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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가 자동차를 지배하는 시대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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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제체 전 메르세데스 벤츠 CEO

출처-<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자동차는 이제 가솔린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달린다.“

 

2006~2019년까지 벤츠의 CEO로 군림(?)했던 디터 제체가 했던 말이다.

 

자동차의 ‘구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품은 전형적인 하드웨어다. 요즘 전기나 수소로 가는 자동차가 나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하드웨어 상의 변화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라니. 무슨 말일까. 자동차에 iOS나 안드로이드, 윈도우 운영체제 같은 뭔가라도 있다는 걸까?

 

조금 쉽게 접근해 보자. 20세기에는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이 아주 간단명료했다. 대략 이런 것들.

 

‘잔고장 없이 튼튼해야 하고, 에어컨은 춥다 느낄 정도로 잘 나와야 하며, 사륜구동까지 달려있으면 아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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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출시된 현대 뉴 그랜저

 

 

모두 하드웨어 그 자체인 요소들이다. 물론 이 요소들은 지금도 좋은 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 요소만이 좋은 차를 위한 기준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블루투스는 기본이고, 애플 카플레이가 지원되는지, 내비게이션은 어떤 브랜드의 맵 데이터를 활용하는지, 이른바 '반자율주행'이라고 하는 차로 유지 기능이 있는지,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OTA를 지원하는지’

 

등이 중요한 구매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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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내부

출처-<테슬라>

 

테슬라를 예로 들어보자.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테슬라를 주변에 권하지 않는다. 승차감이나 조립 품질이 경쟁차 대비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드웨어가 아주 좋지는 못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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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 많은 사람들이 테슬라를 구매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그들에겐 차를 고르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승차감이나 조립 품질 같은 하드웨어가 무조건적인 우선순위가 아니고, 하드웨어가 좀 떨어지더라도 오토파일럿, 루디크러스 모드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다양한 첨단 기능이 출중하다면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거다.

 

자동차를 선택할 때,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자동차 업계에서도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중 단연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앞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자율주행 흐름은 가열차게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는, 사람들의 자동차 구매 결정에 하드웨어적 기술력의 차이를 뛰어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전 벤츠 CEO 디터 제체도 언급했던 ‘소프트웨어가 운전자와 자동차 모두를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란 말이 괜히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는 자동차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자동차의 전자 장비들을 제어하는 컴퓨터, 즉 ECU를 예로 들어보자. 최초의 ECU가 탑재됐던 1968년형 폭스바겐 타입3에 내장된 코드 수는 약 5만 줄. 숫자만 봐선 많아 보이지만,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조사에 따르면, 최근 출시되는 차량의 코드 수는 1억 줄까지 늘었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50년 동안, 자동차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부분이 2,000배가량 늘어난 거다.

 

ECU의 비중은 더 커지고, 커지는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다. 완전 자율주행 단계에 접어들 경우에는 차량 한 대에 심어지는 코드는 약 3억 줄로 전망된다. 이건 숙련된 엔지니어 1명이 하루에 100개를 코딩한다고 해도 1,000명이 10년을 꼬박 코딩해야 처리할 수 있는 양이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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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속 ECU

 

시장도 자동차의 소프트웨어화를 본격적으로 거론하는 추세다. 자동차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2020년 30% 수준이었지만, 이는 2030년 들어 스마트폰과 유사한 수준인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맥킨지는 소프트웨어 시장이 2030년 500억 달러(한화 67조 4,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활용도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OTA) 분야다. 즉, 차량이 스마트폰처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늘 최신상태를 유지한다는 거다. 현재는 일부 브랜드를 중심으로 내비게이션 무선 업데이트나 인포테인먼트 디자인 개선 정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범위는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예정이다. 앞서 말했듯, 특히 가장 관심 분야는 역시 차량의 주행과 직결되는 시스템의 발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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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경우, 이미 OTA(무선 업데이트 방식)로 자신들의 주행 보조 시스템 오토파일럿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차가 제네시스 GV60을 시작으로 주요 라인업에 OTA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작년부터 출시되는 모든 차량에 OTA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는 물론, 운전자 지원 시스템과 서스펜션, 차량 ECU 업데이트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행 보조 시스템을 업데이트하여 더욱 고도화시키는 건 서스펜션, 전기모터, ECU 유닛 등 차량의 출력과 주행 성능을 제어하는 로직을 개선해 연비나 주행거리를 더 높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정도로 처리할 수 있는 리콜이나 무상 수리의 경우, 차량 소유주가 서비스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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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EQS(벤츠 S클래스 전기차)를 또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EQS의 경우, 스티어링 휠을 돌리면 앞바퀴는 물론 뒷바퀴까지 제어할 수 있는 후륜 조향 기능이 들어가 있다. 이를 통해 뒷바퀴가 최대 5도가량 회전하는데 딜러를 통해 특정 옵션을 구독할 경우 OTA(무선 업데이트 방식)로 뒷바퀴가 10도까지 회전할 수 있도록 관련 기능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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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EQS

출처-<메르세데스-벤츠>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과 성능을 조합해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차량을 만들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자동차가 하나의 디바이스가 되고, 오픈 마켓과 같은 플랫폼이 열리면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치해 차량의 기능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자동차도 스마트폰처럼 내가 원하는 기능만을 모아둘 수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 해킹 문제

 

이쯤 되면 궁금증이 하나 생길 테다. 문자메시지 링크나 앱만으로도 스마트폰이 해킹되는데, 자동차라고 그럴 법이 없냐는 것. 맞다. 이 부분은 자동차 업계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독일에서는 10대 소년이 OTA 분야에서 가장 선두하고 있는 테슬라 자동차 25대를 해킹해 강제로 시동을 걸고 문을 여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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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데일리>

 

아직 그런 일은 없었지만, 해킹에 대한 보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자율 주행 중인 자동차를 해킹해서 영화에서처럼 테러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자동차가 주고받는 특정 신호를 알아내면 얼마든지 해킹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게 보안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외에도 소프트웨어화가 진행될수록, 자율주행 시스템은 물론, 차 내에 연동되어 있는 운전자의 주소록이라든지 결제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는 정보 등 차 안에서 훔칠 정보는 더욱 무궁무진해질 거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아찔하다. 

 

 

한국의 상황

 

자동차 업계에서는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업체들이 화이트 해커를 고용해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혹은 커넥티드 카 기능의 보안을 강화하는 추세다. 최근 업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건 양자내성암호 기술. 슈퍼컴퓨터는 물론, 양자컴퓨팅으로도 해독이 어려운 암호 체계인데 이미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도입 중이고 우리나라에서는 LG전자와 LG유플러스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접목을 위해 연구를 수행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과 인력이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내연기관 분야에서 국산화율 99%를 달성한 것과 달리 미래 차 소프트웨어 국산화율은 40%에 미치지 못한다.

 

구글, 아마존 등 자동차 산업 진출을 노리고 있는 주요 기업들은 현재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자 채용을 늘리고 있다. 일본의 토요타는 신규 채용 인력의 40%를 소프트웨어 분야에 배팅하고 있다. 현대차도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권역에서 소프트웨어 인력을 대대적으로 채용하고 소프트웨어 연구 분야에만 18조 원을 쓰겠다고 언급했지만, 얼마나 관련 내용이 구체화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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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업계는 최소 지금보다 10배 수준인 1만 명가량 인력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을 추진하는 다른 나라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아직 소프트웨어 인력 양성을 위해 무엇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나온 게 없다. 소프트웨어 인력 확보는 단순히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시대의 흐름에서 정부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될까 말까 한 과제이다. 게다가 인구 절벽이 도래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은 그동안 IT산업같이 산업 자체가 소프트웨어 산업인 곳에서만 주로 필요했을 때도 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소프트웨어가 각종 전자, 자동차 등 하드웨어 산업에도 비중이 높아지면서 그런 산업에서도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니 더욱 인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관련 산업 회사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SPRi 조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는 연평균 19.5%씩 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연평균 9.2% 늘고 있다고 한다. 갈수록 인력이 부족해진다는 소리이며, 인구 절벽이 도래하면 더욱 걷잡을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근데 문제는,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자동차 업계 고민이 이것뿐만이 아니란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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