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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BC 다큐멘터리가 '인종 청소'라 하다

 

2002년 2월 말, 힌두교 성지에 순례를 다녀오던 힌두교도가 가득 찬 열차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면서 승객 6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북서부 구자라트 주(州)에서 발생한다. 화재가 발생한 고드라(Godhra)는 하필이면 이슬람교도가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이 고의로 열차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구자라트의 여러 도시에서 힌두교도는 이슬람교도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슬람교도도 반격에 나섰다. 끔찍한 폭력 사태가 며칠간 계속되었고 2002년 3월 구자라트는 피로 물들었다. 무려 천 명가량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800명가량이 이슬람교도였다.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을 일방적으로 '토벌'하는 동안 경찰 대응은 느리고 무기력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BBC의 녹화 화면에는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을 공격할 때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경찰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사망자와 부상자 중에는 인도 출신 영국 국적자들도 있었다. 영국 정부는 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했고 이들은 조사 결과를 외교 전문 형태로 영국 정부에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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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라 폭동은 힌두교 순례들이 탄 열차에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촉발했다

출처-<The Wire>

 

2023년 1월 영국의 BBC는 'India : The Modi question'이라는 다큐멘터리 2부작을 방영했다. 1부는 고드라 폭동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BBC 다큐멘터리에는 폭동 사건 직후 영국 정부가 파견했던 진상조사단의 보고서가 담겼는데, 내용이 소스라치게 놀라웠다. 우선, '이슬람교도들을 향한 체계적인 폭력행사는 인종청소에 해당하는 모든 특징을 보여준다'라고 적으면서,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과 이로 인한 엄청난 폭력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은 당시 구자라트의 주지사였던 나렌드라 모디'라고 결론내렸다.1)

 

집권 9년 차에 지지율이 78%라니😲 인도 행정에 기적을 일으킨 모디의 정치 전략은_|차이나는 클라스|JTBC 230326 방송 4-22 screenshot.png

출처-<유튜브채널 '차클 플러스'>

 

BBC는 폭력 사태 발생 초기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구자라트주의 경찰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을 소집한 회의에서 '힌두교도가 이슬람교도를 숙청할 때 개입하지 마라'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후 모디가 이런 발언을 했다고 양심선언 하였던 정치인이나 고위 경찰은 백주대낮에 살해당하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판을 받아 감옥에 보내졌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일례로 나렌드라 모디가 경찰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구자라트주 고위직 공무원은 당시 구자라트주 내무부 장관을 맡고 있던 하렌 판디야(Haren Pandya)였다. 그런데 그의 증언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고, 증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03년 3월 26일 이른 아침 자기 차 안에서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었다.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었으나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살해된 이후 차에 실려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 버려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게다가 고드라 폭동 당시 구자라트주 경찰정보국 부국장(Deputy Commissioner of Intelligence in the Intelligence Bureau of the State of Gujarat)을 맡고 있던 산지브 바트(Sanjiv Bhatt)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경찰 개입을 금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을 했다. 구자라트 폭동에서 나렌드라 모디 당시 주지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조사하는 특별조사위원회가 사건 발생 후 10년 만에 열렸지만 그의 증언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 이후 그는 2015년 경찰 직위에서 해임되었고, 2019년에는 석연치 않은 재판에 연루되어 종신형이 선고받은 후 현재 복역 중이다.

 

모디 총리_출처 헤럴드경제.jpg

나렌드라 모디 총리

출처-<헤럴드경제>

 

인종 청소. 이런 무시무시한 말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 前 세르비아 대통령이나 캄보디아의 폴포트(Pol Pot)에게나 어울릴만한 단어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인도 정부는 BBC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자 발끈했고, 인도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 항의를 했으며, 심지어 이 다큐멘터리가 유튜브에 올라오자 연결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야당은 고드라 폭동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와 처벌이 필요하다는 정치 공세를 다시 한번 펼쳤다. 집권당인 인도인민당(Bharatiya Janata Party, BJP)은 '2012년 2월 대법원의 특별조사위원회가 모디 총리에게 혐의가 없다고 이미 결론내린 사안을 왜 또다시 꺼내서 분란을 일으키냐?'며 반발했다. 고드라 폭동사건 21주년을 얼마 앞두지 않았던 2023년 1월 인도는 BBC가 던진 파문으로 몹시 시끄러웠다.

 

집권 9년 차에 지지율이 78%라니😲 인도 행정에 기적을 일으킨 모디의 정치 전략은_|차이나는 클라스|JTBC 230326 방송 8-33 screenshot.png

출처-<유튜브채널 '차클 플러스'>

 

2. 그런데 서울평화상을 받은 모디

 

서울평화상은 서울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념하여 1990년 한국 정부가 제정하였다.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격년으로 이 상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상금도 수십만 불에 달하는 제법 국제적인 상이다.2) 2019년 제14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는 다름 아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였다. 서울평화상 심사위원회는 "모디노믹스(모디 총리의 경제정책)를 통해 인도와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빈민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였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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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19년 2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에서 권이혁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상장을 받고 있다(출처-<연합뉴스>).

 

당시 모디 총리는 바쁜 일정을 쪼개 1박 2일로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주한인도인을 위한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간담회에 초대받은 인도인들 기억에 남은 모디 총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행사장 연단에 올라선 모디 총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경호원들과 행사 관계자들을 불러 참석자와 연단을 나누는 바리케이드를 치워버린 것이다. 소탈하게 웃으며 참석자에게 연단 가까이 오라며 손짓도 했다.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자세한 통계를 곁들여가며 인도 정부의 각종 정책을 타향에 사는 교포들에게 설명하는 그에게서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의 모습이 동시에 보였다고 한다. 무슬림을 향한 학살이 진행될 때 이를 수수방관함으로써 사실상 무슬림들을 인종청소 했다고 비난받는 정치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3. 올해 3선이 유력한 모디

 

현대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살펴봐야 하는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이다. 그렇다면 나렌드라 모디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힌두교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과격 정치인인가? 아니면 평화상을 받을 만큼 위대한 정치인인가? 나렌드라 다모다르다스 모디(Narendra Damodardas Modi)는 1950년 9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의 바드나가르(Vadnagar)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에 학업에 뛰어난 실력을 보이지는 않았다. 생계 때문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바드나가르 기차역 인근 아버지의 차 매점 장사를 도우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더불어 그는 10대에 인도국민의용단(Rashtriya Swayamsevak Sangh. RSS)이라는 힌두교 근본주의 단체에 가입하였다. RSS는 1925년 이탈리아 파시즘을 기반으로 설립된 단체로 현재 공식 회원은 약 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RSS 안에서 승진을 거듭한 모디는 1987년 RSS의 외곽 정치 조직인 인도인민당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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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 회원들이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출처-<Medium>

 

이미 풀뿌리 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모디는 1995년 구자라트 주의회(Gujarat Legislative Assembly) 선거에서 이긴 뒤 입지가 공고해졌고 결국 정치 입문 10여 년 만인 1998년에는 당 사무총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다. 2001년에는 건강 악화로 인해 인도인민당 소속 구자라트 주지사가 중도 사퇴하자, 5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당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주지사로 취임한다. 이후 2014년까지 구자라트주 역사상 최장수 주지사로 일하면서 구자라트 경제를 발전의 길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4) 구자라트의 경제적 성장 모델을 인도 전역으로 확산케 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총리 선거에 나선 그는 2014년에 당시 인도의회당 소속 총리였던 만모한 싱을 손쉽게 제치고 총리에 취임한다. 2019년에는 재선에 성공하여 2024년 5월까지 임기인데 많은 정치 평론가는 모디가 2024년에 3선에 도전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해내리라 보고 있다.

 

4. 역대급 총리의 등장

 

모디 총리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말은 일단 그가 기존 총리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태어난 최초의 총리이다. 그의 전임자인 만모한 싱 총리(1932년생)까지는 모두 영국 식민지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단 하루도 식민지인으로서 삶을 살아보지 아니한 순수한 자주 독립국 인도 시민이다. 둘째, 그는 속칭 '상위 카스트(Upper Caste 또는 Forward Caste)'가 아닌 '기타 후진 카스트(Other Backward Class)' 출신 총리이다. 제14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하기 전까지 총 13명의 총리가 거쳐 갔는데, 이들 중 단 1명을5) 제외하고는 모두 '상위 카스트' 출신이다.6) 참고로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브라만 출신 총리가 6명이다. 1947년 독립 이후 모디가 총리로 선출된 2014년까지 약 62년의 77%에 해당하는 47년을 브라만 출신 총리가 재임했다. 그나마 크샤트리아 계급에 속하는 만모한 싱 총리가 약 10년간 오랫동안 재임하면서 브라만 출신 비중이 줄어든 덕분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비율은 91%까지 올라갔을 터이다.7) 8)

 

집권 9년 차에 지지율이 78%라니😲 인도 행정에 기적을 일으킨 모디의 정치 전략은_|차이나는 클라스|JTBC 230326 방송 0-59 screenshot.png

출처-<유튜브채널 '차클 플러스'>

 

그 이전의 총리들과 교육방식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이전의 총리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석박사를 받거나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엘리트다. 초대 총리였던 네루(캠브리지대학교 졸업, 변호사)로부터 모디의 전임자인 만모한 싱(옥스포드 대학교, 경제학박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영국식 매너를 보유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영국 유학은커녕 어학연수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대신에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도 전역을 떠돌며 수행을 했다. 유명 힌두교 사원에서 힌두교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인도 유권자들이 경험하고 기대해 왔던 총리 모습과 사뭇 다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자라티어(모디 총리의 모국어로 주로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주에서만 쓰임) 억양이 잔뜩 섞인 투박한 힌디어로 선거운동을 해오던 그가 2014년 총선에서 이기며 총리에 취임하는 모습을 목격한 많은 인도인은 그야말로 '세상이 달라졌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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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국내총생산(GDP) 순위 5위를 기록한 인도 

출처-<헤럴드경제>

 

정치 노선도 기존 주류 정치인들과 확연히 다르다. 모디 총리 이전 인도는 인도의회당이 집권 아래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은 체제였다. 반면 모디 총리 취임 뒤 인도는 인도인민당이 집권 속에 자본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인도에서는 힌디어나 자기 동네 언어(vernacular)보다는 영어에 더 익숙한 엘리트 계층이 농촌 지역 부농(富農)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유지했다. 반면 모디 총리는 영어보다는 구자라티어 또는 힌디어가 더 익숙한 투박한 이미지이며, 도시 중산층과 지역 소농(小農)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전직 총리들이 대중과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반면 9천만 명의 X(옛 트위터) 팔로워를 가진 모디 총리는 훨씬 대중 친화적이다. 그 이전 인도가 이슬람교를 포함한 소수 종교에도 비교적 유화적인 정책을 폈다면 모디 총리 이후 인도는 힌두교를 우선시하는 종교·사회정책을 내세운다. 외교면에서 과거 인도가 비동맹 중립외교를 내세우면서 실상은 구소련과 그 뒤를 이은 러시아와도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면, 모디 총리 집권 이후에는 미국·일본·유럽연합 등과도 적절하게 협력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접촉면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9)

 

게다가 '달라진 인도'를 상징하는 중심인물인 모디 총리는 과거 정치지도자들이 누렸던 것보다 훨씬 높은 지지도와 인기를 누린다. 평균 70%가 넘는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그가 2024년 3선에 도전한다면 무난히 성공하리라는 예측이 흘러나온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제 그는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총 재임 기간 16년)에 근접하는 재임 기간으로 역대 2번째 장수 총리가 될 터이다. 이렇다 보니 친정부 성격의 언론에서는 그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듯한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반면 야당과 비판적 언론에서는 '모디 총리가 이제는 인도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를 흉내 내려는 것이냐'며 날 선 비판이 나온다. 그렇지만 대중의 모디를 향한 지지는 확고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자신들의 날로 어려워지는 살림살이에 농민들이 뉴델리를 봉쇄하는 시위에 나섰다. 2년 만에 다시 벌어진 농민 시위가 뉴델리를 서서히 압박해 가고 있지만 2024년 봄에 있을 인도 총선에서 모디 총리의 3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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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각국 정상 지지율 지표에서

1위를 차지한 모디 총리

출처-<Visual Capitalist>

 

모디 총리가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는 데에는 인도 유권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의 표심 변화도 한몫한다. 이제 인도 유권자들은 더 이상 인도의회당이 수십 년간 이끌어왔던 과거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다종교와 다민족이 관용적으로 살아갔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대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한다. 강하고 부유하며 종교나 정치적으로 통일된 인도를 원한다. 급격하게 소득이 늘고 있는 도시 중산층에게 농민의 고통은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아니다. 인도 전체 인구의 80%가 넘는 힌두교도에게 인도인민당의 노골적인 무슬림 차별 정책은 큰 관심사가 아니다. 경제성장률이 7%를 넘나드는 세계 5대 경제 대국이 되었는데 과거에 벌어진 폭동 사건이 무슨 큰 대수겠는가. 2023년 10월부터 12월까지 인도 경제는 전년 동기대비 무려 8.4% 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고, 고드라 폭동사건 22주년이었던 2024년 2월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쿠마르의 인도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1) BBC 다큐멘터리가 공개한 보고서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The systemic campaign of violence has all the hallmarks of ethnic cleansing.. 중략... Narendra Modi is directly responsible.”

2) 수상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1996년 제3회 수상자는 '국경 없는 의사회', 제6회 (2002년) 수상자는 세계적인 구호단체 '옥스팜', 제7회 (2004년) 수상자는 체코 민주화의 아버지 '바츨라프 하벨', 제9회 (2008년) 수상자는 북한 인권 전문가인 '수잔 숄티', 제12회 (2014년) 수상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나름 훌륭한 업적을 이룬 개인이나 단체가 수상하였다.

3) 한편, 우리나라의 많은 시민단체들은 그가 구자라트 주지사로 재직하던 2002년 당시 수많은 무슬림이 생명을 잃은 '고드라 폭동 사건'의 사실상의 책임자라면서 '전두환에게 평화상 준 꼴'이라는 격한 반응을 쏟아내기도 했다. (2018. 10. 25자 경향신문 보도기사 참조)

4) 구자라트 주지사를 지내면서 모디 당시 주지사는 대기업 친화적 정책과 결합한 투자유치정책, 부정부패 척결, 각종 기술 개발 등에 경제정책의 방점을 두었다. 실제로, 2007년에는 인도 지방자치 단체로는 처음으로 투자유치 목적의 대규모 콘퍼런스인 Vibrant Gujarat Summit을 개최해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는데, 이후 많은 주들이 이를 모방하기도 했다. 농업 생산성 향상에도 관심을 많이 기울였고 그 덕분에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구자라트의 농업 부문은 연평균 10.9%를 성장하면서 인도 전체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5) 유일하게 데브 고다(Deve Gowda)(재임 : ‘96. 7월 - ’97년 4월)만이 모디 총리처럼 이른바 ‘기타 후진 카스트(Other Backward Caste : OBC)’였는데, 그의 재임 기간은 채 1년도 안 된다.

6) 인도 인구에서 ‘상위 카스트’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계급을 통칭하는데, 다 합쳐서 겨우 인구의 25% 수준이다. 이중 브라만 계급은 전체인구의 5%가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OBC는 보통 수드라 계급이며 인도 인구 2명 중 한 명이다. 속칭 달리트(Dalit)라 불리며 공식 명칭은 ‘지정카스트(Scheduled Caste)’)인 불가촉천민과 ‘기타 부족(Scheduled Tribe)’이 합쳐서 남아있는 1/4을 차지한다.

7) 모디 전임자였던 만모한 싱 총리는 힌두교도가 아니고 시크교도였다. 시크교도는 힌두교의 계급 차별에 반기를 들고 만들어진 종교이기는 하지만, 보통 인도 사회에서는 시크교도들에게도 일정한 카스트 계급을 대응시키는 풍습이 있다. 만모한 싱 총리의 가문은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분류된다.

8) 이외에도 지역적인 특징도 있다. 전임 총리 중 여덟 명은 인도 중북부에 소재한 인구 2억 명의 대형 주인 우타르 프라데시 출신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인도에서 총리가 되려면 우타르 프라데시 출신이어야 하는 건데 모디 총리는 우타르 프라데시가 아닌 구자라트주 출신이다. 모디 이전에도 구자라트 출신의 모라르지 데사이 총리가 있긴 했지만, 1970년대의 이야기이고 재임 기간도 2년 남짓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The office of Prime Minister: A largely north Indian upper-caste, Hindu affair’, Business Standard, 2014. 5. 7자 기사 참조

9)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설명한다는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사회주의 vs 자본주의), 외교(비동맹외교+구소련 우선 vs 친미, 친유럽 외교 성향 증가), 종교(종교적 관용주의 vs 힌두교 우선주의), 정치적 지지기반(지역 부농과 엘리트층의 결합 vs 도시 중산층과 지역 토착 정치세력의 결합), 심지어 주로 사용하는 언어(영어 중심 vs 힌디어 또는 지역 방언)까지 모디 총리는 그 이전의 인도 정치지도자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모디 총리는 이렇게 ‘달라진 인도’를 이해하는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하겠다.


추신

 

편집자 주: 2023년 여름 쿠마르님의 책이 2권 출간되어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 

 

- 전 세계를 이끄는 'G20' 회의의 2023년 의장국 인도!! 이제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이자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등극한 남아시아의 강국 인도를 분석했다. 방송과 유튜브의 자극적 영상이 담지 못한 진짜 인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도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적었다. 특히, 중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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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인도>
 
- 카레 이야기도 없다. 요가 이야기도 없다. 오로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 인도의 경제, 산업, 기업 그리고 기업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미래 경제를 알기 위해 이제 인도는 교양 필수!! 인도 경제를 통해 미래 경제 트렌드를 알아보고자 희망하는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