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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용팔이의 추억

2012-05-1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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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0 비추천0

2012. 5. 17. 목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용팔이가 다시 유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용팔이는 용산에서 물건 파는 점원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김용남이다. 


 



역도선수 출신의 김용남.


 




 


살벌했던 전두환 시절, 군부 독재의 외형을 치장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주류 정당의 이름은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정의당"이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추구한다는 정당이 사실 민주주의의 정반대, 정의의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은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케 하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84년 말부터 이상한 기류가 시작되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전두환 정권이 거의 대부분 구금되거나,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수많은 야당 정치인들을 해금조치해준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그리고 사건은 급진전되어 신민당이 창당되고 이듬해 85년 2월, 그 역사적인 "신민당 돌풍"이 벌어진다. 


 


안기부의 사전 시뮬레이션으로도 절대 벌어질 수 없다고 자신하던 야당의 돌풍,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야당의 후보가 당선되던 (물론 중대선거구 제도라서 여당의원과 동반당선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 선거는 전두환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이 맞다. 


 


결국 그 신민당의 와해공작이 시작되는데.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선거 직전 귀국)과 가택연금 중이던 김영삼을 대신해서 신민당의 총재자리를 맡았던 이민우가 그 공작의 대상이 된다. 


 



신민당 총재였던 이민우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바라던 수많은 유권자들과 신민당 내의 국회의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신민당 총재 이민우와 이철승 등은 전두환이 내건 조건인 내각제 개헌안을 받아들게 된다. 


 


실질적인 당의 주인이던 김대중과 김영삼이 자신들이 선임한 바지에 불과했던 이민우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지. 


 


결국 신민당을 포기하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기로 맘을 먹는다. 반대로 전두환 정권과 그의 하수조직인 안기부는 이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적극 저지하기로 맘을 먹는다. 저지하는 방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의 창당을 방해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그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법보다 가까운 주먹. 


 



<사진 출처 : 한겨레>

 


 


이번 통진당 사태에서도 보듯, 명분과 논리에서 밀리는 세력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끝까지 관철하고자 할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주먹이다. 


 


그것도 통진당 당권파에서 등장한 대학생 세력 같은 가짜 주먹 말고,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는 진짜 조폭을 동원한다. 그 때 동원된 조폭 두목이 용팔이. 본명 김용남, 별명 용팔이, 용칠이도 아니고 용구도 아닌 용팔이. 


 



 


"국회의원 몇몇이 나를 찾아오더니 '이 난관을 극복해야 된다. 야당이 뭉쳐서 싸워도 될까말깐데, 당을 깨고 나가면 나라는 망한다. 김 동지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더라고. 몇 번을 만났어. 그때는 정치라는 걸 몰랐으니깐 '이런 기회에 독립군도 될 수 있고, 나라를 살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 영웅심리가 발동한 거야." - 김용남의 회고


 


용팔이는 휘하 조직을 동원해서 전국적으로 지역별로 벌어지는 통일민주당 창당 대회장을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습격하게 된다.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현역 국회의원이 조직폭력배에게 쫓겨 대낮에 큰길가로 뛰어서 도망가는 활극이 연출되고.


 


당연히 경찰은 "당 내부의 일이니 내부에서 알아서 하라" 는 명분으로 뒷짐지고 구경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장을 피해 근처의 식당이나 기타 장소에서 창당대회는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통일민주당은 창당이 되어 대정부 투쟁에 앞장서게 된다. 


 


이 사건이 터진 시점이 87년 4월. 


 


이런 광경까지 지켜본 시민들이 결국 두 달 뒤에 6.10 민주항쟁을 일으키고, 전두환 정권의 항복을 받아내게 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역사적 의미를 전달해주는 지는 자명하다. 


 



이런 사진은 앞으로의 역사에서 보지 않았으면...


 


 


극단에 몰린 권력집단이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해뜨기 직전 새벽의 어둠 같은 막장 행동이라는 점이다. 


 


87년 이후 한 해가 더 지나고 88올림픽이 진행되던 88년 9월에 가서야 용팔이는 검거된다. 거기다가 당시 신민당 청년부장이던 사람과 함께 말이다. 사건의 배후는 안기부가 아니라, 신민당 이택돈, 이택희 두 의원인 걸로 발표된다. 


 


 



 


 


이후 김용남은 믿었던 정치인들에게도, 주먹 후배에게도 배신당한 후 종교에 귀의하여 소소하게 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용팔이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물건파는 점원들이 아니다. 


 


명분도 잃고 정치적 정당성도 잃은 권력집단이 스스로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최후로 동원하는 폭력의 상징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통진당 중앙위원회에 난입해서 폭력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자신들의 공동대표단을 폭행한 이 눈먼 젊은이들은 용팔이의 직계자손이 맞다. 그것도 한참 더 찌질한 직계후손 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용팔이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정치부장 물뚝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