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캡처sdsdsd.JPG

서울 서대문경찰서

 

2017년 7월18일. 후덥지근 수분기 가득한 어느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곳은 서대문 경찰서.

 

한창 조사를 진행하던 중, 경찰관 한 명이 말했다.

 

“초범이니까 괜찮아요. 아마 벌금형 정도로 마무리될 겁니다.”

 

‘어떻게 내 범죄 사실을 벌써 확신하지?’라는 것보다 나도 모르게 

 

'다행이다. 처음이니까 별일 없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롭던 고발자의 모습은 어디가고 쫄보가 되어 계단을 오르는 내 모습이 너무나 처량했다. 경찰에서 첫 조사를 받은 날. 터덜터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피고소인?

 

때는 2017년 1월5일.

 

“안녕하세요. OOO 선생님” 

 

생면부지의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아, 죽돌(딴지일보 편집장)이 연락처를 줬을 수도 있잖아? 글을 기고한 후로 낯선 사람으로부터 연락 오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었기에 일단 답장을 보냈다.

 

“누구신지요?”

 

“저는 서울 OOO 경찰서 사이버팀장입니다. 고소장이 접수되었는데 외국에 계신 것 같아서 이렇게 카톡 드립니다.”

 

순간, 온갖 시나리오가 뇌리에 스쳤다. 아무래도 처음엔 이게 뭔 개소린가 했고, 내 해외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지? 이메일도 아니고 카톡?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피고소인이었던 난, 해외 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후에 알고 보니, 경찰에서 외교부를 통해 직접 신원조회를 요청했다고 한다. 근무지였던 주 OO 대사관으로부터 개인 자료를 인도받아 연락을 취했다고. 

 

장난인 줄 알았던 한 통의 메시지가, 이렇게 오랜 기간 험난한 과정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게 경찰에서 출석 요구가 이어졌다. 고발장에 접수된 내용은

 

'명예 훼손'

 

해외에 거주하면서 이제 막 한 살이 넘은 아이를 키우는 내가 (게다가 아내는 학생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한국으로 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왕복 비행기 값 200만 원도 본인 부담이었다. 조사관은 내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의자 신문 조서는 수사 기관에 직접 출석해서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소중지, 즉 지명수배로 사건이 검찰로 송치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유죄가 아니라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소가 중지된다니.

 

“혹시, 고소인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이틀간 집요하게 캐물은 결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전에 성폭력 의혹 제보 글을 딴지일보에 게재한 적이 있다(변호사에게 물어보니 특정 인물을 지칭하면 고소가 된다고 하길래, 링크를 못 달겠다...!). 고소인은 그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당시 난 그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단지 사실이 이러했노라 이야기했을 뿐. 사실상 성폭력 가해자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는 상황 자체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고소 취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당시 해외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의 외교관이었던 고소인은 2016년 12월 28일에 고소장을 접수한다. 이듬해 1월5일, 일주일이 지나서 내가 피고소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2017년 1월3일, 딴지일보에 압수수색 영장이 날아갔다. 

 

딴지일보 압수수색

 

KakaoTalk_20230303_154203899.jpg

 

경찰에게 처음 연락받았을 때 나름(?)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죽돌 편집장으로부터 예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있다고 하니, 한국에서 연락이 갈 수도 있다. 물리적으로 한국과 거리가 있어 당장 경찰 조사를 받게 될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그 연락을 받을 당시는 무덤덤했다. 그러나 실제로 경찰의 연락을 받고, 딴지일보 압수수색도 진행될 거라고 하니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았다. 갑자기 초조해졌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지명 수배가 내려지면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머릿속에는 온갖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외교관 개인을 고발한 내용이지만, 기사는 외교관 그리고 대사관 내부 문제를 다룬 것이기에. 힘없는 나에게 불리한 다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잘 해결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주변의 덕담은 소송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사라졌다. 2017년 1월에 시작한 소송전. 3년8개월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귀를 막고, 입은 닫아

 

AE.11853256.1.jpg

모처 한국대사관

출처 - <한경닷컴>

 

해외 주재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만큼 안정적인 직장도 없다.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의 국경청 혹은 이민국을 통해 거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비자는 지방세, 자동차세, 국민세, 소득세 등 각종 세금에서 모두 면제 혜택을 받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해선 위의 내용이 적용된다. 외교 업무를 위해 거주하는 사람과 국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만 이용 가능할 수 있는 상점이나 인터넷 쇼핑몰이 따로 있다. 그곳에서 세금 없이 술이나 몇 가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집세와 물가가 비싼 곳이라도, 유학생과 워킹 비자를 받은 이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덜 하다. 그 결과 한 번 국가기관에서 일하게 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꿀 빠는 직장이라고 말하는 외교공관. 웬만큼 더러운 꼴을 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견뎌내는 습성을 기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장을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사관에서 벌어진 일을 떠올리면, 국정 농단 같은 게이트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구나 싶었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상명하복의 갑질 문화가 깊숙이 뿌리 내린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괜찮은 직장 상사 하나 만나는 일에도 이번 생의 모든 운을 모아야 가능하다는 농담이 있다. 

 

문제를 알아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군대식 문화. 기본 바탕이 이러하니 한국에서 ‘아니요’라 말하기 참 어렵다. 해외 주재 국가 기관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다름없는 한국 문화가 적용되는 공간. 문제를 일으키는 한국인 상사와 이를 방관하는 한국인 직원들로 구성된 곳이다.

 

거기서도 결국, 문제를 넘길 줄 아는 융통성(?) 갖춘 직원들은 사회생활 잘한다고 칭찬받고, 문제를 문제라 말하면 삐딱하게 구는 말썽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더 최악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끝내 독박을 쓰는 경우다. 입을 다물면 수명이 길어지는 관습이 형성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국외'라는 사각지대

 

연재물 <저는 주OO 대사관 직원이었습니다>가 탄생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명예훼손 탓에 특정 대사관을 지칭할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무섭다. 무서워).

 

대중들의 관심 밖인 해외에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는 재외공관 이야기

 

박정학 칠레 외교관 미성년자 성추행 적발된 뒤 반응 경악 그 자체 (한글자막) 2-52 screenshot.png

출처 - <민중의 소리>

 

당시 칠레에 파견된 외교관이 미성년자를 성추행해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또 모 대사가 직원에게 성폭력을 가해 물의를 일으켰다. 직장 내 폭력과 비리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특히, 해외라는 점이 사람을 더 안일하게 만든다. 시스템과 사람, 어떤 형태로는 감시체계는 존재하기 마련. 하지만 그것이 한국을 벗어나는 순간,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그 허점을 이용하는 자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비자 발급, 인사 고과의 평가 권한이 외교관에게 있으니, 현지에서 채용된 이들은 외교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본인이 일으킨 문제들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구조라는 거다.

 

내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들이 바로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 첫 번째. 다음은 조직을 나오지 않고서는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사안들이었다. 5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곳에서 근무했다. 그때 겪은 일들을 하나둘씩 꺼내 글로 써 내려갔다. 그 결과 수많은 사건 중 하나. 고위공직자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 고소당하고 재판까지 받게 된 것이다.

 

연중무휴

 

캡처.JPG

서울서부 지방법원

 

그런데 사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기사가 올라간 날짜는 12월23일 토요일. 5일 후인 12월 28일 오후 3시경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이 접수되었다. 12월29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30일, 31일(주말 이틀), 다음 해 1월1일까지 휴일이었다. 결국 평일은 12월29일 금요일 하루가 전부였다는 건데. 

 

1월2일 화요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 다음날 1월3일 오전 9시 45분, 딴지일보 본사 데이터 센터 압수수색이 진행되었다.

 

보통 유튜브 영상이나 비방 글을 근거로 명예훼손 고소장이 접수되면, 적어도 수일, 수개월 조사를 진행한다. 범죄 입증을 해야 하니까. 조사를 마치면 단계적으로 검찰 송치, 다시 조사, 재판으로 넘기는 게 순서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조사를 받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무런 범죄가 소명되지 않은 상태. 별도의 조사 없이 바로 압수 수색이 이뤄진 것이다. 아니면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압수수색 검증 영장을 뒤져봤다.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

 

그 말인즉, 

 

피고소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임을 판단 가능. 

 

그들이 압수수색을 진행한 방식은 이러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