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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알고싶다] 역사조작 사례 리포트

2004.8.19. 목요일
딴지 사건조사반



나랏말쌈이 듕귁에 다라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세종대왕이 만들어주셨다는 한글을 깨우쳐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읽을 무렵부터 고구려는 이미 대한민국의 자랑찬 역사였더랬다.







당대의 패권국을 제압한 군장성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지방자치단체장,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군벌 연개소문 등 고구려 후기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신비한 건국신화 속에 살아숨쉬는 고주몽 그니까 동명신왕이랄지, 중국계 지배계급 여성으로 하여금 조국을 배반케 만든 시대의 쾌남아 호동왕자, 소금장수하다 쿠데타집권에 성공한 미천왕 등 신화와 역사가 혼재하는 인물들도 한국인의 조상, 고구려인이었다.


풍운아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이 어찌 빠질 수 있겠는가? 한강 유역으로부터 저 북부의 요동을 거쳐 어.. 음.. 아무튼 넓디 넓은 영토확장의 공에 빛나는 두 제왕을 마주하면 경외스런 자부심마저 든다.


따라서 이런 고구려를 한큐에 날로 먹으려는 중국의 자국사 편입 의도가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엄씀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역사 한 귀퉁이를 강탈당한다는 분노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너무도 당연히 고구려사는 오늘의 나를 이루는 베이스의 하나로 교육받았기에, 일종의 자기부정을 강요받는 정서적 충격 내지는 상실감도 크리라고 근거없이 주장해 본다. 어쨌거나..


역사가 대체 뭐라도 되기에 이 생난리가 벌어지냐는 아주 간단한 질문 앞에서 친애하는 독자제위께서는 어떤 답을 가지고 계시는지...


대체 역사가 뭐냐... 어쩌면 이 질문은 대체 왜 사냐 하고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물리력인 역사는 삶이라는 추상적인 어휘가 가지는 실재성하고도 닮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거 같다. 역사는, 특히나 국가단위의 교육서비스가 채택한 역사인 국사는 국가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허구와 달리, 사실이라는 믿음을 설파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유물 및 유적이 남아있으며 이를 해석해 내는 학자의 권위가 존중받고 게다가 해석된 유물과 유적을 국가가 공증함으로써 그런 파워를 획득한다. 그래서! 크나큰 영향력에 비해 조작도 아주 쉽다. 어쩌면 조작의 수월함이 역사의 영향력을 배가시키는 건지도....


예컨대, 우리집 뒷산에 작년부터 쌓여있는 돌무더기를 학자가 앙심적으루다가 연구 해석한 뒤, 국가가 그 결과물을 교과서에 실어 주면 그것은 신라의 한강유역 경영을 증명하는 진흥왕 시절의 유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다 말하는 바, 오늘의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을 알려주는 스승이며 넘어져 있으면 언능 바로 세워줘야 한다는 역사!, 그 역사가 거대한 힘에 의해 조작되고 왜곡된 몇몇 사례들을 독자제위와 공유코자 한다.
 


  사기쳐서 슬퍼진 고고학자..


우로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은 천재적이지만 빽없는 고고학자 다이치 키튼 박사가 보험조사원을 하며 겪는 갖가지 고충과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그랬나? 풋~~ 어쨌거나 키튼은 그 옛날, 쉴리만이 트로이의 존재를 확신하고 끝내 발굴에 성공했듯이, 유럽에 알려지지 않은 고대문명이 존재함을 굳게 믿고 있고 언젠가 발굴하리라 다짐하는데...


지난 2000년 늦가을,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일본 최고의 고고학자가 그간 이룩한 발굴업적이 실은 거의 다 뻥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평소 파기만 하면 유물과 유적이 쏟아져 내리길래 학계와 언론은 그를 신의 손 이라고 불렀다는데, 그런데 뻥이라니... 충격의 여파가 더욱 컸던 것은 후지무라 박사의 발굴이 있기 전까지는 일본사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다시 말해, 그의 발굴들은 정말로 역사책을 다시 써야만 하는 대단한 것이었고, 일본의 역사는 무려 70여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매, 초고인류라는 베이징 원인을 내려다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뻥이라니...


중요한 것은, 그간 아무리 파봐도 구석기 유물이 코빼기도 안보여 심히 자존심 상해 있던 일본인들이 이 대단한 업적을 자국사 교과서에 자랑스레 기록했고 일본정부는 이를 검인정해줬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뻥이라니...


그간 후지무라 박사가 묻었다가 다시 파낸 발굴품만 무려 160여 종이 넘었다 한다. 당 스캔들이 발표된 즈음에는 거의 가짜라고 위로했으나, 지난 2003년 진상조사단은 죄다 가짜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일본의 선사시대는 다시 7만여 년 전 정도로 조정됐다 한다.


이 헤프닝에 국내에서도 여러 논평들이 뒤따랐는데, 저 정도 어마어마한 조작에 과연 학계까지 속아넘어갔겠는가 하는 점이 지적됐다. 특히나 그 많은 유물을 만들어 목적지까지 싣고간 담에, 땅 파서 묻고 하는 일련의 고된 과정을 후지무라 박사 혼자서 했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 딴은 그렇네. 조력자와 묵언의 협력자 없이 저게 대체 발생할 수나 있는 것일까? 특히나 그의 권위에 눌려 이제는 흔한 탄소측정 등의 과학적 증명도 취하지 않았단 말인가?







허나 당 폭로가, 새벽에 몰래 무언가를 묻고 있는 후지무라 박사를 목도한 언론기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나마 일본사회의 열린 구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것두 딴은 그렇다. 과연 저 너무 엄청나 지대 쪽팔린 일을 공개하고 조사단 꾸려 모두 사기란 사실을 수용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말이다. 만약 당 사건이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와 얽힌 것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다시 말해, 자국내에 관련된 사안이고 너무나 오래되어 자존심의 문제 말고는 어떤 실익도 없는 고고대사의 조작이 아니라, 현존하는 대중 다수의 막대한 이익이나 국제적 권력도에 영향을 미치는 조작이었더라도 저렇게 솔직하고 쌈박한 처리과정이 이어질 수 있었냐 하는 거다.


더군다나 몇몇 집단의 암묵만으로도 얼마든지 조작과 전파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당 사건은, 사건 자체가 거대권력의 알찬 개입과 무관할 지라도 충분한 공포를 시사하는 바이다. 혹시 어디선가 떨고 있을 고고학자는 없는 걸까?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란 게 어디까지가 진실인 걸까?


보험조사원 때려치고 이제 작정하고 땅파러 떠난 마스터 키튼... 파도 파도 안나와 지가 묻고 지가 또 파내는 그런 뻘짓거리는 하지 않기를...


다음으로는 현존하는 이익과 권력 앞에서 조작되는 사례들을 살펴보자.
 


  점철된 학대와 쌩까기, 호주토착민의 역사


올림픽이 한창이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400미터 여자육상 챔피온에 오른 캐시 프리먼을 기억하시능가? 호주원주민 애보리진 출신으로써 자신의 우승이 호주원주민의 슬픈 역사와 질곡의 삶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또한 그 삶이 나아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랬던 여성이다.


원래 애보리지니(aborigine)는 "기원으로부터"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ab origine에서 유래한 영어단어(보통 토착민/원주민이란 뜻)인데, 대문자로 쓰이면 호주원주민을 가리킨다. 마오이족과 같이 특정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님을 우선 환기한다.







상식적으로 알려진 호주 건국사의 이면에는 여타 유럽인들의 타대륙 정착사가 그렇듯 기존 거주인들을 피로 제압하며 형성된 역사가 있다. 따라서 호주의 애보리지니 탄압사는 미국의 네이티브아메리칸 탄압사과 매우 닮아있는데 어떻게 보면 더 심한 듯 하기도 하다.


유럽인들이 지맘대로 호주에 식민지를 만든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이고, 놀라지 마시라,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전체 애보리지니 인구의 90%가 죽어나갔다. 갑자기 유입된 이주민들로부터 파급된 각종 질병,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빼앗기는 생활터전 그리고 이주민들의 대량학살로 인한 것이다.


대량학살 부분은 애보리지니 운동가들과 호주정부간, 그리고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계속되는 논쟁의 핵이다. 헨리 레이놀즈 같은 역사학자는 영국식민지 시절 벌어진 학살에 만 여명의 애보리지니들이 희생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정부측 주장은 훠얼씬 적은 수의 희생이 있었고 대부분은 질병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미 토착민 예컨대 인디언들은 어째서 그렇지가 않은지, 원...


한편, 이주민들에 의한 애보리지니 착취는 아웃백지역 농·축산업에 필요한 노동력 뿐이 아니었다. 20세기 초에 각 지역마다 원주민아동복지기구가 설치되어 1972년까지 약 3만여 명의 애보리지니 혼혈아동 분리정책이 실시된다. 간단히 말해 백인의 피가 섞인 아동은 무조건 부모로부터 강제분리되어 입양되거나 보육시설로 보내졌다.


미국에서도 벌어진 바 있는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은 80년대에야 사회에 폭로되고 애보리지니들은 이 세대를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라 부른다. 앞서 나온 캐시 프리먼의 할머니도 도둑맞은 세대의 희생자였다.


애보리지니 대다수는 현재까지 농촌지역에서도 한참은 떨어진 자신들만의 정착지에 거주하고 있다. 호주정부는 화합정책으로 이들을 포용하려 하고 있으나, 애보리지니들의 요구는 호주의 공민권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자치통치권이다.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살아왔던 지역에 대한 권리청구이자 호주대륙의 네이티브로서 가질 수 있는 점유권 인정 요구인 셈이다.









 애보리진기를 두르고 있는 프리먼


1994년, 일종의 토지소유권 반환소송인 에디 마보 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이 나왔다. 이 소송은, 원주민이 가지는 호주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판례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1999년에는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도 있었다. 그 개헌안에는, 애보리지니들이 영국정착민들에 우선하여 호주대륙 점유권을 가진다는 선언적인 문구를 헌법 서문에 넣는다는 조항이 있었더랬다. 압도적인 표차로 당 제안은 거절당했다.


호주원주인들의 호주대륙 정착사는 약 5만 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이들의 역사는 구전되어 전해왔고, 북미아메리카 원주인들처럼 통일국가에 별 관심을 가져온 거 같지도 않기에 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아직도 지난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근거자료에 대한 문제이므로.


선사시대부터 존재하는 애버리지니의 대륙 개척사와 유럽이주민에 의한 비극적 학살 및 삶의 고통을 호주라는 국가권력은 여전히 속시원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 인정한다거나 사실을 바르게 기록한다거나 하는 일, 즉 역사를 인정하는 일은 여기 지금을 사는 호주인들의 돈과 땅 그래서 권력에 영향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의 부도덕 행위를 인정하는 게 쪽팔려서가 아닌 것이다.
 


  핏값으로 배를 불리다


역시 올림픽 얘기로 시작하려 한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얼마 전 이란의 유도선수가 이스라엘 선수와의 대전을 고의로 포기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전쟁이 끝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연합군의 도움에 힘입은 이스라엘이 아라비아반도를 점유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건 주지의 이야기.


호주대륙이나 아메리카대륙 이주민들처럼, 주인 없는 땅 먼저 찾아 깃발 꼿았으니 괘안타고 강변하는 유럽인들에 비해서, 팔레스타인지역에 이주한 유태인들은 기원 전에 내가 살던 땅이었으므로 암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 게 상당히 특이하다. 그럼 그간 전세 놓은 거랸 말이냐, 참...


어쨌거나, 세계 각지에 퍼져 살던 이들 유태계 이주민들이 모처럼 한 맘 한 뜻으로 국가를 건설하는데는 시오니즘이라는 종교성 짙은 민족 이데올로기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어차피 이데올로기야 이리저리 와꾸를 맞춰서 누군가의 혹은 어떤 집단의 결과행동을 도출해낼 때 사용되는 거이므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으련다.


다만, 이러한 시오니즘을 확대재생산해내는 데 동원된 역사과장 및 왜곡에 대한 것을 소개하려하니 바로 유태인의 눈물, 홀로코스트이다.


2차 세계전쟁은 히틀러만큼이나 유태인 학살로 상징되는 전쟁이다. 600만 명 이상이 단지 비(非)아리안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고는 하더라. 인류의 큰 비극이자, 인간성이랄지 인간의지랄지에 대해 참으로 회의가 들지 않을 수가 결코 없음이다. 짐짓 쿨한 척, 파시즘이 맹위를 떨칠 때면 거의 반드시 빠지지 않는 것이 대량살상이고 의도는 내부결속에다가 일벌백계 일테다 라고 말해도 맘은 쓰리다.


인류의 비극이자 같은 종족들이라면 더욱더 치가 떨릴 나치스의 유태인 학살을 홀로코스트라 부른다. 그리고 이 홀로코스트가 앞서 말한 시오니즘의 강화와 나아가 개인의 금전 착복에 쓰였다는 주장이 지난 2001년에 제기된다.


유태계 미국인 학자이자 그자신, 나치즘 피해자인 부모를 가진 노먼 핀켈스타인이 자신의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Holocaust Industry, 2001)>에서 다구리를 무릅쓰고 밝힌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태계 미국인들은 첨에 유럽계 유태인의 학살 사실이 이슈가 되는 것을 꺼렸다. 전후 서독과 긴밀한 협조를 해야 하는 미국의 정책에 유태인 학살은 민감한 문제니까. 또한 강짜로 되찾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스라엘에서도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이 노동가치가 떨어지는 여자나 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60년대 들어 유태계 미국인은 사회정치적 위상이 경제력 만큼이나 필요해지고, 미국정부 역시 중동이 석유 하나 믿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자 분위기를 업시킬 소재가 필요했던 바, 홀로코스트 띄우기가 낙점된다. 대대적인 선전 속에서 동독과 동유럽 공산국가에 남아있던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영웅으로 귀환시키고 독일로부터 막대한 피해배상금을 받아냈다. 또한 스위스 은행 등에 예치된 희생자유산을 온갖 루트를 동원해 인출시키기도 했다.


허나, 이 어마어마한 돈방석을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골고루 깔고 앉지는 못했다 한다. 이 모든 과정에는 지구행성급 세력형성에 날로 매진하던 미국과 유태계 미국인들이 깊숙히 관여했으며, 이들 유태계 미국인들이 배상금 및 유산 갈취의 원흉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유태인에 집중된 전쟁배상금은 비유태인 피해자에게 거의 무관한 일이 됐다.


핀켈스타인의 이런 주장은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유태계가 강력히 지배하는 미국 미디어는 책선전조차 안해줬다고 한다. 저자 자신은 재직하던 대학에서 쫒겨났고 말이다.... 엿같은 이야기란 건 알겠는데 어차피 유태인들이 대량 학살당한 건 사실이고, 이게 왜 역사왜곡과 관련 있냐고 혹여 묻고 계신가?







이유는 이거다. 역사왜곡이 있는 사실을 바꾸고 없는 사실을 날조하는 등의 행위라면 열 개가 벌어진 일들 중에서 한 개만 부풀려서 부당 이득을 보는 것도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철저한 속계산으로 홀로코스트 이외의 학살이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구태여 회피한다면 그것 역시 역사왜곡 아니겠는가 말이다.


전 세계의 분노와 동정을 산 홀로코스트는 유태계 미국인의 사회 정치적 입지를 상당 수준 올려주었다고 핀켈스타인은 설명한다. 또한 살던 사람을 강제로 내쫒고, 악착같이 붙어있는 사람은 살해해 가면서 경영해 왔던 팔레스타인 지역 점유자들에게 국가적 정당성을 부여해줬다.


국가정규군이 아이한테까지 총질하는 일이 대낮에 벌어지는 젖같은 그 땅의 시민권자들은 해외에 계신 유태인 동포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처절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착한 사마리아인의 후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역시나 역사왜곡의 당위성은 부와 권력의 생산 및 유지에서 찾을 수 있는 거였나? (당해 내용이 참조한 핀켈스타인의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은 올해 1월에 국내출간되었음) 
 


  아, 고구려 그리고 중국


우리 고구려를 한큐에 날로 먹으려는 중국의 최근 동북공정도 한번 살펴보자.


우선 본기자는 중국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지 못하므로 일반 독자들과 같은 상식적인 차원에서 다만 몇가지 자료를 컨닝하며 손구락을 놀리려고 하는 점을 양해 바란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드넓은 땅땡이만큼이나 여러 세력들이 아웅다웅해 온 곳이고 주류라 간주되는 한족의 역사에는 이민족의 지배기간이 그들의 역사만큼은 아니어도 꽤 많다.


송나라 때 이야기다. 주자학으로 잘 알려진 주희는 역사기술에도 한 몫 크게 했다하는데, 그가 들고 나온 것이 정통론이라 한다. 즉, 공자가 쓴 역사책, <춘추>의 예를 받들어, 대의명분에 따른 필삭과 포폄을 주창한 거다. 단순히 말해, 사가의 가치판단에 근거하여, 역사기술시 사례에 따라 방점을 찍든지 아니면 단순화시키자 머 그런 얘기 되겠다. 이에 따라 한반도 역사도 나와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는 진수의 <삼국지>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해진다(같은 시대를 다룬 나관중의 삼국지 아님).


이유를 따져보자. <삼국지>는 송대 전인 위진 남북조 시대에 편찬된 정사서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위, 촉, 오 삼국의 대립과 위로 통일되는 과정이 기술되어 있는데, 역사가 진수는 위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위의 분량도 젤루 많게 썼다 한다. 진수의 국적이 위를 계승한 진나라 인데다가 당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던 위나라를 대륙의 통치자로 인정한 것이다.


허나 한족이 세운 송대에는 이민족 중심*의 역사서를 받아들일 수가 없던 것이고 하여 촉나라 중심의 역사기술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것이 정통론을 들고 나온 주희다.


주희같은 대학자가 이 정도의 편협함을 보인 이유도 있다. 주희의 조국은 당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밀려서 남부까지 밀려나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바로 남송이다. 즉, 위축되고 하락한 국가지위 앞에서 주희는 자국사를 대의명분이라는 정통론으로 해석하며 자존심을 지키려 한 거다. (당해내용은 한영우 저, <역사학의 역사>(2002)를 참조함)


다시 말해 그의 역사기술법은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사회적 국가적 공익 도모를 위한 것이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자국사 기술법이 주희의 방법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앞서 일본의 예처럼 자국사 해석이 현재적 실익과는 거리가 있을 때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냉정히 말해서 중국의 역사는 지배와 피지배의 연속이었다. 5호 16국, 5대10국 등 해서 해서 본토 자체가 타민족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수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 아예 외부 권력에 의해 지배를 받기도 했다. 즉, 식민의 상태였다는 건데, 중국인들은 이 모두를 자국사에 편입시켜 얼렁뚱땅 식민지배를 설래발이친다는 거, 중딩 조카녀석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이민족이야 소멸되거나 혹은 중국의 마이너리티로 수용되었다지만, 한때 중국을 식민 지배하던 원나라의 후손인 몽골은 어엿한 독립국가란 거다. 이들의 가장 화려하고 국제적이던 시대사를 중국은 자국사의 한갈래로 취급하고 있으며, 재밌는 것은 대한민국 세계사 교과서엔 떡하니 중국사의 한부분인 송·원시대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 교과서의 문제점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중국의 자국사 취급 경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나라는 14세기** 경까지, 고구려는 7세기까지 존립하던 국가고 21세기인 현재, 그들의 후손들은 역시 국가를 꾸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스스로의 역사를 믿고 있으며 문헌이나 유물등의 사료가 이를 증명하는 한, 우리는 고구려를 뺏기지 않는다. 몽골의 중세사가 중국에 편입되어 있다 한들, 몽골인의 칭키스칸이 상실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온통 자신의 것인양 이것저것 가져다 붙인 역사기술이 비웃음거리는 될 수 있을 지언정, 현존하는 위협은 아닌 것이다. 당연하게도 중국의 요즘 하는 짓거리를 감시하고 이면을 살피며 주시는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기본 마음가짐은 분노나 공격성이 아니라 조소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말이다. 그리고 정부도 정부지만, 강단사학으로 점철된 학계에 니네 좀 가서 똑바로 싸우고 오라고 압력을 팍팍 넣어 주는게 보다 효과가 있지 않겠냐 말이다.
 






당 보고서의 주제는 역사왜곡이 불러오는, 범죄에 가까운 기만과 그로 인한 치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몰래 생각한 주제는 과연 현재 진행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의도가 피와 눈물을 부르는 거대권력의 횡포어린 역사 왜곡일까 하는 거였다.


친애하는 독자제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중국의 자국사 개편 작업이, 심심할 때마다 한번씩 들려오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당위론처럼 당대를 사는 우리의 삶 자체를 모욕하고 기만하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하시는지...


일본의 식민지배 합리화와 태평양 전쟁 미화 시도는, 징용 및 징집, 군위안부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해야 할 배상의무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게 사과가 됐든, 배상금이 됐든 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듕귁의 의도는 무엇일까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고구려는 당연히 우리꺼라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그들의 꿍꿍이는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나.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역사는 어디까지 또 어느만큼 믿어야 하는 걸까나....


"역사.. 허구는 아닌 소설" -- 폴 벤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올림픽 기간 중에 중국 응원은 하지 않는
   시포(shepoor@ddanzi.com)


* 위나라 왕실은 한왕조를 선위했으나 한왕가의 후예는 아니었음. 그러나 기사에서처럼 이민족은 더더구나 아니었으므로 기사의 오류를 밝힘.
** 원나라는 1271년부터 1368년까지 존속한 국가였으므로 12세기는 14세기로 기사의 오기를 정정함.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신 독자 루이님과 딴지님에게 감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