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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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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일보>

 

필자는 시중은행에서 2016년부터 외환업무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21년까지 외국환거래 규정 중 자본거래 신고 및 사후관리 업무를 맡았었습니다.

 

외국환거래법의 컨셉은 쉽게 말해,

 

"외화반출 제한, 외화반입 활성화"

 

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1998년에 제정, 1999년에 공포된 법으로 그 이전에도 비슷한 법은 있었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위에 말씀드린 컨셉으로 시행된 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번에 윤석열 정부에서 개정하겠다고 하는 외국환거래법의 주요 골자는,

 

"사전신고인 외국환거래에 대한 미신고원칙으로의 변경"

 

인 것 같습니다. 뭐 아직 정확한 개정안이 나오질 않아서 어떤 식으로 개정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미신고 원칙"이라고 했을 때 법이 변경되는 방향이 어떨지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해외 송금이 쉬워진다

 

저 같은 일반인이야 태어나서 외환거래라고 해본 게 환전이 전부이지만,

 

- 해외에 유학생 자녀가 있다던가

- 본인이 유학하러 가려고 한다던가

- 해외에 이민하려고 한다던가

- 해외에 부동산을 사려고 한다던가

- 해외에 부동산을 구입해서 임대료를 받으려고 한다던가

- 해외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려 한다던가

- 해외에 투자회사를 세워서 운영하고 싶다던가

- 친구가 설립한 해외 투자회사에 투자해서 배당금을 받고 싶다던가...

 

등등과 같이 다양한 자본거래요건에 의해 은행에서 해외로 송금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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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은행에서는 고객이 말하는 대로 무조건 송금을 해주지 않습니다. 바로 외국환거래법 때문인데, 위에 열거한 내용들로 송금을 하려고 하면 그에 따른 "사전 신고"를 거쳐야 하고 각각에 필요한 "증빙서류"들을 제출해야 합니다. 뭐... 해외 학교 합격증이라던가, 해외 부동산 매매계약서라던가 하는 것들을 말이죠.

 

그리고 창구에서 커피 한잔 하거나 식사하고 오거나 혹은 다음 날 다시 방문해서 제출한 서류들이 무사히 수리되면 비로소 해외로 송금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오래 걸렸던 해외 송금이 이제는 간소화된다는 것이겠죠.

 

2. 해외송금 한도가 상향되거나 사라진다

 

위에 언급한 내용에 연장선인데 해외송금은 국내 송금과 그 성격이 좀 다르기 때문에 개인이 1년에 송금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습니다. 하루에 송금할 수 있는 금액도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이 송금은 "증빙 없는" 송금의 경우입니다.

 

즉, 뚜렷하게 목적을 갖고 송금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혹은 목적은 있으나 신고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경상거래(수출입 거래대금)도 아닌, 즉, 회색지대에 걸쳐있는 송금들이 해당하는데요. 이 중에는 신고요건에 해당하지만 신고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해외에 부동산을 구입하고자 하는데 매매계약서를 작성하려고 했더니 계약금 3만 불을 송금해야지만 계약서에 사인해준다더라... 와 같이 목적은 분명한데 증빙서류를 제출할 수 없는 경우 법에서 별도로 일정 한도만큼은 증빙 없이 송금할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신고라는 행위 자체가 사라진다면 위와 같이 증빙서류가 없더라도 지금 송금하고자 하는 금액에 대해 한도를 설정하기가 좀 애매합니다.

 

누구는 부동산 구매자금이라고 100만 불 송금을 요구해서 송금해줬는데 누구는 뚜렷한 목적이 없어서 100만 불 송금을 못 하고 5만 불만 가능하다면? 아마 은행을 비롯한 금감원이나 기획재정부(외국환거래법 제정) 등은 엄청난 민원에 시달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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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3. 사후관리 의무가 축소 및 폐지 된다

 

신고 대상 거래에는 사후관리 의무라는 게 있어서 자본거래 신고를 한 뒤에는 일정 기간마다 실제 거래 목적과 일치하는 거래를 했는지, 그 거래 및 사업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사후관리" 의무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신고 의무가 사라지게 되면 사후관리 의무도 폐지 및 축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신고 원칙이라고 해서 신고 의무가 완전히 폐지될지, 보고의무로 바뀔지 고지의무가 될지는 개정안 등이 나오지 않아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아래의 예처럼 한 번에 부동산 구매자금으로 100만 불을 은행에 고지하고 송금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럼 아마 이 고객에 대해서는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사후관리 의무라던가 이후에 어떠한 방식으로 부동산 취득에 대한 관리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신X은행에서 20만 불 그냥 송금하고, 하X은행에서 30만 불 그냥 송금하고... 이런 식으로 시차를 두고 금액과 목적을 다르게 분산해서 송금하는 경우 이 자금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는지 어쨌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사후 관리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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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승현/머니투데이>

 

4. 회수하지 못하는 외화가 늘어난다

 

앞에 말씀드렸듯이 외국환거래법의 현재 컨셉은 "외화반출 제한"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외로 외화가 반출되는 상황에 각종 법적 제한을 걸어둔 것이죠. 그와 동시에 반출된 외화에 대해 회수의 의무까지 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17년도에 삭제된 조항이지만 50만 불이 넘는 대외 채권은 회수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부동산 취득, 해외투자 등이 종료(부동산 매각, 투자철수 등)되는 경우 그 투자금에서 손실, 이익금을 모두 국내로 회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즉 내가 미국에 100만 불 부동산을 구입했다가 현재 200만 불이 되어서 매각했다면? 100만 불이 아니라 200만 불을 국내로 회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고 의무가 없어지면 최초에 부동산을 얼마에 구매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부동산을 구매한 건지 어디에 쓴 건지조차 알 수도 없겠죠.

 

참고로... 신고 대상 거래인데 신고하지 않고 거래한 경우 이 사실이 추후에 발견되었을 때 금융감독원에서는 외국환거래 위반으로 벌금이 부과되고 그 금액이 큰 경우 검찰에 기소까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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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본부세관>

 

물론 외국환거래법이 미신고로 개정되고 나면 신고위반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알 수 없겠으나 그렇다면 해외로 외화 및 자산을 반출하는 게 목적이었던 사람은 이 자금을 국내로 회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5. 하지만 한국은행이라면 어떨까?

 

한국은행은 소위 은행들의 은행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외국환은행의 업무 범위 내에서는 신고기관 및 거래정보 수집 업무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한 은행에서 하루, 한 달, 분기, 반기, 일 년 동안 일어나는 일반 해외 송금, 자본거래 송금, 경상거래 송금 등 각종 외화 송금 거래를 한국은행은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본이동분석 업무가 한국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약간은 그 힘을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은행에 목적을 숨기고 송금하더라도 그 송금에 대한 기록은 여전히 남아있고 이 송금 기록은 한국은행에 보고됩니다.

 

가령 100만 불을 몰래 해외로 송금해서 몰래 부동산을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이 신X은행, 하X은행, 우X은행, 국X은행에서 하루 동안 25만 불씩 분할 송금을 한다고 했을 때 각 은행은 이 고객의 송금이 25만 불이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이 사람이 하루에 총 100만 불의 송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한국은행이 수집한 이 정보는 국세청을 비롯한 각종 국내기관에 공유됩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이 글을 쓰게 만드는 주요 이유였습니다.

 

처음 외국환거래법이 미신고로 변경된다고 했을 때 1번부터 4번까지의 내용이나 그 외 다른 내용들은 쉽게 생각이 가능했는데 이 자본거래분석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결국 송금한 금액에 대한 꼬리표는 어느 정도 유지가 되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세금처럼 국가가 이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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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국수출입은행>

 

6. 은행업 내부자가 본 결론

 

사실 외국환거래법 개정 및 폐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10년도 전부터 은행권에서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송금 절차 및 신고 절차는 송금하는 고객도 귀찮고 힘들지만 이를 관리하는 은행들에도 많은 인력과 비용을 쓰게 만들거든요. 은행들이 먼저 나서서 개정해달라고 했었지만 늘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감히 결론짓건대 외국환거래법 개정은 당장 개정되진 않을 거라 예상합니다. 외국환거래법 개정으로 인한 각종 부수적인 법 개정도 필요하고 하위 규정도 변경해야 하는데 새 정부에서 딱히 실익도 없는 규정 개정을 NATO 여행처럼 서둘러 할 필요는 없을 테고 개정해봤자 지지율이 60%를 넘어갈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뭐 아주 약간의 편의성을 위한 개정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신고거래 대상 금액을 상향한다던가 사후관리 의무를 좀 더 완화하는 것 같이... 하지만 근본적인 법의 개정은 그에 따른 이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게 제 견해이고 아마 기재부를 비롯한 각종 부서에서도 문고리 6인방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국환거래법 개정은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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