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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인 친구에게 대통령 소개하기

 

자기소개서를 써 본 사람은 안다. 자기소개서 페이지를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던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자소서' 쓰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만약 자소서를 써 본 경험이 없는 부모라면 자소서 페이지를 두고 멍하니 앉아 있는 자녀를 보면서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자기를 소개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

 

사실에 근거하여 때로는 자기를 타인들보다 매력 있게 소개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소개하는 것은 고민을 요한다. 아울러 자기소개를 할 때 읽는이가 보기에 눈에 띄는 내용을 담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자기 객관화는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을 보는 것과 함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이 비교는 자신을 낮추거나 높이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정치에서도 이런 비교,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독일 친구에게 우리 대통령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상대방이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에 노출되어 있다면, 여러 맥락 속에서 윤 대통령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이미 평가를 내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만약 그 상대가 독일이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라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몇 가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위 질문에 답해보려고 한다.

 

2. 코미디언이 대통령을?

 

2019년 4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새롭게 당선된 젤렌스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선에는 무려 39명의 후보자가 등장했다. 그 가운데 젤렌스키는 1위를 기록하며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결선투표에서 그는 73%의 득표율을 보이며 페트로 포로셴코 전임 대통령을 압도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만 41세였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젤렌스키의 등장은 유럽에서 하나의 이슈였지만, 이보다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것은 그가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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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19년 4월 키이우 의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서 권력의 상징인 철퇴(mace)를 들어 보이고 있다(출처-<AP>).

 

젤렌스키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기 전 정치 경험이 전무했다. 2015년 우크라이나에서 방영한 '국민의 일꾼'이라는 TV 드라마에 그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고등학교 교사가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항하다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내용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부패하고 답답한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국민에게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러자 드라마에서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가 현실에서도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당을 창당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2018년, 젤렌스키가 당시 드라마를 제작했던 제작자들과 함께 창당한 정당이 바로 '국민의 일꾼'이다.

 

이 시기 나는 런던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유학 온 빅터였다. 나와 빅터는 비서구권 학생이라는 동질감으로 자주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했다. 공부하다가 힘들면 학교 카페에서 1.5파운드짜리 커피를 사서 학교 옆 공원을 산책하곤 했다.

 

하루는 내가 빅터에게 어떻게 코미디언인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이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쉬며 젤렌스키보다는 당시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의 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부패한 권력들의 민낯,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분열된 우크라이나의 정치 현실, 기반이 약한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 등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겉으로 그래도 어떻게 코미디언이 갑자기 대통령이 되냐며 그를 놀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2018년 한국에서 시민들이 나서서 잘못된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혁명을 생각하며 우쭐대었던 기억이 있다. 이 우쭐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창피함으로 바뀌었다.

 

3. 히틀러의 딸이 대통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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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5일, 대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간기념회

출처-<연합뉴스>

 

하루는 도서관이 아닌 학생회관 커피가게에서 논문을 보고 있었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학생이 내 자리에 와서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처음 보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내게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했더니 계속해서 대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영국에 정치학을 공부하러 왔던 독일인 여학생이었다. 그 친구가 내게 이야기를 건넨 이유는 다름 아닌 'BTS'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BTS 팬 '아미(ARMY)'였다.

 

나는 그때까지 BTS를 모르고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BTS의 사진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때야 비로소 독일인 친구를 통해 BTS를 알게 되었다. 한참 BTS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 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반도 국제정치 이야기로 대화 주제를 옮겨 갔다. 그 친구는 2016-17년에 한국에서 있었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물었다. 질문을 받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일 친구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어떻게 설명하지?"

 

당시 촛불시위를 야기한 주체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설명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대화를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 독일 친구의 관점에서 보면 2012년도에 한국에서 선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것은 2012년도에 독일에서 히틀러 딸이 독일 총리로 선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자기 객관화'를 그 독일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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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2년 12월 17일 자 아시아판에 '권력자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이라는 제목과 함께 당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의 인생과 대선 판도, 주변 인사 평가 등을 담은 기사를 내보냈다. 내용 중에는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Strongman도 종종 '독재자'의 의미로 표현되기도 한다(출처-<TIME>).

 

물론 최근 독일을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극우 정당이 등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최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극우 정당이 약 2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독일 사회는 물론 전 유럽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이 극우 정당에서 독일을 대표하는 수상이 배출되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의 딸이 수상이 된다는 것은 여전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독일 친구와 대화를 하며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절감했다. BTS, 오징어게임, 기생충과 같은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이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세련되고 매력 있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다음과 같이 자문하며 다시 한번 절감한다.

 

"독일 친구에게 윤석열 대통령을 어떻게 소개하지?"

 

4. 젤렌스키보다 더한 윤 대통령

 

만약 BTS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독일 친구가 윤석열 대통령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약 25년 동안 검찰 공무원이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하다가 바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해서 대통령이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독일 친구 관점에서 보면 약 25년 동안 독일 법무부 또는 검찰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사민당 정부에서 고위 공직자로 참여했고, 다음 해 선거에서 바로 기민당에 입당해 기민당 소속으로 수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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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충북 옥천군

고(故) 육영수 여사 생가를 방문해

묵념하는 윤 대통령(출처-<연합뉴스>)

 

지난 2년 동안 윤 정부의 정책과 여러 스캔들을 논하기에 앞서, 윤 대통령의 등장과 당선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 정당정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정치학 교과서가 아닌 일반적인 상식에서 대의 민주주의는 정당이 중심이 되고, 정당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다. 즉, 정당은 정체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전혀 정당 경험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진보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이듬해 바로 보수 정부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수 있다는 말인가.

 

네이버에 등록된 윤석열 대통령 프로필을 보면 그는 2019년 7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어떤 정당에도 가입할 수 없는 검찰 공무원이었다. 2021년 3월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2021년 7월 불과 4개월 만에 국민의힘 대통령 예비후보가 된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 정당정치가 잘 작동하는 정당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태다. 이것은 바로 '인기영합주의'다.

 

나는 2019년 우크라이나에서 코미디언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친구를 놀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젤렌스키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은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사례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젤렌스키는 3년 동안 드라마에서 대통령 역할을 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도 한 경험이 있고, 스스로 정당을 창당해 대통령 선거에 임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진보 정부에서 임명한 고위 공직자였는데 마치자마자 자신의 정체성에 기반해 정당을 창당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불과 4개월 만에 보수정당에 입당해 대통령 예비후보가 된 것이다. 몇 년 전 젤렌스키가 당선된 우크라이나를 이야기하며 빅터를 놀렸던 내 낯이 한없이 뜨거워진다.

 

우크라이나 친구, 그리고 독일 친구와, 겪었던 두 가지 경험을 기반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등장 자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내가 영국에서 공부하던 당시 대통령은 '문재인'이었다. 그의 공과를 떠나 BTS 등 세련된 한국문화를 통해 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여타 영역까지 좋은 이미지로서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국을 바라보았다. 2010년대 몇 년 동안 유럽에서 살아본 경험에 비춰볼 때 문 대통령도 수혜를 본 면이 있다고 본다. 지금 전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의 위상은 대통령이 특출나지 않고 자기 역할만 하더라도, 문화콘텐츠로 인해 대통령까지 그 후광을 입을 수 있는 여건을 이끌어내는 정도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외국 친구들에게 대통령을 얘기할 때가 있다. 그때 느끼는 게 있다. 창피함. 그 창피함의 근원은 정체성이 결여된, 인기영합주의만 남은 한국 정당정치다.

Profile
이름은 박민중입니다.
생일은 3.1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