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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된 빅엿 작전 : 바르셀로나 올림피아드

 

히틀러와 나치당에게 스포츠는 자신들이 내세웠던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내세울 수는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전 체계’였다. 그리고 하나의 기준이었다. 튼튼한 근육질의 몸매, 다부진 어깨, 금발의 머리칼에 각진 턱. 나치는 순수 게르만인 출신의 스포츠 선수를 게르만의 기준점으로 삼으려 했었다.

 

"아리아인이란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백인종을 말하며 그중 가장 순수한 혈통은 우리 게르만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민족을 지배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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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독일 스포츠계에서 유태인들을 퇴출시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독일 아마추어 챔피언이었던 권투선수 에리히 제리그(Erich Seelig), 독일 최고의 테니스 선수였던 다니엘 프렌(Daniel Prenn), 독일을 넘어서 월드 클래스 수준이었던 높이뛰기 선수 그레텔 베르그만(Gretel Bergmann) 등등이 독일 스포츠계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독일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이런 시선들이 하나씩 모이더니, ‘실력행사’를 하자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베를린 올림픽을 보이콧하자!”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유태인을 배척하는 독일을 거부하겠다는 건데... 한 술 더 떠서,

 

“베를린 올림픽을 상대할 만한 카운터 올림픽을 열자!”

 

“오, 그 아이디어 신박한데? 보이콧은 어딘지 수동적인 느낌인데, 올림픽을 상대하는 올림픽이라...좋은데?”

 

베를린 올림픽이 열리는 1936년 여름에 또 다른 올림픽을 열어 베를린 올림픽을 박살 내자는 거였다. 이렇게 나온 아이디어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게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준비했던 인민의 올림피아드(People's Olympiad)였다. 만약 이게 개최됐다면, 베를린 올림픽을 제대로 엿 먹일 수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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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농담 같지만, 1936년 7월에 바르셀로나에 수 천 명의 선수들이 모였고, 별문제가 없었다면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1992년이 아니라 1936년에 개최됐을 거다(물론 IOC가 개최한 정식 올림픽은 아닐 거다. 만약 이게 잘 풀렸다면... 미국 야구처럼 아메리칸 리그, 내셔널리그로 양대리그가 만들어져서 올림픽을 치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제는 1936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스페인의 사정... 그러니까 스페인 내전의 발발로 무산됐다. 1936년 7월 17일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킨 거다.

 

캡틴아메리카의 결정

 

이렇게 한고비를 넘기는 듯 보였지만, 이 반유태주의와 인종주의 꼬리표는 베를린 올림픽을 계속 위태위태하게 만들었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는 이 당시에 독일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1차 대전의 상처가 아직 남아있었고, 히틀러가 집권한 뒤 재무장에 라인란트 진주 등등 ‘전쟁’을 다시 일으킬 거 같은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 결정적으로 인종주의를 내세우며 유태인을 박해했다는 것이 결정타였다. 나치가 집권한 후에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을 유태인이란 이름으로 내쫓은 게 결정타였다.

 

당시 유럽의 분위기는 간단했는데,

 

“미국 하는 거 쫓아가자.”

 

였다. 1차 대전을 기점으로 세계의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아니, 넘어갔다는 게 맞다. 2차 대전은 그걸 확인해주는 전쟁이었고, 1차 대전은 미국이란 거인이 깨어난 전쟁이었다. 유럽 경제는 미국의 돈이 있어야 돌아가는 상황이었고(대공황 직전 독일 경제가 활기를 띠었던 건 미국의 투자 때문이었다), 이때까지 유럽의 주요 열강들은 1차 대전 당시 미국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국제적인 힘의 관계도 있었지만, 스포츠. 특히나 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열성’도 고려를 해야 했다. 미국은 올림픽에 가장 많은 선수단을 파견하는 걸로 유명한 나라였다(이때부터 스포츠에 대해 집착했던 것 같다). 직전 대회였던 제10회 로스엔젤레스 올림픽도 유치하고, 개최했던 것도 미국이었다.

 

즉, 올림픽 보이콧의 핵심은 미국이 보이콧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다른 나라도 쫓아갈 수 있었다는 거다. 유럽 각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당시 미국의 입장은 어땠을까? 베를린 올림픽 참석 여부에 관한 논쟁은 1934년부터 미국 스포츠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나서 저질렀던 짓들을 확인한 미국은,

 

“베를린 올림픽에 나가면 안 된다!”

 

란 여론이 힘을 모아가던 중이었다. 이때 분위기를 조성했던 이가 미국 아마추어 경기 연맹 회장인 제레미아 마호니(Jeremiah Mahoney)였다. 판사 출신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 그리고 민주당원이었던 이 인물은 인맥과 영향력이... 차원이 달랐다.

 

“독일이 인종과 종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 이런 올림픽에 우리가 선수단을 보낸다는 건 그런 히틀러와 나치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과 똑같다!”

 

라면서 베를린 올림픽 불참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카톨릭 계열 신문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신문 데스크들이 다 마호니 편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호니 판사가 그럴 정도면 뭐...”

 

“그 아저씨가 나름 또 합리적이지...”

 

여기에 인맥도 한몫 거들었다. 뉴욕시장, 뉴욕 주지사, 메사추세츠 주지사 등등 한다하는 정치인들이 다 들고일어나,

 

“베를린 올림픽에 선수단 보내는 것에 반대한다!”

 

라고 마호니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대로만 가면 베를린 올림픽에 불참을 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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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에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보이콧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공청회 소식을 읽고 있는 행인.

뉴욕대학교 출판부, 1935년.

 

이때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였다. 미국 올림픽 위원회(USOC)의 회장이면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부회장도 했던 인물이다(나중에 IOC 위원장이 되기도 한다. 미술계에선 브런디지란 이름이 꽤 유명한데, 그가 미술품 애호가이며 수집가였기 때문이다)

 

이 인간이 베를린 올림픽 불참 분위기를 전면에서 막아선 거였다.

 

(딱 보면 답이 나오겠지만... 이 인간 히틀러와 나치 체제를 나름 좋아했었다. 나중에 가면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까지 한다. 이 인간은 독일의 유태인 선수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발언까지 했었다)

 

“올림픽은 선수들의 영역이다! 정치인이 나설 곳이 아니다!”

 

“베를린 올림픽에 미국이 참가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 유태인과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다!”

 

베를린 올림픽 보이콧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싸운 거였다. 만약 한국 같았다면, 정치권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참가 결정사항을 외교부에서 논의했을 테지만, 당시 미국 정치권에서는 올림픽 참가 여부를 온전히 미국 올림픽위원회에 넘긴 상황이었다. 이게 정치적 해석이 나올수도 있는 아주 예민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베를린 올림픽 참가 여부에 관여하지 않았던 거다.

 

이렇게 되니 베를린 올림픽 참가 여부를 미국 아마추어 경기 연맹의 투표로 결정하자는 말이 나오게 됐고, 결국 투표로 베를린 올림픽 참가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됐다. 어떻게 됐을 것 같나? 그렇다. 에이버리 브런디지가 손을 썼고, 아슬아슬한 표차이라 미국의 베를린 올림픽 참가가 결정 났다. 이때가 1935년 12월이었다.

 

미국이 결정하자 베를린 올림픽을 가야 할지 고민하던 많은 국가들도 참가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됐다. 물론, 유태인 출신 선수들의 개별적인 불참 선언들이 있긴 있었지만, 어쨌든 베를린 올림픽을 국가 단위에서 거부한 경우는 없었다. 최악의 참석률을 보일 것 같았던 베를린 올림픽은 역대 최대인 49개국 참가란 행복한(?!) 결론으로 끝이 나게 됐다.

 

그리고 이 49개국 참가 선수들은 근대 올림픽의 ‘기준’이 되는 베를린 올림픽의 증인이 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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