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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편의 연재 글에서는, 불면증에 시달리던 40대 아재의 쿠팡 첫 근무기를 담았습니다. 이번엔 집 앞에 새로 생긴 '마켓 컬리'에서의 투잡 경험담을 풀어볼까 합니다. 여기도 정말… 쿠팡 못지않더군요. 함 들어보시죠.

 

직장 변경, 이번엔 마켓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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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 김포 물류센터 외경

출처 - (링크)

 

"집 근처에 마켓컬리가 생긴다는데. 카페 알바 게시판에 계속 광고하고 있어."

 

아파트, 동네 커뮤니티 따위엔 가입하지 않는 나에게, 아내는 항상 좋은 정보를 알려준다.

 

"쿠팡 가기 멀었는데 거기 한번 지원해 볼까?"

 

내가 살고 있는 평택에서 경기도의 D쿠팡 센터까지는, 걷는 시간과 셔틀 이동 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 남짓 소요된다. 가는 길이야 체력이 남는다 하더라도, 아침엔 언제나 만신창이가 되어 들어오면서 퇴근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닌가 싶었다. 마침, 집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물류센터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주말에 쉬면서 알바XX, 알바X 등 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마켓컬리발 광고가 엄청나게 올라와 있었다.

 

F팀 꿀알바 물류센터 입점 오픈 후 테스트 기간 동안 일하실 직원분들 모집합니다.

 

M팀 성함 지역 등등 문자로 지원해 주세요.

 

J팀 프로모션 냉장 냉동 원하는 파트 가능 지원해 주세요.

 

평택에 신규 입점한 마켓 컬리 물류 센터가 올린 구인 광고는, 팀 이름만 달리해 온 사이트를 도배 중이었다. 구인 광고 하단에 적인 주소를 내비게이션으로 찍어보니 “15분” 거리였다. 게다가 “자차 허용”까지.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팀 구분하지 않고 문자를 세 군데 정도 넣어 보았다.

 

다음날,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F팀과 M팀에서 회신이 왔다. F팀에서 먼저 문자가 왔기 때문에, M팀에는 “지금 F팀과 이야기 중”이라고 답장했다. 그랬더니 알겠다고 회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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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당시, 휴대전화 문자 내역
 
쿠팡은 쿠펀치로 SRT 예매하듯이 날짜를 골라서 앱으로 신청했었다. 반면, 마켓 컬리는 지원 과정이 100% 수동이었다. 평생 지인에게 명절 인사 한번 제대로 보내지 못한 사회성 떨어지는 나에겐 지원 과정도 스트레스였다.
 
도착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졌다
 
2023년 5월 19일 대망의 컬리 첫 출근을 감행했다. 19일은 금요일이었으나, 마침 그날 회사가 창립기념 휴일이었다. 오전에는 쉬고, 오후에는 컬리 출근을 준비했다.
 
아내: "진짜 지독하다. 휴일에는 좀 쉬어"
 
나: "아인슈타인 명언에 이런 말이 있어. 미친 짓이란,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다른 직원들이 놀 때 일하기 때문에 미래가 바뀔 거야."
 
아내: "미친놈"
 
마눌이 뭐라 해도 나는 간다. 와이프의 따뜻한 응원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변화 없이 사느니 일하다 뒤지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슈퍼 아스라다 AKF-11의 AI를 탑재한, 연비가 자전거 뺨치는 나의 애마 ‘스파크’를 끌고 일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첫 출근입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OO님이시지요?"
 
컬리는 관리자 상호 간에도 이름에 '님'을 붙이는 규칙이 있다. 좀 자주 얼굴을 보이는 일용직이나 친한 사이에는 이름을 부른다.
 
뭐지…
 
우리 마누라도 안 부르는 내 이름을 오랜만에 들으니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근무 등록해 주시구요 컬리웍스 앱은 까셨지요?"
 
'컬리웍스'. 쿠팡에서는 '쿠펀치'로 모든 출/퇴근을 관리하였다면 마켓 컬리에는 '컬리웍스'라는 어플이 있다.
 

PAGE 3 컬리 출근용 어플.jpg

제일 외쪽 아이콘이 '컬리웍스'
 
근무 시작과 끝을 등록하는 절차를 간단히 살펴보자.
 
1. 마켓 컬리 내부의 와이파이를 잡는다.
 
쿠팡도 그렇지만 출퇴근 앱은 신기하게 내부 와이파이가 아니면 작동하지 않는다.
 
2. 컬리 웍스(링크)에 가입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서 근무일, 근무조, 근무 파트 등을 선택한다. 그리고 '출근' 버튼을 눌러서 출근 등록한다.
 
출근 버튼을 누른 뒤, 접수원에게 가서 보여주고 '출근일지'에 꼭 사인하자. 경험상 컬리는 어플 수속을 개판으로 처리해도 여기 사인만 하면 돈을 준다.
 
3. 본인이 일할 공정에 투입되면 'Kurlyro(링크)=LMS'에 접속한다. 'Kurlyro'에도 가입하고 '출근' 버튼을 눌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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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버튼을 눌러주면 '출근 시작'

 

여기 출근 시작 버튼을 누르면 본인 전용 QR 바코드가 나온다. 공정마다 놓여 있는 바코드 리더기에 본인 QR 바코드를 찍으면 출근이 완료된다. 보통 공정마다 조장이 안내해 주기 때문에, 모르는 건 물어보고 천천히 진행하면 된다. 다만, 가끔 빨리하라고 지X하는 조장도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컬리웍스'로 와이파이 잡아서 출근 누르기 – 공정 들어가서 '컬리로'라는 별도 주소로 접속해서 QR코드 찍기 – 업무 시작 – 업무 끝 – 퇴근 시에는 '컬리로' 퇴근찍기 – '컬리웍스' 퇴근 클릭.
 
나는 쿠팡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이 과정이 어렵지 않았지만, 헤매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였다. 하지만, 접수원 3명이 모든 사람을 처리하는 쿠팡과 달리, 컬리는 팀별로 인원을 관리한다. 지원한 팀의 데스크로 가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줬다.
 
본격적으로, 실제 근무 투입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근무 파트와 급여도 간략히 정리해보려고 한다. 컬리는 쿠팡과 근무 시간대가 다르다. 그리고 근무 시간이 더 짧다.
 
센터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지원한 경기도 P센터의 마켓컬리는 크게 3개의 지원 형태가 있었다.
 
1. 풀타임조 (오후 4시~새벽 1시)
 
2. 파트타임조 (오후 19:30~새벽 1시)
 
3. 주간조 (오전 10시~오후 10시)
 
국가 최저 시급을 따르고, 새벽 1시 이후로 연장 시 심야 수당이 붙어 10분에 3천 원씩 받았다. 물론 휴일에는 시급의 1.5배를 주지만, 가끔 출근 취소도 발생하고 비교적 경쟁률이 높았다.
 
급여는 풀타임조 > 주간조 > 파트타임조 순으로 많았다. 나는 주로 금요일 파트타임과 토요일 풀타임을 뛰었다. 가끔은 일요일에 풀타임을 뛰고 다음 날 출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는 회사에서 미친 듯이 졸았다. 새벽 1시에 일이 끝나고, 집에 도착해서 씻으면 새벽 2시. 컴퓨터 하고 야구 보다가 세 시간 정도 수면 후, 출근한다.
 
나만 그런가…? 많이들 그럴 거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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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켓컬리>

 

오후 4시, 신입 사원 교육 시작
 
"등록 다 하신 분들은 줄 맞춰 서주세요."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넘쳤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마치 먼 친척 어른들까지 모인 결혼식장에 온 것 같았다.
 
"신규 분들 안전교육 하실 겁니다. 다들 모여서 2층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무용지물. 선두 지휘하는 사람을 따라서 우르르 2층으로 내려갔다.
 
2층엔 미니콘서트장에서 사용하는 간이 의자가 놓여 있었고, 관리자처럼 보이는 인원들이 앞쪽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충 뒤쪽 구석에 앉았다. 팔걸이 없는 의자에 앉아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 옆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한다.
 
"언니 오늘 처음이세요?"
 
"아니요. 저는 장지 컬리에서 일해봤어요. 이 센터는 처음이네요."
 
여자들은 친화력이 좋다. 오늘 처음 봤는데 언니 동생이 되어있다.
 
"아직 물건 안 들어와서 오늘은 바코드만 찍는다는데..."
 
내부 사람인가? 처음 왔는데 어떻게 알고 있지…
 
"여러분, 집중해 주시고요. 지금부터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1시간 정도 교육이 진행되었다. 안전, 성희롱, 도난, 휴대전화 사용 등 교육 내용은 쿠팡과 비슷했다. 물류센터에 앉아 교육받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쿠팡에서 배운 바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경청한다.
 
"교육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안전화를 신지 않으실 경우 식당에서라도 귀가 조치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안전화를 강조했다.
 
"각 공정 팀장님, 인원들 인솔 바랍니다."
 
교육이 끝나자, 보스로 추정되는 사람은 공정 팀장들에게 개별 인솔을 지시했다. 우리 F팀 팀장님이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F팀 이쪽으로 모여주세요."
 
머리숱이 나보다 3배가 많아 보이는 아이돌 같은 20대 팀장님이 열심히 손짓하고 있었다. 20~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F팀 자리에 섰다.
 
"공정별로 서 주실게요."
 
첫날이라 그런지 엄청 친절하다. 출근 전, 사전 조사에서는 ‘군대 같음’, ‘일용직에게 막 대함’과 같은 평가가 많았는데, 다행히 심적으로 부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졸았던 마음이 사악 녹아내렸다(나중에 안 것이지만, 내가 출근한 날 중에 첫날이 가장 친절하고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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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알리는 문자 캡처

 

내가 지원받은 공정은, 이른바 '냉동 피킹'. 냉동창고에서 물건을 집어 오는 업무를 맡았다.
 
"피킹 하시는 인원들 이쪽에 서주시고요."
 
한 명씩 이름을 불러서 체크한다. 20대 팀장님도 처음인지 엄청 긴장하면서 꼼꼼히 인원을 확인했다. 인원 파악이 끝나자, 특별한 장비 장착을 명령했다.
 
"피킹 하시는 인원들은 방한복(우주복) 입겠습니다."
 
극한(極寒)직업
 
겨울옷 필수라는 말에, 장롱에 처박아 둔 겨울 점퍼까지 야무지게 입고 나왔는데 무슨 소린가… 이날은 햇살이 따뜻한 5월 19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 같은 뉴비가 거세게 항의한다.
 
"겨울 코트까지 입고 왔는데, 여기서 더 입어야 하나요?"
 
질문을 받은 팀장. 오히려 그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원님, 창고 안에 들어가시면 마이너스 20도입니다. 방한복은 필수 사항입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20도?
 
군 생활하던 철원 GOP에서 추워 뒤지기 직전에 체감한 바로 그 온도. 모집 요건 근무표에 적혔던 '냉동 피킹은 3천 원 추가 지급'이라는 문구가 이제서야 떠오른다. 팀장이 우리가 곧 맞이할 현실을 이야기하자, 저항하던 사람들은 황급히 각자 사이즈에 맞는 방한복을 찾기 시작했다.
 
방한복은 생각보다 크기가 컸다. 어떤 사이즈를 입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남자 팀장이 다가와 힌트를 준다.
 
"사원님, 제가 입은 게 라지 입니다."
 
"옷 위로 입는 건가요?"
 
"네, 옷 위에 바로 입으시면 돼요."
 

PAGE 9 우주복짤 pixabay.com 무료라이센스.jpg

딱 이 모습이었다...

 

방한복은 상, 하의가 결합한 형태로 몸을 밀어 넣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쉽게 우주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신규 센터인 만큼, 방한복에서는 섬유 냄새가 아직 진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저 냉동창고로 들어가 고객들이 주문한 물건을 찾는 것.
 
설마 죽기야 하겠어? 했지만, 솔직히 무서웠다. 대기실 밖까지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우주복을 착용한 사람들은 냉동 창고 너머를 개척하기 위해 모인 달 탐사대처럼 자리에 앉아 얌전히 팀장의 호출을 기다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