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대통령의, 버리지 못한 카드

 

박순애 교육부 장관.

 

이 양반이 장관에 오르는 과정은 기구하다. 올해 5월 21일. 한미 공동 기자회견 중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굥에게 사전 합의되지 않은 질문을 날린다.

 

"지금 내각이 거의 다 남자다. 대선 기간 동안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이러한 여성의 대표성을 증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나. 남녀평등을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

 

당시 굥 내각의 총리-장관급 국무위원 19명 가운데 여성은 3명, 차관급 41명 가운데 여성은 2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꼬집은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굥의 답.

 

“쩝.. 아.. 지금 이 공직 사회에서, 음.. 쩝, 지금 예를 들면 내각의 장관 그러면은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이게.. 아.. 그.. 우리가 각 지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예정입니다.”

 

몹시 당황한 굥께서는 쩝..을 남발하다 실언을 했고(그것도 바이든을 바로 옆에 세워두고), 국내외 언론에게 뚜까 맞는다.

 

1.jpg

출처 -링크 

 

그로부터 딱 5일이 지나 5월 26일. 공석이었던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여성으로 지명한다. 그것이 박순애 장관이 등장하기까지의 스토리.

 

그리고 이어진 대학원생 갑질 논란과 음주운전, 표절, 자녀 입시컨설팅까지. 전례로 보나 여론으로 보나 낙마가 확실시되었지만, 청문회 없이 임명을 강행했고 굥 정부의 여성 장관이 되었다.

 

음주 운전이나 표절이나 이미 내부 검증 과정에서 알고 있었을 테지만, 박순애 교수를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 인수위에 참여한 여성 중 고르고 고른 것이 박순애 교수이니까. 그녀가 낙마하면 또 국내외 언론에게 뚜까 맞을 테니까.

 

이 기구한 이야기를 예리하게 포착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치만렙 박지원 전 국정원장.

 

2.jpg

한눈에 이 사태를 알아보고,

 ‘순발력’이란 단어로 고급지게 맥이셨다.

 

장관의, 다급한 카드 : 만 5세 입학

 

부적합 63.9%, 적합 14.9%.

 

열화와 같은 비판과 압도적 반대 속에 교육부 수장이 된 박순애 장관. 그녀의 머릿속에는 빨리 이 여론을 뒤집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리라.

 

교수 시절 갈고닦은 대학원생 조지던 실력과 논문 하나를 두 개로 뻥튀기시키는 효율성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업무 준비를 했다. 교육전문가가 아니니 기존 교육부 장관들이 만지작거리던 자사고나 대입 이슈는 넣어두고, 자신이 평생 전공한 행정 영역에서 골라낸 것이 바로 만 5세 입학 이슈 되겠다.

 

3.jpg

 

간단히 말하자면,

 

1. 기존 만 6세 입학을 만 5세로 앞당기겠음.

 

2. 2025년부터 시작할 건데, 갑자기 2년 치 아이들을 입학시킬 수 없으니, 15개월씩 끊어서 넣겠음.

 

3. 즉, 4년간 125% 아이들을 입학시켜 단계적으로 연령을 앞당기겠음.

 

이렇게 학제를 개편하겠다고 장관이 굥에게 보고했고, 굥께서는 “재검토하라" 혹은 “신중히 추진하라"가 아니라,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는 돌빨았나 싶은 답을 내놓으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충한 나는 이 대목에서 굥께서 빨리 지지율 깎아 먹을 이슈를 찾고 있고, 지지율이 10%로 하락하는 순간 “아 x발 못 해 먹겠네!!”라고 외치며 하야 후 북한산에 막걸리 마시러 가려는 계획이 있는 거 아닐까 생각했지만, 일단 그건 논외로 하고...

 

기적의, 카드 재활용 논리

 

 

11.jpg

 

출처 - 링크

 

이 이야기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이미 박근혜 시절에 새누리당에서 밀었던 정책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야기의 시작이 보건복지부, 저출산위원회였다는 것. 교육부는 현장의 혼란을 예상해 반대했다는 것. 즉, 이는 철저하게 저출산 정책이었다.

 

대략 논리는 이렇다.

 

‘조기 입학 -> 고등학교 조기 졸업 -> 대학교 조기 졸업 -> 입사 연령 하향 -> 돈 빨리 모음 -> 결혼 연령 하향 -> 출산율 증가’

 

절로 엄지를 치켜세우게 되는 놀라운 논리라 할 수 있다. 비약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새대가리의 삐약에 가깝다. 우선 15개월씩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게 될 ‘윤석열 세대'가 4년에 걸쳐 탄생할 텐데, 이 친구들은 모든 경쟁이 25%씩 증가한 상황과 마주해야 한다. 대학에서, 기업에서 “어이쿠 여러분, 올해 윤석열 세대가 졸업하니까 더 많이 뽑읍시다!!”라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는 않을 테니, 헬게이트 오픈이다. 재수하고, 휴학하고, 실업자로 버티는 것까지 고려하면 그 여파는 4년이 아니라 8년까지로 갈 수 있다.

 

애초에 청년 실업률이 높은 이유는 회사에 못 들어가서가 아니라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공기업-공무원의 성에 들어가려고 오래 시험을 준비하거나, 좋스러운 중소기업(이하 좋소)에 다니면서 대기업 이직을 노리고, 좋소의 좋스러운 모습에 견디다 못해 다른 좋소로 이직을 하는 청년이 많은 것이 한국 청년 실업률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5.jpg

K-좋소.JPG

 

입사를 못 해서 결혼을 못 하는 것이 아닌데, 일찍 졸업시켜 어디든 때려 넣으면 돈 모아서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게을러빠지고 오만한 생각이다. 만 5세 입학한 청년들이 들어온다고 좋소 처우가 드라마틱하게 개선되는 것도 아니고.

 

결혼과 출산은 또 어떤가. 일찍 졸업한 학생들이 “아, 친구들아. 우리가 이제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으니 결혼이라는 것을 시작해 보자꾸나!”라고 생각했다면, 조용히 오른손을 올려 오른쪽 뺨을 내려치자.

 

오히려 이런 걸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걸 보고 있으면, 나오려던 애도 들어갈 판이다. 이런 소리 하는 나라에서 누가 애를 낳고 싶고, 어떤 애가 태어나고 싶을까. 이럴 거면 그냥 다 같이 천공 찾아가서 출산율 올리는 부적을 써달라고 하자.

 

그러니 2015년 당시에도, 또 그 이전 MB 정부, 참여 정부 시절에도 아주 낮은 단계에서 검토 이야기만 나왔다가 들어갔지, 이렇게 본격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다.

 

이들은 생각보다 더 이상하다

 

그렇담, 무슨 자신감으로 이 이슈를 다시 꺼내 든 것일까?

 

“모든 아이들이 차별과 격차 없이 성장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발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교육결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좀 더 빠르게 적극적으로 나서 뒷받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진입하는 학제 개편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차별과 격차 없는 성장’이다. 이 역시 무슨 개소린가 싶지만 형식 논리로는 이렇다.

 

1년 일찍 초등학교 진입 = 공교육에 빨리 포함시킴 -> 교육 공공성 강화 -> 차별과 격차 해소

 

형식적으로는 주장할 수 있는 논리다. 흠이 있다면, 형식적으로만 주장할 수 있는 논리라는 것. 실제와는 잣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만 5세 취학이 교육 공공성 강화라고, 초등학교 빠른 취학이 교육 공공성 강화라고 주장하려면, 초등학교 이전의 교육에 공공성이 없거나 희박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 영역을 확대한다는 말이 맞다.

 

벗뜨, 모두가 알다시피 이미 국가에서는 3~5세를 위한 누리과정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취학 전 아동이 받는 교육도 공공의 영역에 들어온 지 오래다.

 

그러니까,

 

목적: 취학 전 아동교육의 공공성 강화

수단: 초등학교 취학 연령 하향

 

목적과 수단이 사맞디 아니하다. 차라리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하면 모를까. 불과 몇 년 전 자유한국당과 한유총이 손잡고 유치원 3법을 막기 위해 쎄쎄쎄를 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정반대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까지 한다.

 

6.jpg

 

5살이 만만하냐

 

그럼에도 저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게 한 삽 더 파고 들어가 보자.

 

만 5세 입학을 시작하면 정말로 ‘차별과 격차 없는 성장’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일까. 이것은 정녕 교육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이 맞는가 아닌가.

 

우선 국내 연구 중에 입학 연령을 앞당길 경우 사교육 비용이 6.8% 감소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연구가 하나 있다. 한 살 일찍 학교에 가니까 유치원 1년 치 사교육비가 덜 들어간다는 지극히 산술적인 접근이다.

 

7.jpg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2011)

 

연구자들도 지적했다시피, 이 연구는 입학을 앞당길 경우 발생하게 되는 경쟁 비용이 계산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당겨질 입학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만 4세 사교육 + 아이들 수준보다 어려운 내용을 학습하게 되어서 발생하게 될 사교육 + 학부모들의 불안감으로 발생하게 될 사교육까지 계산한다면, 사교육비는 6.8% 감소가 아니라 증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눈여겨볼 것은 스웨덴의 사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들이 만 6세 입학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스웨덴에서는 만 7세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읭? 세계에서 교육 공공성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스웨덴에서 왜? 한 살 당기는 것이 교육 공공성 강화라는 교육부 논리대로라면 스웨덴은 아이들을 시장에 내다 판 국가쯤 될 텐데, 스웨덴이 그럴 리 없잖은가?

 

8.jpg

 

스웨덴은 2005년 대규모 연구를 진행한다. 지금처럼 7세 입학을 유지할 것인지, 국제 기준에 맞춰 6세로 낮출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연구팀은 1935년부터 1984년까지 스웨덴 전체 출생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현행대로 만 7세 입학을 유지하기로 했다. 7살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가장 교육 만족도가 높고 공부도 잘했기 때문에. 그리고 교육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에게는 만 7세에 입학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즉, 교육 공공성을 위해 만 7세 입학을 결정한 것이다.

 

이제 결론 내자.

 

유아교육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유아교육을 강화하면 된다. 국공립 어린이집 더 짓고, 보조금 더 내려주고, 사립유치원 잘 감시하고. 엄한 입학 연령을 건들 필요가 없다는 것. 게다가 입학을 당긴다고 사교육이 감소하는 것도 아니다. 감소할 수 있다는 추측이 있지만, 반대로 늘어날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게다가 스웨덴 사례를 참고하자면 교육 취약계층에게는 만 5세 입학이 오히려 학교 적응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출산율 이야기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구운몽 같은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오징어 다리 뜯으면서 나 해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장관님

 

2013년 9월. 동아일보에 한 객원 논설위원의 칼럼이 올라왔다. 음식물 쓰레기 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한 행정학 교수의 칼럼이었다.

 

10.jpg

출처 - 링크

 

그 칼럼을 쓴 이가 바로 박순애. 10년 전 고고하게 정책을 논하던 그는 몰랐을 것이다. 10년 뒤에 자신이 교육부 장관이 될 것이라는걸. 자기가 부리던 대학원생들이 신나게 갑질 제보를 할 것이라는걸. 땅에 떨어진 여론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 5세 입학이라는 무리수를 자신이 던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탁상행정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칼럼을 맺었다.

 

‘담당 공무원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을 방문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230여 개 지자체별 쓰레기처리 비용이 왜 천차만별인지, 혹시 탁상행정으로 가격을 결정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실험은 실험실에서, 시범사업은 시범사업단지에서 해야 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장기간 정책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

 

한 토시도 어긋남이 없는 옳은 말이다. 실험은 실험실에서. 지금의 박순애 장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인 듯싶다. 그녀 말마따나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장기간 정책실험을 하기에는 아이들이 짊어져야 할 짊이 너무나 무겁다.

 

 

이 이슈로 기사 찐하게 쓰고 싶은 기자님들은 아래 자료 참고하시면 좋다. 특히 예산 부분에 흥미로운 이슈가 많다.

 

-장명림(2011). 초등학교 취학연령 및 유아교육 체제 개편 연구.

-조부경 외(2006). 어린이 삶의 관점에서 본 바람직한 유아교육학제 개편

-Peter Fredriksson, Björn Öckert(2005). Is Early Learning Really More Productive?

The Effect of School Starting Age on School

and Labor Market Performance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