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최가박당 추천0 비추천0





[정치] 삐딱한 언론에 비친 옥의 티 2000. 6.27. 화요일
딴지 정치 논설우원  최가박당


역사에 길이 남을 2000년 6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북한의 순안 공항에 내린 대한민국 특별기, 그리고 비행기 트랩 앞에까지 직접 영접 나온 김정일 위원장과 기쁨의 악수를 나누는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본 온 궁민의 마음은 한결 같았을 거다.


평화 통일이 눈 앞에 왔다아~


반목과 질시의 반 세기 세월을 넘어 민족 통일의 첫 발자욱을 내딛는 가슴 뭉클한 감격의 순간을 이 짧은 필설로 표현할 길 엄따. 남북 두 정상이 정겹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졸라 감정이 무딘 본 기자조차도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허나...


이 감격의 순간에 찜찜한 광경 하나가 펼쳐지고 있었으니... 겉으론 정상 회담을 환영하는 체하면서도 속으론 허점 찾기에 골몰하는 국내의 보수 언론들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정상 회담이 있던 다음 날 쭝앙일보는 <정상 회담 옥에 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먼저 옥에 티 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평양 순안(順安)공항에서의 북한 환영객들의 태도. 그들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에서 내릴 때부터 의전행사를 마치고 공항을 떠나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할 때까지 붉은 꽃술을 열렬히 흔들며 김정일 (金正日)과 만세 만 연호(連呼)했지 대통령의 이름은 한번도 외치지 않았다. 대통령이 도열한 환영객 앞을 지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정상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자국 정상의 이름만 연호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애써 옥에 티라는 에둘러 말하는 수사법을 썼지만 실상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걸 거다.


씨바! 저따우 정신 나간 동포들이랑 통일이 되갔어?


실인즉슨 타국의 정상, 그것도 한 민족인 남쪽의 정상이 반 세기만에 지네들 땅을 밟는 그 순간에 경애하는 김정일만 보고  거의 반실성한 사람마냥 열광해 대는 북한 인민들의 모습은 코메디의 한 장면이었다.


버뜨!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런 장면이 펼쳐질 줄 몰랐던가? 북한 동포들이 온갖 오해를 감수하며 김대중 만세!라도 외쳐줄 줄 알았던가? 북한 동포들의 현실을 지적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전제될 것이 있다.


그런 북한의 현실을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 하는 거다. 


 우리의 코메디같은 자화상


북쪽으로 향해 있는 우리들의 시선을 잠시 거두고 남쪽으로, 우리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자.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들의 코메디를 돌아보자는 거다. 이를 위해서는 차분한 맘으로 잠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세계인의 눈으로 디벼 볼 필요가 있다.


70년대 세계에 비쳐진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땠을까?


국내에서는 한강의 기적 운운하며 세계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주목하고 있다고 떠들어 댔지만, 실제로 세계인들에게 비쳐지는 한국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노동자의 당연한 요구조차 받아 들여지지 않아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주장을 알려야 했던 나라였고 같은 민족끼리 국제사회에서 항상 으르렁거리며 티격태격하는 이상한 독재국가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79년말 아방궁에서 연예인들 끼고 놀던 박통이 부하의 총탄에 맞아 죽었을 때 세계인들에게 비쳐진 우리 국민들의 태도는 무엇이었는가? 


 이 변방의 나라에서 20년 독재자의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최후를 서럽도록 슬퍼하는 국민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인들은 이상한 코메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받았을 법하다. 마치 우리가 순항공항에 나온 평양시민들을 봤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80년대 세계에 비쳐진 대한민국의 모습은?


불과 수십 킬로 밖에 수십만 적군이 있는 분단현실속에 전방을 군부대를 빼내 수도 한가운데서 쿠테타를 일으키고, 공수부대가 자신들의 부모, 형제에 다름아닌 국민들을 향해 총을 쏴 수백 명을 살상하는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틈만 나면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나라.. 



80년대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살육하고, 허구헌날 대낮 도심에서 수만의 시민과 경찰들이 무력대치하는 기막힌 소재를 각국 언론들은 놓치지 않고 세계 안방으로 생생히 전달했고 덕분에 외국인들은 한국을 폭력과 잔인한 공권력이 판치는 이상한 분단독재국가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럼 90년대는 나아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란 거 독자 느그덜이 더 잘 알지? 


한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들이 경쟁하듯 무너지는 나라, 국적 비행기는 1년에도 수차례씩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대낮에 수도 한복판의 백화점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나라... 주제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다가 쪽박 차고 아엠에푸 구걸이나 받게 된 나라...



90년대 한국은 떨어지는 낙엽도 피해다녀야 할 총체적 부실의 나라였으며, 법 지키는 뇬넘들만 빙신 되는 부정부패의 공화국이었던 거다. 폭탄테러도 아닌데 멀쩡한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떨어져 나간 걸 외국인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덕분에 외국에서 살던 우리 교민과 유학생은 외국인들에게 부끄러워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하였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코메디의 두 주역, 남과 북


요컨대...


모처럼 모습을 드러낸 김정일에게 열광하는 북한 백성들의 정신 나간 풍경을 바라 보며 그저 혀를 차기에는 우리 자신의 정신 나간 풍경 또한 못지 않다는 거다.


경애하는... 해가며 때론 감동의, 때론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북쪽 잉간들의 광적인 모습 위에 오르락 내리락 주식 시장 시세 변화를 타고 때론 감격의, 때론 회한의 눈물을 훔치는 남쪽 잉간들의 돈에 환장한 모습이 오버랩되고...


굶주려 자식을 내다 파는 북쪽 잉간들의 모습 위에 하루에 수백 만원씩 호화쇼핑을 해대는 부유층과 도시락이 없어 수도꼭지를 빠는 결식아동이 공존하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 떠오르고.. 


북쪽 어린 애들이 억지 웃음 지어 보이며 일사불란하게 재주를 넘는 모습 위에 획일화, 서열화된 교육제도 속에 하루에 3-4시간을 자며 입시공부에 매달리는 남쪽 아이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북쪽의 모습을 보면서 비웃어 버리기 전에 우리의 코메디같은 현실부터 부끄러워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진정한 통일은 상호 이해로부터.. 


이제 본 기자의 결론을 말할 때다.


북한의 순안 공항에서 김정일에 열광하는 북녘 동포들의 행태는 분명 씁쓸한 한 편의 코메디였다. 그러나 그것은 옥에 티가 아니라 남과 북 모두 색깔을 달리하여 공유하고 있는 코메디 같은 현실 그 자체일 뿐이다. 


사실상 분단의 현실이 북녘땅을 김일성 독재의 상황으로, 남한을 굼바리 독재의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았던가. 분단의 현실이 한반도 전체를 코메디의 무대로 만들어 놓지 않았던가.


남북 정상 회담 하나로 반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만들어진 남북의 이질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정상 회담 이후 남북 간의 민간 교류 및 경제 협력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남북의 백성들이 서로를 바라 보는 열린 마음이다. 남과 북이 서로 달라져 있는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스스로를 성찰하고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거다.


북쪽에서나 남쪽에서나 상대방을 교육시켜야 할 대상, 혹은 개조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 통일을 위한 민족적 동질감은 만들어질 리 없다. 우리가 북한의 동포들을 개조하고 교육시켜야 하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부터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진정으로 평화 통일을 원한다면 혼란의 반 세기 동안 그 불합리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 자신이 지켜왔던, 그리고 똑같이 북한 동포들이 품어 안고 살아 왔던 삶의 희망을 나누어야 한다.


그들도 좀 더 나은 하루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소시민들이라는 것을, 그들도 편안한 가정, 부모와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따뜻한 잉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돈이 좀 더 있다면, 그들은 더 많은 인정을 가지고 살아갈 거라는 사실을... 별 수 없이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것을... 따뜻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같잖은 돈 좀 가졌다고 근거 없는 우월감에 빠지는 졸부 근성. 남한의 백성들이 그 천민 자본주의 정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만 통일의 길이 열린다는 거다.    


옥에 티라는 쭝앙 일보 기자의 발언 속에는 실상 통일 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너그러운 남쪽의 상황이 옥이요, 북한 동포들의 현실은 티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티를 찾다간 옥은 커녕 도처에 티만 남게 된다. 김정일이 답방할 때면 북쪽에서라고 남쪽의 티를 못 찾을 거 같은가?


지금 그 어디에도 옥은 없다.


분단의 현실은 쪼개진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지금은 그 돌덩어리들을 다듬고 다듬어 옥과 같은 통일의 구슬을 만들어낼 때다. 


지금 우리의 현실속에 옥의 티는 이러한 남북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쭝앙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의 시각일 뿐이다.








딴지 정치부 논설우원 최가박당 
(hoggenug@ddanzi.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