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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독고탁, 메이저리거로 부활하다! 2000. 07.06 목요일
딴지 스포츠 전문기자 파토

 








독고탁을 기억하는가..


불우한 가정환경, 퀵서비수 하이바 만한 대갈통 그리고 존만한 키의 핸디캡을 모두 극복하고 강타자들을 무기력하게 삼진처리하던 마구의 투수.. 우리는 만화방에서 독고탁의 투구 하나하나에 주먹를 불끈 쥐어가며 열광했드랬다. 


공포의 드라이브 볼과 더스트 볼... !


3루쪽으로 와장창 자빠라지며 공을 뿌리면 거대한 S 자를 그리며 홈플레이로 파고 드는 드라이브볼의 엄청난 궤적 변화에 타자들은 멍청히 당할 수 밖에 없었고, 너무도 낮게 날아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에 먼지를 일으켜 스스로를 은폐하는 더스트 볼은 타자들이 도대체 볼이 어딨는지조차 모르게 함으로서 역시 무력한 헛스윙을 유도해 냈던 것이다.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그 마구는 나름대로 독고탁 캐릭터의 특성을 배려하여 고안해낸 것이었다.  


160센티도 안 되 보이는 키에서 공포의 외인구단 까치 같은 위력이 나오기는 힘들터.. 힘의 한계는 물론이거니와 위에서 내려 꽂히는 위압감이 살아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인 거다. 


그런 그에게 아래에서부터 낮게 파고들어 이른바 잠수함적인 떠오름과 변화, 예측불가능성을 무기로 하는 투구법은 신체의 핸디캡을 강점으로 만들어주는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메이저리거로 부활한 독고탁


그런 독고탁이 그라운드를 떠난 지 이미 십여 년... 그의 신화는 점점 잊혀져 가고, 우리들은 더 이상 그런 통쾌함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다.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것도 고교야구가 아닌 세계 최고의 메이저 리그를 무대로.


독고탁보다도 더 다양한 구질로 머리 하나가 더 큰 거구들을 상대로 줄줄히 삼진을 엮어내며, 데뷔 2년차에 올스타전 출장의 물망에 오르는가 하면, 상대 타자들에게서는 마구를 던지는 그런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투정을 하게 만든 장본인. 


김병현... 그가 나타난 것이다.



 김병현의 공은 비디오게임에서나 볼수있는 닌텐도 슬라이더다.- 다이아몬드백스 포수
  
초구 슬라이더를 접한 뒤 혼란스러웠다. 각도가 예리하고 볼의 움직임이 뛰어나 치기가 무척 까다롭다. - 새미 소사, 시카고 커브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심장을 지닌 투수이며 컨트롤이 낮고 볼끝의 움직임이 좋아 앞으로 비디오를 통해 적극적으로 분석해야 할 투수 - 짐 리글맨 감독, 시카고 커브스


177센티미터의 키... 190센치가 넘는 선수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선 난장이에 가까운 신장. 스물한 살의 나이. 경력 2년... 신체적 조건도, 나이도, 경력도 부족하기만 한 것이 그의 프로필이다. 


그러나 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성적은 위의 찬사들이 결코 헛소리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 


방어율 1.86, 2승 3패 13세이브, 38.2 이닝 출전에 삼진 68개. 초특급 구원투수의 성적이다. 


지난 5월에는 월간 방어율 0.66,  9이닝당 탈삼진 19.76개의 기적 같은 삼진율로 메이저리그에 본격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새로운 틈새시장 수출품 - 김병현 


그가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있는 비결은 대체 먼가? 


물론 잘 던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 박찬호가 출중한 신체 조건을 무기로 빠워대 빠워로 밀어부쳐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 김병현은 틈새 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그 틈새시장이란, 바로 언더핸드 투수의 부재 라는 메이저리그의 특성이다. 


일본이나 울나라와는 달리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언더핸드 투수가 없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투수는 단 한 명, 바로 김병현 뿐이다.  


그럼 도대체 왜 메이저리그엔 언더핸드 투스가 없냐?


힘의 야구를 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무래도 강속구를 주무기로 하는 오버핸드 투수들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고, 왼손잡이가 많은 미국의 특성상 오른손 언더핸드 투수들이 제대로 성적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우투수가 좌타자들에게 약하다고 하는 이유가 공이 보이는 시간이 길기고 하고 또 각도상 더 잘 보이기 때문인데, 이 특성이 언더핸드 투수는 더 커지는 거다.  







퀴젠베리


그래서 소수 잠수함 투수들 가운데 100년이 넘는 MLB 역사에 이름이 오를 만한 선수들은 칼 메이스, 켄트 테컬브, 댄 퀴젠베리 등 3명 정도뿐이다. 80년대 활약한 퀴젠베리 이후 MLB 언더핸드 투수의 맥은 완전히 끊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언더핸드 투수의 일반적인 한계를 넘어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가 등장한다면 돌풍을 몰고 올 수 있다.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마이크 피아자 같은 톱타자들조차 언더핸드 투수의 공을 쳐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즉 구질 자체가 너무 생소하고 낯설어서 제대로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거다.   


오버핸드와는 공을 던지는 손목의 각도 자체가 틀리고 공을 놓는 위치가 3루쪽으로 많이 뻗어나간 상태가 되기 때문에 모든 변화구의 변화각이 틀려지게 된다. 그냥 직구를 던져도 낮은 위치에서 공을 놓으므로 공의 회전방향에 의한 기압차로 인해 위로 떠오르게 되는데, 커브나 슬라이더를 던지면 오른손 타자 입장에서는 무릎 뒤로 낮게 빠져나가 폭투가 될 것 같은 공이 붕~ 떠오르면서 휘익 스트라익 존으로 들어오는 모양이 돼 버린다.


이런 공이 제대로 컨트롤이 된다면 가히 마구라 칭할 만한 위력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김병현의 경우 공의 뜨고 가라앉음을 마음대로 조정하며 스트라익 존 구석구석을 공략할 수 있으므로, 드라이브 볼이나 더스트볼 처럼 타자들로서는 도저히 공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만드는 야구카드에도 포함됐다. 


게다가 김병현은 다른 언더투수들이 갖지 못했던 최고의 장점을 갖고 있는데, 그건 바로 강속구다. 


퀴젠베리는 불과 140킬로 초반대의 직구만으로도 그처럼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데 반해, 김병현은 언더핸드 투수로는 경악할 수준인 150킬로 초반대의 공을 뿌려댈 수 있다. 


노모 히데오가 강속구도 없이 거의 포크 볼 하나로 그만한 성공을 일궈낸 것을 생각해 보면, 김병현의 존재 의미와 그 가능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럼 김병현의 성공을 본따 이제 메이저리그에는 수많은 본토출신 언더핸드 투수들이 나타나 위력을 떨치게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바로 이 부분이 틈새시장이라는 거다. 


미국 내에는 앞으로 적어도 10년간 위대한 언더핸드 투수가 나올 토양 자체가 거의 없다. 훌륭한 투수가 되기 위헤서는 투구폼이 늦어도 고등학교 때쯤에는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미국야구 분위기상 어릴 때부터 언더핸드 투수를 목표로 연습을 하는 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땜에 누군가가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즉시 훌륭한 언더핸드 투수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기는 애시당초 틀려먹은 게 미국야구의 환경이다. 이런 점은 메이저리그에 선수들을 공급하는 주변 국가들, 즉 도미니카나 쿠바 등도 예외가 아니다. 오직 울나라와 일본, 대만 등 동양권 국가들만이 언더핸드 투수들을 키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실력만 제대로 갖춘다면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자신있게 내보낼 수 있는 메이저리그 공략 복병들인 셈이다. 특히 키가 작고 하체가 짧은 우리 체형은 언더핸드 투수들에게는 오히려 공을 낮게 뿌리는 데에 유리하기까지 하므로, 체격에서 오는 핸디캡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장땡이지 뭐겠는가.


 그의 신화는 계속된다


김병현의 존재와 성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야구는 서양인이 만든 스포츠다. 그래서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빠워 빠워로만 한다면 동양인 중 아주 특별히 뛰어난 힘과 체격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니면 감히 덤비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발상을 조금만 바꿔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김병현이 우리에게 지금 보여주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있기 전,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우려하며 겁먹은 주민들을 향해 다윗이 외쳤다.


"걔는 덩치가 커서, 내가 돌팔매를 아무렇게나 해도 맞을 거예요"라고.


우리의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그들이 지금껏 발전시킨 모든 것들 속에서 잊혀지고 놓쳐버린 지점이 분명히 있다는 거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승승장구는 비단 야구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 어떤 건지 생각해보게 한다.  잘하면 절라 기뻐하고, 좀 못해도 박찬호나 박세리한테 했듯이 욕만 해대지 말고 애정을 갖고 진득하니 지켜보자. 메이저리그가 하루이틀 하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는가..


김병현의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쭈욱~




딴지 야구전문기자 파토 (pato@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