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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26.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사실 이런 얘기는 글로 써 놓기에는 좀 그런 면이 있다. 애매하기도 하고 참 난감한 얘기다. 하지만 결국,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풀어 놓긴 해야 될 것 같아서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번 경기동부 사태가 약간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들 알고 있던 얘기인데, 아니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공론화 시켜 보려고 수도 없이 애를 태웠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가, 얼결에 이렇게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게 되다니 참 신기하고 환장할 노릇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진짜 기획하기 힘든, 우연한 흐름의 문제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진보그룹 내부의 골치덩이라면 골치덩이일 수 있는 그런 공룡같은 존재가 결국 공론의 장으로 끌려 나온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최초의 과제는 그 문제를 사람들이 인식하는 거니까.


 


자화자찬 같지만 이번 경기동부 스토리가 사회적으로 뜨게 된 상황에서 내가 최초로 써 올린 글이 최소한 방아쇠 역할은 했다고 보인다. 그게 블로그에서도 엄청난 조회수가 올라왔고, 딴지 마빡 기사로 게재되면서 인터넷 공간이 시끄러워진 거는 맞다. 확인은 못해봤지만 누군가 얘기해 주길, 심지어 경기동부라는 키워드가 모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도 올랐다고 한다. 개그맨들이 그렇게 오르고 싶어하는 실시간 검색순위 말이다.


 


 



<조선일보 캡춰화면, 이거 캡춰하느라 손꾸락이 썩을 뻔.>


 


 


심지어 군소언론 조선일보 기사에 물뚝심송이라는 닉이 언급되기까지 했다. 씨바, 그 덕분에 난 딴지 수뇌부로부터 이적행위 혐의로 술값계산 3회의 형벌에 처해졌다. 탄원 끝에 2회로 감면되긴 했지만 말이다. 이 대목에서 한 번 외쳐본다. 관대한 딴지를 칭송하라!


 


 


 



<물뚝심송, 이적행위의 현장 - 편집자 주>


 


 


그 글은 실제로 무척 널리 퍼졌다. 수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읽었다. 덩달아 나도 쪼금 더 유명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마침 책을 출간한 마당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나에게도 약간 행운이 있긴 하나 보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이 따르는 문제고 더 부담스럽다. 그런 유명세, 별로 반갑지 않다. 거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달걀닉들이 내 글을 마구 리트윗하면서 빨갱이를 외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이 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빅 게임을 앞두고 경기동부, 그러니까 진보그룹 내부에 숨어있는 강고한 연대에 대해서 얘기를 직설적으로 던지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꽤 긴 시간의 고민이 필요했었다. 과연 이게 이 시점에 꺼내야 할 이야기인 것인가 하는 고민 말이다.


 


하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왜 이정희가 저렇게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취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의문에 실질적이고도 합리적인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의문은, 이정희의 배후에 경기동부 연합이라는 이너써클이 존재한다는 것만 이해한다면 아주 쉽게 풀릴 문제였거든. 그래서 올려 버린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 올 줄이야... 정말 몰랐다.


 


이정희는 매우 특이한 존재가 맞다.


 



 


일단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지적능력의 보유자다. 예전 운동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탁월한 지능의 보유자이면서도 성실성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이력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정희가 87년도 학력고사에서 문과 전체 여성 수석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싶다. 고시패스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해냈음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운동권 활동이나 민변에서의 활동과정을 보면 사회에 대한 애정이 무척 깊은 것도 알 수가 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무능이나 게으름을 극단적으로 혐오하기 쉽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 지기 쉬운데,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김영삼 시절의 박철언 같은 경우와 비교해 보자.


 


그런 이정희를 민노당 당권파가 발탁해서 정치적으로 성장시킨 것은 여러가지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복잡한 얘기들을 다 빼버리고 그냥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사람들이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거지 뭐.


 


출발과정은 그랬고.


 


정치인 이정희는 더욱 더 의미가 깊은 양면성을 가지게 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측면인데, 내 판단으로는 민노당 당권파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는 부분에 대한 얘기가 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엘리트 의식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당장 수많은 사람들이 NL과 PD그룹의 특성을 떠 올리면서 무슨 개소리냐, NL은 민중적이고, 엘리트 의식은 PD들이지, 이러면서 거품을 물겠지만, 그 얘기가 아니다.


 


민노당 자체를 "전국연합"의 하부조직으로 간주하는 당권파(사실 나에겐 이 이름이 경기동부라는 명칭보다 더 편하다. 또 그들은 경기동부뿐 아니라 인천연합도 있고)들에게는 근본적으로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고, 대중정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이 조직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어 대중을 선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고, 수평적인 정보전달, 즉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꾸 정보를 숨기게 되고 의사결정 구조가 뒤로 숨게 된다. 그 결과 거의 신비주의적인 의사결정체계를 가지게 되고 음험한 이너서클의 형태를 띄게 되는 거잖아. 반론을 불허하고, 결정된 명령에는 무조건적인 복종, 결사옹위, 뭐 이런 것들만 남게 되는 거고.


 


 



<그냥 하라면 해>


 


이런 특질은 현대적인 대중정치 관점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우리에게는 이런 식의 정치활동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 활동이 필요했던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 버렸다는 말이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권파의 미래는 없다.


 


이정희는 이런 이너서클의 결정에 의해 정치인으로 성장하면서 그들의 관습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없이 많은 현장활동과 대중과의 접촉을 통해 대중정치적인 자각을 내부에 같이 가지게 되는 양면적인 성격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즉, 출발은 당권파와 함께 했지만, 그 성장과정에서 대중정치인으로써의 자각이 자생적으로 생겨나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이 만들어진 것 같다.


 


애초에 난 당연히 이정희가 당권파의 결정을 거부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던 거다. 이 부분은 나의 판단이 확실히 틀렸다. 이정희를 과소평가 한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어쩌면 이정희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경기동부 얘기를 굉장히 직설적으로 던져 버린 것이고, 또 사실 어떤 면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그 얘기를 꺼낸다고 해서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는 안일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저 내 글을 읽는 독자들, 특히 딴지일보의 독자들, 그 중에서도 최근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새로운 세대들을 위해 약간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글을 쓰게 된 건데, 이게 내 뜻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덜컥 경기동부가 사회적인 화두가 되어 버렸고, 그 결과로 이정희의 결정에 영향을 주게 된게 아닌가 하는 조금은 민망한 상황이 되어 버린 거다.


 


결국 경기동부 연합은 윤원석을 사퇴시키고 이정희는 강행한다는 전략을 세운다. 난 이 결정만으로도 충분히 놀랐다. 내가 글을 쓰는 시점까지는 윤원석도 강행한다는 입장이었고, 그걸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거든. 그들은 그들의 특성이 있고, 그들의 관습이 있다. 윤원석 사퇴 결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지 않고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당권파 내부에서는 심각한 전술적 변화가 있었다는 평가를 해 볼 수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럭저럭 괜찮은 일이군, 하는 식으로 평가를 하려고 하던 참에 이정희가 덜컥 사퇴를 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그래봤자 이정희 빼고 이상규 넣은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그러냐, 결국 경기동부가 다 결정한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상규는 경기동부 연합내의 의사결정과정 입장에서 보면 그리 높지 않는 서열이다. 그러니까 얼굴마담 빼고 몸통을 넣었다~ 이런 분석은 내막을 잘 모르는 얘기가 된다.


 


거기다가, 이정희가 사퇴한다는 것 자체가 경기동부 내부의 결정사항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런 일들은 명확하게 이제 우리가 결정했으니 너는 이런 명령을 받고 이렇게 행동해라, 하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정희의 이번 사퇴가 경기동부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이정희가 독자적으로 경기동부의 결정을 거부하고 내린 명령불복종인 건지 명확하게 입증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타임라인을 살펴본다면, 최소한의 개연성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정희의 사퇴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통합진보당에서는 이정희가 후보등록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그 상황으로 판단해 보자면, 경기동부가 이정희 교체 전략을 수립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또 누구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기민하게 결정을 못하는 거거든. 내부 토론을 꼭 해야 되니까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다.


 


결국, 이정희는 자기를 키워준 집단에게 정면으로 개긴 거다.


 




 


그 직후, 나는 이정희를 조금 오바스럽다 싶은 정도로 칭송하는 글을 썼다.


 


 



 


 


그 칭송은 사람들에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희 지지자 입장에서는 바로 이틀 전에 이정희는 경기동부 꼭두각시라고, 경기동부라는 괴물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떠들던 놈이 갑작스레 이정희가 진짜 정치인이라고 칭송하는 글을 써대니 그게 이해가 갈 리 있나.


 


또 이정희를 별로 지지하지 않는 그룹에서도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다. 겨우 자기 지역구에서 경선과정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누구나 다 하는 일이긴 하지만) 멍청한 보좌관이 꼬투리 잡힐 짓을 했고, 그게 발각되어서 여론에 밀리다가 사퇴해버린 정치인을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칭찬을 하냐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이해가 간다.


 


좀 뜬금없는 칭찬이기도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라.


 


이정희의 미덕이 어디에서 출발하는가를 보시라는 얘기다. 이정희가 물러나게 된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여론이다. 여론 따위 무지한 군중들의 일시적인 아우성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미덕이 없다. 군중의 여론은 그게 불법적인 일인지 비도덕적인 일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냥 문제가 있으니 물러나라고 외칠 뿐이다. 어찌보면 무지한 군중의 얘기 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 여론은 바로 사람들의 목소리이고, 대중정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여론에 복종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여차하면 포퓰리스트가 되는 첩경이고, 인기 위주의 언론플레이를 하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권위에 앞서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거다. 경기동부들에게는 그런 자세가 없는 거고.


 


하지만 이정희는 대중정치를 한 거다. 이게 미덕의 첫 번째다.


 


그런데 더 힘든 문제가 또 있다. 이정희가 대중정치를 하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경기동부 연합이라는 조직의 압력이 있었다는 거다. 이거, 이정희의 입장에서는 뿌리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무거운 압박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정희가 그렇게 오래도록 고민을 한 거라고 볼 수 있다. 즉, 이정희의 내부에서는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신과,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이 사투를 벌인 흔적이 보이는 거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대중정치인 이정희가 이긴 거다. 이게 가장 큰 의미가 된다.


 





어떤 사람은 이정희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의 상처를 받고 정치생명이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가능한 얘기다.


 


어떤 사람은 19대 국회에 이정희 정도의 헌신적인 활동가가 한 명 없어진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맞는 얘기지만 국회는 3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금뱃지의 위력을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원외가 되어 보내야 하는 4년 간 이정희가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 하기도 한다. 이것도 맞는 지적이다.


 


그 모든 판단,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가능한 얘기고 옳은 지적이다. 실제로 이정희는 심각한 정치적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이정희가 내린 결정은 좀 다른 판단을 가능하게 해 준다.


 


조직에 의해 키워진 정치인 하나가, 조직의 명령을 거부하고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대중정치라는 필수 불가결한 미덕을 전혀 가지지 못했지만,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것도 진보그룹 내부에서는 가히 최강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을 거부했다는 점을 봐야 한다.


 


거기에 이번 결정으로 인해 일반인들에게는 이정희에 대한 심리적 부채감이 쌓여 버렸다. 이 부분은 조금 과장되게 얘기하자면, 노무현의 정치 시즌 2가 된다. 그것도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된 시즌2 말이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 이정희의 정치적 역량 자체가 몇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어 버렸다.


 


다음 번 통합진보당 전당대회에서 당권은 이제 이정희 말고는 누구에게도 가지 않을 지경이 되어 버린거다. 이걸 강제로 빼앗을 힘은 누구에게도 없다. 금뱃지만 없을 뿐이지, 이정희는 사실상 진보그룹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되어 버렸다.


 


경기동부 그룹의 입장에서도 이제는 이정희라는 한 정치인의 사이즈가 경기동부 안에 묶어 두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오히려 경기동부가 이정희의 한 부분집합이 될 상황이 와 버렸다.


 


현 상황 자체만 놓고 봐도 정치인 이정희의 앞날은 그리 어둡지 않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이정희 본인의 정치적 역량, 그것도 엄청나게 강화된 자신감과 역량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얼마든지 바꿔버릴 수준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정치인 이정희의 미래는 이제 측정불가할 정도로 커져 버렸다.


 


난 정말로 이 부분에서 이정희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커져 버렸고, 살짝 감동까지 먹어 버렸다. 쪽팔리지만 사실이다.


 


 



 


한가지 양념이 또 있다. 이정희가 최종적인 사퇴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문재인과 얘기를 했다는 점이다. 과연 그 둘 사이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한번 상상해 보시라. 문재인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이정희가 경기동부를 거부하고 스스로 사퇴라는 빅 카드를 던졌을까 하는 것 말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통합진보당 얘기도 좀 더 해두자.


 


경기동부, 아니 당권파는 참으로 기묘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키운 이정희가 자신들의 명령을 거부해 버렸다는 항명사태를 겪었다. 이 문제는 실질적으로는 아주 단순하다. 항명한 녀석을 짤라 버리면 될 일이다. 어디 감히 상부의 지령을 거부해.


 


근데 바로 그 항명으로 인해 자신들이 오히려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흔들리던 야권연대를 이정희의 사퇴로 다 해결해 버렸고, 그것만으로도 통합진보당은 엄청난 명분을 획득하게 되면서 정당 지지율은 급상승할 수 있다.


 


거기다가 아직도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의 일원인 이정희가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할 것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 버린다. 즉, 자신들의 염원이던 당권 사수가 현실화 되어 간다는 것이다.


 


정당도 더 커지고 당권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거기에 덤으로 이정희의 지역구조차도 자신들의 일원이 가지게 될 확률까지 높아져 버렸다.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짭짤한 일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원인이 항명에 있었다는 거다. 이 얘기는 거꾸로 말하자면 자신들이 세웠던 전략이 멍청한 전략이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는 거지. 무오(틀리지 않는, 오류 없는, 완벽한)의 결정만을 내리던 상부가 뻘짓을 하고 하수인이 항명을 했더니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거, 엄청 심각한 문제다.


 


자신들의 의사결정구조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버리는 거다. 아니 그 이전에 어둠 속에서 활약하던 자신들이 밝은 세상으로 까발려지기까지 했다.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의사결정을 할 명분도 염치도 없어져 버린 상황이다.


 


질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내부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자신들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십년이 넘게 이어져 오던 자신들의 전략 전술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퍼져 나간다.


 


변화할 때가 된 것이다. 더 좋은 것은 그 변화가 일반 정치 대중의 압박으로 인해 외부에서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하기 시작하면 그 가속도는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더 이상 과거의 틀로는 이 변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질적인 변화가 내부에서부터 솟아 나오게 될 것이다. 공룡이 사라지게 되는 거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시간은 꽤나 길겠지만 말이다.


 




 


당권파, 경기동부가 주사파라고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 나 또한 NL 이라면 벌레보듯이 하는 입장이고, 주사파들이라면 사이비 종교인 취급을 하는 사람이다.


 



 


 


지난 글에서도 내가 경기동부의 실체를 까발려 놓고 왜 뒤에 가서는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둥, 용두사미 같은 결론을 내렸냐고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새누리당 돈벌레들이 아무리 정치적으로 아무 가치가 없어도 다 밟아 죽일 수 있냐고 묻고 싶다. 그들, 우리가 아무리 욕을 하고 있지만 그들 하나하나도 다 유권자들이고 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는 구성원들이다. 그들을 이 공동체에서 쫓아내 버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그들을 대화와 설득을 통해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힘으로 말이다.


 


똑같은 얘기다. 주사파들이 인공기 걸어놓고 촛불 켜놓고 제사를 지내건 말건, 김정은 장군을 칭송하건 말건, 그들 역시 똑같은 유권자들이고 n분의 1의 권리를 가진 구성원들이다. 이런 점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그들을 대화와 설득을 통해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의 힘으로 말이다. (이거 실수로 두 번 들어간 문장도 아니고, 카피 페이스트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양쪽에 대한 해결책이 똑같기 때문에 두 번 타이핑 했다.)


 


거기에 그나마 저쪽 사람들에 비하면, 주사파들이 꼴통기질이 좀 있어서 그렇지 훨씬 더 훌륭한 아군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실제로 그 멤버들 사이에 주사파 비율이 그리 높지도 않고, 북한에 대해 현실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고, 얼마든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전투력도 좋고 실적도 많다. 이들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난 별로 찬동을 할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며, 그 애정에 기반하여 서로를 변화시켜 가며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나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현실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문제인데, 맞다. 무지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낮은 가능성을 각오하고 시도해야 되는 것이다.


 


진보들의 가장 큰 문제적 속성 중의 하나가, 수틀리면 다 쫓아내고 수틀리면 다 죽일듯이 까고 그러는 건데, 대중정치의 관점에서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 깔 때 까더라도 퇴로를 확보해주고 까야 되고, 의사결정권을 축소시키기만 하면 되지 쫓아내서는 안된다는 거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대중정치의 관점에서 일반 유권자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시급하게 찾아야 된다는 거고.


 



 


그런 관점에서도 이번 이정희의 결정은 대단히 큰 의미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는 것이다. 그 강고한 대오를 허물고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 말이다.


 




 


이젠 이런 얘기도 다 흘려 보내야 한다.


 


정치인 이정희의 성장은 향후 십년간 관찰하면서 서서히 이루어질 일이니 잠시 잊기로 하자.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이번 총선이다.


 


결국 이정희의 장렬한 선택으로 인해 야권연대는 어렵사리 복원되었다. 이점 또한 이정희가 칭송받아야 할 부분중의 하나이다. 거기에 민주당은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응답을 했고 이제 본선의 막이 올랐다.


 


여론조사 결과 보면 다들 암울하신가? 그동안 야권연대 개판치고 공천 개판치고 한 야권에 대해서 울화통이 치미시는가?


 


애초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던 야권연대였다. 그걸 그정도 비용으로 이루어 낸 것 진짜 대단한 일이다. 다들 욕하고 있겠지만, 한명숙과 이정희는 그 야권연대를 이루어낸 것만으로도 거의 모든 잘못에 대해 까임방지권을 얻어도 될 정도로, 그렇게 힘든 일이었고 그렇게 힘든 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거,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대단한 일 맞다.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야권단일후보가 나왔고 이제 그들이 약 이십 일 간 선거운동에 나서게 된다. 지금의 여론조사는 야권연대의 진통 속에서 바닥으로 내려가 있는 수치일 뿐이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


 


그리고, 가카의 실정에 분노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잠시 뻘짓하는 민주당이 보기 싫어졌고, 똑같은 넘들 같아 보이는 진보그룹에게 실망을 하긴 했지만, 선거운동 막바지에는 어김없이 정권심판론이 화두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장담한다.


 


지금 야권이 약간 앞선다고 나온 지역은 엄청난 격차로 승리하게 될 것이고 백중세라고 나오는 지역도 여유있게 이길 것이며, 오차범위 밖으로 지고 있다는 지역들이 접전 지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뭘 그리 걱정들을 하시나. 우리의 영원한 블랙 히어로 가카가 멀쩡하게 저기 서 계시지 않는가 말이다. 그분이 이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를 외면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최소한 대형사고 세 개는 터트려 줄 분이다. 가카가 다 해주실 거야~


 


아마 이번 총선의 결과를 까보게 되면, 놀라운 황금의 배분으로 인해 다들 감탄하게 되실 것이다. 제일 좋은 결과?


 


민주당은 과반에 조금 못 미치는 제1당. 통합진보당은 원내교섭단체 하한선인 20석을 훌쩍 넘기는 사상 최대의 의석을 받게 되는 경우가 최선의 배분이다.


 


그게 왜 최선이냐면, 진보그룹의 협조 없이는 민주당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가장 좋은 결과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독자적으로 과반 넘어가면 우리는 이름만 다른 한나라당을 다시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거 잊지 말자.


 




 


사실 이 예상을 하면서도 조금 불안한 것은, 가카 때문이다. 가카가 홧김에 왕창 도와줘 버리면, 민주당, 통합진보당 합쳐서 개헌선을 넘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거든. 그건 너무 심한 일이잖아.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다함께 기원해 보자.


 


 



(위 그림을 클릭하라!)


정치부장 물뚝심송


twitter: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