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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감독의 순간순간의 결정들, 선수 선발 등에 많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기사에 나오는 이런 내용들은 대부분 결과론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페넌트레이스 1위 팀에 10위 팀에게 졌다고 해서 1위 팀이 실력이 없다고 판단하지는 않지 않은가.

 

단기전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국 야구가 우물 안 개구리라거나, 감독의 투수 교체나 선수 선발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번 계기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한다. 외양간을 소를 잃기 전에 고쳐 뒀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앞으로 외양간을 어떻게 고칠지 고민해야 한다. 누구 때문에 소를 잃게 되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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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프로가 프로를 만든다

 

몇 년 전 페이스북에서 한 야구팬이 올린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 프로 팀의 내야수들이 서로서로 의견을 공유하며 수비 위치를 수정하고, 이동하고 하는 영상이었다. 그 모습이 특이했는지 한 팬이 영상을 찍어 올린 것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왜 그 팀이 강팀이며, 특히 내야수비가 타팀과는 왜 비교가 안되는 수준인지. 보통의 팀들은 더그아웃에서 나온 지시대로 수비 위치를 움직인다. 타자가 바뀜에 따라 볼 카운트가 바뀜에 따라, 수비코치가 지시를 한다. 수비코치 출신인 감독까지 지시할 때가 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수비코치는 참 부지런해야 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저 지시 내용이 얼마나 어렵길래 선수들이 알아서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생각한 적이 많다. 코치가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고 향후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그 내용을 토대로 스스로 수비 위치를 잡을 수 있게 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하는 코치를 본 적은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경기 중 수비할 때 코치가 아무것도 안 하고 선수들이 알아서 하면 코치가 욕을 먹는다. 두 번째는 코치가 선수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코치들은 선수들이 알아서 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렇게 맡기지 못한다. 코치가 선수를 아마추어로 대하는데 선수들이 프로처럼 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먼저 믿고 맡겨보면, 선수들은 차차 바뀔 것인데 말이다.

 

공은 매뉴얼대로 날아가지 않는다

 

선수들이 이렇게 지시만 받는 데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상황이 생겼을 때 당황하게 된다. 이전에 다른 팀과 경기 중, 우리 팀 선수가 투수와 포수 사이에 아주 높게 뜨는 플라이를 치게 되었다. 1루수와 포수가 잡으려고 했지만 서로 놓쳐버렸고 그 공은 회전이 걸려 1루 파울라인 바깥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때 1루수가 재빨리 그 공을 잡는 것이 아닌가.

 

상대팀 입장에서 플라이볼을 잡는 게 최선이겠지만 놓쳤을 경우는 굴러가는 공을 그대로 둬 파울로 만드는 게 차선으로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파울이 되려고 공이 굴러가고 있는데 수비수가 굳이 공을 잡아 안타로 만들어 주는 것인 상황이었다.

 

그 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던 미국 선수가 큰소리로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모른다. 우리 팀엔 아주 좋은 상황이었지만 외국인의 눈에 엄청 한심해 보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외국인 선수에게 질문을 했다. 왜 그런 것 같냐고. 그 선수의 대답은 선수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연습만 시키고, 지시만 받고 움직여서 그런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야에 뜬공을 놓쳐서 파울이 되는 상황은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각 나라의 방역 대처가 서로 비교되곤 한다. 그중 가장 의외의 결과가 나온 국가는 일본이 아닐까 싶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재난에 대응하는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재난 대비 매뉴얼은 상상 이상으로 꼼꼼하다. 우스갯소리로 화장실 가는 지침까지 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 일본이 코로나의 대응은 선진국 중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이 매뉴얼 사회라서 그렇다는 진단을 많이 한다. 코로나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매뉴얼이라는 건 과거에 경험한 것과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다. 이전에 경험한 일들이 다시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건 지금도 일본이 최고 일 수 있다. 하지만 매뉴얼에 없는 코로나 상황에서는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야구단에서도 매뉴얼을 만드는데 경쟁이 붙을 정도로 매뉴얼의 중요성을 외치는 시기가 있었다. 매뉴얼을 만들고 매뉴얼을 참고하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 매뉴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들을 어떻게 육성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문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의연하고 창의적으로 잘 대처할 수 있는 선수가 좋은 선수다. 그런 선수들을 장기적으로 화수분처럼 계속 육성해 낼 수 있는 팀이 강한 팀이 된다.

 

앞에 이야기한 모 프로 팀에 있는 친한 선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수비가 왜 이렇게 강하냐고. 그 선수의 대답은 선수들이 알아서 다하기 때문에 코치들이 특별히 지시할 것도 없고 선수들이 맘껏 뛰어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로만 창의적으로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하지 말고 선수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다려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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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Next step

 

예전에 같은 팀에 있던 선수가 트레이드로 타팀으로 옮기게 되었다. 트레이드 발표 후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그 선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시즌에 운동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건 내가 할 수가 없다. 그쪽 팀에 있는 트레이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그 선수가 하는 말이, 그 트레이너가 나를 비판해서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 선수의 마음이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그 트레이너는 나랑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는지 물어봤다. 야구선수들이 벌크업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으며, 웨이트 트레이닝하는 방식도 자기랑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한 얘기인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무엇보다 그 트레이너의 얘기가 와닿지 않은 이유는, 난 그 당시에 벌크업에 별로 관심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야구단에서 일하면서 그나마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벌크업이 어느 정도는 당연히 해야 되는 방법이라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휴식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벌크업, 휴식이 이제는 트레이닝에서 일반적인 얘기가 되었기 때문에, 난 그다음으로 변화를 주고 강조해야 할 부분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 벌크업에 대한 비판을 했으니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존경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스포츠 심리 상담의 대가인 중앙대병원 한덕현 교수가 아주 오래전에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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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이 개발되면 신약의 부작용에 대해 엄청나게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신약을 만든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부작용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다음 신약에 대한 고민을 한다."

 

당시 내가 생각하고 있던 한국 야구선수들에게 필요한 다음 스텝은 '환경'이었다. 물질적인 환경이 아니라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고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 말이다. 지도자들이 창의적으로 즐겁게 야구하라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환경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이런 환경들을 만들어주면, 앞에 얘기했던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그 팀의 선수들처럼 많은 선수들이 본인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넷플릭스,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의 비밀- 규칙없음>이라는 책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회사 내에서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와 단순한 관리 업무를 분리하여 창의력이 필요한 업무는 업계 최고 연봉으로 최고의 인재를 뽑고, 관리 업무는 업계 평균 수준 연봉으로 인재를 뽑는다고 한다.

 

요즘 IT 회사의 업무환경을 보면 사무실인지 카페인지 헷갈린다. 어느 회사는 직원들끼리의 잡담을 권장하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잡담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김미라 작가는 잡담을 이렇게 정의한다.

 

‘잡담이란 시시한 말놀이가 아니다. 잡답이란 아이디어를 품은 대화이며, 한 사람을 읽는 코드이며, 모든 서먹한 관계를 촘촘하게 이어주는 그물이다.’

 

한빛미디어 박태웅 의장은 칼럼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최고의 IT 회사들이 높은 자유도를 가지고 활발하게 협업을 하는 쪽을 지향한다. 어떤 업무지시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실험을 하고, 사내 협업 툴에 자신이 기획한 프로젝트를 올려 자원자를 구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빨리 실패하고, 누구보다 많이 실패를 함으로써 우발적인 성공을 보듬어 안는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빨라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는 게 어려워질수록, 조직의 자유도가 중요해진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다. 모두들 창의력 있는 인재를 선점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인다.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창의력을 길러준다는 학원에 보낸다. 나도 딸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딸을 창의력 있는 인재로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의력은 창의력 학원에 보낸다고 길러지는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표현을 생각해보자. 단연 ' ~~하지마'일 것이다. 소리 크게 내지 마, 층간 소음 걱정에 뛰지마등등 하지마 등등.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의 창의력이 길러질 수 있겠나.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전에 먼저 검열을 하지 않는가. 이 행동을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엄마가 좋아할지 아닐지 등. 아이가 창의력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먼저이다.

 

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야구계를 보면 창의력 기르는 게 어려운 환경이다. 남들과는 다른, 조금은 독특한 타격폼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여러 검열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 폼으로 하면 선배들이 뭐라 하지는 않을까?’

 

‘타격코치나 감독님이 이 타격폼을 싫어하면 어쩌지?’

 

실행하기 전부터 자체 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창의력 있는 자신만의 타격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여러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코치로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은 창원에서 NC 다이노스와 시합하는 날이 코칭스텝 회의중 이었다. 창원에서 피홈런이 많이 나와 그 이유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하는 분위기였다. 그때 내가 좌측 폴대 방향에 마산 앞바다가 있어 바람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많이 불어 나성범, 테임즈등 왼손 타자한테 홈런을 많이 허용하고, 우리는 우타자가 대부분이라 상대적으로 창원에서는 약하지 않는가 하고 의견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 나보다 나이 많은 모코치가 이렇게 얘기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누군가에게 그 어떤 피해를 주지도 않고, 서로 생각해봄직한 얘기를 했는데도 저런 반응이 돌아오는 집단이었다. 일반적인 아이디어에 저런 말도 안되는 비판이 가해지는데, 창의력있는 방법이나 생각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날 이후 비슷한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발언을 자유롭게 했을 것 같은가? 이런 환경을 지도자들이 만들었으면서 선수들에게 창의력 있는 플레이를 하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가.

 

물은 길이 난대로 흐르듯이 사람은 처한 환경대로 성장한다. 우리나라에 더 많은 강백호, 이정후같은 선수가 나오려면 선수들이 맘껏 자유롭게 야구할 수 있는 환경,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벌크업 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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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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