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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야권 지지자들에겐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고 박원순 시장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하던 안철수에게 걸었던 희망과, 정계 입문 후 그가 보여줬던 행보에 실망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비록 지지율의 등락은 있었지만, 대선후보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그에게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는 것이겠다.


필자 역시 기대와 실망을 느꼈던 사람으로서, 안철수가 던지는 메시지에 종종 공감하면서도, 호의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없었음을 고백해야겠다. 한편으론 그도 꽤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음을 잃지 않고 있다. 안철수 편에 앞서 빛보다 그림자에 분량을 더 할애한 것은, 그가 단점들을 고쳐서 더 괜찮은 정치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돌이켜보면, 안철수가 정계 입문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다. 꼭 대선이 아니라도 그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기회가 남아있다. 앞으로 진정한 '새정치'를 구현할 것인가, 스쳐 지나갔던 정계의 아웃사이더로만 남을 것인가. 안철수 편을 읽으신 독자 제현의 귀한 의견 기다리며,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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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안철수(安哲秀)


1962년 출생

1986년 부산고 졸업, 서울대학교 의학과 진학

1990년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

1991년 서울대학교 의학 박사

1994년 해군 군의관으로 복무 후 전역

1997년 펜실베니아대학교 대학원 공학 석사

1995년 안철수연구소 창립

2005년 POSCO 사외이사

2008년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경영학 석사,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아름다운재단 이사

2011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2013년 제 19대 국회의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2016년 국민의당 공동대표, 제 20대 국회의원



1962년 2월 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68년 부산 동성초에 입학한 그는 초딩 때는 공부를 못했다고 밝혔다. 매번 1등만 해왔을 것 같은데, 정작 처음 1등을 한 것은 부산고 3학년 시절이라 한다. 다만 어릴 때부터 온갖 책을 두루 섭렵하며 자랐다고. 라디오를 손수 조립하는 공돌이적 취미와 문학 작품을 탐독하는 문돌이형 취미를 동시에 가졌다는데, 훗날 그가 '융합과학기술'에 관심을 갖고 매진한 것도 어린 날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부산의 명문 부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는데, 이때 카톨릭 학생회가 주관하는 의료봉사에 참여했단다. 당시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즐겨 읽던 황석영의 <어둠의 자식들>의 내용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깨닫기도 하고, 한편 공짜로 약을 나눠주자 환자들이 가볍게 여겨 복용하지 않는 것을 발견, 100원씩 받고 처방하니 치료율이 높아졌다고. 이 경험은 복지에 대한 기초적인 생각에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


1988년 5월, 의대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자신의 PC가 '브레인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것을 발견, 스스로 'V1'이라는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초기 피씨통신 시절부터 컴덕후로 각종 분야를 파고 들면서 컴퓨터 기계어를 밤새 공부하기도 했고, 이때 유행하던 게임을 분석한 글을 피씨통신에 올리기도 해서 아직도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읽어보면 게임을 한 건지 게임분석을 한 건지, 꿀잼게임을 노잼처럼 느끼는 신묘한 재주의 글솜씨지만, 아무튼 이때 안철수는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컴덕후였다는 것. 이 생활을 반복하며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V3'를 만들다가 가족과 제대로 인사도 못 한 채 입대한 것은 본인이 방송에서 밝힌 일화. 94년, 해군 군의관 전역 후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다. 그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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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벤처기업인 '안철수연구소'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와 보안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Y2K 바이러스', 'CIH 바이러스' 사태 등에서 활약하며 IMF 외환위기에도 꺼지지 않고 승승장구한다. 초기 불안했던 회사 상황으로 인해 여러 기업의 인수시도도 있었고 존폐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잘 버텨냈다고. 본인은 이 시기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또 급성간염에 걸려 3개월간 입원크리를 맞는 힘든 상황이었단다. 아마 안철수의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2000년에는 "여러분, 사랑합니다"라는 오그리토그리 돋는 대사와 함께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개미들 죽이는 짓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찌 됐건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안철수는 대표적인 윤리경영인으로, 안철수연구소는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2005년,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날 스스로 CEO에서 물러나는, 대한민국 기업사에 몇 없는 모습을 보인다.


그 후 다시 공부를 위한 미국행과 카이스트, 서울대 교수 등을 역임하며 젊은 세대가 느끼는 고민과 좌절에 깊이 공감하고 2009년, <청춘 콘서트>를 시작한다. 두 번째 터닝포인트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청춘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을 넘어, 기존 정치권의 대안을 찾는 유권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며 '출마하냐 안 하냐'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시기였다. 그 이전부터 국무총리, 청와대 수석 등 정계진출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가도 모두 거절하던 그는, 2011년 8월 보수의 꼬깔콘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인해 희대의 나가리가 되자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박원순 시장에게 '아름다운 양보'를 하며 전례없는 면모를 보이기도. 또 11월에 1500억 주식을 기부한 것도 유명하다. 개미들 생각은 안 한다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리고 2012년, <안철수의 생각>을 펴내며 본격적인 대권 도전 의지를 표명한다. 이것이 세 번째 터닝포인트.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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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1. 지독한 원칙주의자

 

"회사창업 후 기자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었어요. 그날도 새벽까지 포장마차에서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어느 순간 살펴보니 사장님이 보이지 않더군요. 평소 술을 잘 마시던 분인데 그날은 술이 좀 취하셨는지 먼저 계산을 하고 일찍 가셨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자동차도 인적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일 때 길을 건너신 모양이에요. 나중에 그 일을 어찌나 후회하시던지. 사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어쨌든 사장님은 그다음부터는 절대로 취할 만큼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교통신호도 아주 잘 지키고 있어요.


그는 '빨간 불이면 건너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안랩이 여의도 공원 바로 옆에 있을 때도 그랬다. 회사 앞으로 난 도로에는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안철수 박사는 예외였다. 그는 빨간 불이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책을 읽었다. 어깨에 까만 가방을 메고 횡단보도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모습은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에서도 종종 목격됐다. 새벽 3시 카이스트 교정 안 도로의 횡단보도에 누군가 서 있었다,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빨간 불이었지만 새벽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교정을 질주하는 자동차도 없었다. 그는 파란 불이 켜지자 비로소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그 사람은 바로 안철수 박사였다.


- <안철수 He, story>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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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원은 원칙주의자다. 자신이 세운 원칙에 부합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선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내면에 담긴 뚝심은, 안랩에서 국민의당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해 온 그의 행보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법과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정치인에게 가장 우선하는 문제이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그깟 거 큰 일 하다 보면 생기는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되었었다.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원칙이 중요한 것을 알지만 현실에서는 경원시 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본인의 원칙주의가 흔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사회 전반의 의식 개선을 위해 법과 규칙의 준수를 무겁게 제시할 것이다.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원칙을 지키는 일 뿐이라는 곧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므로.



2. 조건부 소통왕


정계 입문 후에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하고, 캠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소통 부재를 지적하는 등 '불통의 아이콘'처럼 되어버렸지만, 그가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계기는 한때 <청춘 콘서트>로 대표되는, 대중과의 소통 능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고자 한다.


2002년 안철수 박사가 급성간염으로 직원들과 함께하지 못한 몇 개월 사이 회사의 실적이 다소 나빠졌다. 무언가 분위기를 쇄신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2003년 초 안 박사에게 전 직원과의 대화를 제안했다. 이른바 'CEO와의 대화'였다. 그는 흔쾌히 동의했고 매일 아침 8시 30분 회사 회의실에 모여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가능한 한 모두가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매일 팀 단위로 돌아가며 모였다.

그때 나온 질문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이메일로 사장님께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하던데 일일이 답변해주시나요?"

안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게 보내시는 이메일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일은 오래됐어요. 전에는 개인적인 것들 뿐이었는데 지금은 회사 내부적으로도 많은 질문을 받게 되어 다소 업무가 과중되는 결과를 낳고 있기는 해요. 그래도 이 모든 게 우리의 자산이잖아요. 그보다 최근에는 저에 대한 관심이 회사로 옮겨졌으면 해서 회사명을 바꾸는 것을 검토했으면 좋겠더군요. 그런데 전화로 답변하는 일이 더 힘들지 않을까요? 고생이 많을 것 같아요."

안철수 박사에게 그 질문을 한 직원은 고객센터에서 매일 전화응대 업무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질문자가 하고 있는 업무를 기억했다가 그를 배려하는 말도 잊지 않은 것이다. 안랩의 사내 인터넷에는 CEO와의 대화 게시판이 있었다. 또 그와 일 대 일 대화가 가능한 비공개 핫라인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안 박사가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시스템이었다. 그는 안랩에 몸담았던 내내 직접 대화는 물론 다양한 채널로 투명한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CEO와의 대화는 2003년 한 해 동안 무려 4~5개월이나 이어졌다. 안철수 박사는 매일 아침 일찍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회의실에 나타났다. 이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나는 매일 계속되는 대화로 인해 그가 피곤하지 않을까, 아침마다 똑같은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또 반복되는 비슷한 질문들이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싫은 내색 한 번 없이 항상 미소 띤 얼굴로 성실히 답변했다. 직원들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안철수 박사의 진정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자는 다짐을 한 번 더 하게 됐다.

그 후 안랩은 2003년 턴어랑누드를 거쳐 2004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뒀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사상 최초로 연간 세후 순이익 100억 원을 돌파했고, 매출액도 300억 원을 넘었다.

- <안철수 He, story>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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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내딛게 한 <청춘 콘서트>와 이 일화에서 보듯, 대중들과의 소통이나 스킨십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단, 여기엔 조건이 하나 붙는데, 그가 '소통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하다.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이루어지는 소통방식은, 그에게 대중들과의 소통이란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들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일화를 빛으로 꼽은 이유는, 그가 대중과의 소통에 노력했을 때 냈던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춘 콘서트>가 한 때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때를 아직 기억한다. <청춘 콘서트>는 안철수 의원이 진심을 담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 의원이 이때를 잊지 않고, 소통을 '쌓인 일 처리'가 아니라, 늘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탈바꿈할 수만 있다면 좀 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3. 합리주의자

안 의원의 대표적인 선행, 또는 대인배스러운 결정들은 그가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예컨대 주식을 기부한다거나, CEO에서 스스로 물러나고, 당선이 유력한 후보 자리를 타인에게 양보하는 등의 행위가 그러하다. 필자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았는데, 그런 결정들이 단순한 '선의'보다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철저한 계산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1997년 6월 맥아피는 실리콘 밸리에 있는 본사로 나를 초청했다. 당시 맥아피는 바이러스 백신인 '스캔'이란 제품으로 유명했고 일본의 유일한 백신 소프트웨어 회사인 '제이드'를 이미 사들인 상황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일단 그들의 정확한 의도를 확인할 필요를 느껴 초청에 응했다.


나를 맞이한 사람은 맥아피의 빌 라슨 회장이었다. 그는 내 앞에서 직접 브리핑을 한 후 이런 제의를 했다.


"백신 V3를 우리한테 파시오. 당신 회사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1천만 달러를 지불하겠소."


그들의 인수 제의도 놀라웠지만, 그들이 제시한 금액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말의 갈등도 없이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 아무리 높은 금액이라도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보호와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는 나에게 수용 조건이 되지 못했다. 만약 그때 회사를 넘겼다면 국내 백신 가격은 턱없이 비싸져서 지금쯤 바이러스가 훨씬 더 기승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중략)

맥아피의 사업 마인드가 우리 문화와 맞지 않았음에도 영업 분야에서 제휴를 하려고 했던 데에는 나름의 전략적 배경이 있었다...

(중략)

그런데 1997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서버 솔루션이 부족했다. 당시 내가 판단하기에 우리 회사가 모든 서버 솔루션을 출시하려면 적어도 2년은 걸릴 것 같았다. 그 2년간 우리 회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위기감을 느꼈다. 물론 그때도 기업 고객들은 백신을 PC에 깔아 사용했지만, 변화할 패러다임에 맞는 상품을 준비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우리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시간을 벌어야 했다. 외국기업과 정면충돌하기보다 그들과 협력하여 백신 솔루션 대신 다른 것을 팔게 함으로써 공세를 늦추고 한편으론 서버용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야 했다.


-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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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원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돈과 명예를 빼고 생각한다고 한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돈과 명예가 따라오지만, 돈과 명예만 보고 내린 결정은 결국에는 올바르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게 드러나게 마련" 이란 그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그의 기본적인 자세를 잘 보여준다. 맥아피의 인수 제의도 그러했을 것이다. 맥아피가 제시한 금액을 통해 V3의 가능성을 엿보고, 동시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이를테면 소프트웨어 시장의 보호,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등을 총합해 꼼꼼히 계산기를 두드려서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합리성은 때때로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보호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 안 의원의 합리성 안에는 공공의 이익이 매우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그가 지금껏 해온 '통 큰 행보'들은 그가 졸라 애국적이거나, 착하거나, 대인배라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성'의 가치에 지극히 부합하는 일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안 의원의 중요한 결정들이 '선의'보다 합리적 사고의 결과라고 해서, 그가 마치 음흉하거나 계산적이라는 평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결정권자가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할 때, '공공의 이익'에 기반을 둔 합리적 사고를 통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지 않나. 오히려 단순히 선의를 통한 감정적인 결단이었다면, 정치인보다 자선사업가에 더 맞는 인물이라는 평이 맞을 것이다. 물론, 그도 알파고가 아니라 사람인만큼 모든 결정이 합리적일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자신의 합리가 타인의 이해와 충돌할 때 그것을 설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림자]


1. 정당정치에 대한 그의 생각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사람들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람인만큼, 정당정치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며 이른바 '새정치'의 기치를 내걸은 것을 빼놓을 수가 없다. 새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서전을 보라는 답변은 왜곡인지 뭔지 아무튼 꽤 유명한 우스갯소리지만, 그래서 자서전을 들여다보았다.


제(제정임)> 민주(민주통합)당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안(안철수)> 민주당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어요.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어땠습니까?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민주당 정권의 경우 처음 의도는 좋았지만 실제 선택과 행동이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

(중략)

제> 총선 때는 민주당 등 야당을 돕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투표하라"고 발언해서 비판을 받으셨죠.

안> 네. "인물을 보고 투표하라"고 했더니 어떤 분들은 제가 정당정치를 부정한다고 오해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정당정치를 믿는 사람입니다. 저에 대한 기대는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에 대한 불만이 제게 쏠린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하면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유권자들이 정당 위주로 투표를 하다 보니 정당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를 공천하고, 정치인들도 국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눈치를 봤죠. 그러니 정당 자체가 또 하나의 강고한 기득권이 되고, 민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의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냉정히 평가해서 투표하는 게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꼼꼼히 따진다면 정당이 국민을 무서워하면서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사람을 영입하려 노력할 것이고, 그러면 정당정치가 복원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흠이 많아도 특정 정당의 '텃밭'에서 공천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선되는 구조에서는 정당들이 민심을 살필 이유가 없으니까요.

- <안철수의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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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 의원이 진단한 민주당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한다. 왜곡되어 왔던 정당정치의 행태를 비판하고, 특히 민주당의 경우 '특정 정당의 텃밭에서 공천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선되는 구조'를 비판한 것도 눈길이 간다. 하지만 필자는 그래서 의문이 갈 수밖에 없는데, 그가 정치적 생명을 걸고 시도했던 제3당의 길은 국민참여당 같은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제3당의 길이 아니라, 지역주의에 편승한 제3당의 길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전국에서 국민의당이 받은 비례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을 잡았던 의원들, 그가 믿었던 가능성에 지역주의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안 의원이 지역주의를 완전히 극복하고 정당 이기주의와 패권정치를 해소하는, 즉 훗날의 '새정치'를 위한 수단으로써 국민의당을 만든 것이라면, 국민의당이 총선과정에서 보인 공천,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 등은 과연 '<안철수의 생각>과 부합하였는가'라는 반문을 피해갈 수 없다. 지금의 국민의당이 안 의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고 있다고 하여도, 안 의원이 손을 내민 의원들이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뻔한 것이었으므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안 의원이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정치 구도상 지역주의적인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한 줄 요약하면, 안 의원은 자신이 그토록 꿈꾸는 '새정치'를(필자가 그의 새정치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실현할 능력이 되는가. 필자는 회의적이다. 두 번의 '아름다운 양보'만으로 그것을 믿기엔 부족하다.



2. '선의'에 대한 과한 확신


안 씨 성의 다른 대선 후보가 '선의'란 단어를 꺼냈다가 곤혹을 치른 요즘, 안 의원도 최근의 상황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안 의원의 원칙주의, 합리주의라는 장점이 가진, 동전의 양면 같은 그림자이기도 하다.


대선 선거일을 사흘 앞둔 오후 연합뉴스는 "안철수 전 후보 측 복수의 핵심 관계자들은 안 전 후보가 대선 당일 투표를 마친 뒤 미국으로 가서 한두 달 간 체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전했다. 이 소식은 야권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 지지층의 이탈을 점치기도 했다. 그런데 훗날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미국행에 대하여 "사전에 문재인 후보와 이야기를 나눴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서울에 없는 것이 백의종군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또한 "문 후보가 선거에 이길 것으로 보고 선택한 미국행이었으며, 문 후보도 그것을 바랬을 것"이라고 하며 "질 경우를 예상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지금도 아쉽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 <누가 지도자인가>, 박영선 의원 저 중에서


금태섭 의원> 이건 약간 비화인데, 대선 때 안철수 캠프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물러나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해찬, 박지원 대표. 결국엔 물러나셨죠. 근데 안철수 대표는 '나는 그걸 주장한 적이 없다.' 심지어는 그 당시에 우리 쪽 캠프의 고위직과 저쪽 캠프를 통해서, '우리의 진의는 그게 아니다. 그 사람들 물러나는 게 아니다.' 안 대표 입장에서는 자기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았고, 선의를 갖고 있었는데, 캠프에서는 그 생각을 몰랐거든요. 그니까 캠프 사람들이 방송 나가면 "충치는 빠져야 한다" 이런 얘기 하고 그러니까... (김총수 분량은 중략)


선거 끝나고 나서 안 대표나 이쪽에서는 '우리는 진짜 억울하다. 우리는 그런 얘기 한 적 없다.' 그런데 제가 안 대표께 말씀드리기를, 그게 별 소용이 없는 게 그때 캠프의 주요 인사들이 방송에 나가서 (이해찬, 박지원 대표) 물러나야 되지 않나, 이런 얘기를 했으니까 좋은 의도가 있으면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서 여러 사람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한 겁니다.


- 김어준의 파파이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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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JTBC>


필자는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를 도우려고 한 뜻이 진실되지 않거나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로서는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은 방법으로 문 대표를 도우려 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정권교체를 애타게 염원하는 야권지지자들에게는 조금 미덥지 못한 모습으로 비쳐질 때가 있었다. 안 의원의 미국행 소식도 그러했다. '대선 승리 이후 문 대표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라는 안 의원의 선의보다, 사람들에게는 '도와주기 싫은데 억지로 도와주고 책임 회피성 미국행 하는 건가'라는 모습으로 보였다.


안 의원은 종종 자신이 가진 원칙주의에서 도출한 선의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는데, 이것이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혹은 그 선의로 행한 행동이 어떤 효과를 낳을지 고려하지 않는 행보를 보일 때가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안철수 의원이 밀어붙인 제3당은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보였던 안철수의 행보는 썩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안 의원의 고질적인 성향에서 나온 반복적인 문제들은, 빠른 시일 내에 고쳐질 것 같지도 않고 고칠 맘도 없을 것 같다. 유시민 작가가 지난 총선 때 반복적으로 했던 말, 다시 들려드린다. "정치인의 행위는, 행위 주체의 의도와 관계없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3. 왜 사람들은 떠날까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의 이 모 비서관(5급)이 최근 사표를 제출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 대표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한겨레에 따르면, 17일 현재 삭제된 이 글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간언하는 신하가 없다는 사실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을 근심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받고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임금이 간언을 듣고 분노하더라도 서슴없이 간해야 한다."


"임금이 어진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들판에 잘 자란 곡식이 널려 있는데도 수확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안철수 의원실에서 근무해 왔으나 12일 사표를 제출한 이 비서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부 문제를 고쳐보려고 했지만 그때 뿐이다. 늘 사람만 교체하려고 할 뿐 시스템이나 조직이 전혀 체계가 없다. (안 대표가) 늘 정치권 물갈이를 얘기하며 '물을 갈아야 하는데 고기만 갈았다'고 하는데 그게 딱 우리 이야기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측에서는 이런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대표 측은 "이 전 비서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4급 보좌관 승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대한 인사불만이 사직의 이유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월 17일)


- 허핑턴포스트코리아, <안철수 비서관이 사표 낸 뒤 SNS에 남긴 쓴소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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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원의 측근이었다가 결별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는 기라성 같은 인재도 있고, 틈만 나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안철수 의원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보좌관들의 말 만큼은 무시할 수가 없다. 달리 생각해보면, 높은 기준을 가진 안 의원과는 뜻이 달라, 정치 참여 후 몇 년간은 마음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겪은 시행착오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시작부터 대선후보였고 많은 기간을 공당의 대표로 지낸 분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대체 왜, 사람들은 안 의원에게서 떠나는 걸까.


어쩌면 그가 사람 쓰는 일에, 특히 정치 입문 후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더욱 높은 잣대로 평가해서 일 수도 있다. 또는 그에게 모여든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이 아닌, 떡고물을 기대하고 왔다가 실망하고 떠났을 수도 있다. 왜일까. 그 해답은 마지막 에피소드에 있는 듯 했다.



4. '헤드십'의 칩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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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일 밤 10시. 방송사에 근무하는 친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중략) 막 미팅을 시작하려는 때, 스마트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언론사의 B기자였다. 기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안철수 박사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나요?"

나는 "무슨 말씀인가요?"라고 반문했다. B기자는 "<오마이뉴스> 기사 못 보셨어요? 방금 안철수 박사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가 났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변했다. "그래요? 그건 안철수 박사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항상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그 전에도 장관설, 총리설 등 그런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시장출마라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다른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똑같은 답변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어 안랩의 트위터를 담당한 팀원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트위터에 질문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를 물었다. 역시나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오는 이야기라고 답변하세요."
(중략)
그러나 C기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2명 이상의 취재원에게서 안철수 박사가 서울시장에 대해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청춘콘서트에 참여한 취재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안철수 박사 본인의 입장을 듣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사화될 수 없는 사안'이라 답하고 안 박사의 의사를 직접 확인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일이었기에 확인이 필요했다. 긴급한 사안인 만큼 늦은 시간이었지만 안철수 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나의 연락을 받고 난처해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입장이었던 것이다. 안철수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고민을 막 시작한 것은 맞는데요.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안철수 박사의 대답에 멍해졌다. 안 박사 본인도 기사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고, 더 자세히 묻자니 도리가 아닌 듯했다. 안 박사가 입장 정리를 한 후 직접 답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트위터 담당자에게 연락해 조금 전에 올린 멘션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의 트위터 소동은 나의 성급한 판단이 불러온 결과였다. 사실 안철수 박사에 관한 개인적 내용을 기업 트위터에 올리는 것도 적절치 않았다.

그다음날, 안 박사는 본인의 입으로 직접 '고민중'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밝혔다. 그가 서울시장 출마 여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고민을 숙성시키기도 전에 기사가 터져버렸던 것이다.

- <안철수 He, story> 중에서


안철수 의원의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겨지는 '헤드십', 즉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 과정과 결과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 성향을 드러내는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난 대선 때의 일화들을 공개한 금태섭 의원의 책이 있지만, 필자는 좀 더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이 일화를 가져와 보았다.


사실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더러 있는데, 안랩이 안철수 의원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고민을 <청춘 콘서트>장에서 이야기해 놓고 안랩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지 않았던 것이나, '고민을 막 시작한 것은 맞으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의 아리송한 답변이 그렇다. 당시를 회고해보면, 정치적 의미가 상당했던 서울시장 자리였으므로 대중들의 관심도 매우 높았었는데, 결과적으로 박 시장에게 '아름다운 양보'를 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혼란스럽고 불투명한 상황이 전개된 것은 안 의원의 행보 탓이 컸다.


당시의 안 의원을 '전지적 안 의원 시점'으로 이해해보면, 첫째는 자신의 출마와 안랩은 무관하기에 안랩에게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므로 전달하지 않았고, 둘째는 고민을 시작했으니까 시작했다고 말한 것 뿐이지 않았나 싶다. 당시의 현실과 상황, 그리고 자신의 발언이 대중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만 고민했던 것이 아닐까. 안 의원은 이렇듯 핵심적인 대목에 있어 주변 사람들과의 의견 조율을 차단한 채 결정을 내리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혼선을 낳는 경향이 있다. 안 의원 개인은 도덕적인 가치도 높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국민의 의사를 총합하여 대변해야 하는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같은 방식을 필히 바꿔야 한다고 본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무게는 본인이 혼자 다 짊어질 수 있는 무게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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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은 소멸했을까.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의 약진은, 안철수 현상이 여전히 유권자들의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정치인 안철수는 정치인 이전의 안철수에게 기대한 대중들의 심리를 충족해주었는가. 그렇게 물으면 글쎄, 그것을 본인의 성향을 통해 약간 비틀어, 다수는 아니지만 때때로 캐스팅보트를 쥘 수도 있는 당의 간판이 되는 것으로 이루었다.


그가 던지는 정책과 메시지들이 언론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 것에 억울한 것은 일견 이해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과연 권모술수가 넘치는 정치계와 시끄러운 것만 좋아하는 언론의 장난들 때문이라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유권자들은 그가 한결같이 '새정치'의 길만 걸었다고 느끼지 않고, 안 의원이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안 의원이 택한 방법에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안 의원 개인의 성향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되는 것들이다. 어떤 사람은 원칙주의적 성향에 지지를 표명하고, 어떤 사람은 그 과정의 독불장군식 처리를 비판한다. 어떤 때는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또 동시에 결정을 미루고 간만 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중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은 감명 깊었지만, 뭐든지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는 리더십을 볼 때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마키아벨리스트가 아닌가 라는 의심을 품게 되기도 한다. 안 의원의 뜻을 유권자가 따라가지 못하거나, 유권자의 소망을 안 의원이 제대로 짚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 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안 의원의 새정치가 진실되게 다가가고 또 그것을 구현해내기 위해선, 이런 간격을 줄여나가는 일이 가장 우선하는 과제가 아닌가 싶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줄여나가냐고? 안 의원이 그럴 생각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안 의원 본인이 해야 하는 일 아니겠나. 계속 밀고 가시겠다면, 어쩔 수 없이 새정치, 그거 이제 안 사요 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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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출처

<안철수 He, story> 박근우 저 (리더스북)

<안철수를 알고 싶다> 윤문원 저 (씽크파워)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안철수 저 (김영사)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 저, 제정임 엮음 (김영사)

<누가 지도자인가> 박영선 저 (마음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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