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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선언

 

19살 때부터 여러 공장과 회사, 심지어 직업군인까지. 주성은 20대 내내 수차례 직장을 옮겼다. 그런 만큼 부침이 많았다. 동분은, 그 모든 게 자기 탓처럼 느껴졌다. 부모 잘못 만난 탓에 큰아들이 고생하는 거 같아, 두고두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동분이 비로소 안도한 건 주성이 택배기사를 시작한 2011년부터다.

 

“결과적으로 니네 형한텐 택배기사가 딱 적성이었던 거 같어. 니네 형이 책상에 앉아있을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대처럼 여러 사람 모인 집단에서 위아래 눈치 보고 스트레스받으며 일할 스타일도 아니고. 택배기사는 하루 죙일 혼자 왔다 갔다 하는 거잖어.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자기한테 할당된 물량만 묵묵하게 소화하면 되니까. 어쨌거나 29살에 시작해서 벌써 10년 넘게 하는 거니까 니네 형도 만족한다는 얘기 아녀? 벌이도 괜찮은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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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그때부터 착실하게 돈도 모으고, 가끔 연애도 하는 것 같던 주성이 폭탄선언한 건 2016년. 주성 나이 34살 때다. 여간해선 속 얘기 잘 안 하는 주성이 동분과 송일영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부르더라는 것. 한참 뜸 들이던 주성은, 베트남에 가겠다고 했다.

 

“이것도 참~ 특이한 건데, 니네 형 꿈이 대가족이었잖어. 평생 엄마, 아빠 모시면서 자식도 한 서너 명 낳아가지고 복작복작하게 살고 싶다고, 옛날부터 그랬었잖어. 근데 니가 한번 생각해 봐라. 요즘 세상에 누가 시부모 모시면서 자식을 서너 명씩 낳으려고 하냐고. 니네 형 한다는 말이 나름대로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는 겨. 근데, 대가족 얘기만 하면 다들 도망갔나 봐. 당연한 거 아니냐? 호호호.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우연히 베트남 국제결혼 영상을 봤던 모양이더라고.”

 

그것이 34살 주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베트남 여성과의 국제결혼. 대답 기다리는 주성에게 동분은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당장 반대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동분 나름대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가능성이었다. 하여 당황스러웠던 것.

 

먼저 침묵 깬 건 송일영이었다. 주성 얘길 듣자마자 안 된다고, 딱 잘랐다. 당시 62살이었던 송일영은 ‘다문화’보다는 ‘혼혈’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옛날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주성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으리라.

 

“니네 형이 그러는 겨. 이날 이때까지 자기가 단 한 번이라도 엄마, 아빠 말 안 들은 적 있냐고. 이번 한 번만 자기 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니네 아빠가 할 말 있냐? 주성이 말대로 34살 먹을 때까지 아빠 뜻대로 살아왔잖어. 더군다나 우리가 니네 형 도움을 얼마나 많이 받았냐. 아닌 말로, 엄마나 아빠나 이래라저래라 말할 자격도 없지, 뭐. 그저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지.”

 

결국, 주성은 택배기사하며 모았던 돈을 털어 베트남 비행기에 올랐다. 베트남 국제결혼 중개 업체 수수료는 그 당시에도 대략 1,000~1,500만 원 정도였다. 예비 신랑의 왕복 항공료와 베트남 체류비, 예식 및 신혼여행 경비, 통역가이드비 등을 포함한 가격이다.

  

40명과의 맞선

 

자, 지금부터는 주성이 동분에게 풀어놓은 ‘6박 7일 베트남 여정기’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그 당시 주성은, 베트남 국제결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베트남 여성은 한국 남성이라면 무조건 OK’라는 기대 말이다. 물론, 아예 근거 없는 기대는 아니었다. 이하는 형수님(주성의 아내)에게 전해 들은 내용과 통계자료 및 기사를 참조한 내용이다. 사실과 다소 다를 수 있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과 베트남 전쟁(1960~1975) 등을 겪었다. 이 전쟁으로 무수히 많은 베트남 남성이 사망했다. 최소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만 명 이상이 부상당했다고 추정한다. 전쟁 후, 베트남엔 남성 자체가 귀한 세상이 됐다. <머니투데이> ‘이재은의 그 나라, 베트남 그리고 국제결혼’ 시리즈 기사에 따르면 베트남은 2004년까지도 결혼 적령기인 여성의 성비가 더 높았다.(여성 100명당 남성 96.7명)

 

여기에 그릇된 유교 문화까지 더해져 남성은 놀고먹고, 여성이 농사와 집안일까지 도맡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다. 참고로 베트남은 기원전 111년부터 930년까지 약 1000년간 중국 지배를 받았으며, 지금도 중국 충쭤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오랜 세월 중국 영향을 받은 나라다.

 

그런 한편,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초고도 성장기를 거쳤다. 이에 따라 한국 남성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선입견이 베트남에 퍼진 거다. 이에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한국 남성에 대한 환상이 과거 언제까지는 실재했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 남성-베트남 여성 간 국제결혼은 2000년 61건을 시작으로 조금씩 증가해 2007년 7,685건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점차 감소해 주성이 베트남에 갔던 2016년엔 3,798건이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며 베트남 남성들도 예전처럼 놀고먹지 않는다. 뿐더러, 국제결혼 초창기에 주로 ‘나이 많은 시골 농부’가 베트남 여성과 결혼했다. <농촌여성신문> ‘농촌의 미래, 결혼이민여성 역할에 달렸다’ 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혼인자 중 국제결혼 비중은 9.9%인데 반해, 농촌지역 남성의 국제결혼 비중은 20.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른 여러 갈등과 부작용이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한국 남성이면 무조건 OK’ 하던 환상도 점차 없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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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결혼원정기>

 

그런 사정도 모르고 베트남으로 떠난 주성. 헛된 희망은 첫날부터 박살 났다. 베트남 여성은 자신을 무조건 좋아해 주고, 그 가운데 마음에 드는 여성을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더군다나 그때 주성 나이 겨우 34살이었다. 한국 기준으로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국제결혼 희망하는 한국 남성치고는 상당히 젊은 축이었다. 그런 데다가 밥벌이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택배기사 돈 많이 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년 국제결혼중개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개 업체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43.6세, 결혼이민자의 평균 연령은 25.2세였다.(<동아일보> ‘CNN, 한국 농촌 매매혼 집중 조명…지방정부가 장려’ 기사 참조.)

 

그런 주성은 첫날, 베트남 여성 40명에게 퇴짜 맞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물론, 전부 퇴짜 맞은 건 아니었다. 주성이 마음에 들면 상대방이 싫다 하고, 상대방이 주성을 마음에 들어 하면 주성이 탐탁지 않았다. 여하간 무려 40명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여기서 잠시, 베트남 국제결혼 과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국에 베트남 국제결혼 중개 업체가 있다. 이곳에서 한국 남성들에게 수수료(위에서 언급했듯, 예비 신랑의 왕복 항공료, 베트남 체류비, 예식 및 신혼여행 경비, 통역 및 가이드비 등을 포함해 2016년 기준 1,000~1,500만 원) 받고 모든 과정을 진행해 준다. 이 중개 업체 경쟁력은 현지 ‘마담’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다. 이 마담(현지에서도 마담이라고 표현한다)이 말하자면 중매인이다. 베트남 현지에서 국제결혼 희망하는 베트남 여성들을 관리한다. 국제결혼 희망하는 한국 남성이 중개 업체에 신청하면, 한국 중개 업체와 현지 마담이 맞선 일정을 조율한다. 확정되면 한국 남성(1~4명. 주성은 혼자 갔다)이 베트남으로 간다. 도착한 날부터 하루나 이틀간, 베트남 여성 수십 명과 짧게는 1명 당 5분, 길면 30분가량 맞선을 본다. 당연히 통역사가 동석한다.

 

맞선 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그 당일이나 다음날 예비 처가 가서 인사드린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약혼식하고, 곧바로 2박 3일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일정을 6박 7일 안에 소화해야 한다. 그러니 실제로는 베트남 도착 후 최대 이틀 안에, 결혼 상대를 결정해야 하는 거다.

 

한류 열풍이 맺어준 운명

 

주성은 아침에 베트남 도착하자마자 짐도 못 풀고 맞선 보기 시작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질문 또 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어스름 떨어졌다. 허탈하게 숙소로 돌아온 주성. 어떤 심정이었을까. 당시 주성은 이런 생각을 했더란다.

 

‘아, 이게 아닌데. 지금이라도 짐 싸서 한국으로 갈까. 그럼 수수료를 좀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지?’

 

주성 딴엔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다만 얼마라도 돌려받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그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는 사이, 피로가 밀려와 설핏 잠이 들었단다. 그도 그럴게 전날 저녁 대전에서 인천으로 갔다. 공항에서 밤을 꼴딱 새우다시피 했다. 새벽 비행기에 올라 아침에 베트남 도착했다. 그때부터 베트남 여성 40명과 종일 맞선 봤다. 숨 가쁜 하루였다. 까무룩, 30분이나 잤을까. 중개 업체 직원한테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마담 명단에 등록된 사람은 아니고, 마담 ‘사촌동생’이 한 명 있는데 자기도 한국 남자랑 맞선 한번 보고 싶다고 하네요. 이제 퇴근해서 지금 올 수 있다는데, 한번 보실래요? 보신다고 하면 숙소 로비로 오라고 할게요. 아니면 오늘은 그냥 쉬셔도 되고요.”

 

이미 반쯤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굳이 숙소 로비로 오겠다고 하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심정이었다. 얼마나 기대 안 했으면 잠들었다 일어났던 복장 그대로 내려갔다. 흰색 반팔 티에 반바지, 맨발에 슬리퍼 신은 채로 말이다. 거의 잠옷에 가까운 복장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성은 거기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던가. 무심한 듯, 숙소 로비에 서 있던 ‘사촌동생’에게 주성은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벌써 심장이 요동쳤지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이 먼저 물었다. ‘사촌동생’은 24살이라고 했다. 그것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성이 맞선 본 베트남 여성 중에선 가장 많았다. 사실, 주성이 베트남 여자 40명과 맞선 보며 가장 고려한 건 나이였다. 나이 차이가 너무 크면, 그만큼 결혼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다. 주성은 ‘24살’이라는 나이가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사촌동생’은 자신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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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의 아내, 이나은(한국명, 몇 해 전 한국 국적 취득했다

 

‘사촌동생’은 원래 국제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던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한 후,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태양의 후예>(2016년 2~4월 방영)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뒤늦게 한류 열풍에 합류했던 것. 그런 찰나에, 그러니까 <태양의 후예>가 종영하고 두 달이 지난 2016년 6월, 마담 일하는 사촌 언니한테 전화가 왔단다.

 

“너 요즘 한국에 푹 빠져 있잖아. 오늘, 허우대 멀쩡하고 젊은 한국 남자 하나 왔는데, 너 맞선 한번 볼래?”

 

그렇게 된 거다. 사촌 언니의 즉흥적인 제안에 즉흥적으로 응했던 것뿐.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불러준 주소로 왔고, 그곳에서 주성을 만났다. 이 또한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사촌동생’ 또한 주성을 보자마자 인상이 참 좋았단다. 뽀얀 피부에 하얀 티셔츠를 입어서인지, 사람이 더 깔끔하고 선해 보이더라는 것. 그것이 주성 입장에선 거의 잠옷에 가까운 복장인 줄도 모르고. 주성은 나중에 그 얘길 듣고, 헛웃음이 나왔다. 나름대로 맞선 본답시고 한국에서(정확하게는 대전에서 인천을 거쳐 베트남 하이퐁까지) 검은색 정장 고이 챙겨왔다. 땀 삐질삐질 흘리며 종일 입고 있었다. 그 모든 게 헛수고였던 거다. 이래서 사람 일 모른다고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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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동생’이 주성에게 가장 먼저 물은 건 띠였다. 베트남은 띠를 굉장히 중시하는 나라다. ‘사촌동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전부터 돼지띠와 결혼해야 행복하게 살 거라는 얘길 들었단다. 하여, 다른 모든 조건이 맞아도 돼지띠가 아니면 절대 결혼 안 할 거라고 다짐했었다. 마침 주성이 돼지띠였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술 담배 안 하는 사람. 술이야 송일영에게 물려받은 핏줄이니 말할 것도 없다. 큰아들 주성이나 작은아들 주홍이나 술은 입에도 못 댄다. 다만, 담배는 송일영이 하루 두 갑을 더 피운다. 그 핏줄 받아 작은아들 주홍도 하루 두 갑은 꼭 피운다. 근데 이상하게도 큰아들 주성만 담배도 안 피운다. 고로, 주성은 모든 조건을 통과했다. 선한 인상과 돼지띠, 술 담배 안 하는 사람. ‘사촌동생’은 다 좋으니, 결혼하자고 하더란다.

 

“그래도 부모님 허락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부모님은 저만 좋으면 무조건 허락하실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전화를 한 번 해보시죠?”

 

그렇게 얼떨결에 예비 장모와 통화한 주성. 예비 장모는 주성에게 돼지띠가 확실하냐고 물었고, 그렇담 딸이 좋다고 하니 자신도 ‘오케이’라고 하더란다. 주성이야 이미 첫눈에 반한 터였고, 시원시원한 성격과 태도에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17년 봄 동분과 송일영, 주성이 함께 베트남으로 건너가 전통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주성의 아내가 한국에 왔다. 그해 가을, 한국에서 다시 한번 결혼식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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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 한국에서 결혼할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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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일영, 동분, 이나은, 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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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의 아내, 이나은 씨가 결혼 직후 직접 그린 그림과 손편지

편지 속 ‘태양이’는 첫째 아이 송요섭(현재 7살) 군 태명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한류 열풍에 합류한 이나은 씨가 지은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