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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3. 화요일

짝퉁정보부

 

 

 

 







 
 

지난 기사

 

[미국 대선을 알려주마1]

 

 

 

 

 

 

 

 

 

 

 

1편에서는 미국 대선의 시스템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했다. 이번에는 지난 십수년간 미국 대선의 선거판도를 흔들어 놓았던 몇가지 사건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미국에서 대선을 흔드는 이슈와 한국의 그것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딴지 독자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이 사건들은 일반적인 언론들에서 비중있게 순위를 나열하거나 대선 판도 변화의 이유로 찍어서 제시하지 않은,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미리 밝힌다. (아니면 그만이다. 내 필명에 괜히 “짝퉁”이 들어가는게 아니니까.)

 

 

 

 

 

 

 

 

0. 들어가기 전에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중간에, 필자가 사는 뉴저지 지역에 허리캐인 샌디가 들이닥쳤다.

 

 

 

 

 

 

 

Figure 1. 샌디의 위성사진. 화살표 끝이 필자가 사는 곳이다.

 

 

 

 

 

필자의 집에 전기공급이 끊어진지 이제 만으로 6일이 되어가고 있으며, 큰 나무들이 너무 많이 넘어져서 언제쯤 복구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죽지않는 돌고래 팀장의 “지금까지 들어본 이유중에 가장 엄청나다”는 대답을 듣고, 가장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금 500불을 들여서 발전기를 구입해서 뒷마당에서 발전기를 돌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Figure 2. 죽지않는 돌고래 팀장과 필자와의 은밀한 대화

 

 

 

 

 

 

 

 

전기가 들어와서 이 글을 마무리할때 이미 미국 대선은 끝났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젠장맞을 허리케인때문에 미국 대선 이전에 글을 마무리 할수가 없었다. 씨바.

 

 

 

 

 

 

 

 

 

 

 

1.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화두는 누가 뭐라해도 역시 경제였다. 미국의 경제는 2008년 리만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몰락 이후에 계속적인 침체를 이어가고 있으며, 대대적인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금융권 지원에 나섰기에 다른 투자은행들과 보험사(AIG)가 도산위기에 처하는 것을 막을수 있었다. 이 경제위기의 와중에 상당수의 미국 중소도시 지방은행들이 줄도산을 피할수 없었고 이 은행부채의 상당수는 연방예금보험(FDIC)이 지게 되었다. (2000년 10월 1일 이후에 정식등록된 은행중에 490개 은행이 도산해서 문을 닫았는데, 그중에 468개가 2008년 이후에 도산했다)

 

 

 

 

 

이 금융권의 부실은 월가의 대량해고로 이어졌고, 은행권의 대출규제는 수많은 미국인을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그들의 주택이 압류당하게 만들었고 수많은 중소상인들의 사업을 파산으로 몰고가는 연쇄효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미국 경제인력의 실업률은 가파른 상승곡석을 그리면서 1920년대 대공황때만큼의 경제불황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Figure 3. 2002년부터 2012년까지의 실업률 추이

 

 

 

 

 

 

 

 

경제정책에 대해서 두 후보의 정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당측은 재정확대를 통한 정부차원의 중산층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그에 따른 상위 2%소득층(미국 기준으로 기혼부부당 25만달러를 기준으로 했다)에 대한 감세혜택 중지였고, 공화당의 정책은 전 계층에 대한 감세정책 유지와 소득공제와 세액공제를 줄인다는 것이었다(이에 대해서 민주당은 Tax Cut이라는 표현을, 공화당은 Tax Relief라는 표현을 쓰면서 자기들의 정책이 더 좋다는 정치적 행위를 이어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책대결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연방정부의 지출방향에 대해서도 두 후보의 정책은 극명하게 엇갈렸는데, 오바마 후보는 지속적인 지출 증가로 대체에너지개발, 교육부문의 정부차원의 지원을 약속했고, 롬니후보는 석유에 제한된 에너지개발과 연방정부의 기능을 주정부로 돌리는 “작은 연방정부”정책을 지속해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잘 알려진 의료보험의 문제가 화두로 나오게 되었다. 롬니후보쪽의 공약중의 가장 충격적인것은, 대통령이 되면 첫번째로 할 것이 오바마케어(Obamacare: 이 단어를 부정적의미로 해석할수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던 “5세훈”이라는 표현과 비슷한 정도의 비하로 이해하면 옳을듯 하다)를 바로 폐지한다는 것이었다.

 

 

 

 

 

실제 이 의료보험개혁안은 중산층과 실업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료보험지원을 위한 법적인 요구등을 담고 있으며 미국역사상 가장 큰 의료보험시스템 개혁의 하나이다. 롬니후보쪽에서는 메디케어(미국에서는 월급에서 일정부분 메디케어세금이라는것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 기금을 바탕으로 60대 이후의 의료보험을 정부에서 일부 부담하는시스템을 메디케어라고 한다. 오바마후보의 의료보험개역안은 메디케어를 통합하는 부분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시스템의 붕괴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오바마후보의 보험개혁안을 깎아내리려는 선거운동을 계속 이어갔다.

 

 

 

 

 

 

 

 

 

 

Figure 4.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오바마 저격수로 알려진 사람이다.

(주지사, 졸라 뚱뚱하지 않은가?)

 

 

 

 

 

연방재난방재기구(FEMA)에 대해서, 오바마 후보는 유지하는 방향으로, 롬니 후보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기에 폐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가운데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동부를 강타했다. 연방재난방재기구를 주축으로한 오바마대통령의 이번 허리케인 사태 해결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으며, “저격수 홍준표”쯤의 수준으로 오바마에 대해서 적극적인 정치적 공세를 이어왔던 크리스티(Chris Christie) 뉴저지 주지사마저도 오바마의 대처에 대해서 찬사를 보냈으며, 선거 이후에 축하전화까지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Figure 5.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 분포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위에 표시된대로 오바마후보의 낙승으로 끝났다. (지도상에 표시된 회색이 플로리다인데, 공식적인 개표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만약 플로리다의 결과가 대선에 영향을 주는 상황이었더라면 2000년 고어vs부시의 개표 악몽이 다시 살아날뻔 했다. - 편집자 주 : 원고를 받은 이후인 지난 10일, 플로리다의 개표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바마는 50%의 득표율, 롬니는 49. 1%의 득표율로 최종 선거인단 수에서 332:206으로 오바마가 롬니를 앞섰습니다. 미국 대선은 플로리다 개표 이전에 오바마의 과반수로 재선이 확정되었습니다. )

 

 

 

 

 

2008년 선거결과와 비교해서 큰 틀에서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면 지지층의 큰 변화는 없었고, 오바마 대통령의 지속적인 중산층과 소상공인 지지정책이 어느정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통령 선거였다. 이로써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민주당 대통령으로 연임에 성공한 6명의 대통령 중 한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1960년대 이후에 민주당 대통령으로 연임에 성공한 사람으로는 빌클린턴이 유일했었다)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흑인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50년 안에 흑인 대통령이 다시 나오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2. 미국 대선을 흔들었던 사건들(1) - 워터게이트

 

 

미국 대통령들 중에 암살 당하지 않고 임기 중간에 사임한 대통령으로는 닉슨이 유일하다. 이 닉슨을 사임하게 만든 사건이 워터게이트다. 워터게이트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있는 다섯개의 빌딩이 모여있는 단지의 지명인데, 1972년 당시 미국 민주당의 선거대책본부가 자리했던 곳이다. 닉슨대통령 재선위원회측의 지시로 추정되는 침입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침입의 목적은 도청장치를 설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경비원의 이상한 테이프 발견에 의해 수면위로 올라온다. 백악관과 그 주위로 수사망이 좁혀지는 가운데, 정권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는 시도가 밝혀지면서 닉슨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특별검사에 의해서 수사대상이 되고 사법방해, 권력남용과 의회에 대한 모욕이라는 이유로 하원의 탄핵투표에 회부되고, 3차에 걸친 탄핵투표는 가결된다. 닉슨 대통령은 상원에 탄핵안이 회부되기 전에 1974년에 자의로 사임하게 되며, 당시 부통령이었던 포드가 자동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이 사건은 공화당이 보수성향의 지지자로부터 표심을 잃은 사건이 되었고, 1976년 차기 선거에서 민주당의 카터 대통령이 당선되게 하는 큰 사건으로 기록되게 된다.

 

 

 

 

 

 

 

Figure 6. 닉슨 대통령의 사직서

(거창한듯 하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나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

 

 

 

 

 

 

 

 

 

 

 

3. 미국 대선을 흔들었던 사건들(2) - 걸프전 (41대 대통령 아버지 부시가 일으킴)

 

 

걸프전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부터 시작했다. “사막의 폭풍”이라는 작전명으로 알려진 이 작전에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개입하면서 1990년 8월부터 1991년 2월까지 계속 되었다. 이 걸프전은 CNN을 통해서 전쟁상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으며, 전쟁 상황을 안방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볼수 있다는 웃지못할 상황이 현실화된 첫번째 전쟁으로 기억된다. (현재 MBC에서 임원으로 벼락승진을 한 이진숙씨가 종군기자로 활동한 전쟁이었기도 하다).

 

 

 

 

 

현대전의 표본사례가 된 전쟁이기도 했지만, 당시 악의 축으로 인식되던 사담후세인의 처리에 실패했고 열화우라늄(열화우라늄은 영어로 Depleted Uranium이라 한다. 따라서 “열화”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자로 연료를 만들기 위해서 우라늄 235를 추출해내고 남은, 방사성 분열이 잘 일어나지 않는 우라늄 238이 주성분인 함량미달의 우라늄이라는 말이다. 우리 말로 왜 “열화”라는 표현을 쓰는지 필자는 아직도 궁금하다)탄에 의한 오염, 민간인 학살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부시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1992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빌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패배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 않았나 한다.

 

 

 

 

 

 

 

 

 

 

Figure 7. 걸프전장에서 미군을 순시중인 (아빠)부시대통령

 

 

 

 

 

 

 

 

4. 미국 대선을 흔들었던 사건들(3) - 모니카 르윈스키

 

 

1992년 대통령 선거당시에 상당수의 여성 유권자가 빌클린턴에게 자신의 표를 던진 이유중의 하나가 “잘생겨서”라는 풍문이 돌았을 정도다. 클린턴의 외모는 아칸소 촌동네 주지사 출신이라는 배경을 무색하게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민주당 정부의 부자들에 대한 과감한 증세와 경제 활황은 1996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밥 돌 후보를 가볍게 제치고 재선에 성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클린턴 시대에 실리콘밸리의 신화로 성공한 많은 회사들이 탄생했다. (야후, 구글 등등..)

 

 

 

 

 

 

 

Figure 8. 모니카 르윈스키와 클린턴과의 관계를 풍자한 합성 사진

 

 

 

 

 

1998년에 한 여성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이며, 클린턴 대통령 당시 백악관 인턴으로 근무했다. 이 여성과 현직 대통령이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에 아홉차례의 부도덕한 행위(무슨 행위가 있었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필자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면 알려드릴수 있다.)가 밝혀지면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클린턴 정부 전반기의 건전성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게 되었으며, 실제로 미 의회에서 탄핵투표로 연결되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청문회 및 투표에 회부된 이유는 부적절한 처신 자체가 아닌, 그와 연결된 청문회 위증과 그에 따른 도덕적인 문제로 귀결되었으며, 투표에 의해서 하원을 통과하였으나 이 탄핵안이 상원에서 아슬아슬하게 통과되지 못함으로써 클린턴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원의 부결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인 당시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의 의견이 우세했다고 알려져 있다. (필자가 여자였고 르윈스키와 클린턴대통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면 과연 탄핵에 반대할수 있었을지 의문스럽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클린턴 정부에서 이 사건이 차기 대선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고 생각하고 2000년에 실시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초접전의 판세를 가늠하지 않았나 한다.

 

 

 

 

 

 

 

 

5. 미국 대선을 흔들었던 사건들(4) - 9.11

 

 

 

 

Figure 9. 9.11 당시 테러리스트들이 탈취한 항공기들이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모습

 

 

 

 

 

9.11은 미국 역사상 북미 본토에 최초로 외국의 테러세력이 공격을 가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정규군에 의한 공격은 1942년의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다). 알카에다(Al-Qaeda)라는 국제테러조직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지시에 의해서 항공기 네 대가 공중에서 탈취되어 뉴욕시 한복판의 세계무역센터와 국방부 건물에 자폭충돌을 한 테러이며, 이 사건으로 인해서 미국 국민들은 전에 없던 애국심과 테러에 대한 증오심을 표현하게 되었다. 부시대통령(아들 부시)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가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으며 테러소탕이라는 미국민들의 소망하에 2004년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도전을 가뿐하게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6. 미국 대선을 흔들었던 사건들(5) -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43대 대통령 아들 부시가 일으킴)

 

 

2003년, 조지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공격을 시작한다. 공격의 이유는, 이라크가 가지고 있는 대량학살무기(WMD: Weapon of Mass Destruction)를 탐지하였으며 이를 제거하고 국제테러조직을 지원한다고 알려진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을 권좌에 내려앉히기 위함이었다. 미국은 초반의 공격에서 어느 정도 전과를 올리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이어졌다.

 

 

 

 

 

이라크의 무장반군들이 미군을 상대로 항전하고 미군이 점령지에서 이라크의 대량학살무기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의 여론이 미국을 등지게 된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미군에 체포됨에도 불구하고 반전운동은 계속 되었고 미군과 반군의 희생은 계속되었다.

 

 

 

 

 

 

 

Figure 10.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체포당시 사진

 

 

 

 

 

미국민들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2008년 당시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라크 철군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전쟁과 인명피해,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던 전쟁비용에 염증을 느낀 여론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를 선택했다는 데에 대해서 이 이라크 전쟁은 주요 요인이 되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공약대로 이라크에서 대규모 병력을 철수시켰으며,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파키스탄에서 미군의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Figure 11. 빈 라덴의 사살 중계방송을 시청중인 수뇌부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대통령에 주목하라)

 

 

 

 

 

 

 

 

7. 미국 대선을 흔들었던 사건들(6) - 사라 패일린

 

 

아마도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상 부통령 후보 때문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한, 대선 판도를 심각하게 흔든 사람 중의 하나가 이 사람일까 한다. 바로 사라 패일린(Sarah Palin)…

 

 

 

 

 

 

 

 

 

 

Figure 12. 사라 패일린

(패일린의 사진중에 이게 제일 맘에 들더라)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으로 지난회에 소개되었던 존 매케인의 지명으로 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이다. 사라 패일린이 표방했던 그녀의 이미지는 여느 백인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평범함으로 대표된다. 실제 부통령 지명 당시에도 온 나라를 흔들었으며 현재 부통령인 조 바이든(이 사람은 36년 동안의 미 상원의원 생활을 통해서 토론에는 도가 튼 사람이다)과의 토론에서도 밀리지 않는 입심을 발휘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이미지였던 “보통 여성”에 먹칠이 가해진다. 딸의 혼외임신과 낙태에 연결된 수많은 정책혼선등, 그리고 코메디같은 사건 중 하나는 캐나다 코메디언들의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행세를 한 장난전화에 속아 넘어간 사실이 유튜브를 통해서 공개된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이웃 중에 미국의 정당이라고는 공화당밖에 모르는 골수 공화당 지지자는 “나는 저런 동네 아줌마같은 사람에게 부통령이라는 직책을 맡게 할수 없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 사람은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에 한표를 던지게 된다.

 

 

 

 

 

 

 

 

 

 

사라 패일린과 캐나다 코메디언들과의 전화통화

 

 

 

 

 

 

 

 

 

 

 

8. 마치면서

 

 

 

 

 

미국 대통령 후보자들과 정당에 대한 검증은 철저하게 정책 위주로 이어진다. 그리고 한 정당은 다른 정당 후보의 배경에 대해서 뒤를 캐거나, 검증하거나 비난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후보와 정당들은 자신들의 지난 정책과 앞으로의 정책 일관성이 국민들의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토론으로 판을 짠다. 한국의 선거판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뒷조사들(병역, 부동산, 표절 등등)은 언론들의 몫이고 표현의 자유 하에서 자기들이 취재한 의혹들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도하고 검증한다. 그리고 이 검증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권자들이다. 성숙한 유권자 의식이 있기에 미국의 투표소에는 정당들이 파견한 감시원도 없고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음에도 대규모 부정선거 의혹이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물론 미국의 모든 것이 다 좋다는 것은 아니고 미국을 따라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선거제도나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은 한국의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이 어느 정도 참고하고 배울만한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12월19일에 치루어질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에 의한 후보자 자질 검증이 이루어져 다음 5년 임기,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훌륭한 후보를, 더 많은 유권자들의 의견이 모아진 투표를 통해 선출할 수 있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 멀리서 바랄 뿐이다. 물론 필자도 영사관에 나가 부재자투표를 통해서 주어진 한표를 행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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