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긴급제언]의약분업..그 해결책은 ?

2000.6.19.월요일
딴지 의학부 전문 기자 겸 의약분업 해부팀장 
GLOMerulus on SuperBoard


본 기자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환자를 돌보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의사들이 지난 20일부터 전면적으로 환자 곁을 떠나버렸다. 작년 11월 30일부터 시작된 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집단적인 저항은 지난 6월 4일 과천 집회를 고비로 더욱 격화되어 국민의료의 일선에 서있던 울 나라 의사들의 95%이상이 의업 포기를 선언하고 폐업을 해버린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과거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종합병원의 전공의들(인턴, 레지던트라고 불리는 의사들이다. 종합병원의 대들보라고 보문 된다)뿐만 아니라 병원에 취직해있는 의사(봉직의)들과 전국의 의과대학 교수 및 학생들까지 동참하였으니 가히 그 파괴력은 재앙이라고 할 정도이다.


본 기자 여기서 그간의 해묵은 정부와 의사, 약사들간에 벌어졌던 분업 관련 논쟁들을 다시 재탕한다거나 새로운 해석을 가하기 위해 이 기사를 쓰려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간의 논쟁들은 본 기자의 과거 기사를 참고하길 바란다. 


[해부] 의약 분업을 디벼주마 - 1편
[해부] 의약 분업을 디벼주마 - 2편
[해부] 의약 분업을 디벼주마 - 3편


이 번 기사에서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으로 접근해 보자.


 도대체 왜 의사들은 이토록 처절하게 저항하는가?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저항은 점점 그 강도가 거세지고 폭이 넓어지고 있다. 솔직히 그 끝이 보이질 않는 이 혼미한 다툼이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의사들의 저항은 이토록 질기고도 거셀까?


이 질문에 의사넘들, 지네들 밥그릇이 줄어드니까 그러는 거지, 뭐. 그딴걸 질문이라고 하냐.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대부분일까? 아마... 그럴 거다.


그래, 맞다. 분명 그런 면도 있다. 그러나...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의약분업으로 인한 수입의 감소라는 단지 그 한 가지만으로 이토록이나 극단적인 거의 모든 전국의 의사들의 폐업을 설명하기에는 아무리 시장과 경쟁이 난무하는 우리 나라라지만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머 의사넘들 원래 지 잇속 챙기는 거엔 뭐 있는 넘들이자너. 이상할 것 하나도 없자너... 라는 무자비한 생각은 제발 거두어 주시라. 그런 식으로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 다들 잘 아시지 않는가?


의사들의 어찌 보면 오바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반응에는 분명 그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다. 그게 바로 우리 나라의 엽기적인 의료보험 제도라는 거... 눈치들 까셨는가? 기실 의약분업뿐만 아니라 모든 보건의료의 문제를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토론하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의 의료보험의 엽기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자, 그럼 무엇이 문제인지 함 디비보자..


 


 자본주의와 공공의료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것도 서유럽처럼 무슨 혁명이니 꼬뮨이니 하는 지난한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 자리잡은 자본주의가 아닌 수십 년 사이 외세에 의해 강제로 이식된 자본주의 사회이다.


더구나 그 이식마저도 기초적인 정치,경제적인 자양분이 없는 상태에서 일제라는 파시스트와 극우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도되었기에 우리의 자본주의는 최소의 비용과 최대의 효율만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천민자본주의로 시작되었다.  


이런 나라에서 공공의료는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은행도 아니고 공항도 아니다...병원이란다.


먼저 공공의료라는 산업에 대해 생각해보자. 


산업은 이윤을 낳아야만 발전할 수 있다. 즉 투여된 돈에 비해서 나오는 Product가 더 많아야만 한다. 그러나 국민의 공공의료라는 산업은 절대로 그 Product가 투여된 자본에 비해 많을 수가 없다.


속성상 공공의료라는 산업은 대단히 소모적인 산업이다. 이윤만을 쫓아다니는 자본이라는 괴물이 이러한 의료를 좋아할 리는 천부당 만부당하다. 공공의료를 시장이나 경쟁, 효율이라는 잣대로 재단하여 정책을 펴나갔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실패로 끝나게 되는가는 이미 서유럽의 보건의료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공공의료는 돈이 되지 않는 장사고, 만약 의료가 장사가 되려면 자유 방임적으로 각자가 가진 만큼만 의료를 누리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돈 있는 넘만 잘 사는 나라, 훌륭한 나라 미국이 되겠다.


이 때문에 서유럽에서는 공공의료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개입하여 수행해야 할 하나의 국가적 의무로 이해하고 있다. 즉, 자본이 그 자체적 속성상 거부하는 일들을 국가가 강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지난 수 백년간의 근대화과정에서 단련된 합리적 사고를 가진 국민들의 의식과 영국 노동당이나 프랑스 사회당 같은 좌파정당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와 같은 합리적 사고방식이나 좌파 정당 같은 자본에 대한 견제세력이 전무한 극우 이데올로기가 지배해온 사회이다. 그런 고로 서유럽과 같은 복지랄까 공공의료에 대한 국가나 가진 자들의 책무랄까 하는 것들은 거의 지나가는 똥개 짖는 소리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80년대 이전까지는 전적으로 의료가 개인의 능력에만 맡겨져 있었고 그야말로 없는 사람은 아플 권리조차도 갖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고 의료에 대한 국민의 의식이 발전할수록 정부가 마냥 이렇게 똥배짱으로 버틸 수는 없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70년대 말 급격한 경제발전과 공공복지가 발달한 선진국과의 접촉이 점차 늘어 나면서 국민의식은 차츰 신장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북한의 무상의료제도가 정착됨에 따른 정치적 부담 또한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국가로서는 국민의 의료에 대한 일정한 책임이라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가 우리 나라에 의료보험이 도입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나... 누차 강조했다시피 GDP의 일정부분 이상이 공공의료라는 부분에 투입되는 것을 자본은 그 속성상 거부하며 우리 나라같이 견제장치가 없는 사회에서는 자본의 그런 속성이 더욱더 강하게 관철되려 한다는 것은 당근 빠따다.


결국 최소한의 돈만 들여서 의료보험이라는 허우대를 갖추기 위한 방법들이 자연스레 도출되었고 바로 이것이 우리 나라 의료보험이 망가지기 시작한 근본 원인이다.


 


 보험 수가.. 그게 모야?


이제 하나하나 디벼 보자.


먼저 용어 정리. 누차 언급했지만 보험 수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설명드린다. 


하나의 의료행위에 대해 보험공단이 인정한 표준가격보험수가다. 


즉 감기환자 진찰하고 약 지어주고 하는데 의사가 받을 수 있는 총비용이다. (과거, 보험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이 가격을 의사가 알아서 받았다. 정해진 표준가격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환자가 100% 부담한다. 이 수가를 관행수가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내는 돈은 이 보험수가 중 본인부담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보험수가 중 본인부담금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국민이 낸 의료보험료와 국가/사용자 지원금에서 받게 된다. 따라서 의사는 진료를 한 후, 환자에게는 본인부담금을 받고 보험공단으로부터는 의료보험료정부(사용자)부담금을 청구하여 받게 된다.


보험수가(A)는


    = 본인부담금(B) + 보험공단 부담금(C)이며,
      = 본인부담금(B) + 의료보험료(D) + 정부/사용자 부담금(E)
이다.


이때,



B/A = 본인부담률
C/A = 보험급여율
E/A = 정부/사용자 부담률
 로 정의가 되겠다.


 


그런데 1978년 당시 의료보험이 도입되면서 정부나 사용자 측의 당면목표는 E에 해당하는 부분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공공의료를 정부가 책임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왜? 폼나야 하니까..


그러면 어떻게 정부와 사용자는 의료보험의 부담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왔는지, 어떻게 우리의 의료보험이 망가져 왔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리 의료보험료는 아주 싸다?


앞에 얘기한 것처럼 정부/사용자는 E(정부/사용자 부담금)에 해당하는 부분을 될 수 있으면 낮추고 싶어한다. 그래서 실제 정부는 자신들이 부담하는 의료보험 지원금을 지난 20여년간 끊임없이 감소시켜 왔다. (지난 기사 참조) 하지만 다른 부분의 변화없이 일방적으로 E(국가/사용자 부담금)만을 감소시키는 것은 국민의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E(정부/사용자 부담금)을 줄여가면서 이와 함께 적당한 만큼 D(의료보험료)를 낮게 책정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보통 국민들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부 부담금의 감소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자신의 의료보험 부담금의 감소에 따른 혜택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니까... 


이러한 조치는 당시 국민경제가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도 고려된 조치였다. 이것이 바로 저보험료 정책이다. 


독자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나라 국민들이 내고 있는 의료보험료율(의료보험료/전체소득)은 OECD국가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절대로 현재 울 국민들이 보험료를 과중하게 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아니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머시라고라고라! 지금 우리 나라 의료보험료가 비싼게 아니라고라고라? 아니, 지금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라고 눈을 부라릴 독자 여러분들 많으실 것이다. 그렇담 아래 자료를 함 보자.







1998년 현재 공무원의 보험료율(의료보험료/소득)


    독일 : 13.4% , 프랑스: 18.3% , 일본: 8.5%
    대만 :   8.0% ,  한국:  4.2%


 


위 자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부로 느끼기에는 엄청나게 부당한 보험료를 내고 있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더 많은 것 본 기자 다 안다. 이해한다.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거는 밑에서 따로 정리하도록 하고 일단 계속 진행하자.


이렇게 D(의료보험료)와 E(정부/사용자 부담금)가 감소함으로 해서 보험공단 부담인 C(=D+E)가 자연히 감소하게 된다. 즉 본인 부담금을 제외한 의료보험 자체가 커버해 주는 부분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급여 정책이다. 


즉 국민으로부터 걷는 돈(의료보험료)이 적고, 그렇다고 정부가 사용자가 충분한 원조를 해 줄 생각도 없으니, 자연히 보험을 지원해 줄 재원이 줄어들게 되어 보험혜택도 적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저급여 정책이 시행됨으로써 아래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초기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 국민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물론 현재는 전국민 개()보험 시대이지만, 시작은 500인 이상의 사업장에서 처음으로 시행됐고 이어 공무원, 교직원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정작 의료보험이 절실히 필요한 저소득층, 소규모 자영업자등이 포함된 전국민 개보험은 10년 전에야 시행되었다. 


 보험에 해당하는 항목이 그리 풍족하지가 않다. 아직껏 필수적인 의료가 보험에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것이 많다. MRI, 초음파, 산전 진찰, 영유아 예방접종, 노인 의치, 다인실 이외의 병실료, 식대, 최신 의료기술 및 약품... 이런 부분들은 아직까지 모조리 환자가 전액 부담하게 되어있다.


 보험에 해당되더라도 그 운용에 대한 제한이 너무 비의학적이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의 경우 진단부터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거친 후 병의 호전 상태나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최소한 5차례 이상의 CT촬영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험에서는 3번까지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CT촬영이라 하더라도 네번째부터는 보험이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네 번 이상 CT촬영을 하려고 하면 환자가 일반수가로 전액 부담하게 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엔 보험공단은 네 번째 CT촬영을 과잉진료로 해석하여 추징금을 징수하고, 환자가 납부한 금액을 전부 돌려주게 만든다. 


이처럼 보험공단의 비현실적인 보험운용은 깊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국민들 앞에 대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을 환자에게 덤태기 씌우는 질 나쁜 의사로 전락시키고 만다.  병의원 입장에서는 뻔히 눈앞에서 신음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치료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을 맞게 되는 거다. 


이런 예들은 거의 모든 의료 행위부분에 해당되어 있다. 


더구나 최신의 의료 신기술들은 보험에서 전혀 커버해주지 않기 때문에 의사가 아무리 선진 의료기술을 익히고, 병원에서 최신 의료장비를 들여놨다고 해도  정작 이러한 치료가 필요한 국민들은 비싼 의료비 부담때문에 치료를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과거 응급실 인턴의 기사를 참고하시라. 


 


 의료보험의 교묘한 눈속임


전체적인 의료의 수준은 항상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C(의료보험료)가 감소하게 되면 자연히  B(본인부담금)는 감소된 만큼을 더 부담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A(전체 의료비, 즉 보험수가)는 유지해야 하고, 이를 부담하는 한 축인 C(의료보험료)가 감소하니까 당근  B(본인부담금)을 올릴 수 밖에.. 


따라서 의료보험료 감소는 환자가 직접 병의원에서 내는 본인부담금이 올라가게 만든다. 환자측에서 가장 곤란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근데 이것 역시 교묘한 속임수의 외피로 둘러싸여 있다.


감기 같은 병이 걸리면 실제로 의료보험이 커버해주는 부분은 80%에 이르고 따라서 본인 부담금액은 20%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매우 합리적으로 상당부분 보험이 커버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보험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약간이라도 대형사고가 발생하여 병원에 입원치료를 한다거나, 수술을 받는다거나 하면 이야기는 갑자기 달라진다. 


보험이 받쳐 주지 못하는 부분이 갑자기 증가하고 또 커버해준다 하더라도 그 비율이 갑자기 감소하기 땜에 이런 경우 본인 부담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간단한 질환으로 의원을 찾은 경우(1-2만원정도)는 보험이 생색을 내지만, 정작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중요한 질환으로 입원하게 된 경우에는(기백만원대 이상) 보험은 나 몰라라 하고 나자빠지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 나라의 본인 부담률이 얼마인지 아시는가?


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1997년 우리 나라 환자들의 실제적인 본인 부담금은 외래 환자 67.4%, 입원 환자 40.3%로 나타나고 있다. 딱 절반 정도만 보험이 감당해준다는 말이다. 


더구나 수백만원 이상의 고액의료비를 지출해야 하는 경우에는 의료보험은 아무런 힘을 못쓴다. 기계적으로 계산해 보자. 


간단한 질환으로 외래를 방문한 환자의 보험수가가 2만원이 나온 경우 환자의 본인부담금은 13,480원(20,000×0.674)이다. 그런데 총 진료비 1,000만원이 나온 입원 환자는 403만원(1,000만원×0.403)의 본인 부담금을 감당해야 한다. 실제로 1997년 본인부담금이 800만원 이상이었던 사람이 약 35,000명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노므 보험인가? 


본 기자가 우리 나라 의료보험이 보험이 아니라 할인진료라고 했던 거 생각나는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작 중병으로 인해 한 가계가 휘청거릴 정도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보험이 무슨 보험이냔 말이다.


 


비현실적인 보험수가가 왜곡된 의료를 만든다


그러나 B(본인 부담금)가 상대적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C(보험이 부담하는 부분)의 감소가 워낙 치명적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의료비, 즉 보험수가(A)를 줄여 가야만 한다. 


보험 도입 당시 보험수가가 관행수가의 50-70%선에서 결정되었다. 더구나 지난 20여 년 동안 보험수가의 인상이 전혀 소비자물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또 GDP 상승까지 감안하면 넉넉히 보아 주어도 적정수가의 반에도 못 미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보험수가이다. 


보험수가를 갑자기 내리면 직접적인 반발에 부딪히게 되니까 보험수가를 내리는 방법 대신 보험수가 인상을 억제하는 방법을 통해 보험수가를 줄여 간 것이다. 


이에 따라 소위 개, 돼지보다 못한 사람의 분만료, 저고리 찢어진데 꿰매는 것보다도 더 싼 상처 봉합료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이러한 것이 바로 저수가 정책이라는  개념이다.


의사들에게 있어 의료보험이 주는 가장 치명적인 제한이 바로 이 저수가 정책이다. 이는 가장 근본적으로 의사들의 수입을 규정하며 의사측에서 의료를 왜곡되게 하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서 의사의 수입이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는 따로 논의되어야 할 것이므로 일단은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야 된다는 가정 하에 진행해보자.


 



 현재의 수가는 서구의 여러 나라들처럼 상식선의 환자 수를 보아서는 의사들의 수입이 유지되지 않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나라 의사들은 상식선 이상의 환자들을 감당해야만 어느 정도의 수입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이 수를 대개의 내과 개원의의 경우 하루 80-100명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의과 대학의 진단학 과정은 초진 환자의 경우 최소한 20분 이상의 진찰 시간을 들여 환자와 이야기하고 진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처방 및 시술, 상담이 포함되면 이상적인 진료 시간은 아무리 해도 초진 환자의 경우 30분 이상이 걸리게 마련이다. 재진 환자라 하더라도 15분 이상은 걸릴거고...


자.. 한 명의 의사가 하루에 90명의 환자를 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초진 환자 대 재진 환자의 비율은 30:60(1:2)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럼 하루 90명의 환자를 보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30×30분) + (60×15분) = 1,800분 = 30시간.


한 의사가 자기가 배운 바대로, 환자가 만족하게 진료를 행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30시간이 필요하다. 역으로 8시간 동안에 이 수의 환자를 감당하려면 초진 환자 8분, 재진 환자 4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제 왜 우리 나라의 병의원이 30분 대기 3분 진료라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시는가?


이에 덧붙여 의사의 적정수라는 개념에 대해서 마저 이야기해보자. 


의협이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우리 나라의 의사 수가 넘 많다고 주장하는데 반하여 국가기관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아직도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을 언론에서 많이 보아왔을 것이다. 이는 기계적으로 선진국의 인구당 의사 수와 우리 나라의 인구당 의사 수를 아무런 교정없이 직접 비교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선진국은 적정 수준의 보험 수가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처럼 그렇게 많은 환자를 진료하지 않아도 생활이 유지가 된다. 따라서 얘네들은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환자를 볼 수가 있는 것이고 따라서 환자 수 대비 의사 수를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외국의 의사처럼 하루 환자를 20여명 내외로 보면서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현재 환자 수 대비 의사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수가체계 하에서 그렇게 봤다간 우리 나라에서 살아남을 의사는 아무도 없으며 선진국의 의사에 비해 너댓 배의 환자를 더 봐야만 한다. 이렇게 본다면 환자 수에 비해 의사가 너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논란의 핵심은 의사수가 많으냐 적으냐가 아니라 수가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이 돈 갖고 왈가왈부한다는 식의 단세포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곤란하다. 허준도 밥을 먹고 살지, 이슬만 먹고 살진 않는다.


 



 단순히 이렇게 환자를 많이만 보면 의사들의 생활이 해결될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편법들을 동원해야만 수지를 맞출 수가 있다. 그런데 정부나 자본은 이러한 편법의 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의료의 공급자인 의사계층 자체가 붕괴하므로. 바로 이러한 편법이 지난 기사에서 본 기자가 까발겼던 약가마진, 랜딩, 리베이트 등이다.


또 어떻게 해서든지 보험에 해당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의 진료를 늘려야만 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별 필요 없는 고가의 최신 장비나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여타 사이비스러운 의료에도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레이저 중풍 예방주사 등등) 그래서 의사들은 별 의미 없는 궁둥이 주사를 꼭 동원하게 되고 ,사흘에 한번만 오면 될 환자를 매일 오라 그럴 수밖에 없고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독감예방주사를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자신들이 의과대학에서 배웠던 원칙적인 의료는 저 멀리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의사는 뭔가 비도덕적인 집단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과욕을 부리는 의사들은 분명히 있고 이런 방법으로 치부를 한 의사들도 있다. 또 그런 의사들과 접해 보았던 독자들의 기억은 정말 엿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는 위와 같은 크나큰 분류가 있었던 것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기실 어떤 집단이나 망나니는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편법의 폭은 의료 보험 초창기에는 비교적 넓었고 그다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의사들은 이러한 편법을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수용해버렸다는 커다란 오점도 남겼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점차 개혁 무드로 옮아가는 90년대 이후 이러한 편법의 폭은 점차 좁아졌고 또 간간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어 언론지상을 장식한 바 의사계층의 비도덕성에 대한 보편화된 여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버렸다. 이는 정부나 자본이 자신들의 원죄를 숨긴 채로 우리 나라 의료의 모순의 근본원인을 효과적으로 의사계층으로 돌리는 것이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마치 언론의 우리 나라의 후진성에 대한 자신들의 크나큰 책임을 숨기고 정치권으로만 화살을 돌리는데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편법의 폭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의사들의 노동 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소위 인턴, 레지던트라고 불리는 전문의 과정에 있는 의사들의 노동강도는 세계적으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거의 24시간 내내 병원을 지킨다. 밤을 꼬박 새워 당직을 선 후 다음날 오전만이라도 쉬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또한 이들의 수련기간은 점점 장기화되는 추세에 있다. 더구나 이제는 펠로우(fellow)라는 과정까지 생겨 전문의 취득 후에도 수련의 시절 못지 않은 과중한 근무에 시달린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무급(!)이다.


개원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현재 56시간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의원이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공휴일에는 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일요일이라도 쉬는 곳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실정일 것이다. 물론 돈 버는 재미에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도대체 어떤 돈에 환장한 의사가 나이 40이 넘어서까지 가족도 못 챙기고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그 난리 부르스란 말인가? 사실 이건 그렇게 않으면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하는 일이다.  


이런 측면이 의사들을 옥죄는 것이 분명하지만 결국 이러한 모든 부실의 결과는 환자들에게 돌아간다. 하루 10시간 씩 100명씩이나 되는 환자에게 시달리면서 그나마 배운 바 원칙대로의 진료도 행하지 못하는 의사가 어떻게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진료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자.. 이제 슬슬 결론으로 가 보자.



<다음 페이지>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