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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충격적인 뉴스가 떴다.

 

"실리콘밸리 뱅크가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다."

 

한국에서도, 포털과 각종 커뮤니티 중심으로 관련 기사가 빠르게 도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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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기사 대부분은 외신의 보도를 번역하거나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수준이다. 그 정도의 정보로는 이번 사태가 왜 발생했고, 얼마나 큰일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로서 말하자면, 솔직히 쓴 사람들도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쓴 기사가 너무 많다. 그래서 디벼본다. 현직 미국 뱅커가 보는, 실리콘밸리 뱅크 사태.

 

금융위기 이후, 최초의 은행 파산이다  

 

Silicon Valley Bank. 일명 SVB.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실리콘밸리의 벤처회사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은행이다. 주로 법인을 상대하는 곳으로, 일반인들이 방문할 수 있는 영업점이랄 게 거의 없다. 꼴랑 서른한 곳의 지점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Boston Private'라는 은행을 인수하면서 지점이 늘어난 거다. 그 이전에는 캘리포니아 베이에만 몰빵되어 있던 지방은행이다.

 

하지만 이 SVB를 그 누구도 알로 보지 않는다. SVB의 자산규모는 무려 260조에 달한다. 이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감을 잡아보자. 자산이 400조가 넘는 은행은 미국에 10개 정도다. 200~300조 정도의 자산을 보유한 은행은 미합중국을 다 털어도 30개 정도. SVB의 자산 규모는 전체 16위. 그러니까 SVB의 미국 내 위상은, 메이저까지는 안되더라도, TOP10을 제외한 대형은행 중에는 최상위권이란 말이다.

 

SVB의 자산 규모를 우리나라 기업 기준으로 보면, 산업은행보다도 큰 은행이고, 카카오뱅크 같은 은행은 SVB가 13개 정도 살 수 있다. 제일은행, 부산은행, 씨티은행, 대구은행까지 다 합쳐도 SVB보다 작다. 지금 이 정도 규모의 은행이 주저앉은 거다.

 

대형 은행이 갑자기 망한다. 이건 그 자체로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다. 은행이 무엇인가. 예금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다가 대출해 주는 중계기관이다. 은행이 망하면, 은행의 주주들이 손해 보는 것은 물론, 그 은행에 돈을 맡긴 일반 예금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 은행은 절대로 망해선 안 되는 존재다.

 

지난 2009년 금융위기로 시간을 돌려보자. 그때도 여러 은행이 동시에 망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미국 의회는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은행 구제금융 법안(TARP)을 통과시켰다. 그때부터 미국 은행에는 매우 강도 높은 규제와 관리 감독이 도입되었다.

 

이건 당시 현직에 있었던 사람들 썰인데, 재무장관이 직접 은행 간부들을 모아놓고 TARP 계약서를 들이밀었다고 한다. 계약서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은, 그 내용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 수천조를 지원해 주는 중대한 계약서의 길이가 고작 6장밖에 되지 않았다. 으레 있어야 할, 구체적인 자금 지원 조건이나 단서들이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 은행들이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미국정부에게 규제 관리 감독에 관한 권한을 완전히 백지위임했다는 뜻이다. 이후부터 미국 정부는 금융위기 후속 조치에 대해서 은행과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통보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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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OCC(연방통화감독청) 현장사무소 설치다. 금융위기 이후 모든 메이저 은행 본사에는 OCC의 현장 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지금도 은행 본사에는 규제관리관들이 상주하면서, 은행의 자금 운용에 대해 사사건건 개입하고 간섭한다. 내가 당해봐서 안다. 정말 빡세다. OCC는 나 같은 뱅커들에게 저승사자 같은 존재이다. 큰 대출을 해줄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서 어디에 돈을 빌려줬고, 왜 돈을 빌려줬는지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그것도 모자라 1년에 한 번씩 집중 감사를 통해 포트폴리오 전반을 훑는다. 이거, 당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이러한 빡센 규제와 관리 감독이 이뤄진 덕분에, 미국 은행들은 매우 보수적으로 자산을 관리한다. 실제로 지난 금융위기 이후로, 미국에서는 단 한 개의 은행도 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십 년 만에. 대형은행이 쓰러진 거다. 이건 단순히 은행 하나가 망한 게 아니다. 2009년 이후로 잘 짜여져 왔다고 여겨졌던 미 금융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균열이 발생한 거다. 그래서, SVB의 파산이 졸라 큰일이라는 거다.

 

왜 SVB가 먼저 망했는가 

 

자 그러면, 이번엔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보자. 미국 규제당국은 SVB에서 발생한 위기를 도대체 왜, 사전에 방지하지 못했던 걸까.

 

가장 큰 원인은, SVB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은행이라는 점이다. SVB는 원래 메이저 은행 / 대형은행이 아니었다.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다른 메이저 은행들이 수십조씩 지원받을 때, SVB는 고작 2천억 정도 구제금융을 받았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SVB의 자산 규모는 수십조 정도였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규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작은 은행이었던 SVB가 단기간에 급성장하면서 생겨났다. 2019년 말, 70조 수준이던 SVB의 자산은 2022년에 260조까지 불어난다. 불과 2년 남짓 한 시간 동안, 자산이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SVB의 고객이 테크 / 벤처캐피털에 거의 몰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지도가 거의 없는 은행에 갑자기 수백만 개 신규 예금계좌가 개설된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큰 손 계좌의 예금이 크게 늘어난다.

 

이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전자의 경우 수백만 직장인의 믿음을 얻어야 하지만, 후자의 경우 큰 손 몇 명만 설득하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SVB가 주로 상대하는 큰 손들은, 코로나 사태 직후 발생한 테크 투자 열풍으로 지갑 사정이 두둑해진 IT기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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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는 실리콘밸리 내 기업들을 지원해오면서 쌓아 올린 신뢰도, 입지를 바탕으로 벤처 캐피털 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테크 버블 기간 동안, SVB의 고객사들이 성공적으로 외부 투자를 받자, SVB의 예금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급작스러운 예금 증가가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포트폴리오 매니저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써야 할 돈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 좋은 일이 아니다.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의 대상과 범위는 정해져 있는데, 구매해야 할 양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질(수익률)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식당에 갑자기 단체 손님이 몰리면, 음식의 서비스나 질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급작스러운 예금 증가로 인한 투자수익률 하락. 이건 사실 미국 은행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였다. 코로나 사태 초반, 연준이 갑작스럽게 양적완화를 확대하자, 모든 은행의 예금이 평균 30%가량 증가했다. 은행들은 늘어난 예금을 소진시켜야 했던 은행들은 대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피 터지는 경쟁을 벌여야 했다. 벤처회사들로부터 막대한 예금을 받아들인 SVB 경우는 문제의 정도가 다른 은행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거다. 자산이 갑자기 3배가 되어버렸으니까. 동네 사람들에게 백반이나 팔던 밥집이 갑자기 백종원 맛집 버프를 맞고 손님이 건물 주변에 똬리를 틀어버렸으니, 주방이 난리가 날 수밖에.

 

SVB는 그래서, 늘어난 예금을 어디에 투자했을까? 후려쳐서 말하자면, 그들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에 나누어서 베팅 했다. SVB가 선택한 위험자산은, 기업 대출이었다. 원래 은행들은 돈이 생기면 대출을 해준다. 그런데... SVB가 발행한 대출상품은 다른 은행의 대출상품과 달랐다. SVB는 특정 고객(벤처기업)들에 몰빵해서 돈을 빌려줬을 뿐만 아니라, 대출 구조 자체를 다르게 했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기업에 대출해 줄 때, 기업이 얼마나 많은 이익(EBITDA)을 발생시키느냐를 중점적으로 본다. 당연한 거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익을 발생시켜왔느냐가 곧 기업의 대출 상환 능력으로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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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는 벤처기업 /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돈을 뿌렸다. 과거 실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고객들인 거다. 이익을 발생시키기는커녕, 투자금을 까먹고 있는 상태인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익을 전혀 내본 적도 없고, 당분간은 낼 것 같지도 않은 기업에게 무슨 기준으로 돈을 빌려준 걸까.

 

SVB는 반복 매출 (Recurring Revenue)을 대출 기준으로 삼았다. 매출에서 비용을 뺀 이익이 아니라, 기업이 고정적으로 벌어들이는 매출 자체를 기준으로 대출 상환능력을 평가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 몇 년 사이에 넷플릭스를 비롯한 구독 경제가 갑작스럽게 활성화된 것을 느끼신 분이 있다면, 당신은 좋은 시장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SVB 같은 은행/펀드가 구독 경제에서 발생하는 고정적인 요금을 기준 삼아 돈을 뿌려댔다.

 

SVB가 기업들에게 돈을 내준 방식은 확실히 남달랐다. 다른 은행에서는 막혔던 대출이, SVB에 가면 해결되었다. 그 덕분에 SVB는 벤처캐피털업계에서 단기간에 큰손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현직 포트폴리오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SVB가 부러웠다. 우리는 모래주머니(온갖 자본 규정)을 달고 싸우는데, SVB는 규제 바깥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SVB가 방만하게 운영되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SVB도 자신들이 발행한 대출들의 리스크를 잘 알았기 때문에, 대출을 최대한 분산시켜 발행했다. 또한, 전환 사채에도 투자하여 돈 빌려 간 기업이 잘 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극대화했다. 그러니까 SVB는 투자를 쪼개서 하되, 한 번 먹을 때 크게 먹는 방식으로 리스크 / 수익을 관리한 것이다.

 

그래도 좀 후달렸는지 남는 예금의 상당 부분은 안전자산에 투자했다. 여기서 안전자산이란, 망할 리스크가 없는 미국 국채나 미국 공공기관이 지급을 보증하는 모기지 채권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가 SVB가 대놓고 미친 짓을 했거나 무모한 행보를 벌인 결과로만 볼 수 없다는 거다.

 

다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변수가 발생했다. 2022년 들어,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인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갑자기 미친 듯이 올려버렸다. 이는 SVB에게 3연타 콤보를 가했는데,

 

1) 갑작스러운 기준금리 상승으로 자금시장이 죽어 버렸고, 활발하게 이뤄지던 벤처캐피털 / 실리콘밸리 투자가 멈춰버렸다. SVB에 대규모 투자금을 넣어두던 예금 고객들은, 이제 기존 예금을 인출해서 버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미친 듯이 늘어나던 SVB의 예금은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1년 새 30조가 줄어들었다)

 

2)SVB의 돈을 빌려 간 대출 고객들도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신규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돈줄이 막힌 것이다. 게다가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은 연초보다 배 이상 늘어나게 되었다. 가뜩이나 SVB가 발행한 대출 (Recurring Revenue Loan)은 일반 대출보다 널널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자 감당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3)기준금리 인상은, SVB가 보유한 안전자산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금리가 올라가면, 채권의 가격은 하락한다. SVB는 채권 포트폴리오에서 약 10%가량의 손실을 보게 된다.

 

요약하자면, 벤처 캐피털 투자로 흥했던 SVB가 벤처캐피털 투자 사이클이 꺾임과 동시에 큰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SVB의 대출포트폴리오가 취약하다는 것은 작년 9월부터 돌던 얘기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망할지 몰랐지. 그 직접적인 원인은 이런 위기 상황을 대비해서, 쌓아둔 안전자산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SVB를 파멸시켰던 것은 채권 포트폴리오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과거 쌓아뒀던 업보(채권 투자 손실)가 밖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당히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예금 감소와 대출 수익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해결책 (안전자산 처분)이 오히려 은행을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연준이 나설 때다  

 

SVB 사태의 본질은,

 

1) 예금 / 대출 고객이 특정 집단 (벤처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

2) 믿었던 안전자산에서 금리 인상으로 인해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

 

이 두 가지이다.

 

이 바닥 사람으로서, 팔을 안으로 굽혀 본다면, 이번 SVB 사태에는 상당히 억울한 면이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당분간 낮게 유지한다는 말을 믿고, SVB가 남는 현금을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했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만에 연준이 금리 인상으로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대규모 손실을 얻어맞게 된 거다. 미국 은행들이 이처럼 안전자산에 투자했다가 입은 미실현 손실액이 약 80조가량 된다. SVB 외에도 피 본 은행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는 벌써, SVB 다음으로 망할 것 같은 은행들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First Republic, Signature Bank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SVB가 끝이 아닐 수가 있다는 것이다. First Republic의 자산규모는 SVB과 비슷하고, Signature Bank는 절반 정도 된다. 이 세 은행의 자산을 모두 합치면 (550B+), 리만브라더의 총자산 (600B) 규모에도 비벼볼 수 있다. 당국이 사태가 그 지경에 이르기 전에 개입하겠지만, 파괴적 위기감이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아온 은행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관점을 넓혀 보자면, 지난 1년 동안 반복해 온 미국 연준발 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돈 빌려 간 대출자들은 늘어난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곡소리를 내고 있고, 채권 가격의 하락은 금융기관들의 자산을 빠른 속도로 갉아먹고 있다. 연준 형님들이 이제 제발 인정사정 좀 봐주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추신: 이번 사태로 우리 은행도 야근중이라, 정신없는 와중에 급하게 SVB 사태를 정리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신 분은 댓글 주시라. 시간 되는대로 답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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