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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6. 25. 화요일

꾸물






그림쟁이들에게 좋아하는 그림을 통해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고 아울러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간다는 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그만큼 그림 갖고 밥을 먹고 산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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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쟁이를 위한 모토의 회사가 있었다. 팝픽(POPPIC). 팝픽은 일러스트 전문 외주제작사이자, 기성/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을 모아 정기적으로 책을 펴내는 전문 출판사이다. 이 밖에도 일러스트레이터 학원인 팝픽 아카데미, 모바일게임 개발 및 외주회사인 팝픽 소프트 등을 소유하고 있다.


그림쟁이를 위한 모토가 무슨 말이냐면,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젊은 친구들에겐 배움의 기회인 동시에 간단한 실무 업무를 통해 업계의 일을 미리 배우며 일할 수 있고, 그만큼 동종 업계 입사하는 데 장점이 된다는 것. 또한, 작가의 출판집 출간 지원을 함으로써 튜토리얼을 통해 배우는 입장의 친구들에게 좋은 학습 기회를 제공, 음지의 숨은 고수를 찾아내는 데에도 한 몫 한다는 얘기다.




팝픽(POPPIC)사건

 

어느날, 블로그 이웃의 글이 업데이트 되어 찾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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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그림쟁이들을 위한 회사라던 팀장의 글이었다. 위 글을 인용해 팝픽회사와 진행 중이던 출판 계약을 파기했다는 이웃 블로그의 글에서 나는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게 5월 초의 일이었다. 회사 대표와 팀장의 글을 시작으로 이른 바 팝픽 사건이 터지게 된다. 회사 임원들의 저런 태도에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이 사내 부당한 처우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윽고 회사와 관련된 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그 내용들은 대략 이렇다.

 

- 회사직원(함께 운영하는 아카데미 학생 및 사회 초년생)에게 실무교육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강요했다. 말이 실무 업무/교육이었고, 실제론 실무능력 향상에 필요한 과정이 아닌 한마디로 외주 받은 일의 단순 반복 그림 작업이었다. 이 또한 퀄리티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야근을 강요하거나 그날의 작업물 검사 후 완성도를 문제 삼아 급여에서 삭감하기도 했다.

 

- 현직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 외주의뢰 작업에선 업계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며 일반적인 외주 비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작품을 의뢰했다. 이후 제대로 된 비용처리가 안되거나 통보하지 않고 해외 출판을 하면서 발생한 수익규모와 재분배 등의 문제가 일어났다.

 

- 그 외 아카데미 학생들, 소속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수정해 대표(가야)이름으로 작품을 출판물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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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서 뭘

 

한 달하고도 훨씬 시간이 지나, 이제와서 사람들이 관심도 없는 내용을 쓰냐고 할지 모르겠다. 가해자가 명백하고 피해자도 명백한 상황이니 할 얘기도 뻔할 수 있다. 한창 떠들썩 할 때 업계 친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접근하기가 좀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일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피해자 구제 등을 부르짖기엔 조심스럽다고 했다.


소위 저쪽 바닥은 좁다. 대체로 게임업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직률도 높고 개발 과정에서 팀 자체가 해체되기도 한다. 그럼 또 다시 구직활동에 나서고... 어제의 상사가 오늘의 부하 직원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인력은 좁은 바닥에서 돌고 돈다. 커뮤니티, 회사 캐릭터 작업 등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일러스트레이터 들에게 그림과 필명 등은 그 사람을 인식하는 얼굴이 된다. 팝픽 사건에서 들고 일어난 작가들이나 착취당한 친구들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정의의 기사가 되어 정의로운 기사로 심판을 내려주자고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쪽 관련 업계는 역사가 짧기에 대다수의 회사가 예전부터 실무를 해왔던 사람들이 임원진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니까 면접을 보는 사람도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 직원과 아는 상황이라 팝픽 사건의 누가, 어디서 면접을 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채용 과정에서 과거의 일들이 ‘혹’ 감점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아, 이 친구가 정의의 사도셔?’ 하는... 물론 그런 요인의 문제는 협력, 외주로 작품을 의뢰받은 현직 일러스트레이터 보다 팝픽 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얘기도 못했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꼬꼬마 친구들이 회사에 입사할 때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게 씨바,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임에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게 참 씁쓸하다.


그러던 중 관련 피해자들이 회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사기, 저작권법 위반 등의 혐으로 고소하게 된다.




시급 343원의 프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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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팝픽에 다녔던 사람의 급여내역

 

 

업무 강도는 높았다. 오전 9시30분 출근에 목표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다음날 새벽까지 업무가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주 6일에 꼬박 12시간 이상 일해 받은 96만 7,000원에 회사 아카데미의 학원생이라 교육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반납해야 했다.


학원생이지만 일을 했다. 그러니 급여가 나갔다. 실무교육의 과정이니까 30만원을 내야했다. 그런데 목표 실적이 있어, 야근하며 할당량을 채워야 추가 수당도 아닌, 일정 수당이 지급된다.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근데 그림에 할당량이 있다는 건 작업 과정에 대한 일정한 프로세스가 있다는 얘기다. 감각적이고 창의성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다. 학원생들에겐 교육 될만한, 교육비를 낼만한 꺼리도 아닌데 교육비라니.


학원생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이른바 ‘반페이’를 당했다. 첫 달만 월급 100만원을 받고 할당량이나 마감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절반의 금액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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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할 때 마감을 지킨다는 건, 돈을 받고 일을 하는 프로에게 기본적인 일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관리나 결과물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낼 줄도 아는 게 프로다. 하지만 학교나 전문학원을 갓 졸업한 대다수의 사회 초년생 꼬꼬마들은 아직 프로가 아니다.


이제 자신도 실무를 맡아 일을 한다는 기대감, 자신의 그림으로 일을 한다는 의욕과 동시에 업계의 유명 작가나 수없이 많은 프로들의 그림을 보며, 한 눈에 비교되는 자신의 실력을 자책했을 것이다. 스스로를 판단할 때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작업의 질이나 할당량이란 압박에도 ‘더 열심히 해야 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을 거다.


대다수의 너희들은 아직 프로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게 당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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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팝픽이란 회사의 관리자들도 프로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거다. 물론 책임은 관리자들에게 있다. 애당초 회사라는 조직을 움직인다는 사람들이, 그것도 다른 회사의 하청일을 처리하는데 경험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 쓴다는 건 스스로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짓이다. 그걸 CCTV로 작업자를 감시하고 하루하루의 할당량을 감독하며 메꿔보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이것이 바로 창조 경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얘기, 청춘은 희생이 당연하듯 얘기하는 것만 같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의 요즘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비싼 수업료를 내고 세상을 배웠다,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해야 하나? 씨바, 그냥 약하니까, 약자니까 아픈 거다. 청춘의 꼬꼬마들이 약하고 약자인 거고.


재능기부, 열정페이 같은 말은 일하는 사람의 꿈과 자신의 일 자체로 인정 받을 때나 ‘그나마’ 먹히는 얘기다. 하지만 작금의 청년실업 30만의 현실에선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일자리만 있어도 감지덕지 하는 판이니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다. 대학ㆍ학원과 회사간 모종의 거래 같은 건데, 대학이나 학원에서 졸업생들을 회사에 추천시켜 준다.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저 바닥은 좁다. 그래서 학원 강사나 대학 강사의 인맥은 회사와도 닿아있다.) 회사는 추천받은 학생을 고용한다. 추천한 입장에선 취업률 상승의 광고효과가 있고 회사의 경우는 이런 꼬꼬마들에게 미칠듯한 퀄리티와 작업속도를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다. 싼 값에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자원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값싸게 부려먹는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추천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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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은 ‘이게 아닌 거 같은데...’하고 생각할 수가 없다. 사회가 그렇고 현실이 그렇다고 배워왔으니까. 참고 견뎌야 사회생활 잘 한다고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리고 그만두게 됐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적어도 2~3년 경력이 되지 않고 이직할 때 ‘얘는 왜 전 회사를 금방 나왔지?’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회사라는 조직은 위계질서와 명령하복이 존재한다. 회사는 회사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 안에서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휘하는 게 맞다. 개인의, 그것도 익숙치 못한 능력에도 넘치는 의욕과 자기애, 꿈만 꾸며 ‘날 알아주지 않는다’ 하며 자기 입맛에 맞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만 찾아 다니며 그만두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의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쪽 저쪽으로 볼 때, 그래서 청춘이 약하다는 거다.


그런데 어린 친구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먹고사니즘에 허덕이면서 비싼 등록금 대출까지 받아가며 취업준비만 해온 젊은 친구들에게 사회는 똑같은 얘기만 해줬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꿈을 갖고 도전해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강해져라, 도전해라. 이렇게만 배워왔다. 그게 약하고 약자인 청춘들이 강해지고 강자가 되는 정답이라고 배웠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팝픽대표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왜 사람들은 송대표를 ‘불결하고 더러운 심성’이나 ‘가장 더럽고 사악한 자’라는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욕을 하는 걸까.


모든 사건의 발단은 팝픽의 대표가 회사와 함께 관리를 맡고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일러스트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줄여서 방.사)’이란 카페다.


어느날 이 카페에 불만의 글이 올라왔다. 카페 분위기가 상업적이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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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메인화면의 회사 광고들

나 역시 어느샌가 이 카페에 발길이 끊겼는데, 알게 모르게 이런 영향 때문이었던 거 같다.

 

 

이런 불만의 소리에 -나중에 관련 자료를 조사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팝픽회사의 직원이자 카페 관리자들은 시비조의 싸움을 일으킨다. 운영진들은 글을 삭제하고 싸움이 난 사건을 덮으려 한다. (카페는 원래 석가라는 사람이 처음 개설한(2004.02.04) 카페인데 석가도 카페운영을 개인적 강연이나 행사등에 사용한다는 쓴소리를 듣고 송대표에게 카페를 양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송대표의 글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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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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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bscomic/373185 (원문 링크)

 

 

쌍욕을 해도 좋다는 인증아닌 인증을 한 내용의 개인 사진을 올려도 되는지 많이 고민했었다. 근데, 그만큼 자신이 있었으니 그랬겠거니 생각하게 되었다. 카페가 상업적, 개인적 용도로 사용되는 것엔 그닥 할말은 없고 송대표에 대해 궁금해졌다. 아, 내 취향은 아니다.


인물 검색을 해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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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브랜드뉴데이즈 대표였다. 그러니까 25살의 대표라는 얘기. 그 이후에도 편집장, 대표, 원장, 대표이사...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대했던 직원, 학생들의 입장에 서본 적이 있을까?’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행동들이 남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지는지 모를 리 없으니까. 학생들에게 자회사와 협력해 주는 현직 일러스트레이터의 뒷담화를 한다던가. CCTV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작업자들을 감시하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거나 자신이 올린 글에 반박하는 사람을 인신공격 하고 월급을 깎아버리는 행위... 등등.


내가 아픈 건 남도 아픈 거다. 송대표는 아픔 따위는 강해지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짱짱 쎈 사람이거나 아파 본 적이 없는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사람일테다. 후자의 경우라면 자신의 행동이 왜 잘못됐는지, 남들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앞에서 청춘의 꼬꼬마들에게 ‘비싼 수업료 내고 사회를 배웠고 좋은 경험 했다’고 하지 말라는 건 배움도 아니고 좋은 경험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그나마 얘기해 준다면 ‘아픈만큼 성숙해졌다’ 정도일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의 잊을 수 없는 상처는 안됐지만 나중에 이 친구들이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섰을 때 젊었을 때의 아픔을 바탕으로 다른 젊은이들에게 상처 주지 말라는 의미로...




너 아니어도 하겠다는 사람은 많으니까

 

백번 양보해 팝픽이라는 회사가 해왔던 시스템이 업계의 관행인데 재수없게, 소규모의 만만한 회사라서 사람들에게 두드려 맞고 있다고 하면 괜찮나? 아니겠지. 그럼 언제나처럼 갑의 행동에 이유가 되고 회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수단이 되니까. 관행과 전통을 혼동하지 말자.


갑이 갖고 있는 최고의 무기는 아마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아’가 될 것이다. 때문에 을은 말도 안되는 요구에도 참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버텨내야만 했다. 이런 것이 관행이 되었으니 젊은 친구들이 어른들, 사회로부터 배운 거라곤 “사회는 냉정한 거야”, “전쟁터야”, “무조건 참고 견뎌야 살아남는 거야...” 같은 거겠지. 갑은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 통했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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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팝픽의 송대표도 그렇게 해왔을 것이다. 갑의 위치에서 보니, 꿈과 열정에 배고픈 젊은 친구들은 매년, 매달 학교와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니까 아쉬울 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되는 줄로만 알았고, 다들 그렇게 해왔으니까. 물론 모든 갑의 회사들이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조심스럽게 덧붙여서 ‘너 아니라도 할 사람 많아’라는 걸 반대로 젊은 친구들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꿈과 열정만 가지고 해야할 일을 망각한 채 자신의 입맛만 따지고 있다면 회사나 다른 사람, 그러니까 그 친구의 합격으로 인해 기회가 사라진 ‘너 아니라도 할 사람’에겐 크나 큰 손해가 되니까.


젊은 친구들은 어딜 가서도 부디 ‘너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갑과 을의 관계는 언제나 변함없이 지금 같을 거다. 갑이 변하길 요구하는 만큼 을도 여러가지로 변해야 싸울 수 있다.




팝픽(POPPIC)은 6월 28일까지의 외주 계약을 마치고 6월 30일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팝픽 북스는 사실상 국내 유일한 일러스트 관련 출판사인 만큼 유지하기를 원하는 의견이 많아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유지하려 한다고 한다. 현재 사이트는 접속되지 않는 상황이며 언급된 사건 당시의 미지급된 임금과 고료는 확인 후 모두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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