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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4.수요일

백골프

 

 

 

 

 

 

 

 

 

 

 

 

 

 

 

이상한 야구팬이 있었습니다.

 

 

 

 

 

동영상으로, 스탯으로 뭘 보여주고 꾸미고 할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발로 뛰고 현장을 싸돌아다니고 아마야구를 좋아하며 기술적인 측면에 주목해서 야구를 보는 팬이 있었습니다. 눈 내리는 엄동설한에도 아마야구 연습경기를 보고, 경기가 아닌 훈련 장면도 하루종일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귀가 보배라고 현장 야구인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고 듣고, 딴에는 어줍지 않은 장인정신 가지고 야구를 본다며 사방팔방 나돌아댕겼던 젊은 총각 야구팬.

 

 

 

 

 

그 야구팬이었던 사람이 어떤 한 선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 야구팬이 무지하게 쫒아댕긴 선수에 대해….

 

 

 

 

 


 

 

 

 

 

저는 한 선수를 무지하게 쫒아댕겼습니다. 그 선수 고교시절 경기, 그 선수 가족과 관계자를 제외하면 아마도 제가 가장 많이 현장에서 지켜봤을 것입니다. 동대문 구장에도, 이 선수의 팀이 예선을 벌이던 인천도원구장에도 항상 있었습니다. 3학년 때 치른 공식경기는 전국체전을 제외하고 모조리 보았습니다. 열다섯 경기 이상 본거 같아요, 그 아마야구 선수를.

 

 

 

 

 

 

 

인천 도원야구장 불펜으로 몸 풀러 나오자마자 하품 늘어지게 하던...

 

 

 

 

 

그 선수 참 재밌는 선수였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들, 신인으로 들어와 처음 시범경기를 치룰 때 대부분이 전력피칭을 하고 기량의 120%를 보여주려고 용을 씁니다.그래야 살아남아 1군에서 머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왠걸, 이 투수는 시범경기 나와서 그닥 전력을 다하지도 않고 간을 보고 이거저거 실험도 합니다. 그래서 시범경기 방어율이 나빴습니다. 아마 5점대로 기억을 합니다. 하지만 데뷔 첫경기 7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보여주며 그 시즌을 접수해버리죠.

 

 

 

 

 

전력피칭한 시범경기에서 5점대의 방어율을 보인 선수가 어찌 데뷔전부터 이렇게 잘했을까요? 조금씩 맞아가면서 배우고 적응한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당시 경기 중계가 되질 않아 대전이고 수원이고 직접 가서 봤는데 이 투수가, 이 신인투수가 말입니다, 힘 조절도 하고 간도 보고 이거저거 실험을 하더란 말이죠. 그리고 또 같은 고졸동기 포수, 정범모라는 당시 조금 서툴었던 포수와 시범경기 마지막을 함께해서 스탯이 더 나빠지기도 했구요.

 

 

 

 

 

또 재밌는 건 맞고 점수 내주면서도 난타나 난조 등 게임을 그르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걸로 압니다. 한번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없었다는 것인데, 정말 뭔가 있었죠.

 

 

 

 

 

신인투수가 시범경기에서 그렇게 던지는 게 상상이나 가십니까. 전력피칭 자제하고 이거저거 탐색도 해보는 거 말입니다. 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투수는 그렇게 독특하고 난 놈입니다. 그러니 데뷔 첫해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할 수 있었죠.

 

 

 

 

 

시범경기에서 신통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화 코칭스텝이 과감히 선발로 기회를 준 게 아니라, 당시 현장에서도 류현진군이 저러는 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거 같고 그러니 자신 있게 선발 자리 낙점해준 것이죠. 현장에 있던 저도 아는데 코칭스텝이 모를리가요.

 

 

 

 

 

자 저는 류현진…, 류현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편은 예고가 될 것인데요. 류현진에 대해 잘못 알려진 여러가지 것들, 과소평가된 것들-

 

 

가령 "개천에서 난 용", "송진우 구대성 같은 특급좌완 선배들 때문에 에이스가 된 선수" 등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사실 류현진의 잠재력을 완전히 꺼내준 소속팀 한화 선배는 따로 있었습니다. ... 누구게요?

 

 

 

 

 

"체인지업을 프로에 와서야 배웠고, 프로에 와서 완급 조절에 눈을 뜬 것이다"는데 류현진은 고교시절부터 체인지업 뿐 아닌 다른 오프스피드 구종을 가지고 있었고 원래 완급조절의 달인이었습니다.

 

 

 

 

 

외려 이 선수가 프로에 와서 갑자기 눈을 뜨게 된 피칭의 요령은 따로 있었죠. 그로 인해 불어난 살로 인해 생긴 회전력의 감소를 만회하다 직구의 구위를 확 늘릴 수 있었고요.

 

 

 

 

 

부상경력 때문에 SK와 롯데에서 패쓰했다? 스카우터들 호구 아닙니다. 언론과 팬들은 몰라도 그들 모두 류현진의 실력을 인정했었죠. 그런데 왜 한화로 가게 되었을까요?

 

 

 

 

 

동기생들 중 한기주보다 한참 못했고 유원상, 나승현보다도 떨어졌으며 같은 SK 연고 내에 있는 1년 후배 김광현보다 못한 선수였다? 리틀야구 때부터 줄곧 전국구였던 류현진. 고2때 공백을 제외하면 항상 정상에서 놀던 선수였고 김광현은 아마 시절 류현진보다 잘했다고 할 수는 있어도 류현진보다 ‘좋은 투수‘는 아니었습니다.

 

 

 

 

 

류현진에 대한 여러가지 잘못 알려진 것들, 이제 거의 야구팬에게 상식으로 굳어지기까지해서 섣불리 건드리기 부담스러운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그 외에…

 

 

 

 

 

왜 그의 직구는 과소평가되는가? 달리 말해 평속으로 볼 수 없는 직구의 위력과 활용폭(2~3키로 단위로 조금씩 힘을 가감하며 은근슬쩍 타이밍을 빼앗아 범타를 유도하고 파울을 적립할 줄 아는 선수, 메이저에서도 숙제이며 한국야구에선 류현진을 빼면 그레이싱어만이 던지곤 했던 패스트 체인지업과 속구 체인지업을 던지는 선수. 그래서 직구 평속이…)에 대해.

 

 

 

 

 

또 동산고 시절 4번타자였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타격시 어떤 개성과 특이점이 있었는지도 자세히 이야기해봐야겠네요.

 

 

 

 

 

(단순히 동산고 4번타자 출신이라고만 하면 참 심심하겠죠? 타격시 어떤 특징과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말해주면 좋을 텐데요. 제가 기억하는 타자 류현진의 강점과 기술적인 특징, 그 이야기도 좀 할께요. 당시 동산고엔 4번 류현진 말고도 포수 최승준과 외야수 김동용도 있었습니다. 동산고 팀이 청룡기 대회를 접수했었는데 포수에서 외야수로 변신한 현천웅, 야무지게 야구하던 3루수 이복민, 힘 하나는 장사였던 단순무식 최승준, 삼성으로 간 설악중 시절 야구천재 김기태, 기아로 간 박경태... 거기에 정민태, 위재영의 계보를 잇는 에이스 류현진.)

 

 

 

 

 

 

 

아마부터 프로까지, 항상 실력과 가치가 과소평가되어온 선수. 또 상위리그 적응 능력을 폄하받아온 선수.

 

 

 

 

 

동산고 시절 이미 80% 완성된 괴물이었지만 아마야구를 보지 않는 주류언론 탓에 전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채로 프로에 왔던 한국야구의 보물. 그 선수가 메이저 구단이 책정한 포스팅금액으로 처음으로 자신의 가치와 실력을 '온전히', '제대로' 평가받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사람들이 류현진 선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분이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류현진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몇 편 해볼까 합니다. 기대하시길.

 

 

 

 

 

 

 

 

 

 


 

 

 

 

 

PS 1. 언젠간 꼭 그의 고향 인천에 그의 이름을 딴 주소와 거리가 생겼으면 합니다. 류현진이 메이저에 가서 용트림 투구를 하게 되어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한민국의 아들이 되기 전에 말입니다. 류현진을 낳고 키운 건 분명 인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수를 보기 위해 참 많이도 인천행 급행 열차를 타곤 했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는 인천의 아들이었습니다. 고향팀에 버림받았을 망정, 이 선수는 지금은 '숭의 아레나'로 변한 도원야구장에서 꿈을 키웠었지요.

 

 

 

 

 

PS 2.  마지막 사진 제외하고 전부 제가 촬영한 것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문학구장에서 제 옆에 있던 벗이 찍었는데 제가 불렀죠, "류현진군 여기 봐요" 하고서.

 

 

 

 

 

 

 

 

백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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