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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jpg

출처-<홍신문화사>

 

 

늙은 중국을 죽이려 하다

 

모기장을 쳐들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모기장째 푹 찌를 것인가?

 

상하이의 코뮤니스트 ‘첸’은 자신이 죽여야 할 사람의 잠든 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는 과감한 남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림자보다도 더 희미한, 곧 희생자가 될 몸뚱이 위로 드리워져 있는 흰 모슬린 더미에 현혹되어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희생자는 코를 골고 있었고 첸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날카로운 단도를 꺼내어 우선 자신의 왼팔을 찔렀다. 자신의 왼팔에 느껴지는 고통과 흘러내리는 피가 그의 결단을 도왔다. 

 

첸은 곧 침대가 뚫어질 정도의 기세로 잠들어 있는 몸뚱이의 가슴에 모기장째 칼을 꽂았다. 그는 자기 몸무게 전부를 단도에 실어 찔렀다. 어스름한 불빛 속에서 사내의 시꺼먼 피가 첸의 단도날을 타고 솟구쳤다. 잔인하면서도 엄숙한 놀라움이었다. 사내의 흰자위뿐인 눈을 보며 완전한 죽음을 확인한 첸은 곧 사내의 옷을 뒤져 서류 하나를 찾아내었다.

 

희생당한 사내는 상하이의 무기 중개상이었다. 첸이 찾고자 한 서류는 200정의 권총에 대한 양도서류였다. 이제 200정의 권총은 노동자 농민의 피로 지탱하는 늙은 군벌이 아닌, 그 낡은 착취와 모멸에 저항하는 상하이의 노동자들을 무장시키기 위해 사용될 것이었다. 잔인한 시대의 잔인한 도시, 상하이 노동자들의 무장봉기는 이렇게 첸의 살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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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1927년 공산당이 일으킨 상하이 무장봉기에 참여한 노동자들

 

첸이 가져온 서류를 품에 넣은 채, 또다른 상하이의 코뮤니스트 ‘기요’와 ‘카토프’는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산둥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산둥호에는 상하이 군벌(정부군)에게 건네질 200정의 권총이 실려 있었고, 그들은 첸의 서류를 미끼로 그것들을 탈취할 예정이었다. 기요의 머릿속에는 ‘혁명부인단체’ 소속의 여의사가 한 말이 맴돌고 있었다.

 

“오늘도 시집가는 가마 속에서 면도칼로 자살하려던 열여덟 살 난 처녀를 보고 왔어요. 아마 짐승 같은 사내에게 강제로 보내려 했던가 보죠.”

 

“그 뒤에 신부 어머니가 흐느끼고 있었어요. 제가 따님은 살아난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질 않겠어요. ‘불쌍한 것! 요행히 죽을 수도 있었는데......’라고요.”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고 살아서 인간들의 삶에 오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죽여야 한다. 기요는 늙은 중국을 죽이고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바칠 예정이었다. 기요가 건설하려는 새로운 중국은 바로 ‘소비에트 중국’이었다. 그것이 기요가 알고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기요의 옆에 서 있는 러시아인 카토프 역시 새로운 중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이미 죽음을 경험한 그였기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는 리투아니아 전선에서 백군(러시아 혁명에 저항하던 왕당파 군대)의 포로가 된 적이 있었다. 포로가 된 그는 그와 함께 포로가 된 적군(러시아 혁명의 중심이었던 사회주의 붉은 군대) 병사들과 함께 얼어붙은 땅을 팠다.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어야 했다. 그 구덩이는 잠시 뒤 그들이 묻힐 구덩이였다. 완성된 구덩이 속에 적군 병사들을 세워 놓고 백군 병사들은 기관총을 갈겼다.

 

그 기관총알들이 미처 죽이지 못한 열일곱 명 중 하나가 카토프였다. 소비에트 러시아 혁명의 전 과정에 참여했던 카토프는 이제 소비에트 중국 건설을 위해 그의 두 번째 인생을 바쳤다. 그가 낯선 곳 상하이에서 피부가 다른 중국인 코뮤니스트들과 함께하는 이유였다.

 

이제는 늙은 중국을 죽여야 할 때였다. 6억 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나라 중국의 혁명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과가 패배이든 승리이든 어느 쪽이건 세계의 운명이 바뀔 것이다. 1927년의 상하이, 이곳은 세계의 운명이 머뭇거리는 곳이었다.

 

 

1차 국공합작과 장제스의 배신

 

나라라고 하기엔 너무나 커서 대륙이라는 말이 어울릴 중국은 그 크기에 걸맞게 쉽게 죽지 않았다. 혁명과 제국주의가 동시에 발원한 격동의 20세기 초반, 낡은 중국은 아편으로 그 죽어야 할 삶을 연장하고 있었다. 곳곳에 군벌들이 난립했다. 낡은 청 제국은 신해혁명으로 멸망했지만 새롭게 세워진 ‘중화민국’은 공화국이 아니라 군벌들의 이익단체였다. 군벌들은 베이징에 거점을 두고 ‘북양군벌(북양정부)’을 세웠고, 비극의 땅 중국의 6억 민중들은 더 큰 혼란과 착취 속에서 신음해야 했다. 

 

1925년 중국대륙 군벌들 세력.jpg

1925년 중국 군벌들 세력 분포

출처-<위키백과>

 

군벌들의 연합체인 베이징에 거점을 둔 ‘북양군벌(북양정부)’에 맞서 개혁파들은 중국의 가장 남쪽, ‘광저우’에 ‘국민당’의 주도에 따라 국민정부를 수립했다. 세계의 열강들이 시체에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더욱 가혹하게 중국을 뜯어 먹을 때 유일하게 소비에트 러시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국민당 총사령관 장제스는 소비에트 러시아의 군사 지원을 받아 북벌을 단행했다. 그는 북쪽의 군벌들을 타도하고 진정한 중화민국을 세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아버지, 레닌이 1919년 건설한 국제 사회주의 혁명 조직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지도하에 국민당과 연합했다. 이것이 ‘제1차 국공합작’이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의 공동 목표하에 북벌에 나섰으나, 장제스는 이 연합을 유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공산당이 국민당의 지지자들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었다. 소수에 불과했던 공산당은 보다 개혁적인 구호들로 국민당 세력을 조금씩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 있었다. 공산당에 비해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한 국민당과 장제스는 공산당에 대한 숙청을 결심했다. 공산당의 숙청을 위해 장제스는 러시아에 유학 중인 자신의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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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1927년의 상하이는 장제스가 공산당에 대한 피의 숙청을 단행한 죽음의 도시였다. 장제스는 1927년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봉기한 상하이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공산당의 자본주의 반대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과격한 구호 앞에서 벌벌 떨던 상하이 재벌들의 돈과 국민당의 무력이 장제스의 자산이었다. 

 

그런데 장제스의 배후에는 승리에 의기충전한 군대와 중국의 프티부르주아 계급 전체가 있었다.

 

“아시겠지요, 제가 하는 말을 잘 새겨들어주십시오. 그는 당신네들이 돈을 바치기 때문에 공산당을 무찌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공산당을 쳐부숴야 하기 때문에 당신네들은 군자금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상하이 곳곳에서 좌익 혁명가들의 비명과 통곡 소리가 메아리쳤다. 장제스의 공산당 사냥은 치밀하고 잔인했다. 공산당원들은 그 어떤 보호도 없이 체포와 투옥, 그리고 고문과 처형을 당해야 했다. 살고 싶다면 동지들을 팔고 국민당으로 전향해야 했다. 상하이 노동자들의 봉기는 믿었던 국민당에 의해 진압되었고, 코민테른의 전략도 실패했다. 국공합작은 끝장났으며 ‘국공내전’이라는 새로운 살육이 중국과 중국의 6억 민중을 맞이했다.

 

이것이 ‘상하이 쿠데타’이다.

 

 

장제스에 의해 붕괴된 상하이 공산당               

 

상하이 봉기는 성공했다. 혁명가들의 지도하에 상하이 좌익 노동자 조직들은 신속하게 상하이 주요 기관들을 접수했다. 그들은 경찰서를 점령하여 무기고를 탈취해 무장했으며, 주요 정거장 등의 공공시설들도 노동자들의 손에 떨어졌다. 상하이 정부군의 마지막 희망인 ‘장갑열차’마저 파괴된 선로 위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장갑열차의 점령도 시간문제였다.

 

상하이 봉기는 실패했다. 상하이 봉기를 일으킨 노동자들과 혁명가들은 장제스의 무력 앞에서 곧 불판 위에 올려질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봉기를 일으키기 전, 이미 국민당은 상하이시 정부를 조직하는 집행위원회를 선출했다. 공산당은 이미 다수파가 아니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은 노동자들의 무장해제였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무장해제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에게 몇 번의 경고 후 바로 발포했다. 곳곳에서 봉기를 주도한 혁명가들이 체포되거나 사살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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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공산당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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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국민당 부르주아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터내셔널 정책은 여기에서 실권을 부르주아에게 내맡기려는 방침인 것 같아. 일시적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끝장이야.”

 

첸과 기요, 그리고 카토프는 ‘한커우’로 향했다. 한커우에는 인터내셔널 본부가 있었고 그곳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파견된 ‘볼로긴’이 중국 국민당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한커우는 상하이 혁명가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만일 한커우마저 그들을 버린다면 상하이 혁명가들은 사형 언도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둘 다 한커우에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중국 제일의 공업 도시’, 그곳에서 새로운 군대가 조직되고 있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노동자들로 편성된 군대가 소총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한커우의 인터내셔널 대표부에 도착한 기요는 블로긴을 만났다. 한 남자가 기요에게 자신이 볼로긴이라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매부리코에 인형 같은 섬세한 이목을 갖추고 있었다. 길게 빗어넘긴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으며 어딘지 모르게 동양인 같은 느낌을 주었다. 기요는 혼신의 힘을 다해 볼로긴에게 상하이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한커우가 상하이 조직들을 지원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장제스에게 무기를 반환한다면 그것은 곧 자살행위임을 온 힘을 다해 설명했다.

 

“하지만 만일 지금 순수하게 코뮤니스트적인 슬로건을 내걸면, 결국 모든 장군들은 즉시 결탁해서 우리에게 대항해올 거요. 20만 대 2만이지. 그러니까 당신들은 상하이에서 장제스와 잘 타협해야 한단 말이요. 그럴 수 없다면 무기를 돌려줘 버리시오.”

 

“요컨대, 혁명을 잘 분만하도록 도와줘야지, 유산시켜서는 안 된단 말이오.

 

힘들게 말하긴 했어도, 볼로긴이 밝힌 인터내셔널의 입장은 명확했다. 장제스의 지시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첸 일행은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당장 장제스가 말한 ‘25퍼센트의 소작료’ 따위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은 혁명가들에게는 모욕이었고, 그들을 따른 노동자 농민들에게는 배신이었다. 그들은 이따위를 위해 목숨을 건 것이 아니었다. 이런 장제스의 지시에 따라 무장해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그들이 공산당의 목을 비트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분노했다. 그러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터내셔널의 지침을 따라야 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고는.

 

“아니, 장제스를 죽여야만 해.” 첸이 말했다.

   

 

첸, 장제스 암살을 시도하다

 

첸은 복종보다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첸은 스스로 불을 지르고 그 불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면 주저함 없이 뛰어들 사람이었다. 그는 인터내셔널의 지령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곧 앞으로 그 어떤 활동의 근거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첸은 따르지 않기로 했다. 인터내셔널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첸의 의지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첸은 다시 살인을 계획하기로 했다. 그리고 동지 기요에게 말했다.

 

“살인을 할 때 어려운 것은 죽이는 일이 아니라, 정신을 확고히 갖는 일이야.”

 

죽음을 각오한 인간보다 더 쓸모 있는 인간은 없는 법이었다. 첸은 이 순간 가장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장제스의 자동차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첸은 자신을 몰아세우는 그 어떤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은 ‘운명’, 그 자체였다. 멀리서 장제스가 탄 자동차의 군대식 경적이 울리기 시작했다. 첸은 옆에 낀 폭탄을 더욱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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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의 호위용 포드 자동차가 지나가고 뒤이어 미국식 대형 자동차가 다가왔다. 첸의 목표였다. 그 차에는 호위 경관 두 사람이 차문 발판에 선 채로 매달려 있었다. 첸은 우유병을 쥐듯이 폭탄 손잡이를 잡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차 밑으로 뛰어들었다.

 

몇초 후 첸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이 눈부신 불덩어리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분별이 되지 않는 순간이 지나고 곧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에게는 오직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첸은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본능적으로 권총을 꺼내려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때 알았다. 한쪽 다리가 사라졌음을. 다행히 또 한 자루의 권총이 셔츠 주머니에 있었다. 첸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경관에게 장제스가 죽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저승에서 물어보기로 했다. 경관이 첸의 옆구리를 걷어차 나뒹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첸은 필사적으로 간신히 총구를 자기 입에 넣을 수 있었다. 먼저보다도 더 아프게 걷어차일 것을 각오한 첸은 이제 몸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의 경관이 맹렬히 걷어차는 바람에 첸의 온 근육이 꿈틀하고 경련했다. 첸은 무의식중에 방아쇠를 당겼다.

 

 

죽음을 맞이하다

 

첸의 암살 계획이 실패로 끝난 후 장제스의 특무부대는 더욱 바빠졌다. 상하이의 코뮤니스트 위원회는 모두 체포되거나 사살당해야 했다. 기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뿌연 안개 속을 걸어 군사위원회가 개최되는 인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몽둥이에 목덜미를 호되게 얻어맞고 쓰러졌다. 경관들은 기요를 차 속에 던져넣고 곧 떠났다. 장제스 휘하의 감시병들이 이미 군사위원회 입구에 매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코뮤니즘은 내가 손잡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을 가능케 해줄 것이라고 말이지요. 코뮤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인간의 존엄을 갖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인간의 존엄이라고 부르오? 그런 건 의미 없는 것이오.”

  

“그건 굴욕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고 기요가 말했다.

 

기요는 심문관의 말에 최선을 다해 대답하며, 한편으로는 부어오른 손가락을 쥐어보려고 했다. 청산가리가 왼쪽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청산가리는 기요에게 이 치욕의 시간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이었다. 그 청산가리를 입으로 가져갈 때 혹시라도 흘리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었다. 기요는 ‘체육관 A반’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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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는 이백 명쯤 되어 보이는 코뮤니스트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요는 그곳에서 마지막 축복을 받았다. 공산당 지부를 사수하다 잡혀 온 동지, 카토프를 만났기 때문이다. 부상자들 사이를 오가는 중국인 감시병들의 총 끝에는 칼이 꽂혀 있었다. 총검은 힘없는 햇살에 기이하게 반사되어 부상자들의 보기 흉한 육체 위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때 별안간 기관차의 기적 소리가 매우 멀리서 둔하게 울려왔다.

 

“총살 같은 것이 아니다. 놈들은 사람들을 산 채로 기관차의 보일러 속에 던져넣는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 삐익삐익 울리고 있는 거야.”

 

카토프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비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요 옆에 바싹 다가가서 누웠다. 끝없는 고통이 그를 기요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었다. 기요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꼼짝않고 누워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죽는다는 건 수동적이지만 자살은 행동이다.’는 생각이었다. 기요는 청산가리를 손에 쥐었다. 죽음이 이 고통과 치욕, 그리고 증기기관차의 보일러 속으로 던져지는 끔찍스러운 죽음으로부터 그를 구원할 수 있었다. 기요는 독약을 이빨로 깨물어 부쉈다. 이윽고 숨이 막혀 카토프에게 매달리려는 순간, 온몸의 힘이 경련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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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촨.”하고 그는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 내가 네 손을 만지거든 꽉 쥐는 거야. 너희에게 청산가리를 줄 테니. 꼭 두 사람 몫밖에 없어.”

 

카토프가 가지고 있던 청산가리는 정확히 2인분이었다. 카토프는 산 채로 불 속에 던져진다는 공포 속에 떨고 있는 또다른 동지 ‘촨’에게 필사적으로 청산가리를 나눠주고 있었다. 카토프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생명보다도 소중한 청산가리를 둘로 쪼개어 자기 위에 얹힌 뜨거운 손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촨은 그 청산가리를 떨구었다. 부상으로 다친 촨의 손이 원인이었다. 카토프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구석구석 더듬었다. 그리고 한 조각을 찾아내었다. 그 조각이 분명히 청산가리임을 확인한 카토프는 그것을 촨에게 돌려주었다.

 

군인들이 들어와 카토프의 손을 등 뒤로 묶었다. 이제 그는 불에 타 죽어야 한다. 부상 때문에 끌려가는 카토프의 걸음은 무거웠다. 카토프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끌려 나갔다. 수많은 눈들이 그런 카토프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토프를 지켜보는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고통에 못 이겨 코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카토프의 모습이 사라지자 꼼짝도 않고 기적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사람을 만들려면 아홉 달이 걸리지만, 죽이는 데는 하루로 족하다.’는 말을 알고 있지? 우리 두 사람은 그걸 신물이 나도록 보아왔다...... 들어보아라, 인간 하나를 만들려면 아홉 달로는 모자라. 60년이 걸리는 거야. 희생과 의지와......”

 

첸, 기요, 카토프 그리고 수많은 혁명가들. 그들의 희생과 의지를 만드는 것에는 60년이 걸리지 않았다. 아니 시대가 60년이라는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의 조건

 

인간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가운데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오직 인간만이 자연에 맞서 투쟁하며 때로는 자연 자체를 목적에 맞게 변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지구의 모습은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이 창조한 결과물이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아마도 인간의 지능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5%에 불과하지만, 지능은 유별나게 높다는 신비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향유고래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큰 뇌를 갖고 있고, 조류만 해도 몸무게의 8%에 해당하는 크기의 뇌를 갖고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인간 중에서만 존재합니다.

 

문제는 높은 지능만으로는 인간과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높은 지능은 한 인간을 향해 쉽고 편안한 길을 가르쳐 주는데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고되고 힘든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그런 선택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노동자는 어디까지나 노동자입니다. 죽지 않는 한 말이지요. 인간이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어떤 사상을 위해 버린다는 것은 인류의 독특한 어리석음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인간이, 글쎄요.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견디어낸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겠지요.”

  

인간이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막연하나마 인간의 존엄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의 노예에게는 그리스도교가, 시민에게는 국가가, 그리고 노동자 계급에게는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독자분들에게 어떤 인생을 소개해드릴까 하고 고른 책이 ‘인간의 조건’입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떠오른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념’이었습니다. 위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듯이 모든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그 의미와 무게를 이해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으며, 그것이 신념에 따른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생명체도 본능을 이길 수는 없지만, 오직 인간만이 신념이란 것을 가짐으로써 삶의 본능을 뛰어넘습니다. 신념이 인간을 참으로 고유한 존재가 될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이데올로기들, 종교들...... 이런 것들을 위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그래서 신념이 인생을 인생답게 만들며, 신념을 가진 사람의 인생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보다 중심이 튼튼하고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념이 없는 인간은 존엄할 수 없으며, 그 인생 역시 존중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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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은 이익만을 쫒는 아흔아홉 명의 힘과 맞먹는 사회적 힘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에 새롭게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죽는 순간까지 미완성이듯, 신념도 죽는 순간까지 만들어지는 것이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즉 결과가 아닌 영원한 과정이라는 것이죠. 위 소설의 저자인 '앙드레 말로' 역시 코뮤니스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독소불가침 조약'을 보고는 공식적으로 공산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했으니까요. 신념과 인생이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조건’이란 곧 ‘인간다운 인생의 조건’일 것입니다. 제가 찾은 답은 신념이었습니다. 내가 존엄한 존재라면, 내 인생이 존엄한 것이라면 그에 걸맞은 나의 신념을 가지도록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단지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살려고 태어난 것이라면 말입니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가진 신념의 결과물이라고 할 때, 내 인생이 이완용의 인생이 될 수도, 안중근 의사의 인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안중근 의사와 이사카가.PNG

안중근 의사(좌)와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우)

 

14번째 인생탐구는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코코아 한 잔’이란 시를 소개하며 마칠까 합니다. 이 시는 자신의 조국을 강제 병합하는 데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항일 의병장 안중근 선생께 바치는 시라고 합니다.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코코아 한 잔’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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