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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2. 목요일

산하


 


스포츠의 세계, 그것도 총력을 기울인 건곤일척의 승부라면 치열하기 그지없다.  반칙은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프리킥을 허용하거나, 짐승 같은 백태클도 감행된다.  그 결과로 옐로 카드도 받을 수 있고 심하게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 이는 그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 그것이 룰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주먹을 날리거나 이단 옆차기를 감행한 사람보다, 관중이 야유한다고 열받는다고 방망이 집어던진 선수보다 더 큰 죄로 다스리는 일이 있다. 승부조작이다.


 


비록 그 가담이 경미하고 그로 인해 얻은 이익이 적다 하더라도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이 드러나는 순간 그는 경기장이 아니라 해당 종목의 선수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그것은 해당 종목의 존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조작에 가담한 선수만이 아니라 전혀 무관한 모든 선수들의 유니폼에 검정 먹물을 들일 수 있는 일이며, 그들에 대한 신뢰를 바닥에서부터 와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룰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룰을 죽이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거라는 이름의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많은 민의를 수렴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선거 방식, 선출 방식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등장했다. 비단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 자치제 선거에서만이 아니라 밀실에서 결정되던 정당의 후보 선출에도 국민 경선, 모바일 투표, 여론 조사 등 다양한 경로가 트이고 열렸다. 큰 의미로 볼 때 이것들 또한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선거다. 공평한 경기장 안에서 엄정한 규칙 속에 선의의 경쟁을 펼친 끝에 승리하는 자가 선거를 통해 결정되는 권력을 쥐는 것이다.


 


어떤 경쟁자들이 있었고, 이들은 여론조사라는 방식을 통해 승리와 패배를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는 기본적으로 전체 유권자집단(모집단) 중에서 무작위적(모집단 구성원들이 표본에 뽑힐 확률이 동일해야한다는 것을 의미)으로 표본을 추출하고, 그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그렇다면 경선에 나선 이들에게는 몇 가지 의무가 생겨난다. 표본 추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그 정보를 요구하지 않을 의무, 그리고 표본 선정 작업에 개입하거나 여론 조사의 중립성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 이것은 사소한 룰이 아니라, 기본적인 전제다. 이 표본추출에 개입하는 것은 이미 사소한 반칙 행위가 아니라 원천적인 '승부조작'에 해당한다. 즉 선거운동 과정에서 누구한테 밥 먹이다 걸린 것이 아니라, 투표함에 사전 투표를 잔뜩 해 놓고 시작하는 ‘부정선거’인 셈이다. 관악을구 이정희 후보 보좌관 혼자서 '과잉 의욕으로' 그 일을 불행히도 자행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소회 하나만 덧붙이겠다. 까지 마라.)


 


이 의욕 하나는 헤라클레스같은 이 보좌관은 거의 실시간으로 여론조사의 향방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연신 문자를 날리며 여론조사의 향배를 ‘중계’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조사를 끌어내기 위한 행동 지침까지도 전달했다. 심지어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응답을 하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집니다. 다른 나이로 답변해야 함” “4,5,60대는 종료. 남은 연령대는 2,30대.” “


 


여론조사 방법을 채택한 것은 국민여론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를 후보선정 기준으로 삼자는 뜻이다. 그러자면 전체여론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추출되어야 하는데 이 보좌관이 속한 조직은 그 운동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응답자표본의 대표성 대신 특정여론을 과대 대표하게 하려는 인위적 시도로서, 여론조사 방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는 시도이다. 특히 응답자 세대의 거짓응답까지 시도했다는 점. 여론조사 방법의 기본가정(무작위적 확률표본추출, 진실 응답)을 부정하려고 했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실제 얼마나 여론이 왜곡되었는가의 문제를 떠나 자신들이 합의한 제도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고, 더구나 거짓응답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사결과를 왜곡하려했다는 점에서 여론 조사 자체의 정당성을 뿌리에서부터 무너뜨린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승부조작에 개입한 것이다.


 


한때 한국의 마라도나라고 불린 최성국은 승부조작에 가담함으로써, 그리고 그에 가담한 선수들의 축구 생활을 FIFA가 규제함으로써 선수 생명이 마감됐다. 그가 얼마를 받았는지,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했고 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여론 조사의 승부조작을 강행했다는 증거를 자신의 문자 메시지로 남긴, 이 의욕 만땅의 보좌관은 그 이름도 찬란한 '진보' 정당 대표의 보좌관이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참으로 능력도 대단하고 간도 크거니와, 이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 진보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진보 이전에 민주주의다. 그리고 민주주의 이전에 양심의 문제다.


 


우선 양심의 문제다. 여론 조사를 결정 방법으로 선택한 측에서 여론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조직원들에게 "어이 우리편! 앞으로는 이렇게 전화받어!"라고 지시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내놓고 하는 도둑질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과연 사흘 굶은 도둑인지 아니면 원래 시커먼 도둑인지는 모르겠지만. 밝혀야 할 일은 많다.  관악을구 여론조사를 맡은 기관이 어디인지 밝히고, 그 기관의 고백을 들을 일이다. 도대체 왜, 어떤 경로로 유출했으며, 그 책임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연락 끊겼다는 보좌관부터 찾아내 사연을 들을 일이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다. 신새벽에 남몰래 그 이름을 쓰면서, 자유여 민주여 내 생명이여를 부르짖으면서 우리가 쟁취하고자 외쳤던 민주주의는 권력의 억압과 돈의 위력과 지역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하여 부단히 투쟁하며 성장해 왔다. 이제는 최소한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정부 조직이 투표소를 정전시키고 투표함 바꿔치기하는 건 전설에서나 나오리라 여기는 판에,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다고 자부하는 한 나라의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기 위하여 서로 합의한 여론조사가 '민의의 왜곡'으로 점철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수고 진보고 나발이고 사발이고, 이러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석고대죄에 아홉번 머리를 찧을 일이다.  이건 우리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에 대한 퍽치기가 아닌가.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 이래 무수하게 진행됐던 여론조사들 모두에 대한 의심을 확대재생산하는 가운데 그 결과인 우리 정치의 핏줄마저 의심스럽게 만드는 음란함이 아닌가.  적어도 나이를 속여 대답하라는 끔찍한 문자는 민주주의의 적이었다.  민주주의가 없애야 할 기생충이었고 민주주의 목에 드리운 칼이었다.   


 


자 이제 진보의 문제다.  결론을 말하자. 그 짓을 진보가 했다.  "의욕과잉의 보좌관에 책임을 미루는" 최구식스러움을 젖혀 놓고 말하자.  그 짓을 자칭 진보가 했다.  진보정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나이 속이고 대답하라고 떠들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진보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왜 진보하는가? 왜 이정희를 좋아하는가? 대관절 이정희를 국회로 보내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인간의 존엄성을 보다 폭넓고 깊게 구현하려는 의도이며, 이정희로 대변되는 진보를 지지하고 그를 활용하여 민주주의를 더욱 확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른바 진보가 지극히 그 적과 같은 방법으로 ,즉 부정선거를 자행했던 이들의 방식을 수용하여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긴다면 이 진보는 대체 어디에 의지하여 그 이름을 지탱할 수 있겠는가. 이미 양심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어느 결엔가 흘려 버린 진보가 진보일 수 있는가. 이래 놓고 승리하면 진보의 승리라 부를 만세에 염치가 남아나겠는가.  


 



어제 오후부터 쑤셔진 벌집 주변에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이정희 대표 본인이었다.  그녀 주위를 둘러싼 집단이 얼마나 비민주적인 꼴통들인지는 잘 아는 바이지만, 그녀만큼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킬 줄로 알았다.  종북좌파 플래카드 따위 흑색선전에 비할 바가 아닌, 여론조사 자체를 무력화하는 '승부조작'이 자신의 휘하에서 자행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진보의 대표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 처절하게 슬퍼하며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대답은 '원하면 재경선'이었다.   거기에 일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정희 응원이 그 기막힘을 더했다.   보좌관이 했지 이정희가 했냐는 어디서 많이 본 논리부터 이정희를 믿습니다는 신앙고백에다가 이정희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는 힐난까지.  오늘은 또 김희철도 했고 새누리당도 한 짓인데 왜 이정희만 가지고 그러냐는 전두환식 항변도 등장한다. "허 왜 나만 갖고 그래."


 


이른바 진보가 태동한 이후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그리고 지금도 벗어나기 힘겨워하는 일은 "그놈이 그놈이지." 하는 힐난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놈들과 우리는 다르다고 차별화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이정희의 보좌관 하나로 완벽한 수포로 돌아간다.  명예훼손도 아니고 금품살포나 허위 이력 정도가 아닌 선거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수완까지 우리의 진보가 발휘한 것이다.  지금껏 새로운 대안이라고 악을 쓰는 진보를 지켜봐 온 사람들이 "쟤도 그랬고요 얘도 그렇고요"하며 고자질하고 앉은 똥묻은 진보에 공감을 하겠는가.  하다못해 동정을 하겠는가.  


 


이 와중에 이정희 대표는 출마를 강행하여 승리로 보답하겠단다.  누구에게? 누구의 승리로 보답하겠다는 것인가? 그 승리를 누구와 함께 기뻐하며 당신 이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땀흘리고 피뿌려 가꾼 길을 당신의 냄새나는 당선으로 가꿀 수 있다는 것인가.  당신은 도대체 왜 진보인가.  어떻게 진보인가. 무엇하러 진보하는가.   


 


지금 한 번 죽으면 크게 살 수 있는 것을, 정파의 이익에 사로잡힌 자들에 둘러싸여 또는 그들을 업고서 끝끝내 자신을 키워준 진보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경기동부의 원내진출'에 올인한다면 결국 그녀는 죽을 것이다. 그녀만이 아니라 결국은 진보도 독을 마실 것이다.   오호라 관악성은 함락되었고 감수성 풍부하고 울부짖기 좋아하던 기생 논개는 제 주인 진보의 허리를 가락지로 끼고 관악산 연주대에서 다이빙을 하려는구나.  몸바쳐서~~ 몸바쳐서~~~ 진보의 한~~~~~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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