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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탱크를 막지 못한 이유

 

6.25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은 정말로 북한의 전차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만약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뭐였을까? 그리고 막상 전쟁이 터졌을 때 한반도 땅에서 전차는 예상과 달리 제법 활약을 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솔직한’ 답변이 하나 있다. 미 극동사령부의 1951년 보고서가 그것이다. 당시 보고서는 상반된 입장을 동시 실었는데,

 

① “한반도의 지형에서 전차를 넓은 정면에서 대량 운용하는 것이 제한된다.”

 

② “전차가 여러 상황에서 다목적으로 유용하게 운용되었다.”

 

전쟁 발발 전부터 미군이 주목했던 건 한반도 특유의 ‘지형’이었다. 당시 한반도 도로 사정이 빈약해 어지간한 도로는 폭 4~5미터 미만, 그나마 비포장도로가 많았다. 이런 도로에서는 전차 2대가 나란히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산악지형을 깔고 시작했다. 그나마 좀 탁 트였다 싶으면 논밭이었다. 이런 농경지의 문제는 도로를 벗어나 전차부대를 전개하고 싶어도 도로 좌우가 푹 꺼져 있다는 거다. 이걸 무시하고 논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가라앉는 거다. 뭔가 좀 땅이 단단하고, 시야가 트였다 하면 도시가 나왔고, 전차전을 할 만큼 시계가 확보됐다 치면 좌우 기동로가 제한됐다(시골 농로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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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과 기동의 제한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보통의 전차들은 일렬로 나란히 열을 지어 전진하는 게 보통이다. 이러다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전차를 좌우로 넓게 퍼뜨려 산개대형에서 교전을 벌이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문제는 한국 지형에서는 이게 어렵다는 거다. 좌우로 넓게 퍼뜨릴 만한 지형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이러다 보니 일렬로 가는 것도 일이었다.

 

전차 간의 간격을 50미터로 유지한다면 전차 20대를 한 개 종대로 했을 경우 행군장경이 1킬로미터. 40대면 2킬로미터의 행군 대형이 만들어진다. 이건 순수하게 전차만 따진 거다. 여기에 각종 장비와 장갑차, 화포 등을 더하면 그 길이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걸 2열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지간한 도로 폭이 4~5미터인 상황이라. 전차 두 대가 어깨를 맞대가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6.25 전쟁 당시 북한의 군사고문이었던 라주바예프가 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군은 개전 초반 포천 축선에 전차, 자주포, 야포, 견인용 차량을 너무 많이 투입해 교통 체증이 발생해 공격이 지연됐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교통 체증이 유독 북한만의 문제라고 단정할 순 없다. 독일군의 서부 전선을 결정지은 ‘낫질 작전’ 당시에도 교통 체증은 유명했다. 좁은 길에 많은 기갑 장비들이 몰리면 트래픽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미군 군사고문들은 한국 지형에선 전차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됐고, 전차 대신 매복 공격에 적당한 2.36인치 M9 바주카포와 57미리 대전차포를 건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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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형에서는 대규모 전차 기동이 힘들다. 더구나 매복 공격에 유리한 지형이다. 즉, 대전차 화기만 충분하다면 적의 전차를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이런 결론을 내린 미 군사고문단은 한국군에게 막대한(?!) 대전차 화기를 건네게 된다. 이렇게 해서 각 보병연대마다 대전차포중대를 두어 여기에 57밀리 대전차포 6문을 배치했고(총 115문을 보유했다), 각 소총 중대에는 2.36인지 대전차 로켓포, 일명 ‘바주카포’가 6문씩 배치했다( 총 1,958문이 배치됐다). 이러한 편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의 편제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한국군과 미군은 나름 전차에 대한 대비를 했었다.”

 

라는 거다. 그런데, 어째서 북한군 전차에 속절없이 밀렸던 걸까? 간단하다. 이 대전차 화기가 먹히지 않았던 거다. 여기서 이해가 안 가는 게, 불과 5년 전에 있었던 2차 대전 당시 이 대전차 화기는 나름 쏠쏠한 활약을 했고, 미군도 만족했던 상황이다.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그 성능이 떨어진 걸까? 상대하는 북한군 T-34도 2차대전 때 사용하던 전차가 아닌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탄약의 한계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대전차 화기였던 57밀리 대전차포는 그 탄약이 문제였다. 1950년 1월 1일 기준 보유 탄약량 44,776발 중 고폭탄만 36,192발, 피모철갑탄(APC-T)은 불과 8,352발이었다. 한마디로 국군이 가진 57미리 포탄은 80%가 전차에 효과가 없는 대인용 포탄이었다는 거다.

 

“포 중대는 57mm 대전차포가 있었는데 그것은 더 형편없어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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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M9 바주카포의 위력 부족

 

T-34 전차의 차체 전면 상부 장갑은 45밀리미터였다. M9 바주카포의 관통 능력은 최대 4인치. 102미리에 달했다. 이 정도면 T-34를 너끈히 관통해야 정상이다. 문제는 T-34가 경사 장갑을 채택했다는 거다. 전면 장갑은 60도나 기울어져 있어서 실질 장갑은 너끈히 100미리에 육박했고, 이 기울기 때문에 도탄. 즉, 탄을 튕겨낼 수도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서부전선에서 독일군 전차를 상대했는데, 5호 전차 판터나 6호 쾨니히스 티거 등등 경사 장갑을 채택한 전차도 있었지만, 독일 전차의 전통적인 설계는 수직 장갑이었다.

 

당시 미군은 한국군의 운용 미숙으로 바주카포의 실력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 제24사단 제34연대 소속 케네스 섀드릭(Kenneth R. Shadrick) 이병이 M9 바주카포로 북한군 전차를 공격했지만, 그 직후 바로 전차가 발사한 기관총탄에 맞아 전사하면서부터 자신들의 바주카포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케네스 섀드릭 이병은 1950년 7월 5일 죽미령 전투에 투입 돼. 미군 최초의 전사자로 기록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군은 부랴부랴 자신들의 M9 바주카포에 대한 실험에 들어가게 된다. 1950년 8월 24일 미군은 두 대의 T-34 전차에다가 M9 바주카포를 쏴 가며 실험을 했던 거다. 결과는 참담했다. M9 바주카포로는 차체 하부나 궤도나 차체 상부 사이, 차체 후부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었으나 그 나머지 부분을 공격했다간 아무 효과를 거둘 수 없었다는 거다.

 

동시에 진행된 것이 3.5인치 M20 슈퍼 바주카에 대한 실험이었다.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3.5인치 바주카포는 T-34를 모든 방향에서 완벽하게 관통할 수 있음.”

 

미군은 부랴부랴 M20 슈퍼 바주카를 한국으로 공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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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M20 수퍼 바주카를 6.25 때문에 개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미 2차대전 중인 1944년에 개발이 된 상태였다. 문제는 전쟁이 일찍 끝나면서 잠깐 잊혔던 거다. 이 수퍼 바주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게 한국전쟁이었고, 한국군은 이 슈퍼 바주카의 성능에 반해서 한국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알뜰살뜰 잘 사용했고, 1970년대에는 국산화까지 해서 계속 사용했다. 나중엔 예비군 무기고까지 가서는 혹시 모를 전쟁에 대비해 그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나갔다)

 

긴급 공수된 슈퍼 바주카는 전선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7월 20일 전투에 등장한 M20은 8대의 북한 전차를 격파하게 된다. 뒤이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다. 미국은 낙동강 방어전투 때까지 900문의 슈퍼 바주카를 한국으로 공수했다.

 

한국군에게 최초로 보급된 건 1950년 8월, 국군 제1사단에게 첫 지급된다.

 

8월 10일이었을까? 그날도 먼지를 뒤집어쓰며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대구 보급소를 다녀와 몸을 씻고 있을 때 김정열 대위가 다가왔다. “김 준위 급해서 그러니 2시까지 사단 G-3에 가서 신무기 교육을 좀 받고 오게, 돌아오면 바로 교대해주겠네.” 나는 여부없이 상장리 오상중학교에 있는 사단 G-3에 가서 메이 중위로부터 신무기 3.5인치 로켓포의 성능과 조작법을 교육받고, 연대마다 5문의 로켓포와 문당 5발의 포탄을 수령하였다.

 

- 김종표 준위(당시 제1사단 제11연대 통신보좌관) 증언

 

영화 <포화속으로>에 등장하는 M20 슈퍼 바주카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한국군은 전차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극복했던 걸까? 물론, 슈퍼 바주카의 등장으로 북한군 전차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 부분 해소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카운터엔 카운터다.

 

“기병을 상대하는 최고의 무기는 기병이다.”

 

즉, 전차를 상대하는 최고의 상대는 전차라는 소리다. 대전차 화기란 따지고 보면 수동적으로 적을 상대하는 무기이다. 공세적으로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탱크가 필요하단 소리다. 이제 UN 군과 한국군의 전차부대가 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