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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지배층이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19년 전에 본토 결전을 상정하고 '1억 국민이 모두 불꽃으로 타오르자’라고 몰아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 그것은 경제발전이다. 도쿄 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

 

- 오쿠다 히데오 <올림픽의 몸값> 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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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있어서 1964년 도쿄 올림픽은 1970년 오사카 엑스포와 함께 전후 부흥의 상징이자, 국제사회로의 복귀, 경제대국 일본의 성장을 상징한다. 도쿄 올림픽 직후 일본은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다.

 

이러다 보니 도쿄 올림픽에 대한 일본의 향수는 어마어마하다. 올림픽과 사회간접자본의 연계는 낯선 개념이 아니었지만, 일본의 경우는 그 경우가 좀 달랐다. 전후 완전 부서진 일본을 밑바닥 토대부터 다시 쌓아올리는 거였다.

 

이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 당시의 전시 총동원령을 발령 한 것처럼 사회의 모든 자원을 다 끌어들였다. 도쿄에는 사회 기반시설부터 시작해서 올림픽을 위한 스타디움, 선수촌, 각종 편의시설을 만들었다. 고층건물을 올려야 했고, 모노레일과 신칸센을 개통했다(이 당시 사회 분위기를 <올림픽의 몸값>에서는 개통이 연기된다고 하면 일반인들이 곡괭이를 들고 공사현장을 찾을 기세라고 적고 있다).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고속 열차의 등장이다. 올림픽을 대비해 만들었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어쩌면 1964년은 일본인들에게는 추억의 시절이었다. 영광의 시작점이었으며,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양극화였다.

 

소설 <올림픽의 몸값>에서 주인공인 시마자키 구니오의 형 하쓰오는 도쿄 올림픽을 위한 기간산업, 그중에서 수도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였다. 형은 무리한 작업을 이겨내기 위해 마약을 복용했는데, 결국은 심장마비로 죽게 된다.

 

구니오는 형이 자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를 깨닫기 위해 형이 하던 일을 쫓아서 하는데, 이 안에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그리고 도쿄 올림픽의 헛된 구호 아래 착취당하는 민초들의 삶을 보게 된다.

 

결국 구니오는 다이너마이트 12발을 구해서 올림픽을 상대로 한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8천만 엔을 내놓지 않으면 주경기장에 폭탄을 터트리겠다.”

 

소설 <올림픽의 몸값>의 줄거리다. 구니오가 동경대 경제학부를 다닌 후 동 대학원에 진학했고, 마르크스를 공부중인 얼치기 혁명가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당시 전공투의 분위기를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소설도 재미있고, 드라마로 나온 것도 몇 년 전에 봤던 기억이 난다. 오쿠다 히데오 작품은 <공중그네>부터 다 샀던 기억이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내가 여기서 주목했던 건 바로 ‘마약’이란 대목이다.

 

자양강장마약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마약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독일의 바이엘 社가 아스피린을 만들다 헤로인을 찾아내게 됐고, 일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 나가이 교수는 종합 감기약인 에페드린을 가지고 연구를 하다가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합성하게 된다.

 

1930년대가 되면 메스암페타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고, 독일과 일본에서는 피로회복제의 탈을 쓰고 상품화돼서 판매됐다. 요즘으로 치자면 박카스처럼 팔려 나간 거다. 독일에서는 페르비틴(pervitin)이란 이름으로 일반 장병들에게까지 보급됐고, 일본도 대일본제약(大日本製藥)에서 필로폰(PHILOPON)이란 상품명으로 일반 시중에 판매됐다. 이 상품명은 philo(좋아한다는)와 ponos(일, 노동)의 합성어이다. 각성제를 어떤 식으로 사용했는지 유추할 만한 작명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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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스암페타민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유럽 등등 전 세계에 무분별(?) 하게 퍼졌다. 처음엔 천식 치료제로 팔렸다가 나중에는 수험공부 중인 학생들의 피로 회복, 장거리 트럭운전자들의 각성제로 사용됐다가... 2차 대전 때 완전히 폭발하게 된다.

 

진주만을 공격하러 갔던 일본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이걸 먹고 전투기에 탔다고 하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병사들의 고통 완화, 두려움 해소, 집중력 강화 등등을 위해서 필로폰은 어마어마하게 사용됐다(꼭 일본만 그랬다는 건 아니다. 독일도 그랬고, 미국도 마약을 사용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다음이었다.

 

마약으로 쌓아올린 스타디움

 

1945년 9월 3일 연합군 최고사령부(GHQ)가 일본을 통치하기 시작한다. 이 GHQ가 1945년 10월 12일에 지령 하나를 내리게 된다. 바로 SCAPIN-130이다. 이 지령의 제목은 간단하다.

 

“일본에서 마약제품 및 기록 관리에 관한 건”

 

이다. 지령의 내용은 일본 내에서 마약성이 있는 식물의 재배나 마약제조와 판매, 수출입을 금한다는 거다. 이때 들어간 마약의 종류는 아편, 코카인, 몰핀, 헤로인, 대마 등이었다. 그러나 이때 미군은 일본의 마약을 끊어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일본의 마약 생산과 유통은 그 뿌리가 아주 깊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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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드디어 몰핀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이걸로 쏠쏠하게 장사를 잘하다가 덜컥 전쟁이 끝나자 그 판로로 생각했던 게 식민지 조선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에 마약 중독자를 양산하게 됐다. 대만에서는 아편을 전매했고, 이 아편을 국산화하겠다고 오사카에서 재배하기도 했다. 1935년 국제연맹 통계를 보면 코카인 생산 세계 1위, 몰핀 생산 4위의 마약대국이 일본이었다.

 

그러던 게 태평양 전쟁 때 시장이 확 커졌다. 바로 필로폰 때문이다. 이 당시 일본 제약회사 중 마약을 만든 회사가 무려 23군데나 됐다. 그러던 게 이제 전쟁이 끝나 GHQ가 마약을 단속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전장에서 복귀한 병사들은 마약을 찾았고, 혼란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마약이 퍼지는 건 너무도 쉬웠다. 결정적으로 일본 제국군이 재고로 보유하고 있었던 엄청난 양의 마약이 아무런 제재 없이 풀려나간 거였다. GHQ가 마약을 단속하려 했지만, 될 수가 없는 게 일본은 전쟁 직전부터 너무도 당연하게 마약을 피로회복제로 사용해 왔다는 거다. 그리고 이미 중독이 된 상황에서 규제하는 게 어려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마약이 확 퍼진 계기가 된 게 바로 『도쿄 올림픽』이었다. 1964년 전후로 일본 사회에 엄청나게 마약이 퍼져나갔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소설 <올림픽의 몸값>에 잘 나와 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해야 했다. 밤낮없이 일을 해야 했다.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서 도로를 닦아야 했고, 신칸센 철로를 올려야 했고, 메인 스타디움을 건설해야 했으며, 건물을 올려야 했다. 야간작업은 기본이었다. 소설 속에서 형인 하쓰오는 필로폰을 맞아가며 일 두 탕을 뛰었다. 주인공인 구니오도 형이 맛봤을 세상을 똑같이 쫓아가겠다며, 막일도 하고 필로폰도 똑같이 맞았다. 그리고 올림픽을 두고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전후 2번에 걸친 마약의 폭발적 보급은 이후 마약 대국 일본의 현재를 만들게 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일본은 마약이 상당히 많이 퍼진 나라이다. 그리고 그 가격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이러다 보니 국가를 가리지 않고, 마약을 수입하고 있다 북한산 마약의 주요 수입국이 일본이란 말이 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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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흥과 발전의 상징인 1964년 도쿄 올림픽이지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거였다. 올림픽은 성공했지만, 그 성공을 위해서 수많은 국민들이 마약으로 고통을 이겨내며 일을 했던 거였다.

 

‘일을 좋아하게 되는 약’을 먹고 일을 정말로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일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서 노동을 이겨내게 만든 거라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