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열리면서 근대 올림픽은 시작됐다. 이후 100년이 넘게 이어진 올림픽이 취소된 경우는 3번이었다(동계까지 포함하면 5번). 

 

공교롭게도 세 번 모두 전쟁 때문에 취소됐다. 그것도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같은 미증유의 대전쟁 때문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2020 도쿄 올림픽이 취소됐다면,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취소된 최초의 올림픽이라는 기록을 남길 뻔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쟁을 멈추게 했던 게 올림픽이었는데, 근대 올림픽은 전쟁 때문에 취소됐으니, 어쩌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 훨씬 더 영향력이 있었다고 봐야 할까? 그나마 제1차, 제2차 대전 같이 대전쟁이 돼야 올림픽을 멈출 수 있었다는 건 어느 정도 올림픽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을 거 같다. 

 

ww1.jpg

 

 

첫 번째 취소, 1916년 베를린 올림픽

 

'베를린 올림픽'이라고 하면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을 떠올릴 텐데, 사실은 그보다 20년 전에 먼저 올림픽을 준비했었다. 문제는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거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독일은 야심만만했다.

 

“올림픽은 1916년에 개최하기로 했다. 전쟁은 곧 끝난다. 그러니 올림픽 개최를 취소할 필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전쟁이 빨리 끝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독일의 빌헬름 2세 황제는 1914년 8월 전장으로 떠나는 병사들을 향해 호언장담했다.

 

“낙엽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독일 장교들은 자기 짐에 연미복을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연미복이 필요할 리 없을 텐데 왜 그랬을까? 이들은 2~3달 안에 파리를 함락하고, 손쉽게 이길 거라 생각했다. 파리에서 전승파티를 하거나 사교 모임을 가질 테니, 연미복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거다. 

 

이런 생각은 영국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2~3달 안에 끝날 것이고, 가볍게 교전 몇 번 하면 이길 거라 믿었다. 그러나 전쟁은 4년 넘게 지속되었고, 약 1천만 명이 죽고, 2천만 명이 다치는 지옥으로 변했다. 

 

독일은 1914년까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공격만 성공하면, 프랑스를 굴복시킬 수 있다!”

 

이런 헛된 믿음은 계속 이어졌고, 계속 올림픽 개최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 이어졌고 1916년 개최는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IOC가 대회 취소를 결정한다. 

 

스타디움개막.jpg

스타디움 개막식

 

독일은 전쟁 발발 1년 전에 메인 스타디움도 만든 상황이었다. 전쟁만 잘 마무리 지었다면, 베를린 올림픽 개최에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은 계속 이어졌고, 도저히 올림픽을 치룰 상황이 아니었다는 건 독일 뿐만 아니라 전쟁을 했던 모든 나라가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취소, 1940년 도쿄 올림픽

 

공교롭게도 11회, 12회 올림픽은 각각 독일(베를린)과 일본(도쿄)이라는 추축국이 이어받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역시 전쟁 때문에 1940년 도쿄 올림픽은 개최되지 못했다. 다만 대회의 흥행여부와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일본 정부가 개최권을 반납하는 모양새였다.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공, 중일전쟁을 일으켰다(학자에 따라선 중일전쟁이 2차 대전의 시작이라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영국, 미국, 소련, 심지어 독일마저도 중국을 지원했다. 특히나 미국과 영국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게 미국이다. 미국은 중일전쟁과 뒤이은 일본의 동남아 공격과 침공에 대해 계속 경고를 보냈다. 일본은 미국에게 석유와 철강 대부분을 수입해왔고, 공산품과 기계류 역시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40년 도쿄 올림픽 때 미국이 어떤 행동을 할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당장 미국이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한다면? 영국부터 시작해서 서방 국가들이 모두 보이콧할 게 눈에 뻔했다. 미국이 슬슬 보이콧에 대해 흘렸고, IOC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언급했다. 결국 일본이 개최권을 반납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tokyo.jpg

 

이렇게 해서 개최권이 넘어간 곳이 핀란드 헬싱키다. 1940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두고 도쿄와 싸웠던 곳이 헬싱키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1939년 9월 2차 대전이 발발했다는 거다. 여기까지면 참고 넘어갔겠지만, 1939년 11월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다. 소위 말하는 ‘겨울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핀란드는 1940년 3월까지 꿋꿋이 버텨냈지만, 소련의 ‘양’ 앞에 버티지 못했고, 굴욕적인 강화를 맺어야 했다. 그 결과 영토의 10%를 빼앗긴다. 

 

결국 올림픽은 취소되었다. 이후 헬싱키와 도쿄는 전쟁이 끝나고 난 뒤 각각 올림픽을 개최했다. 

 

 

세 번째 취소, 1944년 런던 올림픽

 

13회 런던 올림픽은 자동 취소였다. 1944년은 2차 대전이 한참이던 때다. 런던 하늘로 V-1과 V-2가 계속 날아오는 와중에 올림픽은 무리였을 거다. 

 

1948.jpg

 

영국은 전쟁 직후인 1948년도 런던 올림픽을 개최한다. 런던은 총 3번의 올림픽을 개최했는데(1908년 제4회, 1948년 14회, 2012년 30회), 가장 최악은 14회였다. 

 

1908년에는 떠오르는 패권 국가 미국과 해가 지기 시작한 영국이 스포츠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 거린다는 볼거리가 있었고, 2012년 대회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과 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이런저런 볼거리가 많았다. 오심도 많았지만 그래도 1948년 대회보다는 나았다.

 

14회 대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전후 복구가 잘 되지 않았다는 거다. 영국은 식량과 석유를 배급제로 운영하는 상황이었다(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에 투자할 돈이 없었고, 올림픽을 한다는 자체가 신기한 거였다. 

 

운동장은 기존에 사용하던 걸 사용하면 된다지만, 문제는 대규모 선수단이 사용할 선수촌이었다. 결국 영국은 남자 선수들은 군용 천막에서, 여자 선수들은 대학교 기숙사에서 자는 걸로 해결을 봤다. 당시의 열약한 사정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총 59개국이 참가했는데, 전범국이었던 일본과 독일(동독과 서독)은 참가할 수 없었고(IOC에서 ‘전범국 안 돼!’를 외쳤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은 초청은 했지만, 대부분 참여할 수 없었다. 

 

어쨌든 2차 대전 직후에 치러진 음울한 올림픽은 어찌어찌 개최가 됐고, 그럭저럭 끝이 났다. 

 

 

보면 알겠지만, 근대 올림픽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엄청난 전쟁이 아니면 계속 치러졌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벌어졌지만, 1952년 15회 헬싱키 올림픽이 열린 걸 보면 알 수 있다. 

 

세계대전 같은 대단위 전쟁이 아닌 이상 올림픽 취소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 2020년 도쿄 올림픽은 1년을 연기하더니, 개최를 할지 말지를 고민할 정도의 상황까지 갔었다. 코로나19가 전쟁에 버금 갈만한 대단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