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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진보의 진보

2012-03-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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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1. 수요일

너클볼러


 


아내와 선배, 대학동기 한놈, 이렇게 넷이 치악산 밑으로 캠핑을 갔다. 가는 길에 비가 내리더니, 텐트를 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술판을 벌리기 시작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공기 좋은 곳에 텐트 치고 술먹기 시작하믄 이거 감당이 안 된다. 평소 주량의 1.5배는 먹게 된다는 게 진리. 게다가 겨울 캠핑장엔 사람들도 많지 않아 눈 내리는 소리가 우박 떨어지는 소리처럼 귀에 박힌다. 다행히 요즘 캠핑장비들은 상당히 괜춘한 터, 생겨울밤에 술 쳐묵하고 자빠져 자도 입 돌아가진 않는다. 진짜다.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나 밥묵고, 또 잠깐 자다 일어나 근처 횡성한우마트에서 이것저것 사다 근사하게 낮술판을 벌렸다. 몇 잔 먹지도 못하고 안주나 축내다 잠에 들었다. 집에선 낮잠도 잘 자질 않는데, 밖에선 이렇게 잘 잔다. 신기하게… 그러다 다투는 소리에 깼다. 선배와 동기는 술에 질펀하게 취해 있었고, 아내는 옆에서 자고 있었다.


 



동기 : 형은 문제야. 왜 무조건 싫다고 그래.

선배 : 싫어, 싫은데 문제 있어?

동기 : 도대체 왜 싫어, 그 선배 괜찮은 사람이라니깐.

선배 : 싫다니깐. 싫다고…

동기 : 경기동부출신이어서?

선배 : 그래. 왜. 그럼 안 되냐. 경기동부여서 무조건 싫다고. 이제 됐냐.



 


둘의 논쟁. 아니 술꼬장을 한참을 듣고난 후 맥주를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아 씨바 시끄러 죽겠네'



 


내가 그 둘을 좋아하는 이유는 술을 아무리 쳐묵해도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그 둘은 잠시 투덜거리다 이내 조용히 내가 끓여준 라면만 먹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경기동부 얘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경기동부 얘길 할 일도, 들을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늘 트위터 타임라인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경기동부', 이 네 글자를 보믄서 느꼈다. '올 것이 왔구나. 근데 참 늦게도 왔다.' 이렇게…


 



 


난리법석


 


크게 보믄 NL과 PD의 노선과 이념 차이가 문제라 했겠지만, 진짜는 NL 내부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경기동부'라는 앙꼬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건 인천이건, 울산이건 마찬가지일 게다. 서로의 조직에 활동가를 보내는 일종의 '도장깨기'를 시도하기도 했으니 누가 잘했고, 누군 못했다 할 일이 아닌 거지. 더욱이 어제 오늘일도 아니고… 각자가, 혹은 서로를 같은 진보라 칭했고, 같은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뀐 세상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였다.  정말 헌신하는 훌륭한 활동가들은 버티거나 소진되었다. 여전히 내가 아는 선배가, 동기가, 후배가 자신 아닌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삶을 권력을 위해 동원하고 있다. 진보의 깃발 아래 촌스런 정치판이 벌어진 것이다. 전국연합 시절부터, 민주노동당 창당 전후, 이후 내가 정리하고 나오기까기 1-2년 동안 경기동부 얘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안타깝게도 그건 경기동부의 문제가 아니었다. NL 전체의 문제였지.


 


나의 관등성명은 '조직일꾼'이었다. 허나 6-7년 후 탈영했다. 이념의 체득에 실패했고, 개인보다 조직의 운명을 우선시하는 프로세스를 감당하지 못했다. 전반적인 자질 부족이었다. 제대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끝은 '튀는' 것이었다. 그렇게 '듣보스런' 내가, NL이니 지랄이니 떠드는 것도 우습긴 하다. 헌데 슬프고, 화가 나고, 미안하다. 진심이다. 지금의 조직과 무관한 내가 이럴진대, 진심으로 헌신하는 활동가들에겐 어떤 의미겠는가. 정말이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게다.


 



 


정진후, 이정희, 윤원석들로 설명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충분히 권력화되어있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의 일부일 것이다. 권력은 이념을 뒤튼다. 뒤틀린 이념으로 발기한 권력이 어떤 것인지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밴드를 붙여서 나을 상처는 딱 그만큼의 상처이어야 가능하다. 꿰매야 할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건 이념이고, 노선이고, 조직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처는 곪고, 주위는 썩는다. 그렇게 상처를 가리고 있다간 온몸이 썩는다.


 


적어도 상처를 드러내고 잘라낼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다행인 것이다. 여전히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외면을 원치 않는다면, 땀흘리며 현장을 누비는 활동가들을 잃고 싶지 않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털고 갔으면 싶다. '지금은 총선 직전이니깐 일단 덮고 갈께요' 이러믄 너무 쪽팔리지 않은가. 결국 많은 이들이 진보의 진보를 바라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저 '진보의 진보', 이 요구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너클볼러

twitter: @Knuckleballer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