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을 쓰고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애초 글의 목적이 객관적인 사실을 칼같이 정리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관련된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를 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대적인 인사조치가 있었고, 여러 사정상 관련자 모두에게 일일이 묻고 확인할 수는 없었다. 조리원들에게 들은 말들은 정황상 완전히 거짓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들, 반복적으로 여러 명에게 들은 내용만 적은 것이다. 일부내용은 동료들과 동네 칼국수집에 갔다가 옆 테이블에서 우연히 조리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네? 뭐라고요? 그게 사실이에요?” 라고 내가 끼어들어서 주워들은 것이라 그들이 작정을 하고 꾸며냈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급식사태가 터졌을 때 언론은 예전 조리원들을 아이들에게 ‘막말을 한 막장 조리원’들로만 몰아세웠다. 일부 조리원들에게 잘못이 있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에 해당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았고 특히 내가 글로 남긴 내용을 말해준 분은 막말 관련 물의를 일으킨 조리원이 아니었는데도 지역 외곽으로 배치되어 현재 통근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대체 직원들 간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기에 급식사태가 그리도 악화됐는지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도 기록해 둘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조리종사원 발언 중 일부는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그런 일들은 대개 이 분들이 학교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하기 전에 벌어졌었다. 감사결과 불량급식사태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영양교사와 조리원들의 갈등’이 본격화되었을 때는, 이들 중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막장 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갈등 양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어떤 구조적인 문제들은 끄집어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조리원들의 요구사항이 반드시 중간관리자를 거쳐야 하는 시스템, 조리원들이 봐도 이상해 보이는 메뉴에 대해 절차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점, 학교비정규직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등 급식실이라는 외딴 섬에서 갈등을 악화시키는 잠재적 요인들 말이다.
감사결과 직원들 간의 갈등이 우리 학교 불량급식의 주원인으로 지목될 정도였으면, 이 갈등이 보편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정말 심각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묘사도 다소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페이스북 기사에 ‘영양사들 다 미쳤다’는 등의 댓글이 보이면 걱정이 좀 됐다. 이걸 학교의 보편적인 상황이라고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는 듯했다.
영양사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내가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던 차에 일선 학교의 영양교사인 ‘애니타임’이라는 분이 기사에 좋은 댓글을 달아주셨다. 글의 근본 취지가 학교 내 사각지대인 급식실에 불을 밝히자는 것이었으니만큼,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영앙사들의 고충에 대해서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추가로 글을 남긴다. 다음은 ‘애니타임’님이 댓글로 남긴 말들을 내가 몇 가지 주제로 나눠서 다듬어 요약·편집한 것이다. 참고로 ‘애니타임’님은 우리 학교 급식사태와 관련된 분은 아니다.
영양교사(영양사)의 과중한 업무
쓰신 글에 보면 급식시간에 영양교사를 본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겠어요. 저는 3교대 배식하는 초등학교 영양교사입니다. 3월에는 정말 업무가 폭주하고, 보고할 공문이 너무 많아서 매일 3회, 1시간씩 급식실에 갈 수가 없어요. 제 입장에선 거의 매일 식당에 가는데도 교사들은 어쩌다 한번 절 보면 식당서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영양교사(영양사) 업무가 너무 많아요. 해야 할 서류업무가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또 급식에 관해 무슨 일이 터지면, 언론과 정부에서는 무조건 영양교사 책임으로 돌리지요. (늘 문서보고 하라는 건 많은데) 이게 과연 급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무엇을 위한 보고인지, 보고를 위한 보고인지... 교육청 면피용 공문이라고 밖엔 생각이 안 듭니다.
급식이 2식 이상인 학교는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정말 힘들어요. 점심 먹고 설거지할 시간도 없이 바로 조리에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식중독 사고가 나는 학교는 1식이 아닌 2~3식인 고등학교가 많지요. 점심, 저녁 조리실을 분리하고 별도의 조리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설과 인력 투자는 없이 식중독 사고가 나면 영양사만 잡아요.
식중독 사고가 나면 영양사가 벌금을 냅니다. 원래 학교장, 그러니까 학교도 아닌 학교장이 내도록 되어 있는데 학교장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교에서는 대개 영양사와 조리종사원들이 과태료를 분담해서 내요. 그런데 최근에 식중독 사고가 나면 내는 벌금을 2배 이상 높인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영양사가 일부러 사고를 냅니까? 정부에서 투자도 안 하고,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 건 생각하지 않는 거죠.
초등학교가 그나마 고등학교보다는 일이 덜한데요, 그래도 저는 요즘 토요일마다 초과로 일하고 있어요. 주변에 초등 영양선생님들한테 전화해 물어보면, 아이들 때문에 주말에 못 나오니 일을 집에 싸들고 가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초과 달기도 민망해서 집에 싸들고 가서 일하는 분들도 많아요.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음식에 관련된 것은 무조건 영양교사에게 일을 맡기지요. 학교 내 소수자다 보니 힘이 없어 시키는 대로 그냥 합니다. 중식 지원 아이들 선정 같은 건 조리해서 먹는 것이 아니니 복지업무잖아요? 그것도 영양교사들이 다 합니다. 요즘은 무상급식이 돼서 좀 낫지만, 방학 중 중식 지원은 지금도 저희가 합니다. 예전에 무상급식 아니었을 땐 제가 돈 내고 알바까지 써가며 일했어요. 중식 지원 선정된 아동만 150명이 넘었었거든요.
급식에 대한 요구는 점점 늘고 있어요. 친환경제품 및 국내산 식재료 사용비율 증가, 한우 사용 비율 증가, 과일 제공 횟수 증가 등이요. 그런데 현재의 식재료비로는 급식 만족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어요. 아직도 조리원 인건비를 무상급식비에서 일부 충당하고 있고요, 예산 부족을 핑계로 학교 급식 실무전문가인 영양사를 계약직으로 뽑는 곳도 많아요. 인력과 예산이 정말 턱없이 부족합니다.
식약처와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
식약처나 정부가 참 이상한 게, 기업체나 납품업체에 무척 관대합니다. 민원 들어올게 걱정되는 거겠지요. 그렇지만 제대로 단속을 하는 것이 식약처, 정부의 업무 아닌가요? 급식 관련 교육청 인터뷰나 기사들도 납품업체에만 유리하게 나옵니다. 납품업체 사람들이 교육청 교육위원이나 기자들한테 로비라도 하나 의심이 들 정도에요.
사실 학교에서 보면 정부가 업체 단속을 제대로 해서, 처음부터 제대로 된 재료를 넣어주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런데 교육청은 급식실에서 쓰는 세재 원료까지 저희에게 보고하라고 합니다. 유해물질이 들어가 있는 세재를 쓰면 저희 책임이라니요? 어쨌든 보고를 위해 저희가 납품업체에 문의를 하죠. 그러면 그 쪽에서는 또 ‘영업비밀’이라고 합니다.
간단해요. 단체급식에 사용하면 안 되는 원료를 정부(식약처)가 지정해서, 그런 원료가 들어가는 제품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하면 되잖아요? 근데 식약처에서는 어떤 회사 제품에 위험한 원료가 들어가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아요. 마치 가습기 사태랑 비슷해요. 식재료 문제도 (원료를 속여서) 납품한 사업자보다, 학교 영양교사(영양사)가 처벌받아야 하는 게 참 웃프지요. 저희는 속아서 사용한 사용자이자, 피해자이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 2014년 5월 인천학교에서 식중독 사고가 났어요. 원인은 J푸드의 열무김치였죠. 이 업체는 당시 HACCP업체였고, 전통식품인증도 받은 업체였어요. 그런데 이 업체는 같은 해 2월에 교육청·식약처 합동점검에서 대장균이 검출되어 식자재가 회수조치 되었던 업체에요. 그럼에도 eat(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 입찰시 학교급식투찰 자격에 아무런 제한을 하지 않았어요. 2월에 이미 합동점검에서 문제가 있었던 업체가, 5월까지 아무렇지 않게 eat에 참여하고 있다가 사고가 난 것이었는데 정부는 업체가 아닌 학교를 점검하겠다고 발표했죠. 문제의 근본원인이 어디였는지를 보지 않고, 실적만 내려고 하던 조치였어요.
2016년 국무조정실 급식실태조사에서 축산물 납품업체가 유통기간이 초과된 제품을 납품했다가 적발됐죠. 그런데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작은 크기로 썰어진 육질의 상태만으로는 유통기한을 초과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국무조정실 조사에서는 ‘검수부실’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마치 학교의 검수가 부적절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보도자료를 냈어요. 항상 학교에게만 뭐라고 하지 말고, G2B나 eat시스템에 참여하는 업체를 불시에 점검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이와 같은 사안은 전혀 개선되지 못할 거예요.
영양교사를 처벌하고, 학교만 감시한다고 능사가 아니죠. 납품처 관리를 정부에서 제대로 해야 합니다. 애초에 학교에 불량 식재료가 들어오지 않도록 원천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급식실의 열악한 환경, 직원들 간의 잠재적 갈등
조리실 환경이 워낙 열악하고, 안전사고-인명사고 위험에 식중독 위험까지 있어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언론과 학부모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양교사들은 조리원들의 사소한 실수에도 아주 예민해집니다. 한 예로, 이전 학교에서 조리원 한분이 배탈이 났는데 저에게 말을 안 하고 계속 일을 했어요. 거의 쓰러질 정도가 돼서야 저에게 얘기를 했는데, 그때가 청소가 다 끝나가는 3시였지요. 그때 놀라서 얼마나 야단을 쳤는지... 왜 말 안했냐고요. 조금만 다치거나 아파도 얘기해 달라고 했었거든요. 만약 학생들에게 옮아 식중독으로 터지면 어떻게 하냐구요... 또, 실제로 조리원 중에는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분도 있어요.
조리원들이 (아픈 것을) 숨기면서까지 일하는 것은, 워낙 동료들과 협업이 중요하다 보니 갑자기 혼자 빠지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 욕먹을까봐 그래요. 늘 시간에 쫓기며 조리하거든요. 저희 입장은 사실 군대 지휘관이랑 비슷할 정도랄까. 조리실에서 무척 신경이 예민해져요. 군대문화는 왜 저래? 하고 남자들한테 물어보면, 방심했다가 사고날까봐 그런다고 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해요. 의사, 간호사들처럼 위생이 중요한 곳도 분위기가 그렇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조리원들 입장에서는 영양교사의 말이 잔소리로 들리고, 고압적으로 느낄 소지가 있다고 봐요. (영양교사들이 다 그렇진 않지만요) 나이 많은 조리원들 입장에서는 자기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연배의 영양교사가 잔소리 하는 게 싫겠죠. 그래도 조리원들은 노조도 있고, 말하면 들어주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양(교)사들의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말할 통로도 없어요.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책에 학교 급식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들을 기록하면서, 나는 불량급식사태가 근본적으로 관료주의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나는 일반교사의 관점으로 학교와 교육청 전반의 관료주의적 모순들을 비판했는데, 위의 글에서 영양교사가 말한 내용들을 살펴봐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보인다.
교직원들이 학교에서 수많은 문서와 복잡한 절차에 파묻혀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영양(교)사와 조리원들은 워낙 학교에서 고립되어 있는 데다 적은 인력으로 급식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상황이라, 교육청의 수많은 문서보고 요구가 더욱 힘에 부칠 것이다. 학교에서 식중독 사고와 관리 부실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을 영양(교)사나 조리원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이들이 급식현장을 세밀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즉 급식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환경조성부터 필요하다.
위의 사례를 보면 교육청은 급식실에서 사용하는 세재 원료의 위험성까지 개별 학교의 영양사가 알아내도록 지시하고 있다. 식약처, 정부에서 알아내 정보를 공표하면 될 텐데 굳이 학교의 영양사가 알아내도록 한 후, 문제가 터지면 징계를 내려 일개 직원이 옴팡 뒤집어쓰도록 하는 모양새도 참 낯설지 않다. 관료주의 체제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일은 대개 하급자들 몫이다. 정작 이들에게는 상급자들만큼의 정보 접근 권한과 인사권이 없는데 말이다.
영양(교)사들은 전국에서 불량, 부실급식문제가 터진 후 급식현장을 대상으로 검사 및 평가가 과해졌다고 주장한다. 교육청 정기점검, 식약처 합동점검, 특별점검, 학부모 모니터링단 점검 등 대단히 많은 검사와 평가를 받고 있어, 그것 자체가 급식종사자들의 업무를 과중하게 하고 급식 본연의 업무를 방해한다고 말이다. 우리 학교에 새로 배치된 영양교사와 조리종사원들도 정확히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주기적인 검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검사와 평가의 횟수에 비례해 급식의 질 나아가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평가란 평가 대상의 성장과 개선에 목적을 두고, 치밀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사고가 터지면 수많은 검사와 평가들이 졸속적으로 늘어나는데, 이들은 대개 평가를 실시하는 자들의 실적 올리기, 면피하기, 업적 가로채기가 되기 십상이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도 당국은 근본적 반성과 대책 없이 느닷없이 일선 학교에서 지진 대피훈련, 소방훈련 등을 강화하고 생존 수영 교육을 의무화해 학교 업무 담당자들만 힘들게 했다. 현장에서 어떤 반발이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양반들에게 올리는 업무실적 보고서에 점 하나 추가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급식의 질을 실제적으로 개선하려면 현장에서 일하는 영양(교)사, 조리종사원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개혁은 아래로부터, 현장으로부터 출발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 부족(급식단가에 인건비, 소모품비, 전기요금까지 포함된다), 인력 부족(영양사들의 과중한 업무, 아픈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일해야 하는 조리원들 상황), 식약처와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 등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에 나부터 귀 기울이고 최대한 많이 공유하도록 하겠다. 좋은 댓글을 주신 애니타임님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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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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