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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23. 금요일

국제부 Samuel Seong


 


1. Naxalite 혹은 Naksalvadi


인도 동북부의 비하르(Bihar), 자르칸드(Jharkhand), 웨스트벵갈(West Bengal), 오리싸(Orissa) 지역을 지역기반으로 두고 있는 마오주의 게릴라. 약 2만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파키스탄 정보기관인 ISI는 물론 중국도 이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조직. 이 무장 게릴라 집단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는 것이 남아시아 현대사를 얼마나 이해하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나 다름없다. 이들의 직계 후예들이 네팔 제헌의회의 다수당이며, 인도 최정예군의 전략적 이동들이 이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으니까.

 



<Charu Majimdar>

 


1967년 5월 18일, 인도 공산당 내에서도 좌파 그룹에 속해 있었던 Charu Majimdar(1918~1972.7.28 사망. 체포 후 12일만에 옥사), Kanu Sanyal(1929~2010.3.23), Jangal Santhal(?~1987년 사망) 등이 주동한 폭력시위가 웨스트벵갈의 국경마을 Naxalbari에서 벌어진다. 토지를 농민에게!라는 구호 하나로 봉기를 일으켰던 것. 이들의 무장 항쟁에 꼴따따 대학생들도 지원투쟁에 나서지만, 처참하게 진압 당하고 만다. 당시 주도자들이었던 이들 셋의 인생역정도 꽤 흥미로운데, 이건 언젠가 따로 썰을 풀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여튼.

 


주동자들 중 한 명이었던 Charu Majimdar은 바로 그 다음 해 낙샬라이트들이 "역사적인 여덟 개의 문건"이라고 부르는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이념적 지향이 마오주의임을 밝히게 되고, 인도 공산당과 결별하게 된다.

 



 


 <낙샬바리는 인도의 국경마을로 웨스트벵갈에서 네팔로 입국하는 이들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작은 마을이다.>

 


이후 1970년대 꼴까따의 좌파적 성향인 대학생들이 이들 그룹에 지속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좌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전 인도의 지성들이 이들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Charu Majimdar은 이들이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지주, 사업가, 대학교수, 경찰간부, 좌우파 막론하고 고위급 정치인은 "인민의 적"으로 개별적으로 처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분노의 막장 즈음으로 보이는 이 운동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동조한 것, 좀 이상하지 않나?

 


본 기자의 네팔 내 지역기반은 해발 900미터 미만의 평지, 떠라이 지역이다. 네팔 내 농지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이 지역은 네팔 내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들 중 하나다. 마오주의 인민해방군 7사단 주둔지 구경하는 게 동네 마실 나가는 것만큼 쉽고, 역시 전투경찰과 군 부대 차량들 보는 게 마을버스 지나가는 것만큼 자주 보이는 곳이다.

 


네팔 마오이스트들이 제1당이 되면서 이 지역의 소작료는 50%가 되었다. 농사를 위한 일체의 장비와 시설들을 농민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소작료 50%다. 그 이전엔? 80%였다. 이 소작료율도 기가 찬데, 인도는 여기에 인구가 많다보니 카스트로 인한 골때리는 시추에이션이 하나 더 결합되어 있다.


 


농민들은 불가촉 천민들을 농업노동자로 고용하고 있었던 것. 그러니까 소출의 80%를 지주에게 주는 농민들이 그 밑의 카스트를 착취하는 지옥도였던 거다. 이 현실에 분노한 이들이 총을 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운동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웨스트벵갈에선 1977년 이후 이들 지지세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인도 공산당을 주축으로 하는 좌파연합이 정권을 잡으면서 토지개혁을 단행한 것. 이후 낙샬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비하르, 그리고 비하르로부터 독립한 자르칸드, 오리싸 등으로 넘어가게 된다.


 


특히 비하르는 이곳 사람임을 지칭하는 '비하리'(비하르 인)이 반쯤 욕으로 취급될 정도인 곳. 극심한 가난이 전근대적 카스트 시스템과 토지 소유제도에 의해 공고화되었던 곳이라 이곳에서의 갈등이 가장 심했다. 최근 연임을 하고 있는 하층 카스트 출신의 주지사 Nitish Kumar가 펼치는 일련의 개혁정책들에 힘입어 낙샬의 활동지역이 자르칸드로 이동하고 있지만.

 


개혁 정치인들의 개혁 정책에 의해 지역 내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으나, 급기야 인도 정부가 2009년에 잠무 카쉬미르 지역에 주둔하던 인도 최강의 부대 1개 사단을 빼서 이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시작해야 할 정도로 낙샬들의 활약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요즘도 주 경찰 정보과장의 목을 잘라 효수해놓거나, 순찰 돌던 이들을 지뢰로 암살하는 뉴스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볼 수 있다.


 


2. 웨스트 벵갈의 좌파 전선 (Left Front of West Bengal)


토지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그것을 실현했던 웨스트 벵갈주의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전선은 1977년 이후 단 한 번도 정권을 잃은 적이 없었다. 대학이 무장항쟁 근거지가 되고, 경찰과 군과 충돌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던 낙샬들의 활동 중심지였던 웨스트 벵갈은 이들이 공약을 지키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초장부터 "인민의 적에 대한 직접 타격"을 외치며 자신들이 점거한 마을에서 인민재판을 통해 지주와 경찰에 대한 처단을 외쳤던 이들답게, 이른바 "해방구"에선 바로 지주,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한 살육극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런 일은 작용, 반작용이 있는 법. 쉬브세나라고, 지주들의 자경단이 바로 구성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낙샬이 빠져나간 "해방구"를 찾아가 협력자들을 도륙하기 시작하면서 살육극이 끊이지 않았다. 이 현실에 지쳤던 이들에게 토지개혁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이었고, 굳이 그 과격분자들을 지지할 이유도 없어졌던 것이다.


여튼, 1977년부터 정권을 잡은 이 분들. 아주 심오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경제발전.

 



 <세포이의 반란>

 

세포이의 반란 이후, 영국은 경제 중심지를 북동부 연안의 켈커타(BJP라는 힌두 민족주의 정당이 94년 정권을 잡은 이후로 "꼴까따"로 개명되었다)에서 서남부 연안의 붐바이(역시 BJP집권 이후 "뭄바이"로 개명)로 옮긴 이후, 웨스트 벵갈은 천천히 쇄락해가고 있었다.


 


경제 성장이 본격적인 화두가 되기 시작하면서 웨스트 벵갈의 좌파전선은 좌파적 성향의 정책들을 하나씩 폐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2006년 즈음이 되면서 부터는 국민회의와의 정책적 차이도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고.


 


여튼, 이들은 2006년 경제 성장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던 대규모 생산공장을 유치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유치했던 회사는 전체 그룹 수익을 관리하는 곳이 "사회사업부"인 독특한 기업, 타타그룹이었다. 타타가 이곳에서 생산하기로 했던 것도 바로 나노. 한화 약 230만 원 짜리 자동차였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은데, 웨스트 벵갈 주 정부가 타타모터스에 제공하기로 했던 1000 에이커의 토지 중에서 400 에이커를 소유한 농민들이 토지 수용에 반대하고 있었다.


 


토지 수용에 반대하던 농민들을 지지하는 정치인이 나서서 20여일이 넘도록 단식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사단이 벌어진다. 토지수용 반대 시위를 벌이던 농민들에게 경찰이 발포, 16명이 죽고 70여 명이 크게 다쳤던 것. 뿐만 아니라 토지수용 반대 운동을 벌이던 농민의 딸이 강간 당한 다음에 살해되는 일도 벌어진다.


 


이 결과... 34년 간 단 한번도 정권의 위기를 겪은 적이 없었던 좌파전선은 2011년 5월 13일 벌어진 총선에서 총 294석 중에서 61석을 얻는 데 그친다.


 


그리고 타타그룹은 나노의 생산공장을 동부의 웨스트 벵갈에서 그룹의 설립자가 태어난 구자라트주로 옮긴다. 인도 지도를 한번 보시면 어떤 대역사를 이들이 벌였는지 실감할 것이다. 거의 다 만들었던 공장을 그대로 뜯어서 인도 대륙의 동부에서 서부로 옮겼던 것이니까.


 


이 와중에 어부지리로 주지사가 된 정치인이 바로 20여 일 간 단식투쟁을 벌였던 사람이다. Manata Banerjee. 이 인물과 좌파전선의 몰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방송기자협회장인 이재강 기자의 블로그(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3. 강정, 구럼비 바위, MD


솔직히 본 기자, 강정기지 반대 논거들에 대해 그렇게 동의하는 입장 아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MD기지라고 목청 높이는 분들, 좀 당황스럽게 본다. MD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핵무기가 얼마 안 되는 것에 착안한 시스템이다. 전술핵무기가 아니라 전략핵무기, 즉 ICBM을 막겠다고 하는 체제다.


 


날아가는 총알을 또 다른 총알을 날려 떨어트리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물리학적으로는 겁나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현실화시키는 근거. 역시 물리학적이다. 대륙간탄도탄의 궤적은 기본적으로 2차함수 곡선을 그리기 때문. 즉 최고도에 올라갔을때 속도가 잠깐 0이 된다. 마하 20이 넘는 속도로 꼬나 박히는 걸 쏴서 떨어트리는게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서 날려버리면 된다는 짱구들을 굴린 거다. 이게 실현가능한지에 대해선 솔까말 좀 당황스럽긴 하다만.


 


그러면 중국이 미국을 향해 대륙간 탄도탄을 쐈을때, 탄두가 최고도에 오르는 지점이 어디가 될 것 같은가? 제주도 앞바다는 최종낙하지점이 어디인지 헷갈리게 만들기 위해 난잡한 비행을 하고 있는 미사일 추적하기도 바쁜 곳이다. 거기다 KDX3 구축함들에 이 미사일들 수납하려면 다시 도크로 들어가야 한다고.


 


중국 바로 앞에 미군 기지가 들어선다고 하는 것도 좀 깨는 거시... 이미 평택기지가 있잖는가? 더 코 앞인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기자. 강정기지에 반대한다. 이유는 두 가지. 대한민국 해군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군대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토지수용과정에서의 문제다. 잘 알려진 이야기니까 생략한다.

 


두 번째는 기지 건설로 인한 추가 SOC확충 문제에 대해 해군이 생까고 있다는 것. 더군다나 제주도는 최근 몇 년 간 전력상황으로 인해 LNG발전소를 건설할 것인가, 핵발전소를 육지에 건설하고 바다를 통해 고압선으로 전기 공급을 할 것인가를 가지고 논란이 많았다. 그러니 이거, 파병 나가는 넘들이 병참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국회에 보고 안 하고 파병나가겠다는 거랑 비슷하다.


 


거기다 구럼비 바위 파괴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바비얀 석불 파괴하던 탈레반 마약장수들이 하던 것과 똑같은 프로세스를 밟더구만. 조또 종교에 환장한 마약장수들이야 마약 잘못 먹어서 그렇다 치고, 너넨 뭐냐? 사실 패잔병 노무 새끼들이 당당한 것도 조낸 맘에 안들지만, 기지 건설로 인해 발생될 지역의 SOC확충 문제에 대해 입 다물고 있는 건, 시공사들과 한 몸이 되어 그렇다는 의심을 버리기 힘들다. 이거 없이 제대로 작동될리가 없잖아? 해군기지에 계획정전시킬 건가?


 



 


여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못하고 스무 살 여자에게 명훼소송 나서고 있는 꼴을 보면 부랄 때어버라는 강력한 권고를 아니 할 수 없다. 더불어 토지개혁으로, 소작농들의 권리 보호로 장기집권을 했던 웨스트 벵갈의 좌파전선은, "잘 좀 살자"는 구호 하나로 자기 주민들을 설득하지 않고 반대자들을 밀어버리자 바로 좆망했다. 남아시아 대륙에서 민주주의 좀 하는 유일한 국가 인도에선 이랬다.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좀 제대로 했던 나라는 어떻게 할 것인가?


 


4. 그리고 선, 지켜야 할 선.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낙샬들의 활동 지역 중에서 가장 참담했던 곳이 바로 비하르였다. 최근 연거푸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고 있는 이승준 감독과 인도에 대해선 자타공인 전문가라고 하는 이성규 감독이 이곳에서 낙샬과 지주들의 사병들인 쉬브세나가 벌이는 살육극을 처절하게 담았던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전쟁, 비하르"라는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가 2000년에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감독과의 대화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당신은 누구 편이오?"


 


바로 그 질문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살육극을 가감없이 보여준 다큐멘터리를 보고 그 질문을 던진 자. 정치적 입장, 당근 진보적 머시깽이였다. 그 진보적 머시깽이는 바로 그 질문 때문에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50여 년 전에 수백만이 죽어 나갔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호두로 된 뇌를 가진 놈일 거고.


 


인도에서, 민중을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는 낙샬의 활동을 보다보면 그 "명분"이 언제든 "봉기의 이유"를 언제든 박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이들이 가장 많이 죽인 이들은 "인민의 적"이라고 자신들이 지칭했던 이들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그들에게 협력했던 불가촉천민들이었으니까.


 


사실 전세계적으로도 마오이스트 게릴라들이 "봉기의 명분"을 스스로 잡아먹은 사례들은 하늘의 별만큼 많다. 혁명자금을 만들기 위해 마약을 거래하기 시작했던 남미 마오이스트 게릴라들중 일부 그룹은 아예 마약군벌로 자리를 잡았는 걸 뭐. 그러면서도 이들은 "미국이 이기지 못한 전쟁은 마약과의 전쟁일 뿐"이라며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기고 있다.


 


가카에 대한 불타는 증오로, 가카 체제에 대한 심판을 가하겠다는 이들이 선을 넘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그 선들을 조금씩 넘기 시작하면 불량감자가 되어버린 전세계의 마오이스트 그룹들과 별 차이 없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무엇이든 극적으로 보여지는 인도에서 한국의 정치 현실을 되돌아보면, 배워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남의 실수를 보고 배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가장 바보는 자신의 실수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이들이고. 그런데, 대한민국의 우파나 좌파연 하는 이들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그 실수를 극복하는 데 지독하게 인색하다는 점에 있어선 똑같다.


 


좀 달라지면 안 되는가?


 


 


다르질링에서 안타까운 맘으로 고국 소식을 듣고 있는 국제부 Samuel Seong

@ravenclaw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