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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은 1868년생이다. 태어난 곳은 경기도 여주, 민비의 고향이다.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1895년 을미사변 이후 그는 분연히 의병을 일으켰다. 주로 강원도 지역을 근거지로 일본군과 수십 차례 싸웠지만 다음 해에 “의병을 해산하라”는 고종의 권고를 받고는 의병을 해산한다. 싸우겠다고 일어선 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임금이 해산하라니 기껏 일어선 의병들을 흩어 버리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일어난 의병 대부분이 그랬다.

 

그 후 오랫동안 경상도 문경에 은거하던 이인영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다. 고종의 강제 퇴위 후 강원도 원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 등이었다. 그들은 이인영에게 자신의 지도자가 되어 주기를 청한다.

 

그런데 이인영은 망설인다. 아버지가 중한 병에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경구를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란 조선의 유학자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구실이었다. 그러나 이은찬은 나흘을 버티며 이인영을 설득한다.

 

“국가의 일이 급하고 부자의 은(恩)이란 그에 비하면 가벼운 일인데 어떻게 공사를 미루겠습니까.”

 

이걸 현대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나라가 망하는데 너는 아버지 약사발 삶고 있을래? 아버지가 좋아하겠다!”

 

결국 이인영은 이은찬에게 설득당하여 몸을 일으킨다. 이인영은 관동창의대장의 기치를 올리고 전국은 물론 해외동포에까지 격문을 뿌려 일본에 저항할 것을 호소한다. 그 격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사살한 전명운 장인환도 이 격문을 읽으며 몸을 떨었다고 한다. 나아가 그는 수도 진공 작전을 설파했다.

 

“용병(用兵)의 요결은 고독(孤獨)을 피하고 일치단결하는데 있은 즉, 각도 의병을 통일하여 궤제지세(潰堤之勢)로 경기 땅을 쳐들어가면 온 천하는 모두 우리 것이 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오호라 장재(將材)로다. 일찍이 참된 선비로 이름 자자하고 의병도 일으켰던 싹수 아니던가.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의병을 주저하던 그 효심까지. 이인영의 호소에 호응하여 각 도의 의병들이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게 되는데 그중 적지 않은 수가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이었다. 즉 당시 대한제국이 동원할 수 있는 무력의 태반이 가세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한 의병들은 일본군의 반격에 휘말려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며 짚신발 절며 절며 한많은 망우리 고개를 넘지 못하도 후퇴했다. 다시 절치부심 한양 땅을 넘보는 와중에 이인영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총대장이 3년 상을 치러야 한다며 진영을 떠나겠다고 한 것이다. 그 자리에 모인 의병들 가운데 상당수는 처자식이 배를 곯고 있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늙으신 부모 병들어 오늘 내일 하는 이도 하나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라로부터 받은 은혜는 쥐뿔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망해 가는 나라 붙들어 보겠다고 화승총 잡고 발 부르터 가면서 산 넘고 물 건너 양주까지 왔는데 총대장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낙향해 버렸다. 나름 대처를 해놓고 내려간 것이고 허위 등 다른 의병장들도 강력히 반대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나라에 불충한 자는 어버이에게 불효요 어버이에게 불효한 자는 나라에 불충이니, 효는 충이니 하는 것은 그 도가 하나요 둘이 아니니라.”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하며. 훌륭한 유학자에 자애로운 어버이에 끔찍한 효자의 비극.

 

아버지 3년 상 치른 후 의병을 다시 일으키겠다던 이인영은 1909년 6월 7일 체포되고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교수형을 당한다. 그는 끝까지 옛날 사람이었다. 일본인들의 악형 앞에서도 꿋꿋하게 버텨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지만 일본인들의 마음은 경의 반, 경멸 반이었다.

 

이를테면 그의 마지막 요구는 “일본 왕을 만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일본 왕을 만나게 해 주시게.”

 

“ 아니 만나서 뭐 하시게?”

 

“내 대의명분을 들어 일본의 죄상을 밝히고 성현의 도를 설파하면 능히 깨우치는 바 있으리라.”

 

“아따 존경스럽소. 그런데 진짜 뭘 모르시네.”

 

이인영의 ‘헌신성’과 ‘애국심’과 ‘품성’에 대해서는 한 점 의심할 것이 없다. 다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지나치게 예스럽고 고루하며 완고하였을 뿐이다. 그 가치가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그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행동들은 결국 이인영 자신과 그를 따라 몰려든 수천 명의 인생, 그리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무력을 허무하게 붕괴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세상이 애국심과 진정성만으로 바뀌었다면 삼백 예순다섯 번도 더 바뀌었을 것이지만, 세상은 애국심과 진정성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도 냉혹하게 묻는다. 오늘날에는 이인영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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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이 부친의 부고를 듣고 고향으로 향하던 날 한 의병장이 남긴 시가 야사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鬱亞訃進催苦搖 울아부진최고요

 

울적하고 흉한 부고 나아와 쓰디쓴 흔들림 재촉하고

 

最上義男騙而嗚 최상의남편이오

 

가장 높은 자리 의병장은 말 채찍질 하며 오열하네

 

哀孝咽正韓黨慨 애효인정한당개

 

슬픈 효자는 목이 메고 대한제국 바로잡으려는 무리들은 개탄할 뿐

 

倭隊洞嶺瀚也高 왜대통령한야고

 

왜놈들 군대는 산줄기와 바다를 꿰뚫어 뽐내는데

 

我寢魔堂础燃欬 아침마당출연해

 

우리는 마가 낀 집에서 자빠져 자며 주춧돌 태우는 연기에 기침만 하누나

 

行復果是萬何訴 행복과시만하소

 

행함이 결과로 돌아옴은 만고의 이치인데 무슨 하소연을 하겠는가.

 

霧曇視聽訛對崖 무담시청와대애

 

안개는 짙고 보고듣는 것 다 삿되니 벼랑과 마주할 뿐이로다

 

懇多誥已亂麟藁 간다고이난린고

 

간절함은 넘쳐나고 대중을 깨우는 소리 요란하나 기린(황제를 뜻함)은 말라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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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최재형 원장의 애국이란 무엇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NZOcP-UT6o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