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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금요일

 

임지선

 

 

 

 

 

 

 

 

 

 

 

 

 

그 쇳물 쓰지 마라

 

 

그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세상에 알린 것은 한 편의 시였다.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젊은이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편의 시 덕분이었다. 시는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에서 한 20대 노동자가 펄펄 끓는 용광로에 빠져 숨졌다는 짤막한 스트레이트 기사 아래 댓글로 붙어 있었다. 한 누리꾼이 쓴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의 시는 조용하고도 무겁게 인터넷 공간에 퍼져나갔다.

 

 

 

 

 

 

 

 

 

 

2010년 9월 9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몸이 으슬으슬했다. 마감을 끝낸 늦은 오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캡에게 전화가 왔다. 캡은 신문사 사회부 경찰팀의 팀장을 일컫는 용어로 서울지방경찰청을 출입처로 삼기에 흔히‘시경 캡’이라 불린다. 서울을 여러 지역으로 쪼개 맡은 경찰기자들은 캡의 지시에 따라 아침부터 밤까지 분주히 움직인다. 그는 대뜸 내게 시에 대해 물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용광로에 빠져 숨진 노동자 추모시 봤어?”

 

 

 

 

 

“네, 봤어요.”

 

 

 

 

 

“어떻게 생각해? 기사는 거의 안 나왔던데…. 당진이라는데 한번 가볼래?”

 

 

 

 

 

“가볼까요? 지금 회사 차로 이동 중인데

바로 달려가면 자정 전에는 도착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 그럼 일단 가봐. 가봐서 상황이 어떤지 보고하고.”

 

 

 

 

 

 

 

 

한 줌의 뼛조각, 1리터의 눈물

 

 

기존에 그의 죽음을 보도한 기사를 찾아봤다. 7일 오전 2시께 충남 당진군 석문면 모 철강업체에서 직원 김모 씨가 용광로에 빠져 숨졌고, 시신은 찾지 못했으며, 경찰은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라는 단 네 문장으로 구성된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였다. 육하원칙에 맞춰 사실관계만을 나열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는 늘 무서우리만큼 차갑다. 사람이 용광로에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끔찍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점잖기만 하다. 경찰이 사고 경위를 조사한다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 조사가 끝날 때쯤이면 사고 자체를 잊을 터였다.

 

 

 

 

 

전화를 끊고 무작정 충남 당진으로 달려갔다. 남자가 죽었다, 남자는 펄펄 끓는 용광로 옆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용광로에 빠져 죽었다. 나로서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철강회사 현장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사고다. 당진으로 가는 길, 밤새 차가운 비가 쏟아졌다. 억수비였다. 한기가 느껴지는 가을밤,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숨진 청년의 모습은 이미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당진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돌려 죽은 이를 수소문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부터 산업재해 연구를 하는 이들에게까지 이 사건에 대해, 그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아는 이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망한 노동자가 다니던 회사가 한국노총 소속이어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사건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경찰에 물어 회사 이름을 알아냈고 회사에 물어 장례식장을 찾았다.

 

 

 

 

 

 

 

 

 

 

자정 무렵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장례식장에는 빗소리만 가득했다. 그의 성은 김, 나이는 29세였다. 장례식장에는 빈 관이 놓여 있었다. 용광로에 녹은 그의 몸뚱이를 찾을 길이 없어서였다. 몸뚱이도 없는 막내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부모는 차마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세 누이는 조용히 흐느꼈다. 작업복을 입고 빈소를 찾은 회사 동료들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술을 마시다 얼굴을 붉혔다. 일부는 장례식장 앞에 나와 앉아 퍼붓는 비를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댔다.

 

 

 

 

 

다음 날 오전 10시, 사고 현장을 찾았다. 김 씨는 자신이 일하던 충남 당진군 ㅎ철강 제강공장의 전기로 안에서 숨졌다. 매일같이 섭씨1,600도의 쇳물이 이글거리는 깊고 둥근 쇳물통이다. 회사는 사고 이후 경비가 삼엄해져 있었다. 충남 당진경찰서 과학수사대 차를 얻어타고 잠입했다. 기자임을 알아차린 회사 관계자와 승강이 끝에 가까스로 전기로에 접근할 수 있었다.

 

 

 

 

 

7일 새벽에 사고가 난 뒤로 사흘을 내리 식혔지만 전기로 안은 여전히 뜨끈뜨끈했다. 고무장화를 신고 사다리를 올라 전기로 안으로 들어갔다. 쇳물은 식어 허연 잿더미처럼 보였다. 잿더미 위에 손이 닿으면 바스러질 듯한 뼛조각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김 씨의 다리뼈와 두개골의 일부였다. 섭씨 1,600도가 넘는 쇳물 안에서 다 타버리지 않고 남은 것만도 기적에 가까웠다. 당진경찰서 과학수사팀 소속 경찰관이 두 손으로 유골을 떠서 조심스레 자루에 옮겨 담았다.

 

 

 

 

 

전기로 밖에는 유족들이 서 있었다. 유골 수습 장면을 지켜보던 김 씨의 부모와 누이들이 마침내 오열했다. 야근조라며 웃으며 출근했던 아들, 손닿으면 바스라질 듯한 뼛조각이 되어 돌아온 동생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사고 소식만 듣고 주검조차 보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르던 가족이었다. 경찰이 전기로에서 유골을 수습해보겠다기에 마지막 기대를 안고 따라온 참이었다.

 

 

 

 

 

“사람이 섭씨 1,600도의 쇳물에 빠지게 되면 일단 그 온도에 몸이 곧바로 타게 되는데, 이때 무거운 쇳물의 특성상 사람의 유골이 윗부분에 뜨게 되어 있어요. 때문에 식은 쇳물 위쪽에서만 유골을 수습하고 나면 아래쪽의 잿더미들은 유골과 전혀 섞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수사팀장이 덤덤하게 설명했다. ‘그 쇳물 쓰지 말라’는 여론을 의식한 듯했다.

 

 

 

 

 

사흘 동안 장례식장에 덩그러니 놓여만 있던 나무 관이 사고 현장인 전기로 앞으로 들어왔다. 관에 하얀 창호지를 깔고 바스라져가는 뼛조각을 넣었다. 김 씨는 사망한 지 사흘 만에 뼛조각 일부로나마 누울 곳을 얻었다. 전기로 앞에 조화와 관을 놓고 입관식을 진행했다. 모든 기계 가동이 중단된 거대한 공장에 유족들의 울음소리만 울려퍼졌다.

 

 

 

 

 

 

 

 

정신이 혼미한 야간에 벌어진 사고

 

 

김 씨는 2009년 6월 ㅎ철강에 입사했다. 입사한 지 이제 갓 1년을 넘긴 참이었다.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2년제 대학 자동차학과를 졸업했지만 전공대로 취업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ㅎ철강에 입사하기 전에는 당진 시내에 있는 조그만 광고회사에 다녔다. 말이 광고회사지 가게를 하나 차려놓고 간판이나 각종 광고물을 만드는 곳이었다. “늘 웃으면서 성실하게 일하던 청년”이라고 당시 거래처 사람은 그를 기억했다.

 

 

 

 

 

20대 후반이 된 그는 보다 안정된 직장을 찾아나섰다. 당진에는 철강회사가 많다. 철강회사의 정규직 직원이 되면 월급도 안정적이고 정년도 보장된다. ㅎ철강에 지원을 했다. 회사 관계자는 “김 씨는 당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지만 우리 회사에 오고 싶어 이 동네로 이사까지 했다는 말에 열정이 느껴져 뽑았다”고 말했다. 1년여를 일하며 안정을 찾은 그는 여자친구와 내년쯤 결혼할 꿈을 꾸고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7일 새벽, 그는 여느 때처럼 작업복 차림으로 전기로 주변에서 일하고 있었다. 4조 3교대로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에서 그는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하는 조였다. 한 조에 여섯 명씩, 고철을 전기로에 넣어 녹여낸 뒤 쇳물을 다음 공정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야근은 언제나 사람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유럽에서는 야간작업 자체를 발암을 유발하는 환경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4시간 전기로가 가동되어야 하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는 선택할 수 없다. 야근을 해야 한다.

 

 

 

 

 

이 회사에선 하루에 100톤 분량의 고철을 일고여덟 번 녹여내고, 또 하루에 세 번씩 20분 정도 ‘스프레이 보수작업’이라는 정리작업도 진행한다. 스프레이 보수작업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녹여낸 고철을 빼낸 뒤 다음 고철을 녹이기 위해 정리작업을 하는 것이다. 전기로에 15톤 정도의 쇳물만 남긴 뒤 위쪽의 둥근 뚜껑을 열고 뚜껑 주변을 청소한다. 주로 자잘한 쇳조각들이 끼어 있는데 이런 이물질들을 전기로 안쪽으로 넣거나 밖으로 빼내는 작업을 한다.

 

 

 

 

 

 

 

 

 

 

2층 높이의 전기로 뚜껑 주변에 있는 스프레이 보수작업 장소에는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다. 전기로로 접근을 막기 위해 허술한 쇠사슬이 걸려 있을 뿐이다. 뚜껑 주변의 이물질이 잘 제거되지 않으면 한쪽 발을 들어 쇠사슬을 넘어간 뒤 팔을 뻗치기 일쑤다. 이때 전기로의 열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섭씨1,600도의 쇳물은 어떤 뜨거움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열에 노출되면 누구라도 순식간에 정신을 잃게 된다. 작업복은 말 그대로 작업복, 섭씨 1,600도의 후끈한 열기에서 노동자들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나던 날 새벽 1시 20분께, 어김없이 스프레이 보수작업이 시작됐다. 김 씨는 전기로 주변 청소를 맡았다. 당시 전기로에는 쇳물 15톤 정도가 남아 있었다. 새벽 1시 40분, 김 씨의 동료는 김 씨가 전기로 입구 옆에 걸쳐 있는 철근 조각을 치우려고 파이프를 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그다음으로 본 게 김 씨가 쇳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 씨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동료들은 김 씨가 빠진 사실을 알고도 이글대는 전기로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안전시설은 얼기설기한 쇠사슬뿐

 

 

죽음의 실체가 보도된 뒤 여론이 들끓었다. 노동·보건의료 분야 시민사회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산재 사망에 대한 근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은 관할 노동청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식 부실 안전점검으로 인해 발생한 예견된 산업재해”라며 전기로 주변의 기본적인 안전시설이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실제 사고가 난 ㅎ철강은 고용노동부의 산재예방 집중계획 대상에서도 빠져 있었다. 사고 2주 전 중대 산업재해 예방센터가 ㅎ철강에 실태 점검을 나갔으나 전기로 주변 안전시설 점검은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제강업체에서 20여 년 동안 일했다는 한 독자는 이메일을 보내 “신문에 실린 ㅎ철강의 전기로를 보고 경악했다”“안전장비를 꼼꼼히 갖추는 일본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후진국 사고”라며 안타까워했다.

 

 

 

 

 

전기로는 한동안 가동되지 않았다. 회사 쪽은 “경찰 설명대로라면 유골을 떠낸 아래쪽의 쇳가루에는 유골이 섞이지 않아 전기로를 다시 가동해도 문제가 없지만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조시弔詩로 인해 많은 이들이 15톤에 달하는 쇳물의 사용에 관심을 가져 회사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일단 사망한 노동자를 위한 진혼제를 열어 그 넋을 위로한 뒤 유족과 합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얼마 뒤 회사 쪽은 유족과 합의했다. 얼마 전 다른 회사에서 용광로에 빠져죽은 노동자에게 건넨 합의금이 기준이 됐다. 반복되는 사고에 업계의 대응방식까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어찌됐든 합의가 됐으니 그 죽음을 더 이상 문제 삼을 수 없게 됐다.

 

 

 

 

 

김 씨가 사망한 작업 현장을 둘러본 뒤 회사 쪽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본관 사무실에 들어간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사무직 직원들이 일하는 본사 건물은 서울에 있는 어떤 건물보다도 멋졌다. 겉면은 노출콘크리트와 대리석 등으로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었고, 시원한 통유리에 널찍한 실내에는 초록 식물들로 인테리어까지 잘 되어 있었다. 화이트칼라의 1인당 업무 영역은 널찍했고 공기는 한없이 쾌적했다. 반면 현장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철강회사답게 거대한 용광로와 시멘트 바닥, 허술한 철제 계단, 얼기설기 얽어놓은 쇠사슬 경계선 등이 전부였다. 회사는 흑자를 내어 본사 건물은 멋지게 지었지만 현장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강화하지 않았다.

 

 

 

 

 

2010년 한 해 동안 일터에서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1,383명에 달한다. 이 중 453명이 추락해 숨졌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갖춰져 있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대부분이었다. 김 씨의 장례식 내내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다. 비바람이 너무 차가워 섭씨 1,600도에서 산화한 그가 더욱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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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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