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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 일망타진 이너뷰 - 민주노동당 단병호

2004.3.11.목요일

딴지 총수
 



<지난 딴지이너뷰 가기>


임춘애는, 라면이다. 라면만으로 달린 소녀. 근데 그게 아니란다. 간식으로 라면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그리 각색된 거란다. 지난 십 수 년 간 줄기차게 해명했단다. 하지만, 임춘애는, 라면이다. 그게 그렇다. 처음 본 이동물체를 엄마라 인식하는 오리처럼, 처음 인지된 이미지가 영상시대의 대중에겐 본질이자 팩트다. 그렇게 한 번 종결 처리된 정보는 웬만해선 덧쓰기가 안 된다.


단병호. 그의 라면은 빨간 머리띠다. 열여덟의 임춘애가 금메달을 셋이나 딴 이듬해 서른여덟 나이로 동아건설 창동공장 초대 노조위원장이 된 뒤, 지난 세월 줄곧 그는 빨간 머리띠다. 빨간 머리띠 두른 과격분자. 그는 그 상태로 읽기전용이다. 그런 그가 빨간 머리띠를 풀겠단다. 과연 푼다고, 풀릴 것인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현실정치인에 도전하는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난 건, 3월 8일 월요일 오후 7시 교보 노조 사무실에서였다. 본지에선 총수와 안전빵이, 한겨레에선 안수찬 기자가 출동했다. 애초 스케쥴대로라면 그의 인터뷰는 3월 12일자 한겨레와 지난 주 본지에 실렸어야 했다. 그러나 3월 12일은 탄핵 당일. 비상체제로 돌입한 본지와 한겨레의 지면관계로 한참을 묵었다가 이제사 푼다.


"재수도 없지. 하여간 안 되던 집안은 뒤로 자빠져도 코 깨진다니까." 2주전 한겨레 담당기자와 이 이너뷰가 과연 언제 게재될 지 한참 떠들다 뱉어놓은 한 마디다. 그렇다. 과거엔 그 놈의 비판적 지지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의 파이를 뿜빠이 해가더니 노무현까지 당선된 이 마당에, 이젠 다신 그런 소리 안 듣나 했더니, 잔뜩 기대하고 있는 총선 직전에 또 다시 그들의 파이를 뿜빠이해 갈지도 모를 사건이 터진 게다. 이 이야기는 보충 이너뷰로 다음에 싣기로 한다.





 

총 : 위원장님, 딴지일보는 아십니까?
단 : 자세히는 안 읽어봤고, 한겨레에서 봤습니다. 옛날에 언젠가 누구지? 한화갑..
총 : 아.. 지금 물어본 건.. 딴지일보라는 인터넷 신문을 보신 적이...
단 : 아.. 딴지일보. 그건 제가 자세히 안 읽어봤습니다.



그는 인터넷을 잘 안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항상 있었다.
해서 보자마자 첫마디로 대뜸 물었더니. 역시나 그랬다.


총 : 딴지일보.. 안 보셨죠? 한번도. 오늘 큰 일 났다. 이제... 하하.
단 : 큰 일 났네. 하하하.
총 : 한겨레 이 인터뷰 연재 꼭지는 보셨어요?
단 : 그건 한 번... 한화갑씨..
총 : 어떠셨습니까?
단 : 글쎄... 좀... 제가 만약 그런 질문을 받았으면... 답변하기가 쉽지는 않았겠다...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하하.
총 : 오늘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하하.. (사진기자를 향해) 근데, 이거 계속 들고 있어야 되나요? 이 작위적 연출(웃음-선물했다는 액자를 가운데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기자 : 이제 다 끝났습니다. 자리만 한 번 바꿔주세요.
총 : 정치인이 되시려면 이런 연출에도 익숙해지셔야 할 것 같은데요..
단 : 좀 생소합니다.
총 : 연출과 포장. 이런 데 능해지셔야 하는데..
단 :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쉽게 그렇게 될지도 실은 의문입니다.
총 : 젤도 좀 바르시고.(일동 웃음) 남은 거라도 관리를 하셔 가지고 젤도 바르시고 하셔야 할 텐데.. 실제보다 너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세요.



요즘은 건장한 장년이라 불러야 마땅할 50대 중반에, 그는 적어도 60대 후반은 되어 보였다.


단 : 저요? 왜 그럴 것 같애요?
총 : 글쎄요. 안타깝습니다.
단 : 대부분 다 그런 얘기들을 하죠. 실제 나이보다 외부로 느껴지는 나이가 더 들어보인다고...
총 : 오십...
단 : 여섯.
총 : 우리나이로 쉰 여섯?
단 : 네. 쉰 여섯.
총 : 요즘은 쉰 다섯 여섯이면 과거 사십대처럼 보이는데... 진짜 안타깝습니다.
단 : 어쩔 수 없죠. 뭐...
총 : 언제부터 이렇게 확 늙으셨어요? 얼굴이?
단 : 삼 십대 중후반 들어서.. 머리도 빠지고.. 소위 말하는 피부도 나빠지고..
총 : 혹시 발모제 같은 거 사용해보셨습니까?
단 : 발모제 그런 건 생각을 안 해봤습니다.


총 : 과거하곤 다르게 사 십대 아저씨 느낌이 나야 되는데...
단 : 어떻게 좀 젊어질 수 있는 비결이 없겠어요?
총 : 글쎄 딴지일보도 좀 보시고 그래야 하는데.. 딴지일보도 안 보시니..



그를 만나기 전 난 불편했다. 나이 보다 족히 20년은 늙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 하나하나가 앞가림에 바쁜 내 염치의 등짝을 휘갈기는 회초리 같아, 난 그가 밉다. 헌금함 앞의 사이비 교인마냥 먼 산 쳐다보고 싶다. 게다가 많은 경우 난 그의 방식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알량하느니 차라리 그렇게 외면하고 싶지만, 그를 부정할 방도가 없다. 해서 그를 마주보는 내내 난, 그의 정치적 지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씨바... 아저씨는 꼭 그렇게 쭈글쭈글해서 내 부채의식에 불을 질러야 되겠냐고, 팩 좀 하면 어디 해방이 더디 오냐고, 끊임없이 씨불거렸다. 속이 상한다. 그가 그렇게 늙어 보이는 게.


자리에 앉기도 전 악수하며 발모제 이야기부터 꺼낸 건 그래서였다. 생각 안 해 봤단다. 촌스런 페미니스트에게 미모의 권능을 한참이고 역설하고픈 양아치의 욕구를 간신히 통제하며,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물었다.


총 : 위원장 단병호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있는데 개인 단병호에 대해서는 별로 없더라구요. 이제 정치인이 되시려고 나오셨으니까 어릴 적 얘기부터 좀 들려주십쇼. 어릴 적 어떤 사람이었는지..
단 : 별로 할 얘기 없는데..
총 : (웃음) 삼 십대 중반까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사셨잖아요. 그니깐 그 절반에 해당되는 삼 십대 중반까지의 얘기.. 어땠나요?


단 : 어릴 때는 제가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에 가까웠습니다. 왜냐면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어요. 내가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시고 두 살 터울인데 내가 육개월 될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 어머니 손에서 쭉 자랐죠. 어머니가 또 생계를 꾸리시고 외갓집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외갓집하고 친척들하고 살았는데..


다섯 여섯살 접어들면서.. 그 전에는 잘 몰랐는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접어들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상당히 많았어요. 아버지의 사랑.. 그런 게 좀 부러웠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성격이 내성적으로 그렇게 형성돼 왔던 거 같아요. 어릴 때 성격이 형성된 건 그런 영향이 상당히 받아서.. 어릴 때도, 그러면서도 별로 착하진 않았던 거 같애요. 동네에서도 개구쟁이 짓은 상당히 많이 했던 거 같고.. 뭐 시골의 보통 아이로 자란 거죠. 촌에서 보통 아이로 자랐고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는 속을 좀 썩이면서 자랐고..


총 : 어떻게 속을 썩이셨어요?
단 : 놀기 좋아하고, 일종의 사춘기 때 뭐.. 흔히들 얘기하는 이유 없는 반항처럼, 갈등처럼 이런 것도 있고..


총 :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쇼.
단 : 구체적이라고 하는 것이.. 학교 잘 안 가고 친구들과 어울려 가지고 놀러 다니고..


총 : 뭐하고 노셨나요?
단 : 그때는 뭐 논다는 게 극장이라든가..
총 : 야한 영화..


단 : 그 당시에는 야한 영화 자체가 별로 안 나왔어요. 주로 이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 <팔도 사나이>니 하는 액션영화들이 많이 나왔을 때고 그래서 극장으로 간다든가, 오뎅집 같은 거. 빵집, 오뎅집.. 잘 모르실 겁니다. 차 정류장 근처에 가면 찐빵, 오뎅 이런 거 파는 데 가서 죽친다든가. 그때는 만화도 좀 봤죠. 지금은 안 보는데. 하하하. 만화가게 같은 데.. 또 어울려 가지고.. 지금이야 놀러 갈 데 많지만 그때야 제한적이어서 바닷가, 또는 절 같은 데. 이런 데 친구와 어울려 가지고...


총 : 절이라는 건 산을 말씀하신 거죠?
단 : 그렇죠. 인자 산인데, 그 무렵에는 등산이란 개념은 별로 없었어요. 사찰. 국민학교 때 시골에서 소풍가면 다 절입니다.
총 : 탈선이란 행동을 할만한 건 아니네요.
단 : 뭐 굳이 특별하게 소위 말하는..
총 : 비행 청소년은 아니셨군요.


단 : 그 정도는 아닌데 워낙 노는 걸 좋아하고 이러다 보니깐 인자 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어머니 속을 무척 썩였죠. 학교도 졸업 못하고.. 외아들인데. 그러다가 스무 살 넘어서는 인제 시골에서 많지 않은 농사지만 농사도 좀 짓고, 가끔씩은 많지 않았지만 일도 좀 하고.. 요즘 치면 그 뭐라고 해야 되나, 일용직하고도 좀 비슷하죠. 포항제철 첨 세울 무렵 같은 때는 68년도 기공식을 해가지고 71년도에 세워졌거든요. 그럴 때는 거기 가서 일도 좀 하기도 하고, 시골에서 농사도 좀 짓기도 하고.. 그러면서 시골에서 살았고, 80년대 서울 올라와 동아건설 다니면서 인제 새롭게 노조도 만들고.. 이 일로 17년을 살아온 거죠.


총 : 고등학교 중퇴했다고 자료에서 봤는데 고등학교를 중퇴가 짤린 건가요, 아니면 자퇴하신 건가요?
단 : 반반인 거 같아요.
총 : 자퇴로 포장된 퇴학?(웃음)
단 : 자퇴로 돼 있죠. 학교 기록에는.. 실제 한 6~7번은 퇴학을 맞을 거, 그 당시에 댓병 소주.. 어머니가 댓병 소주 사 들고 선생한테 제발 우리 아들 퇴학 좀 시키지 말고 학교 좀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네 다섯 번 찾아가서..


총 : 무슨 일로 그러셨는데요.
단 : 뭐 특별하게 사고를 친 건 아니였어요.
총 : 학교를 안 가셔서 그런 건가요?
단 : 그렇죠. 포항에서 경주까지 불국사를 놀러를 간다든가 그때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그건 했죠. 원래 노는 게 좋았어. 좌우지간...


총 : 그러다 결정적으로 자퇴로 포장한 퇴학을 당하신 사건은 뭔가요?
단 : 학교를 장기간.. 한 달 가까이 안 나가면서..
총 : 한 달이나 안 나가셨어요?
단 : 네.. 그러면서.. 처리는 자퇴로 돼가 있습니다.
총 : 한 달 결석을 하니까 학교에서는 더 이상 안되겠다. 그게 2학년 때입니까?
단 : 아니, 3학년 올라가서였을 겁니다.


총 : 근데 보통 3학년 쯤 되면 자기미래에 대한 걱정도 좀 하고, 진로에 대한 걱정도 어느 정도하고.. 그럴 나이 아닌가요?
단 : 특이하게 그러지 못하게 살아온 사람이 저인 거 같아요.
총 :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단 : 뭐 학교를 안 다니겠다는 특별한 이유는..
총 : 그런 건 없었고 노는 게 더 좋으니까? 학교로부터 얻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셨나요?


단 : 얻을 게 없다는 생각보다는 공부 자체가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공부에 대한 취미가 있었다면 그러진 않았겠죠. 공부에 대한 취미가 없었고 그게 뭐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고...
총 : 공부는 잘 못하셨군요.
단 : 공부에 대한 취미가 별로 없으니까 공부를 잘 할 리가 없겠죠.
총 : 그때 같이 놀던 친구들, 동네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시나요?


단 : 그 당시에는 동네 친구라고 하기보다 학교친구죠. 어.. 집은 포항에서 12Km 떨어진 시골, 오천이라고.. 어머님은 아직도 거기 계시는데.. 학교는 포항 시내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같이 놀았던 친구들은 마을 친구기보다는 학교 친구고.. 거의 못 만나죠.


총 : 가정형편이 넉넉하진 않으셨죠?
단 : 그렇죠.
총 : 그럼 보통 그... 진로를 가정형편에 연결해 생각한다든가...


단 : 그건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그런 생각을 했었죠. 중학교 때, 중학교 마치면서 이제 집에서는 인문계를 선택해가라고 했을 때, 굳이 상고를 선택했거든요. 그건 대학교까지 다닐만한 여유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생활이 어려웠으니까. 또 그럴라면 빨리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생하시는 어머니도 모시고. 그럴라면 실업계가 낫겠다. 도리어 고등학교 전까지는 그런 생각까지 하면서 고등학교 선택을 했죠.






 


총 : 친구를 잘못 사귄 거 아니구요?(웃음)
단 : (웃음) 남의 탓은 안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도리어 일학년 지나면서부터는 오히려 놀길 좋아하고...
총 : 졸업을 못 하시고 중퇴를 하셨는데 나중에는 후회 좀 되셨겠습니다.


단 : 그렇죠 뭐. 가끔씩 내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그때 그랬으면 하고... 그 당시에는 상고에 다니는 것의 최고가... 은행원입니다. 사회적으로 그 당시에 은행에 들어가는 것은 요즘 치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사회적으로.. 그래서 은행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거죠. 그렇게 가서 공부도 좀 하고 그렇게 했으면은.. 힘들 때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죠. 한 적도 있는데, 그보다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죠.


어머니가 이제 22에 혼자 되신 거거든요. 그 당시에 아들 하나 보고 사신 건데. 위에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가정이 어려워가지고 아들 공부시켜야 된다고 하면서 누님은 초등학교 졸업시키고는, 중학교도 안 보내셨거든요. 아들 공부시킨다고 그러셨는데, 그 어머님을 지금까지 하루도 편하게 제가 모시지 못하고 항상 힘들게.. 그때 받았을 어머니의 상처 충격 이런 걸 생각하면은 두고두고 죄송스럽고 마음이 아팠죠.


총 : 자퇴로 포장된 퇴학..을 당하신 후에는 삼십대 중반까지 농사를 계속 지으신 건가요?
단 : 농사만 지은 건 아니었어요. 장사도 조금씩 해보고..
총 : 어떤 장사..
단 : 차를 가지고 과일 같은 거 산지에서 좀 떼다가 도소매도 해보기도 하고.. 과자 같은 거 도소매.. 이런 장사도 조금 해보기도 하고.. 농사를 직업적으로 지을 만큼 농토를 가지고 있진 않았어요.
총 : 그저 직접 먹는 거 정도.


단 : 그렇죠. 직업적으로 농사를 지을만한 그런 농토는 없었기 때문에 농사도 지으면서 부업으로 시골에서 다른 일도.. 농한기 같은 때는 다른 일도 하기도 하고.. 그리고 토끼도 제가 많이 키워 본 사람입니다. 토끼축산을 73~4년 무렵인데, 그때 토끼붐이 확 일다가 꺼져버렸는데.. 토끼 고기가 좋다고 해서 시골에서는 꽤 토끼를 키웠죠. 앙고라니 뭐니 해서 모를 하는 게 아니고, 식용토끼로. 토끼 한 마리가 6~7Kg 나가는 이런 토끼축산을.. 그것도 한 이,삼 년 했는데 결국은 판로가 막혀가지고.. 하튼 여러 가지를 했죠. 시골에서...


총 : 그러다가 34세 되는 해에 상경하셨는데.. 서울에 오신 이유가 뭐였던가요?
단 : 시골에서 사는데 어려움이 좀 있죠.
총 : 경제적인 어려움?
단 :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고, 제가 결혼을 늦게 했는데.. 80년도 결혼했어요. 결혼하고 집사람이 원래 서울사람입니다. 시골생활은 거의 경험이 없는 사람이죠.


총 :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단 : 건 인제.. 친척 소개로..
총 : 중매 결혼 하신 겁니까?
단 : 중매라고 할 수도 있고.. 친척 소개로 만나서 사귀다가 결혼하게 됐는데.. 시골생활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아내가 시골 내려와서 생활하는 그 자체도 어려웠고, 생활 자체도 또 상당히 힘들고.. 아무리 시골에서 살아볼라고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고, 축산도 해봤지만 잘 안 됐어요. 인제 결혼하고 큰 애가 태어나고 그러면서 시골에서 더 이상 살면서 삶의 대책을 만들기 어렵겠다 판단을 했죠. 그래서 서울로 올라온 거죠.


총 : 올라오기 직전에 하신 건 뭐였죠?
단 : 올라오기 직전에 과일을 하다가 놓고 한 일년을 쉬었죠. 올라오기 직전에는. 특별한 일없이 한 일년 쉬었을 겁니다. 고 직전에 제가 포항에서 택시까지 한 삼개월 했었고.. 다양합니다.(웃음) 그러다가 택시 그것도 내 체격으로서는 도저히 힘들었고.. 요즘은 택시들이 그랜져니, 소나타니 공간도 넓고 차도 좋지만, 전에는 처음 브리사라고 나왔던.. 기아에서 나왔던 그게 주로 택시였는데 공간이 상당히 좁아서 운전하는 사람이 뒤로 의자를 밀어 놓으면 손님들이 불편하기 때문에 의자를 바싹 땡겨 앉고 운전을 해야 되는데 다리를 이래 세워가지고 운전을 해야 될 정도로... 제가 키가 좀 큰 편이라.


근데 그땐 이틀 일을 하고 하루 쉬었어요. 그 이틀 일하는 것도 새벽 4시부터 해가지고 저녁 12시 통금까지.. 이렇게 이틀 해야 하는데 체격상으로도 그렇고 도저히 택시는 하기 힘들어 가지고 한 삼,사 개월 하다가 그만두고 일년 정도 거의 무위도식 놀다가 시골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겁니다.


총 : 군대는요?
단 : 그 당시에 외아들은 군에 면제가 될 수 있었어요.
총 : 외아들이기만 하면?
단 : 네. 외아들은 군에 면제가 될 수 있었는데 내가 인제 68년인가 69년도, 신체검사 나왔을 때 3번 연기를 하고.. 의가사제대라고 해갖고 보충역으로 빠진 거죠. 요즘 식으로 보충역으로.. 외아들이라서 군대 안가고 생계를 책임져야 된다.. 그런 게 있어 가지고. 보충역으로 빠져가지고 6개월 했죠.


총 : 연애는 얼마나 하셨습니까?
단 : 한 일년 정도?
총 : 프로포즈는 무슨 말로 하셨어요?
단 : 그때는 요즘 하고 달라서.. 내가 좀 쑥맥인데.. 특별하게 프로포즈를 하고 뭐 이러지도 않았던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몇 차례 만나고 하면서 서로가 마음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고, 그러면서 서로 신뢰하는 이런 부분들이 반려자로 자연스럽게 생각돼 가지고.. (웃음) 사랑한다 하고 이런 충격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오질 못했던 거 같애요.


총 : 그래도 결정적인 말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결혼하자는..
단 : 아, 그거야 그렇죠. 그런 신뢰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뭐 결혼했으면 좋겠다..
총 : 결혼했으면 좋겠다.. 딱 2단어입니까?(웃음)
단 : 그렇게 하고.. 집사람도 그 말을 듣고.. 나름대로 사람에 대한 신뢰는 있었던 거 같구요. 그래서 동의를 하고.


총 : 결혼했으면 좋겠다.. 약간 말꼬리가 올라가는 그런 톤으로.. 그렇게요?
단 : 그 당시 기록이 있으면 필름으로 쫙 돌려 봤어야 하는데.. (웃음)
총 : 아무리 찾아봐도 그 결혼 이야기들은 없어서 제가 작정하고..
단 : 가장 보편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왔었어요. 남들은 보편적이라고 안 하지만. (웃음)


총 : 결혼하실 때 총각이셨나요?
단 : 그럼요. 총각이죠.
총 : 법적 총각 말구요.
단 : 사실적 총각이기도 해요. 나는..
총 : 아니, 진짜 그러셨나요?
단 : 제가 막 놀러 다니고 이런다고 해가지고.. 그렇진 않습니다.


총 : 80년이면..
단 : 나이가 꽤 많죠.
총 : 삼 십대 결혼하신 거 아닙니까?
단 : 네.
총 : 삼 십대까지 완전히 총각이셨어요?
단 : 네. 안 믿어져요?
총 : 비정상 아닌가요? (웃음)
단 : (웃음) 정상이죠. 그러니깐 애도 다 놓고 살지.


총 : 아니, 어떻게 그렇게 오래 참을 수 있죠? 말씀해주십쇼. 비법을..(웃음)
단 : 비법? 글쎄?(웃음)
총 : 기회가 없으셨나요? 아, 군대 같은 곳에서 몰려갈 기회가 없어서인가요? 남자들이란 게..
단 : 그런 생활은 안 했어요. 안 하고...


총 : 친구들을 확인해봐야 하는데...
단 : 확인해봐도 사실이에요. 특히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해야 되나? 여자는 깨끗해야 되고, 남자는 깨끗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아요. 그 문제에 대해서 남자도 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안 되고.. 결혼을 할 상대, 결혼을 할 상대를 만났을 때, 정말 결혼이라는 과정 속에서 서로가 몸도 나누고 허용하는 거. 이래야지, 남자라고 몸을 함부로 돌려도 된다, 이런 건 아니다.. 좀 고리타분한 생각 같아 보이죠?


총 : 기회가 있었는데 물리친 건가요?
단 : 기회라는 것을 어떤 걸 얘기하는지 모르겠는데.. 시골에 있으면 결혼하기 전에도 여자들과 놀 수 있는 기회들이 참 많죠. 엄청 놀러 다니기도 하니까.. 우리 마을에서 이웃 마을까지 4킬로, 5킬로 심지어는 그 이상 밤에.. 산을 넘어가면서도 놀러도 다니고 그러잖아요. 만나고 놀고 그러는데 그렇게 어울려 노는 거하고 내가 내 스스로 지켜야 될 선이, 남자지만은 그런 것이 어떤 것이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거죠.


총 : 설마 뽀뽀도 안 하셨나요?
단 : 뭐..
총 : 뽀뽀도 안 하고, 완전히 새 걸로..(웃음)


단 : 그럼요.
총 : 야.. 사실입니까?
단 : 그게 뭐 특별한 거라고 거짓말을 해요? 예상외로 우리 나이에 보면은 남자들도 자기 몸에 대해서는 지킬 건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나와 같은 사람들도 꽤 됩니다. 그게 이제 군에 갔다가 우연한 계기에 그런 생각들이 깨져버리는..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의도해서 깨지는 게 아니라 주변의 상황이라든가 이런 등등으로 깨지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은.. 나 같은 생각이 보편적인 생각으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노동운동을 하기 전의 그는 사실, 어떤 면에서 보나 보수적 시골청년이었다.





 


목수의 아들로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다 30세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오로지 공적 삶을 산 예수처럼, 그는 37세 되던 해를 분기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다. 전혀 비슷하지조차 않은, 완전히 다른 삶을. 그 이야기로 넘어갔다.


총 : 87년에 동아건설 창동공장에 노조위원장이 되셨는데 84년에 올라오신 거니까 3년 만에 노동운동에 눈을 뜨신 거네요?
단 : 그렇죠.
총 :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사건이 있습니까?


단 : 결정적인 것은.. 노동이라는 문제에 대해 새롭게 접하게 된 거죠. 예를 들면 제가 직장생활도 해본다거나 이런 건 없었지만 임금을 받는 건.. 노가다든 뭐가 됐든 노동을 안 해본 건 아니거든요. 해봤는데 그때는 정말 절박한 삶의 수단으로 노동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부업 삼아 하기도 하고.. 짧은 기간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근데 서울에 올라올 때 그 당시 십 만원 들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때 아내하고, 딸아이.. 돌도 안 지난 딸아이를 처갓집에 맡겨놓고 일을 해야 되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노동을 내 생존의 문제로 느끼면서 체험한 건 처음인 거죠. 그 때가 처음인데.. 내가 들어갔던 현장이 우리가 말하는 아주 열악한 노동조건이었어요. 12시간 해야 됐고, 아까 머리 왜 빠졌냐 했는데 머리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게 시멘트 가루가 엄청 나는 작업장이었거든요. 시멘트 가루가 알칼리성이 많아 가지고 머리도 빠지게 하고 피부노화현상도 빨리 오게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임금은.. 12시간 맞교대 해봐야 십 만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였죠. 내가 일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거.. 이 정도밖에 못 받나.. 다만 그걸 표현을 하고 문제제기하고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 삶의 현장 자체가 나에게는 새로운 충격으로 와 닿았던 것이었고.


거기다가 노무관리가 정말 군대식이었습니다. 관리자들의 노무관리가.. 생산부장, 생산과장들이 현장에 나오면 그 얼굴을 바라보고 얘기를 못할 정도로 그럴 정도의 차별. 욕설이라든가, 심지어는 관리자에 의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구둣발로 채인다던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는 아주 비인간적인 환경이었죠. 그런 걸 보면서 이런 건 아니다.. 하는 걸 느끼게 되면서..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게 노조로 이어진 거죠.


총 : 결정적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라 누적된 거..
단 : 노동의 체험 속에서 이 비인간적인 현실에 내가 처해있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고, 아무리 봐도 나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던 거고, 이걸 바꿔 보자 하는 게 노조를 만드는.. 정말 삶의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을 느끼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바꿔보자 하는.. 그런 과정이었죠.


총 : 이론을 먼저 접하고 깨인 케이스가 아니라..
단 : 그거하고는 전혀 달랐죠. 그러다가 96년도에 상여금이 안 나왔어요. 아차, 86년에.. 상여금이 상반기 백프로, 하반기 백프로 그랬는데 하반기 상여금이 안 나와가지고 상여금 내놓으라고 데모를 한 번 했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노조를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총 : 그 이후 이제 한 17년 됐나요? 그 사이에 구속은 6번이 되셨고..
단 : 근데 6번, 5번은 논란이 있는 거라 가지고.. 6번이 맞는지, 5번이 맞는지 나도 모릅니다.


총 : 하여튼.. 구속이 돼서 총 5년이 좀 넘는 감옥생활을 하셨고, 또 3년도 넘는 수배생활을 치자면.. 그 세월의 절반 가까이는 감금이나, 구속이나, 수배나 이런 상태셨죠?
단 : 그렇죠.


총 : 그러면 절반 가까이는 활동을 못하는 상태셨는데, 공적인 활동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가족하고는 굉장히 힘들지 않으셨나요? 스스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가족들이 이 일에 대해서 힘들어 하거나..


단 : 힘들어 했죠. 동아건설 창동에서 88년도에 해고가 됐어요. 아니, 89년도 초에.. 해고가 되고, 그 다음부터는 생계문제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못 쓰는.. 수배, 구속..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생계문제는 우리 집사람이 다 전담하다시피 해온 거거든요. 우리 집사람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인 고통, 육체적인 고통이라는 거는 엄청나게 컸던 거죠. 또 아이들도 상당히 많이 힘들어 했을 거예요. 그런 얘기들도 가끔씩은 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방학 마치고 가면 자기들은 왕따 된다. 뭐, 이런 얘기를.. 방학 마치고 가면 열흘 내지 한 이십일은 방학 때 놀았던.. 가족들하고 어디를 갔는데 어디가 좋더라 하는 이 얘기들이 열흘 내지 이 십일은 화제가 된답니다. 근데 이 놈들은 클 때까지 단 한 번도 아빠하고 가족들하고 놀이를 갔다 온다든가, 여행을 갔다 온다든가 한 게 없으니 얘기를 할 소재가 없잖아요. 그니깐 이제 자연스럽게 뒤에 밀려가 있는.. 얘기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런 걸 경험하면서 자라야 했으니까 물질적인 거 뿐만 아니라 그런 데서 오는 정신적.. 이런 것도 상당히 힘들어 했을 거라고 보고 있어요. 가끔씩 그런 얘길 해요. 저희 큰 딸 아이는. 저는 뭐 이 일을 한답시고 다니면서 구속을 당하고 수배를 당했다치러라도 실제 저보다  저희 집사람이나 아이들이 더 힘든 세월을 살아온 거죠.


총 : 원망은 안 하나요?
단 : 왜 원망을 안 했겠어요. 원망도 하죠.
총 : 사모님이 원망을 하실 때 무슨 얘길 하시나요? 사람인 이상 모든 걸 다 참고 그럴 순 없잖아요. 폭발하고 그럴 텐데 그럴 땐 뭐라고?


단 : 하여튼 참.. 안 믿어질 얘기 같아서 얘기 안 하게 되는데.. 제가 이 일할 때 한 번도 직접적으로 폭발할 정도의 불만을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구속이 되고 그래도 표현한 적이 없었고.. 불만 수준은.. 이제 애들 크고 하는데 혼자서 감당 못하겠다.


또 아들놈이 크면서 속도 썩이고, 말도 안 듣고 하니깐 아빠가 필요하다. 좀 가정에 충실하고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인자 혼자 감당하기 정말 힘들다. 이런 요구는 가끔씩 하죠. 근데 속된 말로 이젠 못 살아.. 이렇게까지 폭발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애요. 만약에 그런 폭발이 자주 있었더라면은 제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죠.


총 : 한국 노동계는 사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거군요.
단 : 전 솔직히 얘기를 합니다. 뭐 이게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는 게 옛날 독립운동 하듯 혼자 총 들고, 가족들 안 보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총 : 퇴근하면 집에 가서..


단 : 수배 돼 있어도 소식은 듣고, 구속 돼 있어도 집안 소식 다 듣고 하는 건데.. 눈으로 보고 듣고 다 하는데 정말 못 살겠다.. 가족들 아우성치고 하면은 하기 힘들죠. 저하고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도 그만둔 사람이 많이 있거든요. 그 사람들 중에 아마 뭐.. 거의 대다수가 가정에 대한 생계문제라든가, 가족들이 견디지 못하는 고통 이런 것 때문에 그만둔 사람이 많거든요. 저도 저희 집사람이 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참고 오지 않았더라면.. 힘들었겠죠, 저도. 그래서 항상 고맙다라고 얘기를 하죠.


총 : 사모님이 결정적으로 몰아 세우지 않고..
단 : 그렇죠. 쉽게 말해서 선택해라.. 가정에 대해서 책임을 질래, 계속 일을 할래 선택해라.. 이런 식으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좀 더 가정에 충실해 줬으면 좋겠다 주문은 한 적은 있지만은 양자간의 선택을 하라는 식으로 이렇게까지는 한 적은 없습니다.


총 : 아이들이 그런 적도 없구요.
단 : 그렇죠. 아이들도 뭐...
총 : 집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활동하시는 정도에 비하자면..
단 : 적죠.


총 : 17년의 절반 정도는 아예 볼 수도 없고, 그렇지 않으실 때도 집에 잘 못 들어가실 거 아닙니까? 근데도 집에서는 스트레스를 안 주셨군요.


단 : 그런데 이런 건 있는 거 같애요. 집사람이 나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고 보고 있어요. 그 믿음이 없으면은 아마 그런 생계에 대한 고통, 가정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어야 될 고통, 이런 것을 다 참기 힘들었을 거라고 보는데..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깊이 이해는 못하지만 나쁜 일은 절대 아니다고 보는.. 그건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 일정의 자기희생은 있지만은 다른 사람들도 위하고, 함께 잘 돼보자고 하는 그런 거에 대한 이해.. 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다음에 어떤 경우에도 엉뚱한 일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신뢰는 가지고 있습니다.


총 : 만약 집에서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거나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단 :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결사적으로..


총 : 감옥도 갔다 오고, 수배도 되고 하니 할만큼 했지 않냐? 그만 해라. 이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전 사실 집에서 그러는 게 훨씬 있을 법한 얘긴 거 같은데.. 만약에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단 : 가족을 쉽게 버릴 수는 없겠죠. 어떤 경우든.. 물론 그 과정에서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고 하는.. 더 힘든 노력이 있었겠죠.


총 : 설득이 안 된다..
단 : 안 된다. 정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정말(웃음) 그건 참 갑갑하네. 근데 아마.. 가족을 버리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총 : 잠시 운동을 떠났다가..
단 : 잠시 운동을 떠나든지, 아니면 역할을 줄이든지 뭐 다른 방법을 찾든지, 뭐 이렇게 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가족을 버리지는 못한다..


총 : 뭐, 할 수 없다, 그래도 난 운동을 해야 된다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단 : 그렇지요, 네. 니는 니 갈길 가라,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가라, 이렇게 팽개치지는 못 했을 거예요.


총 : 사모님은 그럼 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하는 기본적인 신뢰 하나만 쥐고 버텼다는 건데..


단 : 뭐, 가끔씩은 얘기도 했죠. 예를 들어 가지고 비정규직 문제가 왜 지지부진한 건지 아주 자세히는 얘기하지 않지만은, 비정규직 문제 때문에 농성을 하고 못 들어가면..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화가 되면은 이런 거 땜에 힘들다, 이걸 어떡해야 되는데 하는 식의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왜 문젠지 얘기도 해 주고 하죠.


노동시간 단축을 해야 한다 하면 왜 해야 하는지 얘기도 하고 그러면은, 조금씩은 다 알고 있죠.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 그럼 집사람이 다른 문제에 비중 두지 말고 나부터.. 내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대꾸하기도 하는데.. 허허허..



그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걸 어색해했다. 자꾸 문장이 나뉘고 호흡이 끊기고 어색한 웃음에 어색한 표정까지.





 


이제 본격적인 정치 이야기.


 


총 : 이제 국회 들어가실 계획을 세우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민노당이 15%대의 득표율을 목표로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노당의 15% 획득에 도움이 되려고 비례대표에 출마하신 건 아니잖아요. 현실정치인으로 나름대로의 정치적 아젠다나 역할설정 이런 게 분명 있을 실 거 아닙니까. 민노당 거수기 역할을 하려는 거면, 그럴 거면 굳이 단병호가 아니어도 된단 말입니다.


단병호가 비례대표가 되면 단병호를 비례대표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국민들이 15% 이상을 지지할 것이다, 이런 전략 하에 현실정치인이 되겠다 나서신 것은 아닐 거 같은데.. 현실 정치인으로써의 아젠다는 뭡니까? 가장 중요한 의제는..


단 : 그게 현실정치인이라는 용어가 저한테는 굉장히 생소한 용어거든요.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요.
총 : 그러니까 예전엔 야전사령관이었다면 지금은 본부에 들어가서 전략회의도 하고.. 역할이 바뀌는 거 아니겠습니까.


단 : 오늘 이 인터뷰 한다니까 누군가 인간적인 면을 많이 얘기 좀 해주라고 귀뜸해 주던데.. 내가 인간적인 면을 얘기 해 줄 게 별로 없어요. 하하.. 어쨌든.. 뭐냐하면 이런 거죠, 비례대표로 이렇게 나서게 된 게 현실정치인으로써 몰 어떻게 해 본다 이런 거 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 정치 세력화하는 부분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장 중심에 놓고 생각했었습니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고 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생각을 해왔던 문제이구요.


또 우리 사회가 이런 엄청난 불평등한 구조로 자꾸 확대되어 가고 있는데 이런 불평등의 구조를 실제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볼 때 그 불평등 구조 속에 있는 그러면서 사회적으로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이런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이 실질적인 정치의 주체로 세워졌을 때,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이거든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정치세력화가 되어야겠다 그리 생각했던 건데 그래서 이번에 비례대표를 선택하면서도 그 문제가 가장 고민의 중심에 있었지요.


그래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위해서 취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은 현장에 다니면서 또 노동자들의 이런저런 의견도 들어보고 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봤을 때 내가 의회에 들어가서 실제 노동자들의 어떤 요구들 이 사회의 어떤 구조적인 문제들 이런 것들을 가지고 치열하게 국회 내에서 쟁점화 시킬 건 쟁정화 시키고 그것을 제도화 시킬 건 제도화 시키고 하는 노력들을 치열하게 보여줌으로써 노동자들이라던가 일하는 서민들이 아, 이제야 뭔가 우리가 정치적 주체로 나서야 되는구나 하는.. 나설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이제 더 많은 각성을 줄 수 있다 하는 주문들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하게 된 게 주요하게 작용을 했고요, 그렇다면 내가 민주노동당을 일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이런 당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비례대표로 나서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상당히 필요하겠다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4.15 총선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민주노총을 쭉 하면서 그 전까지 운동을 17년 간 해왔는데 이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서 직접 지역이라든가 전국을 다니면서 득표 작업을 하는 게, 득표 활동을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정당 득표율을 높이는 주요한 활동이 될 수 있겠다 하는 것도 비례대표를 선택한 이유이고요, 이런 문제가 제가 비례대표로 나서게 된데에 대한 주요한 판단의 근거였었죠.



개인적인 이야기를 끝내자, 내가 이미지로 알던 단병호로 돌아왔다.
질문 대부분을 한 호흡에 답한다.


총 : 그럼 자신의 출마가 민노당의 전국적인 15% 득표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십니까?
단 : 도움이 된다.. 라고 보고 있고요, 지금 목표는 15%에서 수정해서 20%, 30%까지 올려야 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어쨌든 도움이 된다 라고 판단을 하고 있고요.. 우리 사회에서 사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의 정당을 얘기하면서도 한편으로써는 노동자들로부터 신뢰와 적극적인 지지를 못 받고.. 한계가 있는 측면이 있거든요.


대선 때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과연 노동자들의 표가 얼마나 나왔느냐, 하는 이런 문제를 바로 얘기 해 볼 수도 있고 이런 노동자들의 표를 실제 좀 조직해내는, 그리고 그들이 가정에서, 또 친지를 통해서 아니면 주변에서 표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의 주요 역할이라 보고 있는 것이죠. 일반 서민들의 지지와 이걸 모아내는 건 또 여러 활동을 통해서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역할들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고 있는 거죠.


총 : 노동계에서 큰 역할을 해왔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가지고 있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일반 대중에게.


단 : 대중이라는 게 어떤 대중인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해왔던 노동자 대중한테는 인기가 좀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한테는 좀 그러겠지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하는 사람들까지 있던데.. 일반국민들은 언론이라든가 이런 쪽에서 상당히 왜곡된 보도를 통해 잘못 알고 있는 면이 있죠. 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도 볼 수 있다면.. 그 측면에서는 대중적인 인기가 없다라는 거는 일정한 근거 있는 얘기라고 볼 수도 있죠.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논설체다. 구어체로 이렇게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여하간. 자신의 출마가 대중적으로 15% 득표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건 사실 의외였다. 자신의 강성 이미지가 일반 대중에게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여기서부터 시비를 걸어보기로 했다.


총 : 자신이 민노당의 총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서신 거잖습니까. 그 판단의 근거는 있나요? 그러니까 여론 조사를 했다던가, 노조원들이나 함께 활동해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말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단 : 그런 거는 한 적은 없습니다. 한 적은 없고 인제 그 민주노총의 지역조직이라든가 이런 게 다 있지 않습니까 전국적으로. 이런 쪽의 의견들은 쭉 수렴을 해봤죠.


총 : 그건 소위 우리 편, 민노당 당원들의 의견 아닙니까?
단 : 민노당 당원들이라기보다 노동자, 민주노총을 골간으로 하는 이런 조직들의 의견들은 지역을 다니면서 제가 좀..
총 : 내부자들의 의견 아닙니까?
단 : 물론 그렇지요, 내부자들의 의견이죠.


총 : 그 사람들만 투표할 게 아닌데, 이번에는 일반국민 전체를 상대해서 그 대중들에게서 15%를 얻어내야 하는데 단병호라는 이름이 그 일에 도움이 되실꺼라는 판단에 나선 거잖아요.


단 : 우리가 판단 할 때는 내가 비례대표로 나선다든가 실제 노동자들을 대변해주는 활동들을 하기 위한 출발을 하는 것이 노동자들을 이번 총선에서 상당히 결집시켜 내고 하는데.. 도움이 된다 라고 보고 있는 거거든요. 근데 이 판단이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지만은.. 그런 판단들이 분명히 있는데.. 근데 내가 나섬으로써 일반 국민들..


여기서 잠깐.. 저는 사실 일반이라 하는 것이 개별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노동자들과 얘기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 봅니다만, 여기서 일반이라면 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 마치 그 사람들이 국민전체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칭해진다고 보는데.. 그 의견은 다를 수도 있죠.


근데 중요한 거는 뭐냐하면은 그럼 그 일반의 의견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동당이 이후에 가장 중심적으로 정치 토대가 돼야 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걸 포기할 수는 없다고 전 봅니다, 어떤 경우든. 바로 이 지점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일반국민들을 조직하고 일반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도 이끌어내야 하지만은 그러기 때문에 가장 토대가 돼야 할 노동자, 농민들의 조직화를 포기하는.. 그들의 참여를 조직해내는 과정들을 포기하는 건 있을 수가 없다는 거죠.



일반국민 지지를 얻자고 노동자, 농민 조작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 계급정당으로서야 맞는 말이다만, 대중을 상대하는 현실정치인으로서의 상품성에 대한 질문에 답은 아니다.


총 : 그럼, 위원장님이 출마 하시는 건, 노동자나 농민들을 결집시킬 구심점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설정하고 나가시는 건가요?
단 : 아니요, 꼭 내가 나감으로써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들을 정치적 참여에 대한 의지를 만들어내는..
총 : 자극제가 되는?


단 : 그렇죠. 그렇게 하고 또 비례대표를 나가서 활동을 함으로 해서 이후에 더 정치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총선 이후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도 만들어지고 그런다고 보고 있는 거죠.


총 : 당대의 운동가시지만, 현실 정치인으로의 자질이 검증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단 : 이제 검증을 받아야 하겠죠.



총 : 아.. 내가 나가도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기까지는 나름의 고민이 많으셨을 것이고,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기에 내 역할을 그럼 이렇게 저렇게 설정하고.. 하는 그런 결론을 보고 나오셨을 텐데.. 현실정치인으로써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스스로 설정하고 나오신 겁니까?


단 : 일단 국회에서 해야 될 역할들은... 저는 개인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에서는 개인의 측면이 축소되는 게 상대적으로 있을 거 같구요. 뭐냐 하면 어떤 정책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개인에 의해서 이뤄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진보정당은 당 차원에서 어떤 절차를 거치면서 입안되고 확정되는 그런 정책들을 의원들이 당내에서, 국회에서 당의 정책들을 실현시키기 위한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정책생산이라든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당이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이 충분히 있다라고 저는 보고 있구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다.. 주로 해보고 싶다.. 하는 부분은 사실 노동쪽 부분입니다. 의정활동도. 거기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의 일정한 경험과 식견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전문성을 살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보고 있고요. 국회 내에서 의정활동을 하는데 있어 가지고 한 국회의원이 모든 걸 다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에 비례대표를 비롯한 지역구 의원들이 상당히 들어가 가지고 많은 부분에서 영역을 나눠가지고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노동부문에 할 일이 참 많을 꺼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총 : 그럼 이번 비례대표에 출마하신 거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국회에서 내가 현실정치인으로써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라고 생각해서 라기 보다는, 단병호가 비례대표가 됨으로 해서 민노당에 쏠릴 수 있는 관심 혹은 당이 목표로 삼는 득표율을 획득하는 데 용이할 거 같다.. 그러니까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큰 대의를 위해서 이 시점에서 내가 필요하다..라고 판단을 하신 것이 핵심이네요?


단 : 그렇지요. 그게 주요하고. 그 다음에 노동부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지요.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노동관계법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거라 보고 있는 거거든요. 여러 부분에서. 근로기준법에서부터 노동조합법 그리고 산업재해와 관련된 거, 실업에 관련된 거, 고용에 관한 이런 여러 가지 관련법들이 있는데 실제 이런 법들이 재정비되어야 할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그거 아닙니까. 비정규직의 문제라든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녀 성차별을 받는다든가, 이런 차별의 문제가 아주 제도적으로 구조화 돼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법 재정비 이런 것을 실제 참여를 통해서 폐지 내지는 해소시켜 나가는.. 그래서 노동자들이 성의 차이가 아니라, 고용관계의 차이가 아니라, 모두 같은 노동을 할 때에는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가치,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그런 법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는 거거든요.


그리고 지금 고용문제가 심각한 문젠데, 실업자가 양성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은 현재 있는 정규직도 고용이 보장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이런 정책은 별도로 또 만들어야 되겠지만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용의 안정도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정말 내가 이 언제 짤릴 지 모른다는 이런 불안함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일자리가 보장된다고 하는 이런 것도 있어야 되는데 우리는 이제 정리해고가 거의 회사측에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렇게 제도적으로 돼 있는데 이런 문제들도 재정비 돼야할 상당한 부분들이 있구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이런 걸 새로운 법으로 만드는 과정들을 제가 한 번 해보겠다..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 거죠.


총 : 제가 이 질문을 자꾸 드리는 이유가 뭐냐면,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나오면 안돼 라는 의미의 "왜 나왔어?"는 아니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건데 그 이유가 뭐냐.. 그걸 먼저 묻는단 말입니다. 근데 말씀 듣다 보면 단병호가 국회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거 하나와 민노당이 국회의원 단병호를 필요로 한다 하나가 있는데..


물론 둘이 뚝 분리될 수는 없는 건데, 어느 쪽이 더 큰 이유였는지.. 그러니까 민노당이 국회의원 단병호를 필요로 하니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게 우선이었는지.. 아니면 이제는 내가 국회에 들어가서 소위 야전에 있을 때 못 했던 것을 들어가서 해내야겠다 하는.. 일거리, 일감들을 발견을 하신 것이 더 큰 이유인지..


단 : 물론 개별적으로 볼 문제는 아닌데, 굳이 중심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후자 부분이 좀 더 강하죠. 왜 그러냐 하면은 비례대표 후보에 출마를 해서 당의 지지력을 높이고 하는 그런 것도 있지만은.. 그 이후에 실제 들어가서 4년 동안 의원을 하면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을 거 같고 해야 될 역할이 없을 거 같고 한다면.. 그건 안 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볼 때 4년이라는 의정활동을 하는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 있다라는 판단이 좀 더 크게 작용을 했다고 봐야죠.







총 : 제가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까.. 따님이 출마한다는 이야기에 이때까지 고생하고 한 게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 거라는 소리를 남들한테 들으면 어떡하냐.. 하는 걱정했다는 소리를 하시면서 그런 게 마음의 부담이 된다.. 하셨던데 근데 제가 그걸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냐 하면, 위원장님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섬세하다.. 그러니까, 따님이 20대의 자식의 눈으로 아버지 십 몇 년간의 고생이 겨우 국회의원을 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소리로 폄훼될까봐 걱정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위원장님이 그런 소릴 듣고 민감해 하는 건.. 마음의 부담이 된다.. 하시는 건 이거 너무 과민한 도덕적 강박 아니냐..


무슨 이야긴가 하면은, 그... 현실정치인이 되면 사실은 0 아니면 1이 아니라 이거나 저거냐 똑 떨어지지 않고, 결국 0.4 내지 0.6만 이뤄내도 현실적으로는 점진적으로 성공하는 건데.. 그런데 너무 과민하고 똑 떨어지는 도덕적 강박이 의원님을 현실정치라는 환경 속에서 유연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 아니냐.. 국회에 들어간다는 거는 시스템 안에 들어간다는 거고, 혼자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는 없으니까. 뭔가 이쪽에서 내주고 저쪽에서 받기도 하고 하면서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편으로는 단 위원장님의 그런 도덕적 선명성이 십 몇 년 동안 위원장님을 이 자리에 있게 했구나 하는 감탄도 하면서, 또 한편으론 너무 과민한 거 아니냐.


17년 동안의 세월을 돌이켜 본다면 누가 겨우 국회의원을 하려고 저렇게 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정상인이라면 그런 생각은 안 할 텐데. 스스로 너무 예민하고 과민해서.. 일하시면서 저런 오해를 받지 말아야 하는데.. 저런 오해가 있으면 안 되는 데 하는 것이..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유연성을 막는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인데..


단 : 그런 면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비례대표로 출마 결정한 건 당에 대한 그런 역할.. 또 들어가서 의원으로 해야 될 그런 역할..이 있어서지만, 개인적으로 이걸 가야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했거든요. 내가 갈 자리가 아닌데.. 하는 판단의 근거들도 있는 거거든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그대로 남고 싶다.. 하는 마음도 사실 있는 거거든요..


총 : 남고 싶은 이유는 어떤 거죠? 편하지는 않으셨잖아요?


단 : 그대로 남고 싶다라는 것은 일을 않고서 딱 물러나서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은 하되 이 의회정치구조 속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이렇게 일하는 구조 속에서 남고 싶다는 건데..


인제 한편으론 분명히 그런 게도 있죠.. 들어가면 다 똑같은 놈들로 치부돼 왔던 것이 지금까지 정치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란 말이죠. 그동안 안 들어간 건 아니거든요. 들어갔는데 그들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비춰졌나.. 들어가봐야 무기력해지고, 별 역할 못했다..


총 : 전례도 별로 없고..
단 : 예, 그러니까 무기력한 사람들, 쉽게 타협하는 사람들, 자기 신분 상승의 기회로 삼았다고 하는 이런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만 줬다 말이죠. 그런데 정말 내가 들어가 가지고 확실하게 그런 걸 씻을 수 있는가. 씻을 수 있을 만큼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확신이 서기 까지는, 그것이 아닐 바에는 차라리 지금 이 상태로 이렇게 일하는 것으로 남는 것이 더 낫겠다 하는 이런 고민들이 사실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당히 에민한 지도 모르죠. 물론 이런 감성들이 이후에 인제 국회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반영되고 어떻게 적용될지 그건 좀 아마 저도 좀...


총 : 부딪쳐봐야?
단 : 예, 부딪쳐봐야 되겠죠. 부딪쳐 봐야 되는데 에.. 할 수 있을 거 같애요.



말하자면 김문수처럼 안 되는 거.


총 : 노동운동가 단병호에서 정치인 단병호가 되려면 배워야 할 자질 혹은 습득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으신가요? 다른 자질을 요구 받을 텐데..


단 : 그렇겠죠. 일단 그.. 노동조합을 해왔던 민주노총의 위원장으로써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실질적인 정책적 요구들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보여지고 있구요. 정말 어떤 대안들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 문제가 하나하나 민감하게 언론을 통해서 평가되고 할텐데, 그동안 민노총 위원장으로서는 이런저런 방향을 설정을 하고 이런 방향에 대한 대안들을 준비시키고 이런 것들을 검토하면서 방향을 잡으면 밀고 나가는... 사실 위원장의 그게 큰 역할의 하난데,


이제는 그런 정책 하나하나에 대한 보다 더 많은 이해와 또 그걸 실행시킬 수 있는 충분한, 어떤 그 제도권 정치 내에서 실현시켜야 될 우리 정책에 대한 이해와 생산능력. 이런 것들이 강화돼야 될 것이다. 지금까지 야전사령관으로 살아왔다 하면은, 지금은 인제 야전도 해야 하지만은 야전이 아니라 구체적인 작전까지도 짜야 하는 이런 역할이라고 보여지거든요.


그럼 그런 부분에 대한 보완이 상당히 필요할 거다라고 전 보고 있고요, 그리고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겠죠. 제가 볼 때는. 하하하.. 저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할 거라고 보여집니다. 정말 끈기 있게 설득할 건 설득하고 호소할 건 호소하고. 그래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정말 끈질긴 인내를 가지고 활동하지 않으면은 아마 제 풀에 꺾여 갈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도 상당히 좀..


총 : 지금까지 보면 상당한 명망가들이 실제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신문에도 잘 안 나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어디 갔나 싶은데.. 그래서 초선의 의원들을 보면, 국회의원이 됐다는 자체를 너무 신나 하고 말거나 아니면 국회의원이 됐음에도 실제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어서 좌절하거나.. 하는데


근데 가까이서 구경하게 되면 아.. 그럴 수 밖에 없구나 싶은 게 의회정치라는 게 혼자서 무슨 결정을 한다고 그게 되는 것도 아니고, 한 단체의 장이었을 땐 자기가 결정하면은 전체가 움직이거나 혹은 전문직이면 자기만 결정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항상 카운터 파트너가 있고, 이해가 갈리고, 항상 관계 속에서 일이 굉장히 더디 진행되고.. 그러면서 점점 조직의 일원이 되고.. 


그러니까 국회의원이 실제 되신 후에 오히려 더 언론의 노출도 적고, 뭐하고 있는지 스스로 잘 안보이고.. 뭐 상당히 좌절스런 상황에 부딪칠 수도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그럴 때.. 내가 국회의원으로서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단 : 그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어려움이야 있겠죠. 이미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걸 모르고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 어려움이 충분히 있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이겨 나가야죠. 정말 그런 상황이 와서 스스로 주저앉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는데 당원들의, 또 아니면은 현장의 노동자들의 요구가 있는 이상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건 해나가야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가 있는 이상..
이게 그의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엔진이다.


총 : 그럼 이런 건 어떻습니까. 민노당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이 되면 세비를 반납하고 기본생계비를 받고 보좌관도 당이 결정하고 이런 안들이 있더라구요. 확정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야, 이 정도까지 클리어 하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 이거 오바 아니냐..


왜 개인의 생계를 인정해주지 않는 거냐. 이것도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냐. 왜 모든 걸 조직의 원리로만 과하게 부과하나.. 조직과 대의를 위해 개인은 마땅히 희생 해야 하고, 개인의 생계와 상황 차이는 평균적으로 잘라서 인정되지 않고 세비를 다 반납해서 기본 생계비만 주고.. 이게 확정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단 : 아직 확정된 건 아니구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활발하게 토론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일정 부분 특히 공직자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 윤리, 윤리적 강령들이 전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요, 기초적인 건 아마 되어 있을 거예요. 저는 그 문제들도 실제적으로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하면은 이런 거잖아요.


의원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뚝 된 게 아니란 말이죠. 민주노동당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비례대표제에 나오기까지, 또 지역에서 의원들이 배출되기까지 이 당이 이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이렇게 만들어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대단히 열악한 조건에서 있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은 의원이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것도 그것도 좀 적합하지 않을 거 같고요.


두 번째는 이런 어떤 의원들의 일정한 윤리적인 강제성 이런 것들을 두지 않게 되면은 저는, 사람 자체를 믿어야 되겠지 만은 사람 자체가 완벽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항상 이제 부족한 부분들은 구조나 시스템으로 채워나가야 된다고 보는데, 자칫 잘못하면 의원이라는 것이 진보정당을 통해서 나간 의원이지만은, 이 의원도 자칫 잘못하게 되면은 자신의 신분상승 기회로 바꿔 이용할 여지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뭐.. 극히 드물겠지 만은 앞으론 전혀 없다고 보장 못하죠. 이런 것들도 끊임없이 당 윤리규정들을 만들고 이렇게 해서 해야 되는 것이 맞다고 전 보고 있구요.


근데, 나눠서 의원 봉급은 줬는데.. 임금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원활동을 하면서 생계가 유지가 안되서 후원회를 따로 꾸려야 살수 있다.. 이 지경으로 만드는 것은 내가 볼 때 이건 맞지 않다 봅니다. 이건 왜 그러냐 하면 또 다른 구조의 또 다른 모순을 또 만드는 거잖아요. 여하간, 당이 생활을 보장해주는 선에서 일정부분 규정할 필요는 있다...


총 : 예를 들어 강연을 할 때 보면.. 시간이 급해서 비행기를 타고 지방의 시민단체나 운동단체 강연을 갔는데 강연료는 커녕 차비도 안 되거나 아예 안 주거나 하고는 그냥 그걸 당연히 해버리는 경우.. 그러니까 좋은 일 하는 데.. 하면서 개인의 희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거.. 지금 좋은 일 하자고 하는 거니까 조금씩 조금씩 도와가며.. 자기만 잘 살자고 하는 짓 아니니까.. 이런 맥락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것도 다 정도가 있고 마지노선이 있고 또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개인의 희생이나 개인의 제약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국회의원의 활동이라는 게 평균적으로 똑같을 수도 없고, 정당하게 일해서 받는 대가라면 그걸 개인이 알아서 잘 쓰고 활동을 열심히 하도록 조직적으로 독려하는 게 아니라, 이걸 뚝뚝 잘라서 당에서 다 거둬서 나눠 주는 건 너무 과한 거 아니냐.. 개인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부터 출발하는 거 아니냐..


단 : 아마 당에서도 그러겠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당에서 가령 세비가 만원이 나왔는데 삼 천원 가지고 니가 쓰고 칠 천원은 무조건 당에 납부해라. 삼 천원 가지고 니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이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마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죠. 기본생계비는 생계비 대로 지불하고 활동에 대한 것은 투명하게, 또 활동에 대한 어떤 당에 대한 지원 이런 것들도 이루어지고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근데 그거를 똑같이 해가지고 만원을 받았는데, 칠 천원은 당에 내고 삼 천원 가지고 넌 의정활동 하든지 그건 니가 알아서 해라.. 이런 식으로 당이 경직되게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아닐테고.. 의원들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것은 어떻게 우리가 검증을 하고 그 필요한 경비는 당에서 어떻게 챙길 것인가, 모 이런 문제가 되겠죠.



시스템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다만, 기본적인 사고의 방향성 자체는 분명 일반 보수정당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도덕적 우위. 현실 정치가 도덕적이기만 하면 되는 거냐고 따질 여지는 또 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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