖에 되지 않는다. 거의 참패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네슬레는 가정용 캡슐 에스프레소인 ‘네스프레소’, 카페인 ‘블루 보틀’등에 집중하느라 주력상품이던 인스턴트 커피에 제대로 신경을 못 쓰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다만 캡슐 부분은 네슬레의 100% 자회사인 네슬레코리아(주)가, 인스턴트 부분은 롯데네슬레코리아(주)가 담당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별개의 기업에서 생산하고 있기는 하다.

 

네슬레(Nestlé 또는 Nestle)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면, 1866년 설립된 이후 식품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기업이다. 2021. 2. 23.기준 세계 시총 26위이고, 인스턴트 커피인 ‘네스카페’와 ‘테이스터스 초이스’외에도 네스프레소, 네스퀵과 마일로, 블루보틀 카페, 동남아 인스턴트 음식 및 소스의 기본인 Maggi, 킷캣 등의 스낵, 애완동물 식품(퓨리나)와 분유, 생수까지 수많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고, 카카오 플랜테이션을 직접 운영하는 등 식품업의 최강자이다. ‘지식편’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2차 대전 이후 ‘맥스웰하우스 커피’와 함께 밀수 커피계의 양대산맥을 차지했던 커피가 ‘네스카페’ 또는 ‘테이스터스 초이스’였다.

 

그런데 어쨌든 두산과 합작 회사로 운영되던 1996년까지 콩라인은 유지했던 네슬레의 인스턴트 커피는 한국네슬레와 합병되어 100% 네슬레의 자회사가 된 시점에 점점 시장 점유율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여러 시도들은 죄다 나쁜 결과로 돌아왔다. 특히 그나마 고급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테이스터스 초이스’ 브랜드를 정리하고 ‘네스카페’로 일원화한 것은 패착으로 평가받는다. 기존에 ‘맥심’이 고급의 이미지, ‘맥스웰하우스’가 좀 더 싼 이미지였던 것처럼, 싼 이미지였던 ‘네스카페’로 브랜드를 통합하자 고급의 이미지조차 사라져버린 것이다.

 

현재 맛본 ‘네스카페 슈프리모’는, 산미가 너무 튀어서 균형이 잘 맞지 않고, 산미에 맞는 향이 많이 나지만 그닥 좋은 느낌을 주지도 않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산미를 선호하는 불가사리와 같은 사람에게조차, 좀 더 밸런스가 좋은 루카스나인이 더 나았지, 마치 스뎅 숟가락을 혀에 댔을 때 같은 거북한 신맛이 튀는 네스카페는 그닥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고집 센 중년 남자가 운영하는, 제대로 못 볶아서 나는 밸런스 없는 산미 커피가 맛있는 것이고 산미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너희가 불쌍하다고 외치는 카페에서 나오는 커피 맛 같다.

 

근래 네스카페 수프리모는 에티오피아산 프리미엄 커피빈인 ‘골드빈’을 사용하고, 원두가루를 골드빈 안에 담아 얼리는 ‘골드락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골드’를 강조한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일반인으로서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전혀 공감되지 않는 마케팅 포인트이다. 부디 ‘한국인의 입맛 취향저격’을 노리지 말고, 차라리 네스카페의 전통을 살리는 방향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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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 유쾌하지 않다. 고집 센 사람이 운영하는 동네 카페 드립커피의 맛. 그나마 아이스가 나을 듯."

 

좋은 코멘트

 

“시다(근)”

 

나쁜 코멘트

 

“원두 풍미는 존재하나, 원두 선도가 낮은 느낌(바)”

 

“향이 나긴 하나 좋은 향이 아님(임)”

 

“산..미?(문)”

 

“탄 맛이 난다(강)”

 

“약하지만 기대한 향, 맛 없음(장)”

 

5위. 스타벅스 비아 레디브루 하우스 블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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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커피계의 고급화를 이끌었던 ‘스타벅스 비아’이다. 스타벅스 비아도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원두 종류만큼 많은 종류가 있어서 한 가지 맛만 가지고 일반화하는 데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우선은 이름대로 가장 대표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하우스 블렌드’를 골랐다.

 

그런데 어떻게 보아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의 맛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배전한, 구수하고 쓴 맛을 낸다는 방향성은 알겠는데, 원두의 맛이 거의 다 죽어버린 수준이라 그다지 맛있지 않다. 강배전 - 구수하고 쓴 맛이라는 같은 방향성을 가진 ‘카누’와 비교하더라도, 고급스러운 맛도 아니고 깊이감도 없이 좀 더 쓸 뿐이다. 게다가 묘한 향까지 나는데, 오래된 원두에서 나는 시큼털털한 향에 가깝다. 스타벅스 커피는 오래된 원두를 사용해도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장점이었는데, 비아 스틱은 이 장점조차 없다. ‘8대 천왕’ 역시 이 커피에는 좋지 않은 평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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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디테일이 매우 떨어진다. 손으로도 쉽게 뜯어지는 봉투를 사용한 다른 제품들과 달리, 유일하게 스틱이 잘 뜯기지 않는다. 커피의 질감도 그래뉼 재질(알이 굵은)인 다른 커피들과 달리, 매우 가는 상태라 뜯어놓고 조금만 있어도 습기를 흡수하여 가루끼리 떡진다.

 

물론 영 못 먹을 맛까지는 아니다. 물을 많이 타면 구수하다는 느낌으로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와의 차별점’도 있긴 하다. 맛있는 방향의 차별점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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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에 비해 맛없고, 불편하다."

 

좋은 코멘트

 

“구수한 향, 다크(강)”

 

나쁜 코멘트

 

“쓴 맛 강함(바)”

 

“특별히 맛 없었다. 진짜 맛 없다!(죽)”

 

“탄내(문)”

 

“이게 무슨 향? 맛없음(장)”

 

“쓰다(근)”

 

6위. 이디야 비니스트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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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야는 2002년 창업한 이후, 적당히 부담 없는 가격에 나쁘지 않은 카페 경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현재까지 꽤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카페이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카페베네나 엔젤리너스처럼 ‘으악 시발 이게 뭐야’라고 하면서 커피를 버렸던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 적도 없는 곳이다. ‘이디야’라는 말은 암하라어(에티오피아 말)로 ‘대륙의 황제’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딱히 에티오피아 원두를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고 대충 아프리카스러운 말을 택한 것 같다.

 

이디야는 생각보다 많은 도전을 하는 편인데, 특수 운영하는 매장인 ‘이디야 커피 랩’도 그러하고, 다른 곳에서 살짝만 인기있다 싶으면 나오는 메뉴들도 그렇다.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에서도 도전을 했다고 평가한다. (주)가배온(쿠팡 PB 커피믹스를 만든 회사)같은 경험 많은 중소기업에 OEM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디야 드림팩토리’라는 회사를 만들어 여기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도전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나?

 

안타깝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커피의 맛은, 80년대 마셨던 ‘맥심’도 아닌 ‘맥스웰 하우스’ 커피 맛에 가깝다. ‘오리지널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오리지널 인스턴트’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볶은 커피를 10%나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대체 어떤 좋은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향은 상대적으로 그럴듯한데, 입에 커피를 넣으면 과거 저급 인스턴트 커피에서 나는, 어딘가 쓰레기 냄새 같은 냄새가 난다. 이것은 아마 인스턴트 커피 생산 경험이 적어서일지 모르겠다. ‘8대 천왕’은 이에 대해 ‘한약 향’, ‘간장향’등으로 평가했다.

 

맛 부분도 ‘8대 천왕’이 최악으로 평가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쓴 맛도 신 맛도 많이 나는데,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이디야 보다는 관리가 잘되지 않은 카페베네 커피와 비슷한 느낌이다. 기술의 문제인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쓴 맛임에도 개운하지 않은 점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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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문제인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가?"

 

좋은 코멘트

 

없음

 

나쁜 코멘트

 

“구수한 향은 있으나 간장향 신맛(바)”

 

“한약 그 자체(문)”

 

“한약맛, 특이하다(강)”

 

“커피보단 옥수수등 곡물차향, 맛없음(장)”

 

“쓰다(근)”

 

7위. 커피빈 캡틴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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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테스트의 최하위, 커피빈 캡틴 아메리카노이다. 원래 ‘커피빈 앤 티리프’라는 회사는 캘리포니아에서 1963년 창업한 회사로, 스타벅스처럼 큰 기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캘리포니아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기업이다. 미국에서는 커피만큼이나 ‘차’ 또는 차 용품을 파는 곳이었던 기억이다. 미국에서는 로컬 브랜드에 가까운데, 과거 한국에서는 HOT가 스타벅스라면 젝키 정도의 역할을 했고, 전체 점포 중 절반 이상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그러다 콘센트가 없다거나 자리가 불편하다거나 와이파이가 없는 주제에 휴대폰도 잘 안 터진다거나 하는 사소한 이유 등이 겹치면서 인기가 떨어져 언젠가부터는 매장을 보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곳이기도 하다.

 

커피빈의 인스턴트 커피는 ‘비아’와 달리 본고장 커피빈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주)커피빈코리아에서 OEM을 주어 생산하는 물건이다. ‘커피빈 캡틴 아메리카노’를 생산하는 회사는 1969년 창업한 (주)희창유업이다. 잘 모르는 회사라고? 이 회사의 대표 제품은 ‘프리마’의 경쟁상대였던 ‘크리마’이다. 대부분의 자판기에 들어갔던 프림이라 생각해도 된다. 즉 이 회사는, ‘프림’이 주력인 회사이고, 프림의 장점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저가인 커피믹스도 생산하는 회사이다. 커피믹스 생산을 위해 인스턴트 커피도 당연히 생산하고 있으나, 주력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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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이 제품의 맛은 80년대 저가형 인스턴트 맛이다. 7위인 ‘이디야’와 비교하자면 좀 더 클래식하다. 이디야가 그나마 그럴싸한 향이 난다면, 이 제품에서는 정말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다. ‘8대 천왕’역시 향에서 최악으로 꼽았다. 그러나 맛은, 아마도 믹스로 만들어 마신다면 무난할 것 같은, 저가형 인스턴트 커피 같은 맛이 난다. ‘8대 천왕’이 이디야보다 맛에서는 조금 앞선다고 평가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점이 무난한 과거 인스턴트 커피 같지만, 장점이 딱히 보이지 않고, 블랙커피로 마시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느낌이다.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향도 맛도 밍숭맹숭하고 인스턴트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이 나는 점에서 사 마실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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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저가형 인스턴트 커피의 맛을 오늘에 되살려"

 

좋은 코멘트

 

“목넘김 좋다(문)”

 

“무난한 향, 신맛의 밸런스가 좋다(장)”

 

“시다, 부드러움(근)”

 

나쁜 코멘트

 

“간장젓갈냄새(바)”

 

“밍밍하다(강)”

 

드디어, 15잔의 커피를 마셨다. 누구도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잉여로운 작업을 마쳤다. 이렇게, 우리는 대한민국 인스턴트 커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엄청난 시도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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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끝낸 죽돌 편집장과 불가사리의 모습

 

모두 다 하얗게 불태웠다. 과도한 카페인에 흥분한 모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고, 모씨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으며, 다른 누군가는 불가사리에게 자녀교육에 대해 물었다가(자녀를 불가사리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괜히 2시간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TMT를 당했다는 후문이 들려오지만, 어디까지나 우리만의 비밀로 하도록 하자.

 

의문의 편지

 

그런데, 모든 리뷰를 마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온 불가사리에게, 의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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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주소만이 적혀 있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초대장에 적혀진 주소로 향했다. 그 곳은, 간판도 없이 그림만 하나 붙어 있는, 어딘가 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성... 아니 카페였다. 불가사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앞치마를 입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바리스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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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자하니, 아마추어들이, 커피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다고 하더군요.”

 

“아니.. 그걸 어떻게? 그렇지만 바리스타도 있었고, 아마추어가 아니라구요”

 

“8대 천왕은, 우리 앞에서는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아니.. 8대 천왕에 대해서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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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어쨌든, 결과를 인정할 수 없어요. 우리 전. 문. 가. 들이, 제대로 상대해 주도록 하죠.”

 

“아니, 전. 문. 가. 라니 왜 굳이 점을 찍으면서...”

 

“지금 시작합니다. 우리 전. 문. 가. 들의 블라인드 테스트.”

 

“아니, 갑자기...”

 

그렇게, ‘딴지 커피 8대천왕’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커피 관련 현업에 종사하는, 맛에 있어서 최고를 자부하는 전문가들에 의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과연 결과는 어떠할 것인가? 불가사리는, 전. 문. 가. 들의 성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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