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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딴따라] 미국으로 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

2002.2.3.월요일
딴지 영진공 영화딴따라 협회


  첫인상


조 빠지게 재미있다는 친구 말만 믿고 당장 비디오 가게로 달려가 냅다 빌려온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첨 틀었을 때 들었던 생각 으아~ 이거 잘못 걸린 거 아냐? 저 유치한 조명 봐라(실망) 그리고 보이는 얼어죽은 베이시스트를 마주하는 순간 이거 만만치 않겠는걸~(조금의 희망) 드디어 요상한 떼거리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자 이놈 너 자알 걸렸다 으흐흐흐(앞으로 어떤 내용이건 이건 왔다라는 만족감).


그렇다! 새 부리 같은 머리 모양, 가죽 거적을 걸친 듯한 옷차림, 머리만큼이나 뾰족한 구두를 신은 그들이 쏟아내는 음악의 자알 버무려진 맛이란, 장난치고 있는 거 같아도 이미 그 음악적 내공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고수의 그것이 느껴지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미국이나 가야할 쓰레기라고?(뭐 영화 속 설정이니까... 참는다) 도대체 세상 어떤 쓰레기 수준의 밴드가 이렇게 꼭 쪼이는 합주를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이런 독특한 악기 구성을 가지고...


절대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만들 수 없다는 앰프와 기타의 볼륨만으로 뽑아낸 칼칼 담백 삼삼한 생(生)톤 기타. 단순한 리듬을 빡쎄게 치는 듯 하면서도 심벌의 적절한 사용으로 감칠맛을 더한데다가 스틱을 돌리는 여유까지 보여주는 드럼. 아코디언, 만돌린 같은 이국적인 악기가 전하는 풍성한 감각. 치고 빠질 데를 정확히 알고 있는 혼 섹션. 거기에 이들을 한데 합쳐놓으니 더 견고해 보이는 밴드만의 개성 넘치는 음악적 색깔.


가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를 이야기 할 때 나오는 이들의 연주가 엉망이라는... 이야기. 그럼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니들 밴드 연주가 뭔 줄 알기나 해?



 두개의 음악










영화에 나오는 음악은 두 가지다.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가 영화 속에서 행하는 연주와 영화 속에 흐르는 스코어. 사실 스코어도 밴드가 연주한 것(작곡도 밴드..!)이다. 영화 속 음악은 모두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의 작품이란 얘기다.


잠깐 밴드에 대해서 살펴본다면,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원래 1980년대 중반부터 슬리피 슬리퍼스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코믹-락앤롤 밴드다. 이미 1986년부터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우정을 돈독히(?) 해오다가 1989년 장편 코믹 액션 서사 뮤직 로드무비(?!)인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공개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성공(?)과 함께 밴드는 아예 간판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로 갈아 치웠다. 1993년에는 70,000여명의 대 관객 앞에서(핀란드 인구가 약 516만 명이란다!) 100여명으로 이뤄진 합창단 레드 아미 앙상블과의 합동공연을 갖고 클랙식+락+슬라브 민속음악+코믹액션 이란 자신들의 짬뽕 음악을 눈물나게 감동적으로 펼쳐 보였다.


1994년엔 미국 상업음악의 상징(?)인 MTV 시상식장에 굽힐 줄 모르는 머리를 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예의 그 뾰족한 머리와 구두를 신고 쉑시(의 기준이 뭐더라....)한 뾰족 머리 아가씨들까지 코러스로 대동하여 저 멀고 먼 나라 핀란드에서 활약 중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이런 잘 뽑아낸 밴드의 음악이 어째서도대체와이왜뭐땀시 유치해 보일까? 연주는 나무랄 것이 없는데, 영화 속 등장인물마다 이들에게 최악이라고 (심지어는 가수 구함에서 가게 내놨음으로 바꾸도록) 떠들어대는 걸까?



여기에는 음악을 떠나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문화를 바라보는 생각이 담겨있다. 거기 당신, 훌륭한 음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잡소리 없는 매끄러운 연주와 딱! 떨어지는 기-승-전-결이 확실한 편곡? 거기에 감탄을 금치 못할 놀라운 수준의 소리꾼의 눈부신 활약?


물론 그런 빤닥빤닥한 음악도 좋은 음악이란 데 꼭 이견을 달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 기준으로 본다면 D.I.Y.(do it yourself)정신으로 무장한 치고 달리는 펑크 밴드들은 무엇인가? 지금도 꾸준히 추앙 받는 클래쉬(The Clash), 데드 캐네디스(Dead Kennedys)의 연주가 그리도 완벽하단 말인가?


음악에는 단순한 음악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새로운 음악이 생겨난 데에는 분명한 사회·문화적 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음악인 자신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바로 그 태도가 결핍된 음악이 바로 영화 초반부에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가 보여주었던 것이다.


밴드에게 전권을 행사하는 매니저의 요구에 따라 악보 책으로 락앤롤을 공부하고 있는 한, 그들의 음악은 결코 락앤롤이 될 수 없다. 물론 멤피스에서 그들이 펼친 연주는 그 자체만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교과서적인 서프 뮤직이다. 락앤롤이 개화 할 대로 개화한, 음악적으로는 가장 화려하고 발전(?)된 락엔롤이다.


그러나 연주하는 곳은 멤피스다. 흑인의 얼굴로는 전국 규모로 음반을 낼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흑인 동네에서 살던 백인(가난하다고 같은 백인에게도 멸시받고 흑인만이 친구였던)을 불러다가 취입시킨 락엔롤의 발상지.


백인들에게 멸시받는 흑인들이 씨바~ 우린 우리 식으로 노래하며 춤추고 논다며 만든 격렬한 리듬 엔 블루스. 그리고 그 리듬 엔 블루스를 고대로 카피해 낸 쓰레기 같은(주류 백인 문화층에서 볼 때) 가난한 백인(엘비스 프레슬리). 악보로는 배울 수 없는 락앤롤의 태도. 락앤롤의 아픔. 바로 그것이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에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야유를 받은 것이다.



세련된 슬라이드 기타와 쟈니 캐쉬(Johnny Cash)같은 목소리로 노래한다고 그들의 음악이  컨트리가 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뉴올리안즈에 도착해서 연주하는 데낄라(Tequila)를  어색하게 쳐다보는 이유도 물론이다.


조의 카페에서 호응을 얻는 Born To Be Wild는 무슨 의미인가? 단순히 잃어버린, 미국서 자란 사촌동생(80년대 초반 활약한 Ska-Punk풍의 뉴웨이브 밴드 Members의 보컬이었던) 닉키 테스코(Nicky Tesco)의 합류 때문이란 설명은 너무나 진부하다.


오히려 그들이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스스로 경험하게 된 경험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배고픔, 멸시, 떠돌이의 삶을 거치면서 (매니저의 배부름을 제외하고, 아니 오히려 그 차별이 더욱 그들을 고양시키고) 체득하게 된 락커의 울분, 저항정신이 폭발한 것이라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해 보인다.


태도와 정신이 없는 껍데기 음악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평화?


멕시코에의 안착. 멕시코... 아직도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오랜 문화와 음악적 토양을 가졌어도 가난한, 그러나 따뜻한 나라.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통째로 빼앗긴 슬픈 나라. 그러나 늘 낙천적인 사람들.


미국을 헤쳐가면서 키치 수준에서 갖지 못했던 음악의 본질을 어렴풋이 찾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가 멕시코에서 진정 활력을 찾은 것 또한 우연이 아닌 듯 하다.       


텍사스를 거쳐 델 리오에서 연주하는 케이준(Cajun)과 텍스-멕스(Tex-Mex) 풍의 연주들이 보여주는 것 또한, 감독이 의도하는 바다. 이미 미국의 문화에 너무나 많은 것을 점령당한 우리(핀란드나 우리나 뭐...)가 찾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미국서 나서 자라지 않는 이상(혹은 미국서 살아도 소수민족인 이상) 우리는 미국놈이 아니다. 단순히 인종이 아니라 정신, 삶의 태도, 모든 것이 다르다. 영원히 같을 수 없는 우리가 그들을 모방하고 어때, 똑같지? 해 봐야 얼치기 튀밥일 뿐이다. 어차피 한쪽 발을 미국 문화적인 것에 담그고 있다면 이제 나머지 한쪽 발의 것을 과감히 드러내고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는 감독의 이상에 너무도 잘 맞는 밴드다. 미국적인 음악 락엔롤을 연주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속적 리듬과 악기를 바탕으로 깔고 플레잉할 줄 아는 깊이를 가진 즐거운 밴드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심각한 인간들이 오만상 찌푸리고 고민 끝에 창출하는 어려운 게 아니다. 대중과 멀어진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는 자위의 수단일 뿐이란 것을 감독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스윙, 락엔롤, 하드 락, P펑크, 폴카, 케이준, 멕시칸, 핀란드 음악까지 모두 한번에 잘 주물딱 거려서 뭐하나 모나지 않게 만든 음악. 어쩐지 듣다보면 이건 유럽 북쪽 어디멘가에서 만든 거 아닐까?라고(좀 자신은 없다...) 짱구를 굴려보게 만드는 음악. 바로 여기 미국으로 간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스들이 짱짱거리며 연주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들의 실력을 모르겠다고? O.S.T.를 들어봐. 특히나 을!!!  



 
딴진공 영화딴따라 협회 지부장
헤비죠
(heavyjo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